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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야의 떡 Elijah and the Bread (왕상 17:1-14, 19:4-8)

첨부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

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

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

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

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

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

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

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7:1-1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

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

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

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

에 이르니라”(19:4-8) 

성경은 상징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사건과 인물, 그리고 지명이나 사물의 이름 하나 하나에 

깊은 의미를 부여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성도는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의미에 

기초하여 문맥을 파악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영적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그리고 예수 신앙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

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

히 설명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떡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일컬어 생명의 떡이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매일 먹었던 만나, 그들이 무교절에 누룩을 제하

고 먹은 무교병, 예수께서 이적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던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의 떡, 

그리고 유월절 성만찬에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던 떡 등은 모두 영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떡

의 궁극적 의미는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엘리야 선지자와 떡에 관한 주목할 만한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

여 각 사건에서 보여주는 떡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

기를 바랍니다. 

1. 까마귀가 가져온 떡의 의미
본장(왕상 17장)은 선지자 엘리야에 관한 기사들 중에서 ‘엘리야 내러티브(Elijah Narrative)' 로 

알려진 왕상 17-19장의 첫 부분입니다. 이 세 장은 ’누가 진정한 생명의 공급자인가?‘ 라는 신학

적 질문 아래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갈멜산 전투를 다루고 있는 18장이 있습

니다. 
본장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7절은 악한 왕 아합을 향한 엘리야 선지자의 가

뭄 선포와 그릿 시냇가 도피 생활을, 8-16절은 엘리야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17-24절은 엘리야가 기도를 통하여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소생시킨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사왕 제 38년(B.C. 874년)에 북왕국의 오므리가 죽고 아합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하여 가장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은 그의 아내 이세벨과 함께 바알과 아세라를 음란

하게 섬겼습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이전 이스라엘의 왕들보다 심히 하나님의 노를 격발한 자라

고 기록합니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이고 그의 아내 이세벨은 음녀의 모형입니다. 
이런 아합이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동안 엘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엄청난 가뭄이 찾아 왔습니

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1절). 그의 예언처럼 3년반 동안 비는 커녕 이슬도 내리지 

않았고, 땅은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을 먹고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17:5-6=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

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성도 여러분! 선지자 엘리야는 가뭄 중에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었고 그릿 시내의 

물을 마셨습니다. 엘리야가 떡을 먹었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먹는 것의 예표입니다. 엘리야가 하

루 두 번씩 떡을 먹은 것은 들판에 모여든 군중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오병이어의 떡을 받아먹은 것

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뭄이 계속되어 시내가 말라버렸습니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아

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7절).
여기 가뭄이 온 것은 아합과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것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종말 대환난 때 

적그리스도로 인해 말씀이 메말라버림을 의미하고, 성령의 역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음을 의미합

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살아있는 생물들의 목이 타들어갔고, 그동안 선지자가 마셨던 

그릿 시내의 물까지 말랐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완전히 사라지고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음과 비교됩니다. 

성도 여러분! 시내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시내에 물이 흐름은 교회 안에 생명의 말씀이 넘쳐 흐름

과 비교됩니다. 시냇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것은 생명의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됨을 의

미합니다.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도 말씀의 단비, 은혜의 소나기가 쏟아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다시 사는 역사

가 일어납니다. 시내가 마르면 안 됩니다. 영의 말씀을 마시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날마다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자리에 우리를 굳건히 세우는 믿음에는 그의 걸맞는 종말의 예배신앙, 살

아 역사하는 행함의 신앙이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까마귀와 같은 썩은 율법과 윤리 도덕 철학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오직 진리

의 말씀만이 교회 안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도덕이나 윤리, 인간 이성에 의한 철학으로 구원에 이

를 수 없습니다. 이것들로는 어떻게 해도 진리의 생수를 마실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의 만나를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의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영의 말씀을 먹고 또 

먹어야 합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시내를 이루어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르밧 과부의 떡의 의미
가뭄은 계속되었고 엘리야의 떡의 이야기는 이제 사르밧의 한 과부의 집으로 그 무대를 옮기게 됩

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8,9절).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과부의 모습은 너무나 비참

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12절). 이것은 구약교회의 최후

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사람의 육이 떡을 먹지 못하면 죽는 것같이 영적으로도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인 말씀이 없으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13절은 오늘 우리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염치없게도 선지

자는 사르밧 과부에게 남은 마지막 양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

들라.”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그대로 순종한 여자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15,16

절).

무슨 뜻입니까? 사르밧 과부와 선지자를 살리기 위하여 놀라운 기적까지 동원하신 의도가 무엇입니

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밀가루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풍족해질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

해 이방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족히 공급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르밧 과부가 가진 마지막 남은 음식을 엘리야가 먼저 먹은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

다. 영적으로 말하면 여인이 가졌던 마지막 양식은 구약의 율법의 모형입니다. 
왜 선지자가 먼저 먹어야 합니까? 그것은 구약 선민인 이스라엘을 비참한 영적 상태로 몰고 간 율

법만을 먹으면 영원히 죽게 될 뿐이지만 하나님의 언약대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르밧 과부의 떡의 의미는 실로 놀라운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여

인이 가졌던 마지막 떡은 의문(儀文)에 의해 죽게 하는 율법의 떡으로 이를 먹고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이 율법의 떡을 십자가에서 친히 해결하셨습

니다. 과부에게 새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음과 같이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

하여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과부는 어떤 자입니까? 남편을 잃어버린 비참한 여인입니다. 즉 과부의 영적 의미는 구약 이스라엘

이 남편 되신 하나님을 잃어버림을 말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사르밧 과부를 지칭하는 이름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10절에는 ‘한 과부(잇샤 알르마나, a widow)’, 17절에는 ‘그 집 주인 되는 

여인(= 주모, 잇샤 빠알라트 합바이트, the mistress of the house)’, 그리고 24절에는 ‘그 여인

(하 잇샤, the woman)’ 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왜 한 여자에게 세 가지 호칭이 주어졌을까요?
‘과부’ 는 구약교회를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주인 되는 여인’ 이라는 호칭은 아이가 죽은 사

건과 연결시킨 이름으로서 포로 후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호칭인 ‘여인’ 

은 초대교회 모습으로 아이가 다시 살아나듯 성도들이 영적으로 다시 살아날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

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르밧 과부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눅 4:25-2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

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여기 사르밧의 과부에게만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이 과부 한 사람에게만 구원이 임했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방 여인인 이 과부만이 엘리야를 알아보았다는 것으로, 영적으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를 알아본 것은 오직 신약교회 뿐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과부의 의미입니다. 곧 생명의 떡을 

충만히 머금은 초대교회만이 주님을 알아보고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르밧 과부의 집에는 새 기름과 새 밀가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

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6절).
여기 기적의 새 밀가루는 새 복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은혜의 복음과 비교됩니다. 그리고 새 기름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과 비교됩니다. 이 두 가지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히

브리 원문의 강조 용법을 감안하면 본절은 결단코 어떤 일이 있어도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거나 없

어지지 않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르밧 과부에게 임한 마르지 않는 축복은 신약교회를 계속 지켜주신 축복을 가리킵니다. 

새 기름과 새 가루는 구약 율법교회에서 신약 은혜교회로 바뀐 모형입니다. 세계 어느 곳이나 복음

이 들어간 곳은 모두 물질과 문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영접한 나라는 영적 축복 

뿐만 아니라 마르지 않는 물질의 축복을 받아왔습니다.
영적 기갈이 극심해져 가는 종말 시대에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말씀 뿐이며 말씀이신 예

수님 뿐입니다. 오직 예수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천사가 숯불로 구운 떡의 의미
떡과 관계되는 선지자 엘리야의 또다른 이야기는 뜻밖에도 갈멜산 전투의 화려한 승리 이후에 시작

됩니다.
바알과 아세라 편을 대표하는 선지자 850인과 여호와 하나님 편을 대표하는 엘리야가 불꽃튀는 영

적 전투를 벌였고, 여호와 하나님 편이 크게 승리했습니다.
왕상 18: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분노한 이세벨이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위협했고, 이에 

엘리야는 겁을 먹고 하룻길쯤 광야로 도망하여 한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거의 우울증 환자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가 엘리야에게 숯불로 구

운 떡을 먹게 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19:5-7=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

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

라 하는지라”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다가 지친 일꾼을 위로하시며 힘주시는 하나님

의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더욱 심오한 영적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여기서 숯불은 성령의 불을 의미합니다. 천사는 엘리야를 위해 떡을 구워 주었습니다. 천사가 숯불

에 구워준 떡은 성령으로 조명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떡을 불에 구우면 단단해지는 것같이 

연단으로 인해 단단한 말씀이 됨을 가리킵니다. 
장성한 자를 위한 단단한 떡을 먹었으면 이제 힘을 내어 갈 길을 가야 하는데 엘리야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6절). 
여러분, 단단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다시 잠자는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천사는 잠든 엘리

야를 깨워 다시 먹게 합니다. 그제야 엘리야는 새 힘을 얻어 사십주야를 쉬지 않고 달려서 호렙산

에 이르렀습니다. 
숯불에 구운 떡을 먹었다는 것은 주의 종을 통해 주어진 단단한 생명의 말씀을 먹는 것을 의미합니

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힘을 얻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주의 종의 양육과 말씀과 교회를 통해 구원을 이

루어 나갑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의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떡과 관련된 세 가지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그릿 시냇가에 숨었을 때 하나님은 까마귀를 동원하여 그에게 떡을 공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르밧 과부에게로 갔고, 거기서 기적의 떡으로 오랜 가뭄의 터널을 안전

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의 격렬한 전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던 엘리야는 천사가 구워준 떡을 먹고 힘을 얻

어 사십 주야를 달려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무엇보다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새 

밀가루와 새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 넘치는 성령 충만한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종말에는 적그리스도로 인한 배교가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천사가 구워준 단단한 떡을 

먹는 단계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구원의 말씀은 율법의 말씀이나 세상의 윤리 도덕 철학과는 구

별되어야 합니다. 오직 생명의 떡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 자만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철철 넘치는 복음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예수님 재림하실 때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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