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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침을 받읍시다 (히 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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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을 받읍시다 (히 12:11-13) 
 
  
미친 사람 시리즈 란게 있습니다. "태종대를 대학이라고 우기는 사람, 허장강을 강이라고 우기는 사람, 몽고반점을 중국집이라고 우기는 사람, 탑골공원과 파고다공원이 다르다고 우기는 사람. LA가 로스엔젤레스 보다 멀다고 우기는 사람. 으악새가 새라고 우기는 사람. 비자카드 받아놓고 미국 비자 받았다고 우기는 여자"

이런 사람은 고집도 쎕니다. 한번 우기면 어떻게 해볼 제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무엇입니까? "고침을 받읍시다" 그렇습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을 읽어야 할 당시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영육간에 '피곤' '연약' '어그러짐'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진 박해 가운데서 낙심과 좌절로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담대함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본문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피곤하고 연약하고 어그러짐과 같은 상황을 만날 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자포자기하며 실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사 옳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구나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지금 환난 중에 있어 슬퍼하고 기진맥진한 가운데 있다면 비록 즐겁고 편안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히브리서의 독자들과 같은 박해로 인한 고통은 아니지만 나라 안과 밖으로 발생한 재앙과 재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브라질은 홍수로 인하여 500명이 사망했고, 호주도 홍수로 몇십명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구제역과 AI로 인하여 가축의 10분이 2 가까이 살처분되었고 이 일을 감당하고 있는 방역팀들 중에는 교통사고나 과로로 죽은 사람들이 발생했고, 부상자만 50명에 이며 짐승을 산체로 매장하면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다리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에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금주를 구제역과 AI 가축 질병의 퇴치를 위해서, 그리고 축산농민을 의해서, 방역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주간으로 선포하고 회개하며 간구하도록 했습니다. 
  
영적으로도 보면 한국교회 안에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레인자(AI)가 창궐하고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해벽두부터 한국교회에 유난히 우울한 소식들이 많습니다. 돈, 섹스, 폭력 이런 세상에서나 들을 법하고 있을 법한 세속적인 것들이 교회를 강타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들에서 발생한 것들이라서 그 파장이 참으로 큽니다. 이것은 교회에 침투한 치명적이고 강력한 독성을 가진 영적 세균이며 바이러스입니다. 

많은 교회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가고 있습니다. 교회돈을 제 쌈짓돈처럼 생각하는 이들, 이성간에 부적절한 관계, 상식과 이성과 지성과 영성이 아닌 폭력를 행사하는 이들 이것은 구제역에 비견할 수 없는 구제역보다 더 무서운 영적 전염병이며 더러운 바이러스입니다. 이렇게 감염된 교회는 세상을 위해 기도할 힘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수준에 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못할 일을 교회에서는 하고 있는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에서 하는 일들을 세상에서 해보세요. 그 사람 서 있을 자리나 있겠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 교회를 어떻게 세워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되게 한 해를 시작합시다.
  
세상살아가면서 궂은 일(Dirty)도 해야하고 힘든 일(Difficult)도 해야하며, 또 위태로운 일(Dangerous)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들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너무 쉽게 이런 일들을 멀리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외국 노동력을 수입하여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외국인의 범죄율이 높아져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다문화 문제가 발생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골머리를 아파해야 합니다. 
하나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낳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오히려 한 해를 시작할 때도 쉽게 시작하지 않고 고되게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아홉치례를 행했습니다. 이 날은 누구라도 아홉 짐을 하고, 새끼도 아홉 발을 꼬며, 빨래도 아홉 가지, 길삼도 아홉 바구니를 삼습니다. 매도 아홉번 맞고, 심부름도 아홉번 합니다. 이렇게 아홉치례로 고대게 한 해를 시작함으로써 한 해의 일이 수월해지고 따라서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궂은 일, 힘든 일, 위태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앞서가는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습니다. 점점 거리가 벌어질 뿐입니다.

씨뿌리지 않고 열매만 거두려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씨도 뿌리지 않고 열매부터 챙기려는 사람들이 어디나 있습니다. 
어느 집단이나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사람들,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 사람들이 열매에 입맛을 다시고 열매를 챙기려고 하는 것은 몰염치이며, 그것은 탐욕의 극치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필요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열매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런 합리적고 보편적이며 상식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클레망스 는 "기적은 대개 부지런하고 열심히 그것을 좇는 사람에게 찾아간다. 앉아서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 합리적인 생활을 합시다.
  
체면치례라는 이 무서운 질병이 우리 민족에게 만연하고 있습니다. 체면치례보다는 합리주의적인 사람, 실용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체면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없는 것도 체면 때문에 하고, 체면 때문에 사들이고, 체면 때문에 바꾸고, 체면 때문에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가난하면서도 부자 흉내를 내고, 없으면서도 있는 흉내를 냅니다. 그러다보니까 빚내서 잔치하는 일이 많습니다. 
체면 때문에 서로서로 술값 밥값 내겠다고 싸움까지 합니다. 그러나 막상 돌아가서는 후회하고 다른 사람 욕합니다.
합리적인 생활을 합시다. 체면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물건 하나를 고르고 살 때도 체면이 서냐 아니냐를 생각하지 말고 실용적이냐 아니냐를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거룩한 실용주의자였습니다. 옛것만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것만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하늘의 것만으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시사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실용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남의 것을 받아들이고 개선하고 개작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늘에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이 땅에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3. 절제를 생활화 합시다.
  
어떤 성공한 재벌에게 물었습니다.
"기업이 일어선 요인이 무엇입니까?" "절제였습니다. 사업이 한창 잘될 때 종이를 금처럼 썼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절제란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절제가 무엇입니까?
절제란 헬라어로 "엥크라테이아"라고 하는데 우리말 모든 성경은 이것을 "절제"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뜻은 자기통제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알맞게 잘 조절한다"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을 거스르는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고 다스리며 지배하는 자제력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알맞게 조절하여 방종하지 않도록 통제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버하지 않는 것입니다.

탐욕이 불러온 재앙을 지금 격고 있습니다. 온지구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앙과 가축과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많은 질병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탐욕은 반드시 재앙을 가져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좀 배부르니까 출애굽의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가나안 땅의 신과 우상을 섬기면서 이방의 풍속과 습관에 빠져버렸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이스라엘백성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렸고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뽑아들도록 재촉한 꼴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유가, 고물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저유가, 저물가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않되겠습니다.
교회 올 때 옷 한 벌을 더 입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교회당 난방을 하면서 온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버려지는 모든 것들을 줄여야 합니다. 식당에서 나가는 음식 쓰레기, 각종 소모품 등도 줄일 수 있는데까지 줄여야 합니다. 필요없는 회의는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당 경내에 불필요한 전등이 커져 있지는 않는지 살펴서 불필요한 전등은 끄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허례허식이 많습니다. 장례식도 그렇고 결혼식도 그렇습니다. 돈을 쓰지 않아도 될 곳에 너무 많은 돈을 씁니다. 
여러분! 죽기전에 모두들 유언하십시오 수의 만들지 말고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입관하고 관도 좋은 것 쓸 필요없이 그냥 시신만 담을 수 있는 허름한 것으로 하라고 하십시오.

어찌 이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다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다 언급하지 못해도 이러한 사소한 일부터 어그러진 것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시대를 살아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오일대란, 식량대란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케우치 히토시는 "사람의 일생은 돈과 시간을 쓰는 방법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 두 가지 사용법을 잘못하여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고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체면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며 경건 절제를 생활화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피곤' '연약' '어그러짐'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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