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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전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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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전 9:10)


그리스도 안(in Christ)이 먼저냐? 그리스도를 위한(for Christ)것이 먼저냐?, 최선주의(the bestism)가 먼저냐? 최대주의(maximalism)가 먼저냐?
정체성(본질, identity)이 먼저냐? 소유(ownership)가 먼저냐? 낙관주의(optimism)가 먼저냐? 비관주의(pessimism)가 먼저냐? 라고 할 때 우리는 망설일 것입니다. 
망설이는 이유는 둘 중에 하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자 모두가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고 현실과 아주 밀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자가 먼저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야 완전하고 정직한 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전자를 무시한 채 후자만을 가지고 평가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차이가 없다는 것 때문에 비관적 태도를 가지거나 그것이 게으름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가치판단이 흐려져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전도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최선을 다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 범위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고민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들과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힘을 활용하지 않고 낙심하거나 패배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를 통하여 기회를 힘써 잡게 합니다. 그리고 잡은 기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볼 때 이 세상은 모순투성이고 따라서 비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역사(歷史) 가운데 섭리하시고 통치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생각하면 우리의 승리는 낙관적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부동의 역사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과 생활을 분리시키는 이원론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아니합니다. 
예컨데 엿새 동안은 세상 사람들의 인격이 되고 주일날만 성도의 인격이 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절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상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무슨 일이든지 세상일은 상대적이고 하나님의 일은 절대적이라야 합니다. 

Ⅰ. 일을 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말입니다. 

본문 9장 10절에 『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 』라고 했습니다(무릇: 부사로서 대체로, 종합해서 살펴보면이란 의미). 

1) 일 할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10절에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2) 공격적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고 했습니다. 
천국이 너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소유하고 싶은 자가 많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경쟁이 치열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 일을 할 때가 왔으면 담대히 행해야 합니다. 
에스더 4장 14절에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라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결단을 하게 됩니다. 모르드개에게 말하기를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삼 일동안 전 유다인을 금식하게 했습니다. 에스더 자신도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4) 일의 성취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때를 만들게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고 했습니다. 

5)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7절에 『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1절에 『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2절에 『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고 했습니다.

Ⅱ. 일을 할 기회가 왔으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 9장 10절에 『 …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힘을 다한다는 말은 최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1) 교회운동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에 『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3절에 『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했습니다. 

2) 주 앞에 최선의 봉사를 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4장 8절에 『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300데나리온(노동자의 1년 연봉)의 고가의 향유를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예수님께 쏟아 부었습니다. 

3) 주께서 가르쳐 준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 『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에 『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23장 25절에 『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고 했습니다.

6) 성전 건축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역대상 29장 2절에 『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2장 18절에 『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재건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벽 재건을 위해 은밀히 탐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노골적인 적대행위를 무릅쓰고 성벽 재건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선한 일에 백성들이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선한 일을 백성들과 함께 착수했습니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 기능공들, 고급관리, 레위사람, 성전 파숫군, 상고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성별을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여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적절하게 배분시켰습니다.

7) 하나님의 영광 앞에 최선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하 6장 14-15절에 『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고 했습니다.
다윗이 불법으로 법궤를 옮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여 수레를 몰고 있던 웃사가 대신 죽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오벧에돔 집에 석달을 두었다가 기쁨으로 다윗성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이때 다윗은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베 에봇을 입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Ⅲ.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땅에 사는 날 동안 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9장 10절에 『 …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음부, 쉐올( )은 죽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장소를 말합니다. 
창세기 37장 35절에 『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고 했습니다.
시편 31편 17절에 『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38장 10절에 『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음부는 땅 아래 장소를 말합니다. 음부는 세상과는 다르게 어두운 장소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욥기 10장 21-22절에 『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시편 143편 3절에 『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침묵의 장소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시편 94편 17절에 『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중에 처하였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망각의 장소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시편 88편 12절에 『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히브리인들의 음부개념은 신약에서는 땅에서 죽은 악인들이 최후의 백보좌 심판을 받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거하는 장소로 설명되었습니다. 음부는 곧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음부라는 말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음부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으로 가는 자들은 최선을 다하는 지혜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 심판은 악인에게 주어지는 형벌입니다. 그 심판은 의인에게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다고 했습니다(호 6:5). 
잠언 19장 29절에 『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세상에서 이미 행해졌습니다. 
요한복음 9장 39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71편 18절에 『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했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디도서 3장 8절에 『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8절에 『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롬 13:3). 선한 일은 복음전파와 주의 증거입니다. 선한 일은 마침내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습니다(요 5:29). 우리는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엡 2:10). 
그 선한 일이 바로 믿음의 일입니다. 성령 받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일이라고 하면 예수 믿는 믿음이 우리의 일입니다. 요한복음 6장 28-29절에 『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믿음에 따르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온전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주적인 밤이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입니다. 개인적인 밤이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생각이 주밀치 못하여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때가 인생의 밤입니다. 성도는 사는 날 동안 일을 해야 합니다. 

갈렙은 85세인데도 40세 때보다 오히려 강건하다고 했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자신의 힘은 일반이라서 싸움이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수 14:11). 
요즘 들어 정년을 늘이자는 말이 심심잖게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금세기 최고의 경영사상가'라고 합니다. 그는 활자시대에 영상시대를 예언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이번에는 75세 정년을 예언했습니다. 

인체 심리연구가에 의하면 기억력은 10-23세, 상상력은 20-30세, 창조력은 30-55세라고 합니다. 판단력은 45-80세라고 하고 지력(志力)은 40-70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물이나 사리를 판단하고 뜻을 세우는 일은 70-80세까지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김부식, 조선의 하륜 같은 학자는 70대에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를 했습니다. 플라톤이 독창적인 저술을 하기 시작한 것은 65세부터이고 그의 법률은 80세에 썼습니다. 소프클레스는 그의 오이디푸스를 89세에 상연했고 83세까지 살았던 괴테도 파우스트 등의 그의 걸작들은 만년(晩年)에 썼습니다. 

세르반데스가 돈키호테를 지은 것은 68세 때이고 앙드레 지드가 절필을 선언한 나이가 81세였습니다. 베르디가 오셀로를 작곡한 것은 72세였습니다. 눈이 어두워 연필을 남이 깎아 주었던 '고야'는 죽기 한 해 전인 81세에 그의 걸작중 하나인 수녀상을 남겼습니다. 모네, 르느와르, 세잔은 모두 70대의 만년(晩年)에 최고의 영역에 도달한 사람들입니다. 

공자는 어떠한 행동도 법을 벗어나지 않는 나이를 칠십으로 보고, 칠십 종심소욕불유구(七十從心所慾不踰矩)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을 춘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일을 쉬어서는 안됩니다. 나이가 많다고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요 5:17). 예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최선을 다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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