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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일터 (엡 6:5-9) -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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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일터 (엡 6:5-9)

복음이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남겨진 선교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선교사님 두 분이 마을 공터에 임시 테니스장을 만들고 땀 흘리며 게임 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한 마을 양반이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 보시오. 불쌍한 선교사 양반들, 뭣 땜에 그렇게 땀을 흘리며 고생들을 하시오. 다음부터는 아래 것들을 시켜서 하시지오” 

이 이야기 속에는 과거 우리 유교 문화가 인식해온 일/노동에 대한 전통적 편견이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험한 일, 즉 땀 흘리는 일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란 이해가 전제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이 당시의 세상에 초래한 위대한 두 가지 역사적 기여가 있었는데 하나는 소위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강조함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사이의 높은 벽을 낮추고 평신도의 중요성을 각성시킨 일이고, 또 하나는 모든 직업의 성직성을 강조함으로 일의 편견을 무너뜨리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 직업이 우리를 직접적으로 죄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직업 자체가 직업의 거룩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직업에 임하는 동기와 태도와 목적이 직업의 거룩함을 결정 한다”고. 말틴 루터 킹 목사님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워싱턴 시내의 흑인가를 지나다가 한 흑인 청년이 청소를 하다가 말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욕을 하고 쓰레기 청소 도구를 팽개치는 장면을 보고 그 곁에 다가가 그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여, 그대는 지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을 깨끗하게 하고 있다는 거룩한 자부심을 가지면 안 될까?”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청소 직을 갖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직업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 직업이 바로 성직, 거룩한 직업이고 그 직업을 수행하는 일터는 바로 거룩한 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성경적인 직업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우리의 일터를 거룩한 일터로 만드는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원들에게 가정에서의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사이의 관계에 이어 이제 종과 주인의 관계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주종 관계를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오늘 날의 노사관계가 될 것입니다. 고용인과 피 고용인의 관계야 말로 우리의 직장 생활 혹은 일터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터를 거룩하게 하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역시 관계에 있습니다. 가정생활이 부부의 관계로 출발하는 것처럼 일터의 삶은 고용인과 피 고용인의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바울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무려 6천만의 노예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에 따라 3분의 1에서 절반까지가 노예였습니다. 신 로마로 불리우던 에베소 도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노예는 당시 사회의 악한 제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제도의 개혁보다도 관계의 개선에 역점을 두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관계의 변화를 제도의 개혁보다 더 중요한 본질적인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이런 복음이 제공하는 인간관계의 변화가 결국은 노예제도를 붕괴시킨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종식시킨 핵심에는 윌버포스 같은 복음적 그리스도인 지도자의 헌신이 있었고, 미국에서의 노예제도의 폐지는 성경을 삶의 교과서로 여긴 링컨 같은 지도자의 헌신 때문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본문이 가르치는 거룩한 일터를 만드는 두 가지 관계를 성찰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고용인을 향한 피고용인의 관계의 덕목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가지가 강조됩니다. 하나는 순종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종들아 두려워 말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고용한 사람이고 내게 월급을 제공하고 생사여탈권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성경의 교훈이 새로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세상이 가르치지 못하는 놀라운 이유를 성경이 제공합니다. 그것이 바로 6절입니다. “눈 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여기 일터의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성경적 조망이 있습니다. 일터는 단순히 돈을 버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지도자에게 주께 하듯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직업관을 설명하는 이런 유명한 예화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세 사람이 예배당 건축하는 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들에게 묻습니다. “무슨 일들을 하고 계십니까?” 첫째 사람이 답하기를, “보면 모르겠소? 돌을 깍고 있소. 돌을!” 둘째 사람이 답합니다. “무슨 일을 하다니요? 돈을 벌고 있소. 돈을!”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 저는 지금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일을 하지만 얼마나 다른 시각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까? 누가 이들 중에 제일 신 바람나게 즐겁게 일을 할까요? 

그리고 본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이렇게 즐겁게 성실하게 일터에서 일한다면 당장에 그 보상이 일터에서 주어지지 않아도 주께서 상급을 주시리라고 언약하십니다. 8절입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모티브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터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일터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거룩한 사명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자들은 직업을 소명(vocation, vocatio=부르심)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둘째는, 피고용인을 향한 고용인의 관계의 덕목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긍정적인 명령과 부정적인 경고를 함께 담아 가르칩니다. 우선 긍정적인 명령은 무엇입니까? 9절이 시작되는 전반 부분을 잘 보십시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종들에게 명한 모든 것이 그대로 주인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종들에게만 일방적인 순종을 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도 종들을 존중하고 순종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들에게도 주께서 함께 하실진대 주께 하듯 그들을 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부정적인 경고가 첨부됩니다.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비인격적 태도를 삼가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윗 자리, 혹은 지시하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보편적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실제적인 경고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9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왜 여기서 특별히 위협을 삼가라고 했을까요? 위협의 밑바탕에는 사랑이 아닌 분노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미 부모에게도 자녀를 노엽게 말라고분노로 이루어질 교육이 없고 분노로 하나님의 의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지시에 익숙한 소위 높은 사람들에게 위협과 공갈을 그치라고분노로 하나님의 의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약1:20을 읽어 보십시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성경은 이런 감정의 절제를 넘어서는 레슨을 고용인들에게 전달합니다. 본문과 같은 맥락의 가르침을 골4:1에서 읽어 보겠습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그렇습니다. 결국은 소위 높으신 분들도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앞에 서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긍휼과 사랑으로 당신이 고용한 사람들을 섬기십시오. 무엇보다 의롭고 공평하게 대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할 말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이제 초대 교회에서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주종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입니다. 오네시모는 본래 골로새에 살던 부유한 그리스도인 빌레몬(바울의 제자)의 노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주인 빌레몬에게 상당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고 로마로 도망칩니다. 그런데 그는 로마의 감옥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로 바울을 만나 전도를 받습니다. 바울은 그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제 오네시모가 진정한 리더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그가 주인과의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그를 빌레몬에게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도망친 노예가 붙잡히면 생명을 잃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제 바울은 그를 옛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감동적인 편지 한 장을 씁니다. 그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몬10절을 읽어 보실까요?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6-18절을 보십시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그 후의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성경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후의 이야기를 교회 전승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빌레몬은 돌아온 노예 오네시모를 바울이 부탁한 그대로 용서하고 맞이하여 그에게 자유를 주고 친 형제로 삼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은 그에게 다시 바울을 도우라고 명합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바울을 수종하다가 후일 바울이 개척하고 요한이 키운 오늘의 바울의 편지가 전달되고 있는 소아시아의 로마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일개 노예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수용한 바울의 사랑, 빌레몬의 결단을 통하여 1세기 소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영적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편지가 쓰여지던 시대에서 50년이 지난 때에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라는 분이 로마로 처형을 받으러 가는 도상에 쓴 편지가 있는데 이 편지에서 그는 당시의 가장 존경할만한 지도자로 에베소 교회의 감독 오네시모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오네시모의 변화에 자극을 받아 신앙생활에 전념하던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 교회 순교사에 의하면 네로 황제 시절 핍박이 몰아칠 때 골로새 교회 빌레몬 감독은 에베소 교회 감독 오네시모와 나란히 체포되어 안드로클레스 총독 앞에서 함께 장렬한 순교의 동반자가 됩니다. 

우리는 매우 유사한 섬김의 기적이 일어난 김제 금산교회(ㄱ자 교회)를 기억합니다. 그 마을의 유지 조 덕삼씨가 선교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은 후 그의 마부였던 이 자익이 또한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런데 수년 후 장로 선거에서 뜻 밖에 이 자익이 당선되고 조 덕삼은 피택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었던 순간 조 덕삼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리고 자기 종 이 자익을 장로로 극진히 섬깁니다. 

스토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후일 자신도 장로가 된 조 덕삼은 이 자익에게 장학금을 주어 신학을 하게 한 후 다시 자기 교회에 초대하여 자신의 목자로 섬깁니다. 나는 이 자익 목사도 위대하지만 조 덕삼 장로가 더 훌륭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조 덕삼 장로의 자녀들은 지금도 대를 이어 이 교회를 섬깁니다. 그 후손중의 한분이 국회의원을 지낸 조 세형 의원(손자)이십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인지요! 이런 섬김의 정신이 실천되는 공동체-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런 섬김이 실천되는 일터-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과 종을 함께 변화시키는 변화의 능력인 것입니다. 복음만이 우리의 일터를 거룩한 일터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터에도 이런 거룩한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십시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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