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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정탐꾼과 라합 (수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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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탐꾼과 라합 (수 2:1-24)


1.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430년 만에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하시고 40년 광야 생활 끝에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토록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소원했지만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 불평을 터트릴 때, 분통을 터트리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이유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신32:49-52) 다만 죽기 전에 약속의 땅을 느보산에 올라 바라보는 것만 허락되었습니다.
 
(신32:49-52)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산에 올라 느보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모세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일찍이 정찰대원으로 가나안 땅에 밀파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찰대원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모세 당시 자신이 정찰대원으로 밀파되었을 때는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택된 12명이 모든 백성들의 기대 가운데 밀파되었습니다. 

당시 모세는 정찰대원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탐지할 사항들을 지시했습니다. “너희는 여기서 북쪽으로 올라가 가나안 남쪽 지방인 네겝으로 가서 산간 지대로 들어가 그 땅의 지형을 살피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강한지 약한지,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도시에 살고 있으며 거기에 성벽이 있는지 없는지, 또 그 땅 토질이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들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그리고 잊지 말고 그 땅의 과일을 가져오너라.”(민13:17-20) 

그러나 이번에는 단지 두 명만을 백성들도 모르게 은밀히 보내게 됩니다. 이유는 모세 당시 12명을 보냈을 때 10명의 잘못된 보고, 믿음도 없고 부정적인 절대 다수의 보고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낙담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세를 원망했던 사건이 재발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민 13:28-14:4) 또한 정탐 내용도 단지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는 아주 간단한 명령입니다. 

여리고 성 정복 전투에 필수적인 군사정보를 낱낱이 정탐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정찰대원의 첩보 사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첩보를 근거로 전투 작전 계획을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 당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찰대원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이 ‘가나안 족속들은 어마어마한 거인 자손들로 그들 도시들도 거대한 성곽들로 둘러싸인 요새들이어 그 곳을 점령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며 하나 같이 비관적으로 보고 했습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낙담해서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자,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3:30-14:8-9) 는 말로 가나안이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얼마든지 점령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다수 백성들이 10명의 잘못된 보고, 그리고 믿음이 전혀 없는 선동적인 보고에 미혹되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를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이를 듣고 보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나를 원망한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내가 약속한 땅에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불신한 너희 죄 때문에 너희 자녀들은 너희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할 것이다.” 

이 말씀 후 허위 날조된 보고로 백성들을 충동하여 모세를 원망하게 만든 그 정찰대원들은 재앙을 받아 죽었습니다.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살아남았습니다.(민14:27-38) 이러한 사건을 겪었던 여호수아인지라 정찰대원도 단 두 명, 그리고 정찰 사항도 아주 간단하게 지시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보고하든지 그 보고에 좌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여리고 성 정복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복을 앞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 것입니다.

 
2.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가 비밀리에 보낸 두 정찰대원이 맨 먼저 간 곳이 ‘라합’이라는 기생집이었습니다. ‘라합’은 조선 시대의 ‘황진이’같은 기생이 아니라 매춘하는 ‘창녀’였습니다. 두 정찰대원이 밀파되어 곧장 찾아간 곳이 기생집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좋게 생각하면, 그곳을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 사담(私談)을 분방하게 나누는 곳으로, 그래서 가나안 거민의 밑바닥 민심(民心)을 파악하는데 아주 적절한 곳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 정찰대원이 라합의 집에 들어간 그 날 밤 즉시 그들 첩보행위가 드러나 왕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왕은 즉각 라합의 집으로 수색대를 보내 체포토록 했습니다. 수색대는 라합의 집에 들이닥치자마자 ‘네 집에 들어온 첩자를 끌어내라’ 명령합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미 그 두 정찰대원을 숨겨 두고 ‘그들이 내 집에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서 왔는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날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급히 추적하면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라는 거짓말로 수색대를 따돌렸습니다. 사실 라합은 그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말리려고 널어 놓은 삼대 속에 그들을 숨겨 두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수색대가 떠난 후 옥상으로 올라가 두 정찰대원에게 말합니다. 

(수2:9-14)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그때 두 정찰대원이 ‘만일 당신이 우리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구하고 당신을 진심으로 우대할 것을 약속합니다.’ 며 약속하자 라합은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밧줄로 달아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가다가 추적대를 만날지도 모르니 당신들은 산으로 도망가서 3일 동안 숨어 있다가 그들이 돌아간 다음에 갈 길을 가세요.’ 라며 안전하게 돌아갈 방법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두 정찰대원은 떠나기에 앞서 이렇게 당부합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약속할 것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러나 당신도 꼭 지켜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치러 들어올 때 우리를 달아내린 이 창에 붉은 줄을 매달고 당신의 가족과 친척을 모두 이 집에 모아 놓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당신의 집 밖을 나가서는 안 됩니다. 만일 당신들이 집 밖에서 죽으면 우리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 일을 폭로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한 약속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돌아온 두 정찰대원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보고합니다.

(수2:24)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이 보고가 정찰 결과에 대한 핵심 보고 사항이었습니다. 이러한 보고는 ‘기생 라합’ 한 사람에게서 들은 내용 그대로입니다. 사실 두 정탐군이 그 며칠 동안 정탐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단지 기생집에 들렀다가 라합의 말을 듣고 라합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오게 되었다는 게 첩보 보고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일개 기생의 단 한 마디 말일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믿음을 심어주는 보고였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가 원했던 첩보는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라합의 행위, 다시 말해 이스라엘 정찰대원을 숨겨주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여리고 성 거민들의 민심을 전해주는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라합은 창가에 붉은 줄을 매달아 놓아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약속한대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31을 보겠습니다.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라합’의 신앙고백은 본문 11-1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2:11-13)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길을 막아선 족속들을 전멸시키신 일(민 21:21-35) 등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하신 당신들의 하나님이야말로 천하에서 제일가는 신이십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들에게 한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도와 호의를 베풀었으니 당신들도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여리고가 정복당할 때 나와 내 가족과 친척을 모두 살려 주겠다고 당신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믿을 만한 표를 달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두 정찰대원을 잘 숨겨주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아니한 ‘라합’의 행위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2:25을 보겠습니다.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과 기적 등을 직접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듣고’, 그리고 믿음으로 행한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두 정찰대원, 이른 바 간첩들을 그것도 자기 집에 굴러 들어온 간첩을 그냥 수색대에 내주었다면, 아마 ‘라합’은 상당한 보상금으로 매춘생활을 접고 여리고 성을 구한 영웅으로 대접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고 위험을 무릅쓰고 간첩들을 살려 보내주었습니다. 극히 위험한 결단을 내리고 이스라엘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자신과  모든 가족들의 생명을 부탁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단과 신앙고백으로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합’은 다윗의 조상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족보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5-6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이렇게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살몬’은 두 정탐군 중 하나로서 영원한 왕권이 예언된(창49:8-10) 유다 지파 자손입니다. 그 ‘살몬’이 라합을 아내로 맞아 ‘보아스’를 낳았는데 다윗 왕의 증조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므로 라합은 다윗 왕의 고조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에 믿음을 가지고 결단하여 실천하므로 기생, 창녀 ‘라합’이 영광스러운 다윗 왕의 조상이 되고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이 성전을 짓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쁘게 여기시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축복이 다윗의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삼하 7: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대로 하나님께서 ‘라합’을 창녀와 같이 천한 인생에서 존귀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무명한 자로 끝나버릴 인생을 유명한 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무명의 가문에서 위대한 가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는 분이십니다.”(고전1:27-28) 


3.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그 믿음을 의롭게 여기시어 존귀한 삶으로, 강하고 부한 축복의 삶으로 만들어주십니다. ‘라합’은 믿음을 가지고 약속받은 대로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내렸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그 성읍 거민들이 전멸당할 때 오직 ‘라합’과 그 가족들만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6:22-24을 보겠습니다.

(수6:22-24)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 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라합’과 그 가족, 친족들까지 끌어내어 ‘이스라엘 진 밖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라합’과 그 일가친척들은 이방인으로서의 이방인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 진(陣)’ 밖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하나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계승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민5:3) 무론 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하시매

여리고 성이 무너져 모두가 죽음을 당할 때, ‘라합’과 그 일가 친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결정적인 표시는 창문에 매달린 ‘붉은 줄’이었습니다. ‘붉은 줄’은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은 장자 죽음의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으로 강퍅한 바로 왕의 장자도 죽음을 당하자 결국 굴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게 된 것입니다. 애굽 전역에 이 장자 죽음의 재앙이 임하게 될 때, 그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죽음의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 그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을 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피가 보이지 않은 집에 죽음을 당하지 아니한 집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출12: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피 흘림이 없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히9:22)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요 1:29) 그 어린 양이 피를 흘리신 것은 온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이 무너져 모두가 다 죽음을 당할 때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게 된 결정적인 표시인 ‘붉은 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속죄의 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고백과 그에 따른 결단, 그리고 그 믿음의 표시인 ‘붉은 줄’을 달아내려 자신과 더불어 온 일가 친척까지 생명과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합’의 가족만이 아니라, ‘라합’의 말을 듣고 순종해서 ‘라합’의 집으로 피신한 그의 친척들까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족들 중, 더 나아가 일가친척들 중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성도 여러분의 믿음과 행함으로 그 가족들과 친척들까지 구원하는 역사(役事)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침받아 구원의 방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 “붉은 줄”이 달아내려져 있습니까? 예수 믿는 표시가 분명한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가 확실하게 세워진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라합’은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분명 ‘라합’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약2:25) 행동하는 신앙생활로 “붉은 줄”이 분명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2:14-19을 보겠습니다.

(약2:14-19)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참된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은 생활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변화되지 않은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변화되지 않는 믿음은 가라지와 같이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라지가 암시하듯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라지가 하늘나라 창고에 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 믿음, 변화되지 않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된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고 그 행함은 바로 그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죽은 나무에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에서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원 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라합처럼 상천하지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임을 믿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귀신들도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익히 알고 믿고 있습니다.(막 1:24). 그러나 귀신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지만 떨고 있는 이유는 행함이 없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4:1-3입니다.

(히4:1-3)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 갈 약속은 아직도 효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그 곳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말씀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믿는 우리는 그 안식처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분노하여 그들은 안식처가 될 약속의 땅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모세 당시 믿음이 없는 10명의 정탐군 말을 듣고,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민14:8-9)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때문에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함이 되지 못하여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두 정탐군과 라합은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하여” 함께 약속의 땅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지금도 효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과 약속하신대로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요일5:5-6) 한 해를 사시면서 성도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행하시므로 약속된 축복의 땅에 다 이르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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