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정직한 영, 새롭게 하소서 (시 51:1-12)

첨부 1


정직한 영, 새롭게 하소서 (시 51:1-12)
   

우리교회는 제가 담임으로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목회의 중요한 한 축으로 생각하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제1기 여자훈련생 12명과 함께 2년의 훈련과정을 마친 후 대만으로 졸업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그때의 에피소드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무슨 일이 있어서 여자들이 머무는 방문을 열게 되었는데 누가 누군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화장 안 한 맨얼굴, 전혀 달랐습니다.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얼굴에 깊은 주름살이 가득한 한 백인 노인이 갈색가죽모자와 안경을 쓰고,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홍콩발 캐나다 밴쿠버 행 여객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런데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 노인은 사라지고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할아버지의 짐을 들고 유유히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알고 보니 정교한 실리콘 가면 위장술(페이스오프)로 입국하려던 20대 홍콩 젊은이였습니다. 나이에 비해 손이 지나치게 하얗고 매끈한 것을 수상히 여긴 스튜어디스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 안에 이중적인 두 자아가 충돌하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롬 7:21-23). 그는 이 문제로 심각한 내적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원하는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하지 않는바 악을 행하는 자신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저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이중적인 면은 없습니까? 사람들 앞에서의 행동과 홀로 있을 때의 행동이 아주 딴판이지는 않습니까? 

다윗은 지금 바로 이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시편 51편은 사무엘하 11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그를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그 어떤 약점도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욕망과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다윗의 이중적인 행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고 말합니다(삼하 11:27). 

이런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때 그가 드린 회개의 기도가 시편 51편이며, 핵심은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정직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집니까? 

첫째, 내 안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져 버립니다(시 51:8). 구원의 감격이 없습니다(시 51:12). 찬양이 사라집니다(시 51:14). 전도도 하지 않습니다(시 51:15). 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여, 좌불안석입니다. 

둘째,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정직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만 피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피해를 봅니다. 다윗의 주변에서 누가 심각한 피해를 입기 시작했습니까? 

(1) 그 누구보다 밧세바였습니다. 그녀는 거대한 절대 권력의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다윗 때문에 밧세바는 일생 씻을 수 없는 죄의식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크게 소리 내어 울기까지 했습니다(삼하 11:26). 
   
(2)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였습니다. 그는 정말 신실하고 충직한 군인이었습니다. 다윗이 마치 선심을 쓰듯이 아내와 함께 오붓한 휴가를 보내라고 하며 맛있는 음식물까지 만들어서 집으로 들여보냈지만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만큼 충직했던 그가 전쟁터에 내몰려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3) 요압이었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교묘히 이용하여 부하 우리아를 전쟁터 최선두에 내보내도록 명령합니다. 요압은 명령에 순종했으나, 그 결과 간접살인을 한 공범자가 되었습니다. 

(4) 어린 핏덩이 자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밧세바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치셨고, 그 아이는 심히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5) 후궁들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삼하 12:11). 

혹시 우리들 가운데 언젠가부터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자들이 있습니까?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기치 못했던 일들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만일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정직’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직한가? 나는 정직에 심각한 문제는 없는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냥 두면 안 됩니다.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먼저, 정직의 기준, 즉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가 승패를 가름합니다. 다윗이 한 여인을 범한 일은 당시 사회통념상 왕으로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내, 후궁, 첩 등을 합해서 천여 명의 여인을 거느리기까지 했습니다(왕상 11:3). 심지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몸종을 통해 아이를 낳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정직의 기준, 잣대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이 죄요, 악이요, 정직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시편 51편에 ‘하나님’이란 말이 무려 28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통회하고 자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직의 기준, 잣대를 하나님께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직, 하나님의 정직이란 어떤 것일까요? 다윗은 죄를 지은 약자, 피조물인 약자입니다. 이 약자에게 은혜를 베풀며, 긍휼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정직입니다. 탕자에게 살진 소를 잡아주고, 저녁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자에게 먼저 한 데나리온을 챙겨주고, 권력자인 백부장의 딸보다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을 먼저 고쳐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정직함을 이룰 수 있습니까?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첫째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약 4:8). 
둘째는 성령 충만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슥 4:6).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시 7:10). 

금년 한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정직’을 실천함으로 인해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