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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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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2:1-12)


I. 복 있는 사람은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사역을 함께 하는 케만선교회가 지난 연말 베트남을 함께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처음으로 베트남 하노이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대우 건설이 지은 대우호텔 앞을 이른 새벽부터 밀려가는 오토바이 물결은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부지런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나라가 가난하다는 겁니다. 저는 그들이 가난한 이유를 압니다. 기독교를 핍박하고 선교사들을 박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들이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게 삽니다. 공통점이 바로 기독교를 박해한다는 것입니다.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아프카니스탄, 네팔, 북한...

지난 주일 우리는 시편 1편을 통해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았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즉 하나님께 심겨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무곳에나 아무렇게나 던져진 나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곱게 심은 나무입니다.

오늘은 시편 2편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1편과 2편은 두 개의 시편이라기 보다는 하나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시편 1편 1절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복 있는 사람은”입니다. 

시편 2편 마지막을 보세요.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 1편과 2편은 한 마디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곁에 심겨지고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이다」이런 뜻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 그리고 그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자양분으로 먹고 삽니다.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 밤낮 말씀을 붙들고 삽니다. 그러나 시편 2편 3절에서 악한 자는 율법을 “맨 것․결박”이라고 말하고 그 말씀을 끊어버리고 벗어던져 버리자고 말합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달고 좋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구속하고 결박하는 짐으로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은 예배가 즐겁습니까?
아니면 1주일에 한번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입니까?

헌금시간이 행복하고 즐겁습니까?
아니면 찬양도 좋고 말씀도 좋은데 헌신은 결박이요 봉헌은 부담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악인들은 말합니다. 
예수와 교회를 대적하자!
기름부음 받은 자 예수와 목사를 대적하자!
그들은 우리를 율법에 묶어두려고 한다!
종교의 결박을 벗어던지고 자유하자!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인천대교를 달리던 자동차가 “왜 우리가 이 좁은 난간에 갇혀 달려야 하는가? 난간을 뚫고 자유롭게 달려보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고기는 물속에서 놀때 자유롭고 새는 창공을 날 때 행복한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 안에 살 때 복이 됩니다.」

선악과는 잘 지킬 때 축복이 되지만 따 먹는 순간 곧 저주가 됩니다. 
선악과 따 먹고 주일 예배시간 따 먹고 십일조 따 먹고 말씀 따 먹고 
기도시간 다 따먹고 살면 무한히 자유 할 줄로 아십니까? 
부자로 잘 살줄 아십니까? - 그것이 베트남, 북한, 방글라데시 인생입니다. 


II. 너는 내 아들이라

♪「물을 떠난 고기가 사는 법이 있어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어요
    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셔서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기름부음 받은 자와 그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던지고 살면서도 배부르게 잘 먹고 잘만 산다고 큰소리 치는 자들을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십니까? 

4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세상에 어떤 권세가 예수님을 핍박하고 끝까지 승리했습니까?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잔해하였지만 교회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네로를 비롯한 로마의 황제들이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기독교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 말살정책을 썼지만 교회는 더 든든해졌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기독교를 없이하려고 했지만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합니다. 공산주의가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여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제국주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를 많이 냈지만 순교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붉은 용의 세력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말씀을 기쁘게 지키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예배시간마다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거룩한 시온산 성전에서 나의 왕 예수를 만나는 행복으로 사는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소중한 나의 아들이다!

7절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사야 선지자도 우리를 자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장 14절-15절)

교계 그 조금한 어느 잡지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각기 다른 일터에서 일하며 살던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부인에게 안질이 생겨 간단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이 잘못되어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일이지만 이 부부는 서로의 사랑으로 오히려 사랑을 확인하고 섬기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아침마다 남편은 아내를 사업터까지 데려다 주고 먼길 자신의 일터로 다시 출근을 하길 무려 2년. 아내가 혼자서 조금씩 바깥 출입을 할 수 있을 무렵 남편은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을 출근시키고 다시 우리회사까지 가는 것 너무 힘들어. 당신 일을 그만 두든지 아니면 혼자 다녀야 할 것 같다” 해 보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그 다음날부터 남편은 휑하니 혼자 출근을 해 버렸습니다. 

맹인이 되고 혼자서 해보는 첫 출근! 아내는 넘어지고 다치고 정말 힘겹게 출근을 했습니다. 언제 사고라도 당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출퇴근 길 1년이 지났습니다. 어느날 버스 운전수가 이 부인에게 말을 건넵니다. “부인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인은 못 느낀 것 같은데 지난 1년 당신 뒤에 당신 곁에 항상 당신의 남편이 있었습니다. 당신보다 한걸음 뒤에 버스를 타고 당신 뒷자리에 앉아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이 사무실에 들어가면 혼자서 손을 흘들어 주고 지난 며칠전부터 당신이 이제 미더웠든지 당신 남편이 안보이는 군요.”

부인은 펄썩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마워서 울었습니다. 충격적인 사랑에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곁에서 당신을 지키십니다. 
당신의 등뒤에서 당신을 돌보십니다. 
맹인 아내를 돌보던 이 멋진 남편처럼 말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5-16절)


III.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할 때 한 인간의 사랑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8절 “그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십니다.”
9절 “그 힘은 철장으로 질그릇을 부수듯 온 땅을 세우시고 부수시는 분이십니다.”

한 환자가 수술대에 누웠습니다.
의사가 수술하는 준비를 보면서 환자는 너무 긴장되어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제가 처음 수술을 하는데요. 너무 긴장돼 죽겠어요.” 그러자 의사는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이예요.”

우리 주님은 애숭이 의사가 아니십니다. 
그분에게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분과의 관계가 깨지신 분들 그분과 화해하십시요.
그분에게 충성심을 잃어버리신 분들 그분에게 충성하십시요.

그분에게 경배하십시요.
그분께 사랑을 고백하십시요.
이런 결단을 두고 오늘 본문 마지막 12절은 말합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 아버지와 가족을 배신하고 떠났던 야곱아 너의 형 에서에게 화해의 입을 맞추라. 
• 집을 떠났던 탕자여! 이제 돌아오라. 외롭지 않았느냐? 너의 아버지께 회개의 입을 맞추라 .
• 그 옛날 충성스런 신하들이 그 임금의 발에 입맞추듯 너는 우리 하나님께 충성의 입을 맞추라. 
• 예수님의 발에 기름 붓고 머리로 닦으며 입맞추던 마리아처럼 주님만 사랑하기로 결단하며 사랑의 입을 맞추라. 

입맞추는 것은 그 분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 성령님 환영합니다. 
- 성령님 인정합니다. 
- 성령님 수용하고 받아들입니다. 
- 성령님 당신의 오심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 언제 어느 모습으로 오시든 사랑의 입맞춤으로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IV.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제 시편 1편과 2편의 결론을 맺어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 귀절입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33년동안 안동 성자원에서 900명의 한센병자들과 함께 살던 정창근 장로님이 성자원 원장 자리에서 은퇴하며 남긴 글이 새롭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안동 성자원과 33년의 인연을 마치면서

그냥 그렇게 미안해요. 점점, 점점 그리고 고맙습니다. 술에다 인삼을 담아두면 술이 인삼이 되고 인삼이 술이 되겠지요? 그런데 나는 여러분과 33년을 같이 했지만 한센인이 못되고 건강하게 나가게 되어 미안합니다. 다미안 신부 보기에도 미안해요. 그는 결국 한센병에 걸려 그들과 함께 했지요. 손양원 목사님은 애향원에서 한센인의 고름을 빨았다고 했는데 나는 여러분의 고름을 한번 빨아보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앞으로 빨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내가 미안해요. 젊어서 소록도에 들어와 백발이 되도록 봉사하고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난 마리안느 선교사나, 마가렛 선교사 보기에도 부끄러워요. 내가 이곳에 33년간 있어도 여러분에게 해 준 것이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자꾸 나타나서 명예원장이니 수고했느니 이런 말을 들을 필요도 들을 이유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좋은 일을 하고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본래 대구 사람인 그는 경북대 의대 졸업후 군복무를 마치고는 작은 시골에 불과했던 안동에서 개업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작은 도시에서 할 일이 더 많다고 판단해 결정한 일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안동교회 장로이며 이비인후과 원장이신 정창근 장로님은 한센병자들과 33년동안 매일 새벽기도를 함께 드리고 그들을 위해서 무료진로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은퇴를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장애인 재활시설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10억여원의 자금이 부족하여 어려움이 있을 때에 한센병자들 몇 사람이 찾아와서 그 돈을 장로님께 기부하고 돌아갔답니다. 

실상은 재활원을 맡아 경영하기엔 여러 가지 어려움과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때 장로님은 “복지시설의 식구들과 장애인들이 길거리로 내쫓기는 것보다는 내가 길거리에 나 앉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정을 술회합니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22일 안동 금은방 협회장을 하면서 금은방을 하시는 분의 집에 4인조 강도가 들어와 부인과 딸을 묶어 놓고 금품을 요구했습니다. 주인은 강도들에게 숨겨 논 돈을 찾아 주면서 시집안간 딸을 욕보이려하는 강도들에게 우리 부부는 어찌 해도 좋은데 딸만은 무사하도록 해 달라고 빌었답니다. 그때에 강도 중에 한 사람이 집안을 뒤지다가 감사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감사패에 쓰인 정창근 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강도들이 마음을 돌이키고 그 집에 아무 피해를 주지 않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당신이 정창근 장로님께 감사패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도 우리에게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십시요.
존경받는 한 장로님의 이름이 강도들로부터 딸과 가족 그리고 재산을 지키게 해 주었다면 우리 주님의 이름은 어떤 힘이 있을까요?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이름에 피한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

•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합니다. 
•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하나님 곁에 잘 심겨진 나무입니다. 
• 교회와 말씀에 뿌리를 잘 내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인정하십니다. 
•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나의 가족이다” 말씀하시며 맹인 아내의 한 발자국 뒤에서 아내를 지키던 사랑스런 남편처럼 당신을 지키십니다. 


복 있는 사람들아 -

• 예수님께 입맞추라.
• 그와 화목하라!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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