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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인의 재물 관리법 (약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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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재물 관리법 (약 5:1-6)


리 펑이 지은 "부자들의 좋은 생각, 좋은 습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강가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만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수영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물속에서 '사람 살려!' 하고 외치면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의 아들도 수영을 못하여 아버지를 구할 엄두를 못 내고 강가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젊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급히 남자에게 뛰어가 부탁을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물에 빠졌는데 좀 도와주세요!" 남자는 상황을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 아버지를 구하러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내 옷이 모두 젖을 겁니다. 그러니 100달러를 준다면 당신 아버지를 구해주겠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경우 대부분,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으니 어서 저희 아버지를 구해주세요!'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00달러는 너무 비싸요. 70달러로 합시다." 이렇게 두 사람이 가격을 흥정하고 있을 때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뭐라고? 이 망할 녀석! 얼마를 주겠다고? 50달러면 충분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들으셨죠? 50달러에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니…, 그럼 내가 가서 50달러에 당신 아버지를 구해 줄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지요." 남자는 이렇게 말을 하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대로 물에 잠겨 죽고 말았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참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마땅히 쓰야할 때 쓰지 못합니다. 돈의 주인이 아니라 돈의 종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스콧 메싱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돈을 지배할 수 있다면 돈은 당신의 훌륭한 신하가 된다. 만약 돈이 당신을 지배하게 된다면 돈은 몹쓸 주인이 되고 만다.”우리 성도님은 어느 정도 돈을 좋아하는 것같습니까? 어떤 성도님은 교회에서 돈 이야기하면 먼저 긴장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재물과 관련된 구절 16,000 이상 나옵니다. 신약에서 사랑 다음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가 돈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2/3가 돈에 대한 것입니다.

여성학자 오숙희씨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돈이 좋다'라는 책을 내 놓았습니다. 그녀는 여성문제 강연하다가도 돈 얘기만 하면 졸던 여자들이 다 벌떡 일어난다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적하기를 한국 사람이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되는 걸로 돼 있는 두 가지가 있는 데 그것은 돈과 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돈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돈이 이미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돈은 교환 기능과 가치척도 기능, 가치 저장 기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고 상품화시키고 있습니다. 사랑도 우정도, 효도, 심지어 신앙까지도 상품화시키고 있습니다. 막스는 “돈이 나를 인간의 삶과 연결시키고 나를 사회와 결합시키며 자연과 인간과를 결합시키는 끈이라면 돈은 모든 끈 가운데 끈이다. 돈은 모든 끈을 풀기고 하고 맬 수도 잇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돈과 바꿀 수 없는 것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돈은 어디든지 뚫고 들어갈 능력이 있습니다. 돈이 전능성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습니다.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돈 때문에 웃습니다. 돈 때문에 슬퍼합니다. 돈 때문에 결혼하기도 하고 돈 때문에 이혼하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자살하기도 하고 돈 때문에 살 힘을 얻기도 합니다. 돈이면 스타도 될 수 있고 돈이면 명예도 얻고, 돈이면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돈이 만능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가 종교가 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돈 자체가 악일까요?/ 돈의 본질

우리 신앙인의 돈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가난한 것 영적이고 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적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는 청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목사는 집도 없고 통장도 없어야 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가난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반드시 부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번영의 신학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은 일만악의 근원이니까 돈 보기를 돌 보 듯해야 할까요? 저축도 하지 말고, 부자되지 말고 일용할 양식으로 청빈하게 근근히 살아야 할까요? 사실 돈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자로 사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지도 않고 부자를 정죄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 욥은 당대의 최고 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에 대하여 악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10:22)”라고 말씀합니다. 부자가 되어 사는 것도 복 받은 인생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딤전 6:10절을 찾아 보십시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여기서 사랑함이라는 말은 “휠라기라아”의 번역으로 탐욕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을 찾아보십시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13:5)”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라는 본래 말은 “아필라귀로스”로 돈을 탐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결코 돈 자체를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돈을 정당하게 버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악의 뿌리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돈을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돈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딤후3:2절은 말세의 특징 중 하나가 돈을 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 3:2)”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지적하여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돈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돈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돈은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돈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돈의 능력과 보장성이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1-4)"라고 읊조립니다.

부자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일까요?
아닙니다. 부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저주일 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처럼 아버지의 유산을 받으니까 방탕해지고 돈이 있으니까 오만해집니다. 부자 청년처럼 부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교만해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시73:12)”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지만 악익들이라고 합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이들은 죽을 때고 고통이 없고 힘은 강건하다고 합니다. 고난도 재앙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이 그들의 목거리가 되고 강포가 그들의 옷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만하게 되고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 때문에 하나님을 반역하며 불순종합니다. 돈이 하나님을 멀어지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신8:12-14; 시52:7; 잠11:28)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런 부자는 축복의 대상이 아니라 저주의 대상이라고 회개하라고 외칩니다(렘5:26-30;겔28:3-7; 사5:8-9,13). 

그러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반드시 저주받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도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고 무덤도 남의 무덤에서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거지 나사로에 대하여 예수님은 저주받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가난 때문에 마음이 겸손해지고 가난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가난을 권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15:5)”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에게 축복해 주시면 부자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돈 자체, 재물 자체는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아닙니다. 부와 가난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 70% 이상은 지극히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 아이들이 아빠가 너무 가난하다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3남매가 다 커서 딸 아이가 자기 방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 때 제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부자야. 감사하며 살아.”라고 말합니다. 제가 제 이름으로 된 집이 있어 부자가 아닙니다. 저금 통장에 잔고가 백 만원도 없이 이제까지 살아 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차 상위 계층에 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 중에 저보다 더 조건이 않 좋은 사람들은 반절 이상 넘습니다. 

부와 가난은 기준점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20억이 넘습니다. 전기의 혜택만 받아고 20억보다는 부자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20억이 넘습니다. 집에 식수 시설이 없는 사람이 10억이 넘습니다. 천원 미만으로 사는 사람이 12억명이나 됩니다.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영양실로로 고통받는 사람이 8억명이 됩니다. 건강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이 한 주에 백만명이 넘습니다. 전쟁의 위험으로 5억명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75%는 제대로 잠자고 살 집이 없습니다. 92% 은행에 예금도 못하고 지갑에 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다 부자들입니다. 가난한 나라를 가보면 참으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지요, 잠잘 수 있는 집이 있지요. 얼마 되지 않아도 은행에 잔고가 있지요. 밥 굶지 않지요. 타고다닐 차가 있지요? 섬길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는 좋은 교회 있지요? 눈이 작아서 그렇지 그래도 마음씨 착한 목사 있지요? 부자 아닙니까? 


2. 우리는 부를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할까요?(관리 방법/취득방법/사용방법)

1) 사용자, 관리자가 아니라 소유자로 재물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축적해서는 안 됩니다(2-3). /관리/ 주어진 부 유지하는 방법

저금하는 것이 죄일까요? 어느 교회 담임 목사 청빙 조건을 보니까 저금통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금통장을 가진 것이 죄일까요? 적금을 드는 것이 죄일까요? 재물을 축적하는 것이 죄일까요? 이것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씀할까요?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잠 21:20)"

노아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창 6:21)"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저축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대상 29:16)"

바울도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헌금을 위하여 저축해 놓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간 다음에야 비로소 헌금하느라고 서두르지 말고 여러분은 일요일마다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얼마씩을 미리 저축해 두십시오(고전 16:2) 공동번역"
저축하는 것은 악도 아니고 죄도 아닙니다. 지혜입니다. 록펠러는 "저축 10%, 십일조 10%, 나머지 80%로 사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부자는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예금한다고 합니다.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부를 쌓아 놓는 것이 무엇이 나쁘다는 말입니까?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신약 성경 시대에 부를 쌓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1)곡식을 쌓아 두는 것 (2)옷감을 모아 두는 것 (3)금, 은, 보석을 수집하는 것 등입니다. 

야고보는 2,3절을 통하여 이 세 가지 형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옷이 좀먹은 것은 입고 다니는 옷이 아닙니다. 장롱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음식도, 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쌓아 놓고 썩혔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원하는대로 부의 재창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달란트 비유를 통해 말한 1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땅에 묻어 놓았습니다. 주인의 의도를 모르고 묻어 논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오셔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하며 있는 것까지 빼앗겼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결산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산하는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근본적인 잘못은 재물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단지 사용권과 관리권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리도 사용도 못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대상 29:11)”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 

하나님이 절대적 재산권 소유주이십니다(레25:23 신10:14 시24:1 욥41:11) 인간은 대리인이고 청지기일 뿐입니다. 인간은 소유권 없습니다. 관리권 사용권이 주어졌습니다. 재물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축적하는 것은 그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부자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고 곡간을 더 크게 짓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지만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깨끗하고 정직하게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고 인정하고 관리권, 이용권은 나에게 있으니 잘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크고 작든 재물을 쌓아 두지 말고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보장해주고 그것이 인기를 지속시켜주고 그것이 편안하게 해주고 그것이 기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물은 영원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습니다. 수명이 끝날 때가 옵니다. 재물을 쌓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은 돈만을 위해 일합니다. 진정 주인의 뜻을 해아려 주인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헨리 포드는 “단지 돈만 버는 사업은 불쌍한 사업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결국에는 돈을 위해 일을 하게 됩니다. 돈으로 쾌락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돈으로 산 쾌락은 대부분이 순간적입니다 그래서 곧 더 많은 돈을 들여서 더 많은 쾌락과 즐거움, 편리함을 사려고 하고 돈에서 안정을 찾으려 합니다. 돈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고 욕망을 시련시켜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돈은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돈이 없을 때 두려움을 가집니다. 돈이 쌓여지면 지키기 위해 공포감은 더욱 강해집니다. 두려움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그들의 허약해진 영혼 때문에 항상 신경질적이 됩니다. 돈이 떨어지면 친구들이 비웃을 거라고 걱정합니다. 돈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때, 종말의 때가 되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재물은 썩고, 옷은 좀먹고, 금과 은은 녹슬고, 이것들이 재물을 잘못 관리했다는 증거가 되고 불같이 너희 살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주신 축복이 잘 못 관리하여 심판의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도구가 오히려 잘 못 관리하여 심판의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달라트 비유에서 나온 1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선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게으르고 악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재물이지만 잘 투자하고 활용하면 큰 재물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활용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재물은 돌아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축적을 목적으로 하지말고 주의 뜻을 이루는데 목적을 두고 소유를 주장하지 말고 잘 관리하여 하나님이 이익을 남겨야 합니다. 마지막 결산의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3)”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재물은 누가 나의 중인이냐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라고 했습니다.

2) 재물을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4)/취득방법/ 정당하게 돈버는 방법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부자가 되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신약시대의 노임은 하루가 기준입니다. 일당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추수하는 일군에게 일을 시켜 놓고 삭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부를 취득합니다. 이것은 부당한 방법입니다. 착취하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힘으로 빼앗는 것입니다. 편법 탈법을 저지를 것입니다. 도적질하여서, 부정직한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사람을 속여서 부를 쌓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잠깐을 쌓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합니다. 부자보다는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욕망을 버리고 정직하게 벌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한 마음으로 섬기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그를 도와주고자 가난한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하나님이 길가에 있는 돌멩이를 한 번 가르치자 돌이 황금으로 변했답니다. 그 황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만족해하지 않았답니다. 하나님은 다시 커다란 돌사자를 금사자로 변하게 하여 그에게 주었으나 그 사람은 여전히 만족해하지 안았답니다. 

하나님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네가 만족할 수 있단 말이냐?" 하나님의 물음에 가난한 사람은 잠시 우물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의 그 손가락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은 크게 노하여 가버렸고, 황금으로 변한 돌과 돌사자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답니다. 욕심부리면 될 일도 안됩니다. 돈 가지고 속는 사람들 다 욕심 때문에 속 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 쉴러는 “욕심이 많은 사람은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고 말합니다. 돈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더 목이 마른 법이라고 합니다. 단지 돈만 벌기 위해 일하지 말아야 합니다. 

뇌물로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잠 13:11)"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모읍니다. 부자들이 돈을 모으는 부정적인 이유로는 그들이 운이 좋았거나 혹은 부정한 방법이나 불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이유로는 부자가 열심히 노력했거나 근검절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공동점은 열정이 있고 부지런합니다. 절약합니다. 다른 말로 하며 자기 관를 잘 한 사람들입니다.


머스 J. 스탠리가 지은 『백만장자 마인드』에 의하면 백만장자 및 부유층 733인을 대상으로 각종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한 결과 백만장자는 운이 좋아서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엘리트가 아니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백만장자들은 자기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만약 자기 관리가 충분치 못하다면, 많은 재산을 모을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합니다.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거두기에 충분할 만큼의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해도 억만장자로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과, 시장, 세상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관리는 자기 경영 곧 마음 경영입니다. 부자는 결코 우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호젓한 호수에서 여유롭게 떠다니는 백조의 우아한 자태가 실은 물밑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갈퀴 질 때문인 것처럼 부자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부의 탑을 쌓아갑니다. 자신을 관리하지 못할 때는 그 탑은 언제든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놀만 빈센 필 박사가 "실패자처럼 생각하면 실패자가 된다"고 말했듯이 부자가 되는 사람은 부자 정신을 가지고 자신을 관리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자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결정됩니다.3 탈무드에서는 "가장 힘센 자가 누구냐, 자기를 이기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 먼저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관리는 마음 관리로부터 출발합니다. 마음을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는데 평상시에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항상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답니다. 그는 집에서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아내도 일하는 것을 싫어해서 집안 청소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부부의 유일한 즐거움은 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농부가 옷장 서랍을 열다가 그 안에 낡은 옷을 입고 잠들어 있는 빼빼 마른 노인을 발견했답니다. "누구시죠?" 목소리를 듣고 노인은 눈을 떴다. "나는 걸신이다. 너희 집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반년 전부터 이곳에서 너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농부는 순간 너무 놀랐답니다. '아! 내가 가난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저 걸신 때문이었구나.' 그는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겼다가 밤에 몰래 자신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걸신이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가난했던 거요. 내일 아침에 이사를 갑시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상의한 끝에 이사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 때 옷장 서랍 속에서 뭔가 인기척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뭐지?' 농부가 몰래 들여다보았더니 걸신이 안에서 짚신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농부가 황급히 물었습니다. "이 신발은 어디에 쓰시려고 만드세요?" "응, 자네들이 이사를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내 어찌 함께 가지 않을 수 있겠어. 내일 아침까지는 신발을 모두 만들 수 있으니 함께 가세." 이 말을 들은 농부는 낙담하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마누라.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이 걸신은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구려. 멀리 떠나기보다는 차라리 이곳에서 열심히 일을 해 봅시다."

그 이후로 두 부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습니다. 동트기 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별이 빛나는 캄캄한 밤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걸신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군." 그러면서 농부가 모르는 사이에 몰래 그 집을 떠났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게으름은 느리기 때문에 빈곤이 금세 뒤따라온다.”고 했습니다. 부요함을 누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자신의 생활에 충실한 것입니다. 

3) 재물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5)./사용방법/보람있게 도는 사용하는 방법
사람이 돈을 벌면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려고 합니까? 오늘 본문 5절을 보니까 사치하려고 하고 방탕에 즐기려고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용합니다. 부인에게 쓰는 것도 남편에게 쓰는 것도 자식에게 쓰는 것도 아깝게 생각합니다.
구두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식당에서 밥 한그릇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식사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옆에서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왜 식사 안하세요" "응,영감이 다 먹으면 틀니 빌려서 먹으려구"
상요할 때 상요해야 합니다. 천국까지 가지고 가려고 합니까? 천국에는 아무 필요없습니다. 길이 정금길입니다. 금 지근지근 밟고 다닐 것입니다.

6절에 보니까 의인을 죽이는데 사용합니다.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하지 못합니다. 똑같은 칼일지라도 의사가 사용하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도둑이 사용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느 곳에 어떻게 사용하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늘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를 가지면 그것이 전적으로 나 자신에 의해서 되어진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부라는 것은 사회를 통하여 취득한 것이고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그 쪽으로 갔을 따름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한 다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 127:1)"
생각해 보십시오. 수천억의 공장이 있습니다. 누전으로 불이 나보십시오. 지진으로 흔들려 보십시오. 사고로 사람이 죽어 보십시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잘 사용하라고 잠시 맡겨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1)부의 사용은 자신만을 위할 것이 아니라 그 혜택을 확산 시켜야 합니다.
더 큰 가치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돈은 자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진시키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경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아기 예수께 자기들의 부를 가지고 왔으며, 삭개오는 풍성하게 베풀었으며, 가난한 과부는 희생적으로 바쳤습니다. 부유한 여자들은 그들의 소유로 제자들을 섬겼습니다(눅8:2-3).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도 그들의 부를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사용했습니다.(마27:57-61).
자녀를 위해서, 친척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사용할 때 나를 위해 보다 하나님을 위해, 남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이렇게 정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저는 이 말씀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사례금을 받으면 다른 것 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드릴 헌금부터 떼어 놓으라고 합니다. 
찰스 피니라는 15년 동안 6억달러(약 7천2백억원)를 익명으로 사회단체에 기부해 오다가 언론의 취재경쟁 끝에 드러났습니다. 그 때 그의 모습은 15달러짜리 시계를 15년이나 차고 다녔습니다. 단 두켤레의 구두로 10년을 버텼으며 신사복 두벌과 운동복 하나로 몇년을 지냈는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생활은 검소했습니다. 그는 거금을 기부한 이유를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이 생겨서일 뿐"이라고 말했답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보다 어디에 썼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부자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기 전에는 그를 칭찬하면 안된다"했습니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강철왕 카네기의 재단이 2천 5백개의 도서관을 지어 지역사회에 기증하였습니다. 록펠러는 재단을 만들어 장학사업으로 1만명의 학생과 6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런 정신들이 오늘날 미국을 부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세계 최대부자로 등극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68억달러(약 8조1천6백억원)를 기부해 만든 재단을 통해 카네기가 지은 2천5백개 도서관의 자료들을 모두 디지털로 바꿔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작업에 한창이다고 합니다. 그는 나이 오십이 넘으면 아들에게 줄 1백만달러를 제외한 전재산 8백80억달러(약 1백 6조원)를 사회에 내놓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나서서 계열사 사장자리를 차고 앉거나 전재산을 아들에게 몽땅 물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일부 재벌들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2)무엇보다 부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되어가 가장 가치가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0)"
초대 교회는 아름답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물질을 사용하였습니다. 가난하지만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믿는자가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우리가 죽어 하늘 나라갔는데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왜 나 이런 곳에 보냅니까? 하나님은 말씀할 것입니다. "이것이 네가 보낸 건축재료야"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때 당신 때문에 내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당신의 선교 헌금 때문에, “당신의 건축 헌금 때문에 예배당이 지어졌고 그 예배당이 있었기에 제가 교회에 나왔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당신의 만만만 헌금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공부하여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람을 천국에서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당신의 장학헌금 때문에 내가 어려운 환경에서 낙심하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노라”라는 고백을 들으면 얼마나 보람이 있겠습니까? 내게 준 작은 재물이 큰 일을 한 것입니다. 너무나 인색하게 살지 마십시오. 
저는 성경 말씀 중에 재물에 대하여서는 빌4:19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우리가 재물에 있어서 자신감 있게 살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 구원 사역을 위해 과감하게 헌신하는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단지 헌금 차원이 아닙니다. 헌신하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을 보면 십일조하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간 편에서 대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안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이상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보다 물질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다 좋은데 물질 면에 약한 성도가 되지 마십시오. 물질은 자신의 신앙의 점수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진정한 변화는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돈지갑의 회심이라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돈전대의 회심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회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를 잘못사용하면 울고 통곡할 날이 오리라고 말씀합니다(1). 3절에는 불같이 너희 살을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잘못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다고 합니다(4).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설날이 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나의 모든 것 다 놓고 갈 날이 옵니다. 아끼던 반지, 외투, 저금 통장, 화려한 집 모두 내려놓고 갈 날이 옵니다. 자식에게 얼마를 물려 주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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