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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 리스바, 아! 솔로몬, 아! 아간 (삼하 21:7-14)

첨부 1


아! 리스바, 아! 솔로몬, 아! 아간 (삼하 21:7-14) 


1. 아! 리스바, 그리고 사울과 기브온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이 등극하여 통치하던 시대, 내리 3년을 거듭한 극심한 기근으로 나라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이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 원인이 바로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일찍이 여호수아 시대에 맺은 기브온과의 언약 파기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심판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수9:26) 

기브온과의 언약이란 가나안 정복 당시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에 멸망당하느니 차라리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다고 해서 맺은 조약이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어떠한 이유에서든 기브온 족속을 죽이지 못하도록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자신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정략적으로 기브온 족속을 멸족시키고자 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다윗 왕은 곧 바로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묻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기브온 사람이 말합니다. 
“사울과 그 집안과의 갈등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에서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지 말하라. 내가 그대로 하겠다.” 
“사울은 우리를 학살하여 이스라엘 땅에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손 중 남자 일곱을 우리에게 넘겨주십시오. 우리가 사울의 성이었던 기브아에서 그들을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겠습니다.” 
“좋다.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겠다.”(삼하21:4-6) 

사울과 그 집안이 기브온 족을 살해한 죄는 금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무참한 학살에 동참했던 사울 집안의 7명을 처형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울 집안의 7명을 처형할 장소로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서 목매달아 죽이되 “여호와 앞에서” 죽이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삼하21:6) 

이 말의 뜻(“여호와 앞에서”)은 사울 집안의 7명을 처형하는 것이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내린 하나님의 진노(3년 기근)를 진정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입니다. 언약 위반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3년 기근의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기브온 사람의 요구대로 사울 집안의 7명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제 7명을 선정하는 작업. 이른바 살생부 작성에 들어갔습니다.(삼하21:7-8) 우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제외시켰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뜨거운 우정 속에 약속한 바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첩 리스바에게서 난 ‘알모니와 므비보셋’(요나단의 이복 형제)을 선정했습니다. 

사울의 첩 리스바는 사울이 전사한 후 아브넬 장군이 사울의 남은 아들 이스보셋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 취한 여자였습니다. 아브넬의 정략에 이용당한 비운의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리스바의 두 아들을 먼저 선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을 대적한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바르실래의 다섯 아들들이었습니다. 메랍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누구에게든 주기로 약속한 사울의 맏딸이었습니다.(삼상18:17-19) 그런데 사울 왕이 블레셋을 이기고 돌아온 다윗에게 그 딸을 주지 않고 아드리엘에게 시집보내버렸습니다. 그래서 바로 메랍의 다섯 아들들을 내어주게 된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들 7명을 산에서 목을 매달아 죽였습니다. 사울 왕의 언약파기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사울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게 정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진행되어 철저하게 사울 집안을 처형하므로 3년 기근이라는 재앙이 멈추게 된 것입니다.(삼하21:14) 

그런데 두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보던 사울 왕의 첩 리스바는 바위에 굵은 베를 가져다가 펴고 죽은 두 아들 곁에 머물면서 밤낮으로 그 시체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까지” 낮에는 공중의 새가 밤에는 들짐승이 시체를 훼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시 죽은 사람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먹히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삼상17:44) 

리스바는 아들의 시체가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낮에는 중동지방의 뜨거운 햇볕을 무릅쓰고, 저녁에는 광야의 추위와 무서움을 이겨내며 (혹자의 해석에 의하면) 약 6개월간을 시체 곁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3년 기근이라는 하나님의 진노가 비가 내림으로 풀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기를 맞아 내리는 비가 아니라 악인에 대한 형벌을 보시고, 공의의 심판을 보시고 이제 진노를 푸셨다는 표시로서 내리는 비라는 것입니다. 

리스바는 하나님의 진노가 풀려 비가 시체 위에 쏟아질 때까지 오랫동안 시체 주위에 몰려드는 짐승의 온갖 위협을 막아내는 정성과 사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리스바의 정성과 사랑을 보시고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이에 다윗이 감동하여 사울과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져오게 하고는 죽은 일곱 자손들의 뼈와 함께 가족 묘지에 장례 지내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버린 사울과 그 집안에 대한 형벌과 심판이 대를 두고 후대에 그 자손들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죄악의 씨를 심어 자신을 물론 그 후손들에게까지 진노와 저주를 거두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이 심은 죄악의 씨가 사울의 후손들에게 저주와 심판으로 나타나는 중에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비록 사울 왕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차기 왕권을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알고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대적하여 범죄하지 않도록 간청했습니다.(삼상19:4) 그리고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마다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다윗을 구했습니다.(삼상20:33) 

요나단은 분명 사울 왕의 왕위 계승자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음을 알고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아버지 사울 왕의 죄악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비록 그가 죽은 후에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무엇이든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잠 22: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믿지 아니하는 자는 “밭을 갈아 죄악의 씨를 뿌리고 거짓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고 했습니다.

(호 10:13) 그러나 “(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천한 몸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몸으로 묻히지만 강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육체의 몸으로 묻히지만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의 몸이 있으면 영의 몸도 있는 것입니다.”(고전15:42-46) 죄악의 씨를 뿌리는 가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거룩한 삶으로 자손들에게 의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거룩한 하나님의 씨’를 심어 자손대대로 의의 열매가 풍성한 가문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2. 아! 솔로몬

솔로몬은 그 자신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온갖 특권과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가 어린 나이에 왕에 등극하고 일 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었으면 좋겠는지 말해 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주께서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언제나 크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며 주께 충성을 다하였으므로 주께서는 한결같은 은혜를 베푸셔서 오늘날처럼 왕위를 이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주께서 나의 아버지 다윗을 이어 나를 왕이 되게 하셨는데 아직 나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내 직무를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며 겸손히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솔로몬은 여러 가지 조건에서 볼 때,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왕위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다윗에 이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아들은 아도니야가 유력했습니다. 다윗의 장남은 암논인데, 그는 미모의 이복 누이동생 다말을 추행한 탓에 훗날 다말의 친오라비 압살롬에게 암살되었습니다.(삼하 13:14, 28, 29) 

다윗이 가장 사랑했던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 남자 중 가장 뛰어난 외모를 지녔던 자로 이름이 높은데(삼하 14:25-26), 누이 다말을 추행한 이복형 암논을 보복살해하고 도피했다가 나중에는 아버지 다윗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삼하 13:20-18:15). 

그러나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자 도피하다 그 자랑하던 머리털이 상수나무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추격하던 요압 장군의 창에 심장이 찔려 살해되었습니다.(삼하 18:14) 따라서 생존한 왕자들 중 최연장자는 아도니야였습니다. 아도니야는 압살롬 다음가는 준수한 외모로 백성들의 인기를 끄는데 한 몫 했습니다. 

그는 부친 다윗에게 한 번도 책망받은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다윗을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던 왕자로, 그래서 다윗의 총애를 받던 아들로 왕위계승 서열 1위였습니다. 이러한 아도니야가 다윗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왕위에 대한 야심을 품고 전차와 기병과 호위병 50명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 사실을 요압 장군과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모두 털어놓고 상의하자 그들이 아도니야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아도니야는 무엇보다도 군대 장관 요압의 가담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원을 얻음으로써, 거사에 대한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아도니야가 거사 성공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여기에는 과거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었던 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상당수 많은 신하들이 초청되었지만 솔로몬과 선지자 나단은 제외시켰습니다. 이는 아도니야가 솔로몬이 약속된 왕위 계승자임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제일 먼저 반역 거사 소식을 접하고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왕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하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하십시오. 당신은 지금 곧 왕에게 가서 <대왕이시여, 왕은 전에 내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앉히시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습니까?> 하고 물어 보십시오. 당신이 왕과 말하고 있을 때 나도 들어가서 당신의 말을 지지하겠습니다.’ 그래서 밧세바가 다윗 왕을 찾아가 ‘대왕이시여, 왕은 내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앉히시겠다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에게 맹세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미 아도니야가 새 왕이 되었는데도 왕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계십니다. 왕자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요압 장군을 잔치에 초대하였으나 왕의 아들 솔로몬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지 왕이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왕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시면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왕이 돌아가시는 즉시 죄인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선지자 나단이 들어와 다윗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왕은 아도니야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아도니야가 반역 거사 잔치를 베풀고 왕자들과 군 지휘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초대하여 지금 그들은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 만세! 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와 제사장 사독과 그리고 브나야와 솔로몬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왕이 지시하셨습니까? 왕은 어느 왕자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지 아직 우리에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은 밧세바를 다시 불러 ‘나는 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소. 나를 모든 위험에서 구원하신 살아 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오늘 그 약속을 이행하겠소.’ 라며 왕위 계승자는 솔로몬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기름부어 왕에 임명하고 솔로몬의 왕 등극을 나팔을 불어 온 나라에 선포하게 합니다. 

다윗 왕의 지시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땅이 꺼질 듯이 나팔을 불어 선포하고 온 백성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즐거워했습니다. 아도니야가 독자적인 즉위식을 마치려다 이러한 소식을 듣자 잔치석상에 참석했던 무리들이 혼비백산하여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도니야의 거사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 건축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대상22:9-10)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삼하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이 밧세바를 간통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청부 살해한 죄악을 준엄하고  통렬하게 책망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그의 가정을 받으신다는 징표로 아들 솔로몬을 주셨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또한 비록 간통으로 차지한 밧세바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 낳게 될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을 가진 ‘여디디야’로 지으신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삼하12:24-25)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이렇게 솔로몬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아도니야와 요압과 아비아달의 손으로부터 구원받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지혜와 지식, 구하지 아니한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평생 동안 마음과 뜻과 정성, 그리고 목숨을 다하여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경외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들여 우상숭배를 허용하는 정책으로 하나님의 경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그 마음을 떠나있었고 온전한 마음,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에 하나님께는 그렇게 사랑했던 솔로몬을 아픈 마음으로 공의의 심판을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그의 말년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부귀영화, 입신양명이 ‘다 헛되고 헛된 것’(전 1:2)이라고 고백한 사실은 뒤늦게나마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깊이 깨닫고 신앙을 회복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마지막에, ‘(전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라는 말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랑하는 솔로몬이었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허용한 죄악을 눈감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심판을 시행하시기 전, 두 번에 걸쳐 솔로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왕상11:9-11)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하나님의 계속적인 축복과 후손들에 대한 왕위 계승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법도를 지키는 조건 하에서만 보장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 조건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솔로몬과 그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철회될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불순종에 따른 심판을 면할 길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는 말씀으로 그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이는 솔로몬 왕국 전체를 멸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둘로 분열시키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분열 원인은 바로 솔로몬의 우상 숭배와 율법 준수 실패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을 시행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열왕기 상11:12-13을 보겠습니다.

(왕상11:12-13)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온전한 마음과 그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은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왕상9:4-5)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삼하7:14-15)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특히 여기서 “위하여”는 ‘인하여’, ‘생각하여’로 번역되기도 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소돔에 열 명의 의인이 있다면 그들로 ‘인하여’ 멸망을 연기하시겠다는 말씀 속에서도 사용된 말입니다.(창 18:26-33). 또한 과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다시 말해 롯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인하여’ 조카 롯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창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마찬가지로 다윗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여’ 솔로몬을 당대에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선대 다윗 왕을 ‘인하여’ 심판을 모면했지만 불행하게도 솔로몬 자신은 그 아들 르호보암에게 재앙을 심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에게는 “인하여”가 그 후손들에게 불행과 저주의 뿌리가 되었지만, 다윗을 “인하여”는 그 후손들에게 불행과 저주의 고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사람의 뜻에 따라 왕으로 세워진 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자신과 더불어 그 후손들에게 불행과 저주의 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가장 소중히 여겨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으로 자신은 물론 그 후손들에게 축복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비록 그 후손 중 범죄할 경우라도 사울처럼 아예 대를 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다스려 마침내 축복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십자가 은혜로 “인하여” 사망과 저주가 끊어지고, 생명과 축복으로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보시고 그 진노를 거두시고 축복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때문에 비록 성도 여러분이 범죄할지라도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다스려 마침내 다윗에게 약속된 축복들을 계승하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자손 중 솔로몬처럼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있고 믿음에서 벗어나 있을 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다스릴지라도 반드시 약속된 다윗의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로 저주와 사망의 고리가 완전히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처럼 성도 여러분을 ‘인하여’,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을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솔로몬같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3. 아! 아간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한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정복하는데는 큰 낭패를 당했습니다. 여리고 성에 비하면 손쉽게 정복할 줄 알았던 아이 성 전투에서 3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고 3천명이 패주하는 비참한 패배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승리만을 계속해 온 그들에게 이러한 비참한 패배는 큰 두려움과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시던 하나님의 능력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마음이 녹아내린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를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자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수7:10-11) 

하나님께서 일찍이 “(신7:26)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이 진멸 당할 것이 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를 거역한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제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함께 하시지 아니하리라, 결코 어떠한 대적하고 전투할지라도 패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7:13)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제비를 뽑자 ‘아간’이라는 자가 바로 범인으로 드러났습니다. ‘아간’은 자신의 모든 범죄 사실을 자백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간’과 그 가족들 모두를 훔친 물건들과 함께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 돌로 쳐죽이고 불로 태워버렸습니다.(수7:24-26) ‘아간’이 범한 죄로 그 아들들과 딸들까지 몰살당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18:2-4, 19-20을 보겠습니다. 

(겔18:2-4)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겔18:19-20)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아비의 죄값을 아들이 받거나 아들의 죄값을 아비가 받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4:16에서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는 규정을 두셨습니다. 아비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까지 전가(轉嫁)시켜서는 안된다고 명시한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시행한 왕이 있었습니다. 

B.C.798년경, 유다 왕 아마샤는 하나님 앞에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아마샤는 집권 초기에 부친 요아스를 암살한 세력(왕하12:20-21)에 의해 여러 가지로 방해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정권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마샤로 하여금 에돔과 싸워 대승하게 하셔서 국력을 신장케 하셨습니다. 아마샤는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통치권을 확립하여 아버지 요아스를 암살한 범인들을 처형했습니다. 그 때 그 역적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습니다. 이것은 아마샤 왕이 바로 하나님 말씀, 신명기 24:16,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그대로 준행한 것입니다.

(왕하14:5-6)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그렇다면, ‘아간’의 범죄로 왜 그 자식들까지 죄값으로 몰살당하게 되었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간’의 범죄에 그의 가족이 동참했거나 아니면 묵인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간’이 훔친 물건을 자기 장막 안에다 감추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그 사실을 가족들이 몰랐다고 변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간’의 범행에 동조했거나 묵인, 방조한 그 가족들 역시 ‘아간’ 못지않은 범법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4:16의 말씀대로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겔18:1-2)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 는 속담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간’과 그 가족들이 몰살당한 곳을 오늘날까지 ‘심판’과 ‘고통’, 그리고 ‘저주’를 상징하는 ‘아골 골짜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간’의 죄, 그리고 그 가족들의 죄악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후세에 경고로 삼기 위해 명명한 명칭입니다. 

‘아골 골짜기’는 자식들에게 미치는 부모들의 죄의 영향력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의 잘못된 식생활 습관이나 알콜, 약물 복용 등으로 그 후손들이 여러 가지 질병이나 신체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말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십계명을 보면,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바로 아비의 죄가 그 자손 삼, 사대까지 영향을 미쳐 그 자손들이 죄와 불의가운데 거함으로 그 죄와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각 사람이 심판을 받음은 각자의 죄 때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신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대체로 한 가문이나 집안은 그 분위기, 습관이나 전통 등 독특한 특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경건한 후손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악을 일삼는 사람의 가정에서 악인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경건한 가문의 출신’이 개인의 경건을 보장해 준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악한 가문의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악인이 나오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한 악한 가문 출신이라고 해서 자신의 악행이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평가와 심판은 철저하게 그 개인이 행한 행실에 따라서만 이루어집니다.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이든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만 합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평가받거나 심판받는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과 나의 지난 날의 삶에 대해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고 심판하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장차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누구의 죄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 자기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해서이니라.”(요9:1-3) 

인간의 질병이나 불행, 그리고 저주와 사망 등은 분명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본인의 죄악으로 말미암지 않는 불행이나 고통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욥의 고난이 그렇습니다. 욥의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믿음을 사탄이 시험한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본인의 죄로 인한 불행이나 고통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불행, 즉 소경으로 태어나도록 계획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인간을 창조하실 때 존귀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불행케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죄가 깃들어 드러난 인생의 불행을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되 인간의 불행을 고쳐서 복이 되게도 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가지시고 불행한 인생을 행복한 삶으로 창조하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인생의 불행을 긍휼히 여기셔서 복된 삶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같은 일을 위해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두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해서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는’ 인생은 복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아니 처음부터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지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이 나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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