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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행 1:1-8, 행 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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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행 1:1-8, 행 14:20-2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예수님이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 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3절).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주님의 주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의 일’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으시고 그 기간 동안 제자들에게 온 관심을 집중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마음에 가장 중요한 열정이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나라를 강력하게 진군시키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사복음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는 태초에 에덴에서 시작되었으나 아담의 범죄로 잃어버린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고, 이제 완성을 향하여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오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삶의 또 다른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나라는 표적과 치유와 축사(逐邪)가 항상 나타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요 3:3-5). 그 나라 백성은 산상수훈(마 5,6,7장)의 도덕과 윤리를 삶의 표준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그 나라가 이 세상에 속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인간적이고 군사적인 방법으로 싸웠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진정한 목적은, 먼저 영적 영역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영적으로 더렵혀진 낮은 수준의 하늘에서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그곳을 정결케 함으로써 이 세상을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정결해진 하늘에서 땅에 대해 강력하고도 점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점점 더 많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땅을 점령하여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그 나라의 목적입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주님의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주님께 배운 대로 행했던 사역들을 기록한 내용을 통하여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제자들은 같은 종류의 하나님 나라를 계속하여 유지 확장하기 위하여 또 다른 제자들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 속의 불타는 이슈인 ‘하나님 나라’ 를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입니다. 설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성격을 더 많이 이해하고 그 나라 백성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도행전이 강조하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1. 이 나라는 이스라엘의 벽을 넘는다 (= 땅 끝까지 확장됨)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 중 첫째는 ‘이 나라는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땅 끝까지 확장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시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12제자는 아직도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 명령하셨을 때 그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에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인종적 이스라엘인 자신들의 국가의 관점에서 ‘그 나라’ 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선지자들이 그 나라는 열방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말했지만 그들은 매우 제한적으로 성경의 예언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다윗의 아들이 와서 다윗의 물리적 보좌를 다시 세우고 그의 왕국을 회복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제 로마 제국의 멍에를 꺾고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다윗 시절처럼 그렇게 회복시킬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제자들의 메시야 왕국 개념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나라는 철저히 이스라엘만의 나라였고, 그 범위는 철저히 이스라엘의 벽 안에 국한 된 것이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종적 이스라엘을 유일한 하나님 나라로 되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광야로 인도하셨고 이스라엘에게 열방의 제사장 나라 역할을 주문하셨지만 그들은 순종하기를 거절했습니다(출 19:1-6).

이 영광스런 나라가 단지 8천 평방마일의 성지에 제한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나라는 온 천하를 덮을 운명이었고, 온 땅을 덮은 이 나라는 그분의 유업이 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엄청난 위임명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막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 28:18=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오늘 본문 행 1:8에서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주님은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이날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120명의 충성된 제자들에게 임하셨고, 그 나라의 권능은 그날 이후 풀어졌습니다. 처음 얼마동안 예수께서 사용하신 주 도구는 베드로였고, 그는 유대인을 위한 사도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메시지는 더 이상 유대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될 수 없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사건과 함께 예루살렘교회에 무서운 핍박이 있었고, 주님은 성도들을 둥지에서 흔들어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 전도자인 빌립은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로 갔으나,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행 8:4-13).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벽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주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했던 모든 유대인들은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셨던 것처럼 이들 이방인들 위에 동일하게 임하시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열렬한 바리새인이었던 청년 사울에 대하여 읽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광신자와 같이 ‘나사렛 이단들을 척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의 회심은 매우 강렬했고, 그는 완전히 돌아서서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더 이상 유대인의 경계에서만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흘러넘치는 강물처럼 벽을 넘어 이방 세계를 침공했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종족과 모든 계층과 성별을 포용함으로써 열국의 영광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진정한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된 것이고, 그리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확장되어 온 것입니다. 


2. 이 나라에서 살려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 군사적 순종 필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는 이제 이스라엘의 벽을 넘어 온 세상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 나라의 또 다른 특징은 ‘이 나라 백성은 반드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는 점입니다. 본문 2절은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제안하거나 권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헬라어로 명령이란 단어는 군대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수백 번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에는 오직 군사적 순종이 있을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은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군인처럼 주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주님의 명령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은 오직 “예,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그대로 행할 뿐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여러분이 동의하든지 동의하지 않든지, 그 명령을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든지 여러분은 받은 대로 행해야 하며, 그것도 즉시 행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군인이 지휘관에게 “부대장님, 저는 지금 재미있는 야구경기 중계방송을 보고 있습니다. 부대장님의 명령은 경기를 다 본 후에 실시하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면 “부대장님, 제가 보기에는 부대장님 명령은 그리 좋은 생각 같지 않은데요.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군대의 질서가 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특징은 “예, 알겠습니다” 와 같은 태도입니다. 예수께서 12사도를 뽑으실 때 그들에게서 보신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순종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그들에게 주신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 의해 시작된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목숨을 걸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특징은 그 나라의 백성이 주님의 명령에 군사적 순종의 자세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군대에서 장교 훈련을 받아보신 분들은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장교들은 임관하기 전에 훈련 받는 동안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만을 배웁니다. 그 장교 후보생이 복종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그가 권세 아래 있는 자임이 분명해질 때 그는 후보생을 졸업하게 됩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신병을 맡아 훈련하면서 그들에게 명령합니다. 목소리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권세 때문에 그들 모두는 즉각 그 명령에 순종할 것입니다. 

눅 7장에서 우리는 군사훈련을 받은 로마 백부장을 만납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권세를 최초로 이해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하의 병든 하인을 위해 예수님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주여, 저의 집까지 오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누가복음의 저자는 백부장이 어떻게 이를 알았는지 말해줍니다.

눅 7: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자신이 로마황제의 군대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예수님도 하나님의 거룩한 권세 아래 있는 분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믿음을 보고 놀라셨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놀라게 한 유일한 자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고 종교적이지도 않은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 대해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 여러분! 저는 현대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를 대하듯이 자신들의 회사 고용주를 대한다면 해고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 내에서 행동하듯이 군대에서 행동했다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영창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최소한 퇴출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백부장이 군대생활을 싫어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는 현재 유대땅에 살고 있는데, 로마에 살았다면 자녀들이 더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도 더 좋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유대에 있습니까? 가이사가 그를 그곳에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권세 아래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그가 사는 곳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가 만일 황제에게 사직서를 써 보냈다고 합시다. 사직서가 처리되고 제대일이 왔고 그토록 기다리던 자유가 왔을 때, 그 순간부터 그동안 누리고 있던 그의 모든 종들의 도움과 모든 혜택들이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백부장이 권세에서 나와 독립했을 때 그는 곧바로 그 모든 권세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그들 스스로가 권세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권세가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문제는 성경 지식이나 종교적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느냐 안 하느냐 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제자들 가운데, 그리고 주님의 치유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주님을 진정으로 따를 준비가 된 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들은 12명의 사도와 70인 전도대, 그리고 몇몇의 여인들 정도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었고, 그 결과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을 통해 군대 명령처럼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예수님께 “예, 알겠습니다” 라는 군인의 태도로 달려 나갑시다. 


3. 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 영적 전투와 갈등을 피할 수 없음)

14:22=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또다른 특징은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전파될 때마다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깁니다. 이로 인해 그 나라는 언제나 핍박을 가져오며, 이 핍박은 특히 종교적인 사람들을 통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지난 세기보다 물질문명은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고, 마귀의 준동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일꾼은 악한 영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싸우되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공격해 오는 데 사용된 무기보다 더 강력한 영적 무기로 싸워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이렇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진군시켰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영적 전투와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메섹의 청년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회심한 직후부터 엄청난 반대와 박해에 부딪쳤습니다.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된 바울은 다메섹 성을 나오기 위하여 밤에 광주리에 숨어 달아내려져야 했습니다.

악한 세상은 과거 그가 교회에 적대적이었을 때는 같은 편이었지만, 그가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 순간부터 무서운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박해 세력을 만났고, 가장 극심한 핍박은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왔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고, 이것은 로마제국 전체를 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이 신실한 증인을 통해 하나님은 그 나라가 온전히 임할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바울의 신앙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고후 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주기철 목사님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은 산 증인입니다. 일제시대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평양노회 노회원들은 산정현 교회 시무 중인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 불참배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하여 면직시켰습니다. 1941년 4월 23일 부활주일 대예배 시작 10분전에 노회가 파송한 7인 위원이 경찰들의 호위로 강대상을 향하여 오자 집사들이 막았고, 그들은 약간 다투다가 물러섰습니다. 다음날 일본 경찰은 못과 장도리로 교회당 문에 못을 쳐서 출입을 못하게 했습니다. 

같은 해에 평양노회는 “산정현교회 목사관을 신학교 교수 사택으로 사용케 해 주시오” 라는 청원서를 받아 허락했고, 주목사님의 80 노모와 식구들을 사택에서 내어쫓았습니다. 노모는 대문간 거적대기 위에서 3일3야 기도하면서 울었습니다. 

이때 오정모 사모님은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흘을 금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주목사는 형무소에서, 할머니는 대문간에서, 광조는 거적 대기를 쓰고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셔서 이 추운 겨울에 얼어 죽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이렇게 악에 악을 더하는 일본과 평양 목사님들 회개하고 지옥을 면케 해 주옵소서” 라고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3일 후에 석방되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려면 핍박을 이겨야 합니다. 

한상동 목사님 또한 하나님 나라 때문에 많은 박해를 경험한 증인입니다. 그는 16세 때 오촌 당숙 댁으로 양자로 가서 사는 중 24세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조상의 제사문제로 핍박이 시작되어 3년간이나 쫓겨났다 들어갔다 하기를 계속했습니다. 

한번은 문중 회의가 열렸는데(동민 800명 중 한씨가 250명) 모인 이유는 그 댁 양자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양자를 두는 것은 조상 제사를 모시기 위함인데 기독신자이니 양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의 결과로 파양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 한목사님의 신앙은 불변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가출하기로 결심하고 그 일을 교회 전도사님과 상의하고 형편을 보아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는 한 목사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축출 당했기 때문에 자살이라도 했나 싶어서였습니다. 당분간 집에 들어갔으나 분쟁은 계속 되었습니다. 

27세 되던 9월에 완전히 쫓겨나서 진주로 갔고, 그곳에서 선교사가 경영하는 학교에 교편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혹독한 핍박 중에도 담대히 승리 한 것은 그가 가진 믿음이 뿌리 깊고 견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후일 일제시대 말기 전국교회에 무섭게 불어닥친 신사참배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다가 평양 감옥에 수감되어 만5년 간(1940, 7,3-1945, 8.16) 혹독한 추위와 고문을 참고 승리했던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다루었던 하나님 나라의 목적에 대해 다시 돌아봅시다. 예수님은 그분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그 나라가 이 세상에 속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인간적이고 군사적인 방법으로 싸웠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진정한 목적은, 먼저 영적 영역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영적으로 더렵혀진 낮은 수준의 하늘에서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그곳을 정결케 함으로써 이 세상을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정결해진 하늘에서 땅에 대해 강력하고도 점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점점 더 많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땅을 점령하여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그 나라의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군사적 순종’ 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에게는 주님의 어떤 계명, 어떤 말씀에도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 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많은 핍박이 따를 것이고, 수많은 갈등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최후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도 복음이 흥왕하지 못한 열방에 기회의 문들을 열어주시길 기도합시다. 사도행전의 전사들처럼 우리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나라의 씨를 뿌리고 추수 때를 인내로 기도하며 기다리게 하시길 기도합시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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