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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빛 예수 그리스도 (사 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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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빛 예수 그리스도 (사 49:1-7)


성경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에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택, 또는 부르심일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던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는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여 부르셨기 때문에 그들도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민족 공동체적으로 심한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민족을 깔보고 업신여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스라엘이 선민이라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릇된 우월감을 가지고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이나 민족을 선택하여 부르시는 까닭은 어떤 일을 시키시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겸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사 49:1 하반절)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사 49:5 상반절) 그리고 다시금 강조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사 49:7 하반절)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태와 복중의 아이는 스스로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가 여기서 태와 복중이라는 말을 쓴 것은 선택의 주도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이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말로 바꿔도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실 때에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도 오직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말씀을 선포하던 당시의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좋지 않았던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나빴습니다. 이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남 왕국 유대도 기원전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암흑 시대가 따로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민족입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그들의 자부심은 지나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째서 이렇게 비참하게 망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사 49:4 상반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우상을 섬기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포로 생활은 감옥에 갇힌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라고 그는 외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높이실 것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사 49:5 하반절)

아직은 영화롭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그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포로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빛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차 그들을 보고 왕들이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멸시를 당하고 미움을 받는 종의 신세이지만 장차 세상의 힘 있는 자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게 될 것이라고 그는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 이사야는 무슨 근거로 이스라엘이 이방의 빛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분명하다면 이스라엘의 회복은 시간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계속해서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사 49:9 상반절)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사 49:13)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고 이스라엘을 그 고난 가운데서 인도하여 내실 것이라고 그는 확신을 가지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 이사야의 그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까? 부분적으로는 성취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을 경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매우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 후로 다시금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의 빛으로 나타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언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그 예언은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선지자 이사야가 미처 알지 못하고 선포했던 이방의 빛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하반절) 그는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히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섭리는 참으로 신비하지 않습니까? 

오래 전에 시각 장애인인 윤인수 목사라는 분의 간증이 기독교 방송에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윤 목사는 젊은 시절에 병으로 앓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 앞을 보지도 못하는 몸으로 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았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가져다가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인수야! 십일조를 떼서 하나님께 드리자.” 그 때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십일조는 무슨 놈의 십일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는데요? 

내 눈을 멀게 했고, 공산당 때문에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에게 뭘 감사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손을 꼭 쥐며 말씀하셨습니다. “인수야! 고향을 잃은 것도 한스럽고, 집을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을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우리에게 뭐가 남겠니?” 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믿음을 잃지 않으셨고 윤 목사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믿음을 배워서 후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즘 날씨가 아주 춥습니다. 다만 날씨만 추운 것이 아닙니다. 경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서민들의 삶은 추위처럼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워낙 힘들기 때문에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항의하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참고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극히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을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부르시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또 얼마나 고맙고 기쁜 일입니까?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할지라도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온 천하에 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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