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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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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 (시 126:1-6) 


1991년 12월 동안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동안교회는 노회 안에서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임하면서 교회에는 새로운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젊은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제법 큰 성장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저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올 때는 옃 명이었는데 지금은 몇 명이라는 말을 꼭 잊지 않고 하곤 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 후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그거 네 목회 아니다.’ 제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네 전임자인 원로목사 목회니라.’ 제가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몇 명 까지는 원로목사님이 하신 것이고 그 후부터는 제가 와서 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걸 다 원로목사님 목회라고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이 또 제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네가 밭을 갈았냐? 씨를 뿌렸냐? 네 선배 목사가 수고한 터 위에서 수고하여 얻은 것들이 아니냐? 네가 뭐라고 하든 지금 이건 다 네 원로목사 목회니라.’

그때 저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목회에는 두 종류의 목회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입니다. 뿌리는 목회보다 거두는 목회가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회를 하면 누구나 다 거두는 목회에 몰입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거두는 목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으려면 거두는 것보다 뿌리는 것을 더 열심히 그리고 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때 뿌리는 목회를 열심히 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뿌리는 목회를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교육목회였습니다. 청년목회였습니다. 그래서 목회의 관심과 중심을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두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름 열심히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동안교회는 본당에만 에어컨이 있고 교육관에는 없었습니다. 공사비가 6천 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당시 동안교회는 건축하려고 모아 놓았던 전 재산을 일산동안 교회 건축하는데 쓰기로 하였기 때문에 돈이 없었습니다. 재정부장이 올해는 돈이 없으니 내년에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가 재정부장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은행에 돈 많습디다. 빌려서 하십시다. 그리고 내년에 갚으십시다.’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아이들 교육관에 에어컨을 달아 주었습니다.

동안교회를 건축하면서 아이들을 위하여 실내 농구코트를 만들어 주고, 컨서트 홀을 만들어주고 카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보편화되고 유행처럼 되었지만 당시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청년부가 몇 명 모이지 않았을 때 청년부 전임 교역자 청빙을 당회에 내 놓았습니다. 장로님들이 청년도 몇 명 되지 않는데 파트타임이면 됐지 무슨 전임교역자가 필요하냐며 반대하였습니다. 제가 끝까지 고집하자 언쟁이 심해져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청년들이 몇 백 명이나 된다면 모를까 얼마 되지도 않는데 전임을 두느냐고 따지듯 묻는 분에게 몇 명 안 될 때 전임을 두어야 몇 백 명이 될 수 있는 거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때 청년부 전임으로 부임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 교회의 담임목사인 이상윤 목사입니다.

결국 동안교회는 뿌리는 목회에 성공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청년 예배에만 1,600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뿌리는 목회를 위하여 제가 나름 열심히 한 사역은 학원복음화 협의회와 코스타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정말 마음을 다하여 섬긴 사역들입니다. 교회 목회는 이제껏 10년 이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학원복음화 협의회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21년째 그리고 코스타는 19년째 좇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내일도 코스타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뉴질랜드로 갑니다.

학원복음화 협의회가 생기기 전 교회와 학원선교단체들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심한 교회는 학원선교단체를 이단시하기 까지 하였고, 이단시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대부분의 교회는 학원단체를 경계를 하고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학원선교단체를 끼리로 서로 경쟁 상대로만 인식하여 서로간의 연계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학원복음화 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영락교회 협동목사로 있었을 때였습니다. 처음 사무실을 제 사무실 옆에 마련해 주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우리 교회 권사님이 되신 최영옥 권사님이 신림동에 빌딩 하나를 지으셨는데 6층 건물 중 한 층은 하나님을 위하여 쓰시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4층 건물을 학원복음화 협의회가 쓸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꽤 여러 해 동안 무상으로 그 건물을 쓰다가 올해 권사님께서 그 건물을 파시게 되었습니다. 학원복음화 협의회보다 권사님이 더 걱정을 하셨습니다. 권사님은 개인적으로 다른 사무실을 얻을 때 보증금이라도 마련해 주실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침 우리 청어람 건물을 팔아서 네 교회가 나누지 않고 한국 교회가 쓸 수 있도록 내놓기로 결정을 하게 되어 지금 한원복음화 협의회 사무실은 우리 청어람에 들어와 있습니다.

학원복음화 협의회에는 많은 후원교회들이 있습니다. 그 후원교회들 중에는 정말 좋은 후원교회가 몇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였습니다. 학원복음화 협의회는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 목적했던 교회와 단체 그리고 단체와 단체를 서로 묶어 주며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청년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는데 중요한 몫을 감당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제가 영락교회 목사로 있을 때부터 시작하여 동안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높은 뜻 숭의교회 목사가 되었을 때까지 그리고 지금 까지도 학원복음화 협의회를 섬기는 사역은 제 사역의 중심이었고 언제나 우선이었습니다.

KOSTA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스타 사역은 해외에 있는 유학생들과 청년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하여 25년 전에 시작된 운동입니다. 저는 1992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92년 여름 처음 미국 코스타에 강사로 참가했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첫 설교가 ‘고지를 정복하라’였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와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수 백 명의 청년들에게 설교를 한다는 것은 참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저들이 이런 집회를 통하여 예수를 영접하고 소명을 받아 자기의 전공분야를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꾼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저를 전율케 하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동안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지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게 아마 제가 동안교회 목사로서 첫 해외 나들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장로님들이 공항에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장로님들을 만나자 마자 제가 한 말은 ‘장로님들 저 코스타 해마다 가렵니다.’였습니다.

동안교회를 시무하는 동안 코스타 집회를 일 년에 네 나라 정도 다녔습니다. 교회를 시무하는 목사가 일 년에 한 달을 비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장로님들이 저를 막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저를 막으면 교회를 그만 둘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시무하면서는 일 년에 여섯 나라 정도를 다녔습니다. 이제는 정말 좋은 강사들이 많아져서 조금 줄이고 있지만 코스타 사역은 제 목회 사역에 있어서 가장 애정을 많이 쏟았던 사역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코스타 사역에 기름을 부어주셔서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학생과 대학원생 뿐 아니라 유스 코스라라고 하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집회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적게는 수 백 명에서부터 많게는 수 천 명에 이르기까지 모이는데 코스타 집회에는 언제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신화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있는데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렸던 코스타 집회는 저녁에 집회를 끝낼 수 없어서 새벽 3시 반까지 집회가 계속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참여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 목회 사역 중 코스타는 가장 수지 맞은 사역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사역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는 2001년 10월 7일 시작되었습니다. 10월 7일 첫 예배를 드리자마자 저는 미국으로 약속된 집회를 나갔습니다. 14일 주일과 21일 주일을 빼 먹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가 개척 다음 주부터 교회를 비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미국 집회는 교회개척 날자를 잡기 전에 미리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미국을 다녀온 후에 개척 날자를 잡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저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은 아마 황당했을 겁니다. 그런 거기에 제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나 믿고 교회다니지 마시라는 의도였습니다. 그때 제가 집회를 갔던 곳이 미국 동부였습니다. 집회를 하는 도중에 미국 보스톤을 돌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하바드 대학교를 비롯하여 소위 명문대학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우리의 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저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제가 보스톤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목회자들을 모아서 보스톤에 있는 유학생들을 돌보는 사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눈치를 보니 별로 관심들이 없으셨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해봤자 학위를 마치면 떠날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유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좀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보스톤에 유학생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마침 그 사역에 관심이 있는 젊은 목회자를 만났기에 그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일 년에 한 10만 불 정도만 지원하면 좋은 유학생 교회가 세워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보스톤 교회 연합회로부터 편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보스톤에 교회를 세우지 말라는 편지였습니다. 저들은 아마 우리가 보스톤에 높은 뜻 지 교회라도 세우는 줄로 알고 경계하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9년 전 보스톤에서 꾼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저와 같은 꿈을 꾸는 분들을 주셔서 보스톤 지역의 청년들과 유학생들을 위한 좋은 집회가 생겼습니다. 올해가 두 번째였는데 첫해는 홍정길 목사님이 강사로 다녀 오셨고 올해는 제가 강사로 다녀왔습니다. 유학생들을 잘 섬기는 교회도 보스톤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특히 우리 개신교회는 지금 내리막에 서 있습니다. 우리 개신교의 앞날을 내다보면 앞이 캄캄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개신교의 앞날을 그렇게 어둡게 보지 않습니다.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대자면 한국 교회의 청년들 때문입니다. 물론 뿌리는 목회의 중요성을 모르는 교회에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심각하게 줄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는 청년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지금 현재 우리를 앞서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당분간은 그런 추세가 계속 될 것 같아 보이지만 오래 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 근거는 청년입니다. 우리나라에 잘 훈련되고 헌신된 청년들이 우리 개신교만큼 많은 종교는 없습니다. 

지난 여름 용인 명지대에서 코스타 코리아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큰 강당이 꽉 찼습니다. 순식간에 예약이 만료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부산 수영로 교회에서 코스타 코리아 집회가 열렸습니다. 코스타는 집회는 숙식을 하면서 하는 수련회입니다. 교회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한계가 있어서 예약을 어느 이상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숙식은 자기들이 해결할 터이니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년들이 나타났습니다. 허락을 했습니다. 결국 수영로 교회 주변의 모든 호텔과 모텔이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코스타 집회를 가보면 언제나 뜨겁습니다. 좋은 강사들이 강사비도 없이 줄지어 와서 저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적인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꿈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자꾸 눈에 보입니다. 일이 되려면 그 일에 합당한 사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젊은이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줄을 서듯 많다는 것입니다. 실력도 있고 열정도 있고 믿음도 있는 좋은 청년들이 우리 한국에는 많습니다. 여기에 우리 한국 교회의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들고 돌아오리라는 말씀이 저는 좋습니다. 이 시편은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시편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구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시126:1-2)

이와 같은 말씀 끝에 우리가 잘 아는 5절과 6절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아멘.

포로 생활을 끝내고 해방의 기쁨을 안게 된 데에는 누군가 그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방이라고 하는 기쁨의 단을 들고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 포로시대와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합니다. 사람들은 거두려고만 할 뿐 씨를 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누군가는 한국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만 합니다. 저는 그 역할을 우리 높은 뜻 하늘 교회가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목회하던 높은 뜻 숭의교회가 분립되어 높은 뜻 광성교회, 높은 뜻 정의교회, 높은 뜻 푸른 교회, 높은 뜻 하늘교회가 되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가 하던 사역들을 네 교회가 서로 나누어 맡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설교 중에 말씀을 드린 학원복음화 협의회 사역과 코스타 사역 그리고 해외 유학생을 위한 사역은 높은 뜻 하늘 교회 몫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담임목사의 은사와 소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 말씀을 드린 사역에 가장 적절한 사람은 높은 뜻 하늘 교회의 이상윤 목사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 교회의 이 목사님은 저와 은사와 소명이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소명과 사역에 마음을 모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의 철학은 거두는 것보다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뿌려 그것을 거둘 때가 되면 자기가 거두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깨끗이 그것에서 손을 뗍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힘들고 어려운 뿌리는 사역을 찾습니다. 거둘 사람은 많지만 뿌릴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높은 뜻 하늘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와 우리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역이 계속되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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