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축복을 유통하는 삶 (마 11:1) - 전도

첨부 1


축복을 유통하는 삶 (마 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성경의 주제는 “전도”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도 “세상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 진 말씀이기 때문에 다 중요하지만 예수께서 직접 가르치신 교훈들은 더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들이 모두 4복음서인데 4복음서의 끝부분에서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예수님의 다급하신 몸짓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12제자들과 여러 동네로 가르치고 전도하기 위해서 떠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마태복음 5-7장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산상수훈은 모든 교훈의 기준이고 척도입니다.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그 말씀들은 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풀이한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산상수훈은 중요한 내용이고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그리고 8-9장에서 각종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고친 병자들의 모습을 주시해 보면 모두 불치의 병들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8장에서 나병환자를 고칩니다. 바다의 풍랑을 명하여 잔잔하게 하십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십니다. 9장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치고 혈루병자를 고치며 나면서부터 눈이 어두운 장님이 눈을 뜨고 말 못하는 사람을 입을 열게 하여 고칩니다. 

이 사건들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시대에 그런 병들은 메시야만이 고칠 수 있다고 믿었던 병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병들을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과 사람들 앞에서 고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오시리라고 예고된 메시야다 라는 점을 세상과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 이고 주님이구나 하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고 다음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집으로 가서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라, 가면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라, 가서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고 귀신을 내쫓고 .. 가서 집집마다 평안을 빌라, 만일 너희가 전하는데 영접하지 않고 거부하면 발의 먼지를 떨고 그 동네를 떠나라, 그 동네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리라.”(마태복음10장6-15절) 그리고 경고도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핍박을 받고 채찍질을 당하리라(16-18), 혹시 목숨을 잃게 되는 일도 있으리라(39), 그러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너희를 지키시리라(27-30), 너희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있으리라(40-42).”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 아주 강하게 교육하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을 내 보내시고 여러 동네로 전도하러 떠나셨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지금 예수님의 온갖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의 온갖 관심은 전도에 있습니다. 

본문은 이 전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고상하게 주문하고 부탁하고 강조하신 내용이 전도이고 영혼구원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전도”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예수를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전도는 가장 고상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부분입니다. 전도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이해할 것이 있습니다.  


전도의 중요성 

전도는 왜 해야 하는가. 먼저 네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입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21절에 의하면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성도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전도입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먹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서 죽이신 그 사실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다음은 전도자의 입장입니다. 전도는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끄는 일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끈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다니엘12장2-3절)이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복된 길을 안내해 주는 일입니다. 어디서 맛있는 음식만 먹어도 누군가를 데리고 가고 싶어집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내가 먼저 복을 받는 일이고 또 그 복을 나누고 유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전도대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도는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로마서10장14절)입니다.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8장30절을 보면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빌립이 찾아가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느냐고 물이니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알겠는가”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전도대상자 편에서 보면 전하는 일은 복음을 듣게 해 주는 기회입니다. 

마가복음16장16절을 보면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가장 선한 사업입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외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가장 긍휼여기는 일이 전도행위입니다. 누군가는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때 알려주는 사람이나 알게 되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가 태어난 시골 고향에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 오늘 생각해 보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이었는가를 종종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 작은 마을에 있었던 조그만 교회, 그 교회 때문에 오늘 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오늘 내 눈을 뜨게 해 주었고 내 인생을 만들어 주었고 내 인생을 바뀌게 해 주었습니다. 

만일 내 고향 조그만 마을에 그 교회가 없었더라면 오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합니다. 제가 태어난 주변에 절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집 더 가까이에 있었던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듣고 자랐습니다. 그때 그 종소리를 듣지 못하였으면 나는 절간에서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오늘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 것입니까. 이것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왔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사건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주 어둑할 때 서양의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 준 것도 저는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에 의해서 보내어진 사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산속에서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우리도 선교사를 많이 보내야 합니다. 동네마다 교회를 더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그들의 인생의 방향도 틀어 주어야 하고 그것이 오늘 먼저 믿은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 

전도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알려주고 전하는 일입니다. 끝으로 사탄의 입장에서 보면 전도는 사탄의 권세나 세력이나 아성을 무너트리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수많은 영혼들이 멸망으로 또는 사탄의 수하로 넘어가게 됩니다. 오늘 불신자들이 사탄을 추종하느라고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 사람들이 얼마나 사탄에 충성을 다하며 충실하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전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4복음서에서 마지막으로 당부하시기를 “너희는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도 순서 

사도행전1장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전파의 순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먼저는 “예루살렘과 유다”입니다. 이것을 “동질문화권” “Mission I” 이라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전도할 때 가장 먼저 전할 대상은 “내 가족과 친척과 이웃”이라는 말입니다. 

전도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 “사마리아”입니다. 이것을 “유사문화권” “Mission II”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전도대상은 “내 동포, 내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땅끝”입니다. 이것을 “타문화권” “Mission III”라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세계선교입니다. 전도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는 가까운 곳부터 전도하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사역을 고향에 가서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시하고 거절하였습니다. “저게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다른 곳으로 가서 고치고 가르치고 기적을 베풀어 은혜를 주었습니다. 내가 받지 않으면 그 주어질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가는 법입니다. 마태복음10장5절을 보면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당부하시기를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먼저 “네 동족부터 전도하라”는 뜻입니다. 전도는 먼저 “내 주변, 내 가족부터” 입니다. 

 다음 순서는 먼 곳을 전도하는 일입니다. 내 동포들이고 내 민족이고 저 북한 동포들이 여기게 해당됩니다. 먼저는 내가 복을 받아야 하고 그 복을 내 동포 내 민족이 함께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을 유통하는 삶입니다. 그 다음에는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세계 선교입니다. 간혹 오늘 우리나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해외에까지 나가서 돈을 써가면서 선교를 해야 하느냐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무지한 소리입니다. 

우리나라가 다 복음화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를 다 복음화 하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습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미국을 다 복음화하고 떠났더라면 오늘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과 유다가 다 복음화가 되어 사마리아로 간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도 전도했지만 동시에 사마리아로 나아갔고 땅 끝까지 나아갔던 것입니다.  


전도의 유의점 

전도할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도할 때는 반드시 장애물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전도를 하면 선뜻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복음, 새것, 새길, 새 방법은 선뜻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 안에는 변화, 새길, 새방법의 원리와 힘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새것이나 변화를 싫어합니다. 사람은 모두 안주하려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마음도 생각도 의식도 제도도 다 변화시키는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복음은 누룩과 같습니다. 누룩을 밥에 넣으면 술이 되듯이 복음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개혁이, 변화가, 쇄신이, 끊고 맺음이, 때로는 단절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리적으로 이 변화를 싫어합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권세자들이 더 이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독재국가일 수록 복음을 한사코 거부하고 막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오늘 선진국들은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변화되었고 선진국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개화바람이 한창 불어올 때 사람들이 한사코 기독교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새 시대의 물결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새 물결, 새 시대의 조류, 복음의 물결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 많은 피를 뿌리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 과정에서 원동력이 발생합니다. 반대가 강할수록 강한 힘이 솟아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이상한 여자와 결혼하려고 할 때 반대하면 더 강하게 나옵니다. 반대하지 말고 더 풀어주고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강하던 마음이 약화됩니다. 장애물 없이 안일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태국은 우리보다 복음이 들어온 지 역사가 배가 오래 되었지만 오늘 태국의 복음화 율은 아주 미미합니다. 태국은 복음이 들어올 때 순교자 한사람을 배출하지 않았습니다.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온실속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장애가 오면 속수무책으로 넘어집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강한 것은 무서운 장애물들을 잘 넘겼기 때문입니다. 전도에는 반드시 각종 걸림돌을 만나게 됩니다.  

또 하나는 열정입니다. 복음은 전파하는 사람의 열정을 타고 전파되고 확장되어 갑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목숨을 내 놓는 전도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전도하다가 귀신을 내 좆아주는 사건으로 (사도행전16장19-34절)고발되어 많은 매를 맞습니다. 그 매는 태장이었을 것입니다. 태장은 40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말합니다. 그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옥중에서 찬송을 부릅니다. 기분이 좋아서 찬송한 것이 아니고 39대의 매를 맞는 동안 엉덩이가 터지고 찢어지고 피가 흘렀을 것입니다. 그 상처들이 밤이 되니까 쓰리고 아파왔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 같았으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겠지만 사도바울은 그 아픔의 비명을 찬송으로 바꾸어 불렀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하늘의 하나님이 내려다 보셨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순간 사도바울이 열정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적은 열정이 있고 감동이 있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전도는 열정의 산물입니다. 

오늘 교회에 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는 교회에는 오늘도 기사와 이적이 나타납니다. 그곳에 영혼이 구원받고 변화 받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 송두리체 주님 머리에 붓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이시다” 라는 말을 듣자 마다 바닷물로 뛰어 들어가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오래 믿은 분들일 수록 이 열정이 다 식어져 갑니다. 그리고 오늘 새신자들이 열정적입니다. 문제는 오래된 분들이 문제입니다. 이 오래된 분들은 열정도 식어지고 체험도 잊혀져가고 사명감도 희미해져 갑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온갖 핑계를 들어서 회피합니다. 새신자들이 들어와 열정적으로 일하면 또 길을 막습니다. 그것을 교회의 텃세라고 합니다. 그런 교회는 부흥하지 못합니다. 전도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이런 방해가 따릅니다. 사탄의 역사가 따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구가 5천만 명입니다. 그 5천만 명 중 25%인 1200만 명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수는 부풀려진 숫자이고 정확히 말하자면 800만 명 정도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고 얼마나 구원받은 사람이 많으냐가 문제입니다. 전도는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먼저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누구에게 전도할 동기가 발생합니다. 알고 가져본 사람이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중심은 전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훈련하시며 보여주시고 가르쳐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기를 “나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고 받은 축복을 세상에 그리고 이웃에 나누며 유통하는 삶입니다. (이정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