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의 열심 (요 2:13-25)

첨부 1


예수님의 열심 (요 2:13-25)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한 남자가 가방을 들고 차를 탔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헛기침을 하더니 “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게 뭐일까요? 칫~솔입니다. 왜 가지고 왔을까요? 팔려고 갖고 왔습니다. 얼마일까요? 천원입니다. 뒷면을 보면 영어가 쓰여 있습니다. 메이드인 코리아! 무슨 뜻일까요? 수출품이라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되었을까요? 망했습니다. 자, 그럼 하나씩 돌리겠습니다. 다 돌리고 나서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나도 모릅니다. 어디 보자 네 개 팔았습니다. 4천원 벌었습니다. 제가 실망할까요? 절대 안 합니다.” 다음 칸으로 갑니다.
  
그는 급한 걸음으로 다음 칸으로 나갔습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천원짜리 칫솔이 아니라 열심이었습니다. 행상을 해도 열심, 초일류 기업의 인재에게도 열정(Passion)은 필수 조건입니다. 하나님도 열심히 이루십니다.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리라”(왕하19:31) 예수님도 열심가 이십니다.

  
󰊱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14-15절) 예수님은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짐승들을 내쫓으셨습니다. 환전하는 사람들의 환전 통을 쏟아 버렸습니다.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마21:12).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생각난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96:9) 하신 말씀입니다. 열성이 예수님을 삼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전을 위한 열성이 분노로 나타났습니다.  
  
분노는 인생의 에너지입니다. 루터는 분노가 격렬해질 때 어떤 일도 잘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아중심의 분노는 죄를 짓게 하지만, 공의를 위한 분노는 새 일을 행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 장사꾼들이 판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불의를 보고 분노가 타올랐습니다. 불같은 열심, 불같은 분노, 불같은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이 있었습니다. 나는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무엇을 더 원하겠는가? 불이 붙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눅12:49). 
  
신(辛)라면은 매운맛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9년 연속 판매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고객 만족 1위입니다. 매운 고추로 매운 맛을 냅니다. 전국의 모든 고추를 사들여 맛을 보았습니다. 하루 20번씩 국물을 끓여 맛을 골랐습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산지에 따라 맛이 달랐습니다. 면발도 200종류가 넘게 만들어 테스트했습니다. 면 두께와 모양이 다르게 뽑아 시식하며 연구했습니다. 초시계로 시간을 재며 물의 양과 온도를 정확히 측정하며 맛을 냈습니다. 매운 맛으로 승부를 걸어 세계 최고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한 일은 미친 듯했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눅19:46)
  
동기부여 전문가들은 “칭찬하라. 고래도 춤을 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꾸짖고 있습니다. 호통을 치고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일본전산 나가모리 사장은 부하를 꾸짖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왜 큰 소리로 호통 치는지 알아? 자네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야!” 칭찬만 하면 한쪽만 키워 온전한 인재가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을 제대로 키우려면 책망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크는 사람은 혼나면서 큽니다. “발전적 반발심”을 가지게 합니다. 호통치는 상사만한 은인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멍청한 사람은 책망하면 기가 죽고, 제대로 된 사람은 호통치면 눈동자가 살아납니다. 혼난 사람이 성공합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 것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9) 우리가 회개해야할 부분은 불의한 일이 아니라 미지근함입니다. 좋은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심 있는 사람으로의 전환입니다. 열심이 없는 것이 죄입니다.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마16:23) 예수님은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신 것은 베드로를 지도자로 세우려는 스승의 열심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안된다는 제자의 생각은 옳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정도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책망을 듣고 자란 베드로는 하루에 3천명이 돌아오게 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 죽음을 불사하는 열심

예수님의 열심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열심입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온몸을 던지셨습니다. 
열정은 어떤 난관과 어려움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도끼가 아무리 날카롭더라도 한번 찍어 큰 나무를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열번 찍어 안 넘어지는 나무 없다 하지만 100번이라도 찍어서 넘어뜨려야 합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보험 설계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루 100명 이상의 고객과 대화한다” 어떤 보험 왕이 했던 말입니다. “징기스칸에게 열정이 없었다면, 평범한 양치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TV 광고에 나왔던 말입니다. 열심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열정이란 돈도 기술도 경험도 따라 잡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8-19절) 예수님이 헐라는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모신 몸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0-21절)
  
“이 성전을 헐라”는 말씀은 “나를 죽여 보라”는 그 말입니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은 “삼일만에 부활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목숨은 하나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겠다는 결의를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주먹세계에서 패권을 잡는 사람은 싸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덤비는 사람입니다. 죽기 살기로 덤비는 사람은 아무도 못 당합니다. 그런 사람은 독종이라 하는데 독종은 누구도 당해내지 못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죽음 법칙입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죽으면 많은 열매 30, 60, 100배를 맺습니다. 
   
“강한 현장이 강한 기업을 만든다.”는 책 Posco way에 “대담하게 맞서면 성공은 의외로 허술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대담하게 맞서면 성공은 정복된다는 말입니다. 

1968년, 몹시 춥던 어느 겨울날 새벽4시, 당시 포항제철 건설현장 사무소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두 우향 웃!” 그들 앞에는 박태준 회장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습니다. 
  
수평선 너머로 이제 막 붉은 해가 솟아오르려는 듯 바닷물이 붉은 빛으로 반사되어 일렁이고있었습니다. “우향 우”를 하고 서 있는 그들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박태준 회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흘린 피의 댓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을 종자돈으로 제철소를 지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제철소를 짓는 일에 실패하는 것은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모두 저기 보이는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시작한 제철소 건설은 성공했습니다. 당시 제철소를 완공하고 1년 만에 차관 빚을 갚고 242억의 흑자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당시의 표어는 사원들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일본 제철은 우리나라보다 100년 앞선 선두주자였습니다. “일본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고 했던 일본 제철의 불문율을 포스코가 무너뜨렸습니다. 우리 제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일본 자동차 도요타에 도금 강판을 수출하는 포스코가 되었습니다. 

“우향 웃!” 여러분! “우향 웃!” 하세요. 그것은 오른나사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우편에 계십니다. 다윗은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16:8)라고 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쪽이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전10:2) 
  
오른쪽이 옳은 쪽입니다. 왼쪽이 그릇된 쪽입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2533-34)
  
열심이 나를 삼키면 나는 열심의 것이 됩니다. 내가 열심을 삼키면 나는 열심 있는 사람이 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너희가 이 성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주님은 자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망하게 하는 귀신을 모시는 신당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이 성령을 모신 집, 왕 되신 예수님을 모신 성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열심의 영”입니다. 예수의 열심으로 여호와의 열심히 이루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