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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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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11)


미국 어느 고등학교에 졸업하는 여학생이 한사람 있었습니다. 아주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있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모든학생에게 모범이 되어서 졸업식때 졸업생을 대표해서 답사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학생에게 불행한 일이 다가왔습니다. 하교길에 달려오는 버스와 충돌해서 큰부상을 입고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이 여학생에게는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하루하루가 그의 삶에 좌절과 슬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세가지소원이라는 프로그램팀이 방문을 했습니다. 가정가정방문하면서 당신들에게 소원이 있습니까. 그럼 우리가 이루어 드리겠습니다하고 제의를 했습니다. 이 여학생의 집에도 프로그램 팀이 방문을 했는데 부모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딸이 졸업식에 한번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을까요? 

프로그램팀은 그 소원을 위해 준비하게 됩니다. 팀을짜고 각자가 맡은 일을 준비하게 됩니다. 졸업생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다시한번 졸업식을 거행하니까 졸업식 가운을 입고 몇날 몇일 몇시에 강당에 모이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어서 많은 졸업생들이 가운을 입고 강당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제 부모와 가족들도 지켜보고 있는데 의료팀의 부축을 받고 장애를 입은 여학생이 부축을 받으며 졸업식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또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 여학생을 격려하게 됩니다. 그 졸업식 순서는 놀라운 감동과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여학생과 가족에게 그 졸업식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아무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 위로해 준다면 또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격려가 될 때가 있습니다. 진심어린 말 한마디 그것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고 절망했던 우리삶에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더더욱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토요일 선린봉사단에서 섬기고 돕고있는 할머니 한분을 목욕을 시켜드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시켜드릴수가 없으니까 차에 모시고 목욕탕에가서 때를 밀어드리고 도와드리고 그리고 목욕이 다 끝나면 옷을 입혀드리고 다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는 그런 어려운 일들을 하시는데 제가 보기만해도 너무나 흐뭇했습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하고 우리교회에 저렇게 훌륭한분들이 많이 있구나하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저도 자식이지만 우리 부모님께 목욕탕을 가시자고 해서 목욕을 시켜드린일이 없는것 같습니다. 더구나 우리 부모님이 몸이 불편하다면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계신다면 어느 자식이 그 일을 자청하고 나서겠냐는 말입니다. 자녀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선린 봉사단들이 그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협력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참 마음이 너무나 흐뭇했습니다. 

또 남자 집사님 한분은 휠체어 아니면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 한분을 모시고 신풍역으로해서 시내를 한바퀴 돌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집에만 계시니까 답답해 하시기 때문에 바람을 쐬드리기 위해서 휠체어로 모시고 시내를 한바퀴돌고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서 식당에 와서 점심을 대접하고 모셔다 드리는 모습을 볼 때 참 너무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분들이 있는 한 세상은 결코 희망이 없다고 말할 수 없구나.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님들께는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겠느냐. 그것이 우리가 연말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벌써 우리는 12월 첫째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가정에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한해가 언제지나가나 했는데 올 여름은 무던히도 더웠는데 이제 정말 한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를 보내는 우리의 마음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알다시피 북한의 연평도 도발 때문에 많은 희생자가 나고 천칠백여명의 연평도 주민들이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가운데에서도 이런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은 4대강인지 뭔지 때문에 멱살잡고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국민들은 더 실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사랑의 공동모금회라는 단체는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모금단체로서 일년에 이천이백억이상을 모금해서 불우한 시설들에 나눠주던 공동모금회인데 그 공동모금회가 받은 돈들을 너무 낭비하게 사용하고 부정하게 사용해서 또 그것이 사회의 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어두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적으로 대강절 둘째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강절, 대림절, 혹은 강림절이라고 부릅니다만은 이 절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또한 희망의 계절입니다. 2천년전에 이땅에 오셨던 예수그리스도를 기념하고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이 바로 대강절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대강절에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온 세상에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1절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앞에 불순종하고 범죄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모든 예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한채 살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지 칠십년이 다 되어 갔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상해있었습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네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이웃가운데 절망의 한숨을 쉬고 있는 자들, 흑암가운데 있는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증거하라고 우리에게 격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위로해야 할 근거가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오늘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그들의 노역의 때가 끝났다고 그것은 노예생활입니다. 남에게 빚을 졌으면 그 빚만큼 남의 집에가서 일해주는 것, 노예와 같은 생활을 노역이라고 말합니다. 옛날 성경에는 너의 복역의 때가 복역, 복역은 어디서 하는 것입니까. 감옥에서. 자기 죄값을 치루기위해서 감옥에서 하는 것이 복역입니다. 어찌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앞에 범죄해서 감옥이 아닌 감옥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감옥같은 생활, 그런데 그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노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악을 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죄의 벌을 갑절로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죄의 시대가 죄의 복역의 시대가 가 끝났고 이제 너희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이 소리는 희망의 소리입니다. 위로의 소리입니다. 이제는 노예생활이 끝났다. 너희는 자유의 몸이 되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거야. 오늘 그 말씀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가 왜 비참하게 살까요. 때로는 우리가 숙명적으로 내 인생을 저주하며 살아갈까요. 우린 죄에 짓눌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죄로부터 왔고 죄는 우리에게 실패와 파산과 고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모든죄가 용서받았느니라. 그리고 너희의 고통의 때, 복역의 때는 끝났다고 말씀하십니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어떤사람들은 운명의 짓눌려 살아갑니다. 어떤사람들은 마귀의 종이되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내 팔자려니 하면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더 이상 그렇게 살필요가 없다. 이제 너희의 복역의 때가 끝났고 너희 죄가 사함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희망의 말씀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인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병들어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 죄인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왜? 이 죄값을 누가 치를 수 있기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대신 그 죄값을 십자가에서 치루셨기 때문에 너희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죄가 너를 주관하지 못할 것이고 더 이상 마귀가 너를 짓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병든사람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왜? 예수그리스도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성경은 선포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 이상 병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왜?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로 하여금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를 가난하게 버려둠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 운명의 숙명가운데 굴레가운데어서 예수이름으로 뛰쳐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치 베데스다 연못에서 오랫동안 중풍으로 앓아 누워있던이에게 예수님이 다가가셔서 일으켜세우시고 그를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듯이 오늘 우리의 삶의 굴레 가운데에서 중풍환자처럼 숙명으로 받아서 누워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모든 것 내가 다 해결했다. 죄값도 치뤘고 문제도 해결되었고 병도 내가 다 해결했다. 내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대강절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어둡고 절망스러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면 이 참자유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면 이 땅에 소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이 위로를 우리의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대강절은 여호와의 길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3절 4절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무슨 의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바벨론 포로가운데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이 바벨론 포로가운데에서 구원할 수있을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날 것이다. 

5절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너희가운데 나타나시고 하나님이 너희를 찾아가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면 이 고통가운데 있는 백성들, 신음과 억압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친히 찾아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찾아 오신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바로 강림의 계절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우리를 찾아오신 이 계절, 그리고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그럼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오시는 그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이 오시는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3절 4절의 말씀입니다.

제가 어릴때 동네 어른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해하고 들으십시오. 도지사가라고 길닦아 놨더니 거지부터 먼저왔다는 그런말을 자주 했습니다. 옛날에 지체높은 도지사가 시골 면지역을 방문한다고 하면 길을 다 닦습니다. 도로 포장도하고 다 닦고 도지사가 오게합니다. 대통령이 온다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그렇습니다. 지체높은 분이 오실 때 우리가 미리 마음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이제 그분이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는 그 길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오늘 성경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높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고 험한 곳도 평지가 될 것이요 그랬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마음의 대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 마음속에 임하시는데 우리 마음의 대로를 평탄하게 해서 골고루 잘 우리가 토양작업을 해서 그분이 오시는 길이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마음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길을 위해서 준비하라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을 낮추어야 합니다. 미움과 증오를 사랑과 용서로 바꾸어야 합니다. 내 주위의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망없이 한숨쉬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위로를 전달하고 절망한 영혼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실길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대로를 준비하십시오. 우리 마음을 낮추고 마음을 회개하고 죄의 찌꺼기를 깨끗하게 청소해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구유에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계절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깨어있는 계절입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입고 낮과 같은 정경한 옷을 입고 깨어서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이 바로 대강절입니다. 열처녀 비유를 보면 결혼식 잔치가 시작되면 신랑이 신부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이 올때를 기다립니다. 새벽에 신랑이 왔을때 그들은 잠에서 깨어서 준비된 등잔에 기름을 가지고 나가서 불을 켜고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 새벽녘에 신랑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등잔에 불을 켰지만 불을 켤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내쳐지고 마는 비극적인 여인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강절은 바로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회개하는 계절입니다. 깨어서 기도하는 계절입니다. 우리앞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영광을 목도하는 그리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이 대강절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대강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주인되심을 선포하는 계절입니다. 주님이 바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 되심을 선포하는 계절입니다. 10절 11절입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만큼 우리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릴 때는 늘, 너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만은 시골생활이라는 것이 좀 권태롭습니다.

 그런데 외지에 나가서 직장생활하시는 아버님이 이번 토요일에 오신다고 하면 저는 굉장히 마음이 두근거리고 기다려집니다. 왜냐하면 그날에는 아버님이 사탕이든 과자든 사가지고 오실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몇일 전부터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그날만 생각하면 다른 것 불편한 것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만 오신다면 그래서 알사탕을 먹을수만 있다면 내가 이번에는 과자를 꼭 잘 숨겨놔서 다음주간에도 먹을 수 있어야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낼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오늘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은 누구로 임재하시느냐. 그들을 다스리실 전능하신 왕으로 그들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의 주인되어 주시고 그들의 통치자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자로 임하실 것이요.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가장 강한분으로 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칠십년동안 바벨론 포로가 되어서 갖은 고생을 당하는데 하나님은 어디계신거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너무 약한분이 아닌가. 어찌보면 그들은 서서히 회의에 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을까. 이 강력한 바벨론의 손에서 이 강력한 군사력에서 어떻게 해결하실 수 있을까. 어찌보면 그들의 마음속에 회의가 찾아올 때 오늘 선지자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강한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책의 제목을 보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너무나 작은자가 아닙니까. 그런 제목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너무 나약한분이 아닙니까. 내 인생의 문제하나 해결할 수 없는 내 질병문제하나 해결할 수 없는 내 상황도 하나 바꿔놓을 수 없는 그런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가장 강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뒤바꿔놓을 수 있는 그런분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아주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7절 8절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시편에서 이 풀과 꽃은 인생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릅니다. 풀과 꽃은 강력한 바벨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바벨론, 그 강대국은 이제 풀과 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기운이라는 것은 동풍을 말합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사막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풀과 꽃은 하루아침에 시들어버리고 메말라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훅하고 숨을 부시니까 홍해가 마른땅같이 갈라진 것처럼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불어오실 때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질것이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영원히 서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반듯이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자는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설것이다. 유효할 것이다. 불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선지자는 이 백성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그분, 우리를 통치하시고 우리의 왕되신 그분은 가장 강력한 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강한 팔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시고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9절 후반부를 보면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하나님을 바라봐라 절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너희의 위대하신 하나님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그분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을 보면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산을 옮기라하여도 옮길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여러분 앞에 산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산은 어떤 산입니까. 산은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인 것입니다. 누가 감히 저산을 옮길수 있을까 저 거대한 산을. 그러나 여러분 앞에 절망의 산이 있고 가난의 산이 있고 질병이 산이 있을 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심령부흥회때 강사목사님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동감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말씀을 강해하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 백성은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이제 애굽에서 끌어내서 여기서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는 당황했습니다. 설마 홍해가 가로막으랴. 그는 당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부르짖느뇨. 지금은 기도할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부르짖느뇨. 너는 이 백성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이 백성에게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너 스스로가 백성으로 하여금 홍해로 나아가게 하고 네가 든 지팡이를 들어서 홍해를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그대로 했습니다. 백성을 향해서 앞으로 전진,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서 홍해를 쳤을 때 홍해가 두 가닥으로 갈라진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이런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산을 옮겨주십시오. 옮겨주지 않을 것 같아. 기도해도 안돼, 이렇게 절망하지 말고 이제는 네 산을 향하여 명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은 떠나갈지어다. 질병은 치료받을 지어다. 문제는 해결될 지어다.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전능하심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방문하시고 통치하신다면 무엇이 염려가 되겠습니까. 

더더욱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가운데 수많은 실망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왜? 그들을 다스리는 왕들은 늘 기대가 되었지만 곧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포악한 정치를 폈고 백성들을 억압했고 많은 세금을 걷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때마다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되어서 오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대통령을 뽑고나면 굉장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어떤 대통령은 고등학교도 못나오고 너무 고생해서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까 기대가 됩니다. 어떤 대통령은 풀빵장사를 하면서 학교 공부를 했고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알거야 기대를 합니다. 처음대통령이 되면 인기도가 60프로 70프로까지 올라갑니다. 인기도가. 그런데 그 인기도가 일년만지나면 25프로 20프로까지 막 떨어집니다. 백성에게 실망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수많은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망감을 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으로 그들에게 임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더더욱 그분은 10절 중반절에 보면 상급이 그의 앞에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분은 우리에게 상주시는 하나님, 더더욱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그런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자같이 우리를 돌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니까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는도다 그랬습니다. 목자가 되셔서 그 양들을 돌보시는 그 사랑의 목자로 우리를 찾아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는 주인 되심을 우리는 선포하는 계절이 대강절입니다. 우리의 왕되신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메시아 되시는 그분이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대강절을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우리가 받은 위로를 이웃에 증거하면서 대강절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 기도하면서 마음의 대로를 평탄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이 온 천지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분이 다스리신다면 진정한 정의가 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를 진정한 평화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땅에 다시오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의 축복된 대강절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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