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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하며 살아가는 기쁨 (행 14:19-20,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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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살아가는 기쁨 (행 14:19-20, 27-28)

 
사람은 행복과 보람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행복과 보람은 외부로부터 주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주어집니다. 사람이 하는 일들 중에 보람과 기쁨과 행복을 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들을 통해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주 건강한 삶을 살게 되고 건강한 신앙의 삶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앞으로 신앙인의 건강한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기쁨”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고 행복을 누리며 보람을 얻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일을 주신 것은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사도바울의 전도하는 모습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내용을 보면 생생한 간증형식으로 현장감 있게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생생한 현장 목격자는 루스드라 출신인 바울의 제자였던 디모데였을 것입니다. 

당시 루스드라는 로마 식민지로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고참 직업군인들을 그곳에 이주시켜 군인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유대인들도 소수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사도바울이 와서 전도를 합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찾아와 집요하게 전도를 방해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이웃 마을인 안디옥과 이고니온 지역의 유대인들까지 불러와 방해를 합니다. 싸움은 대부분 상대적입니다. 양쪽이 똑같으니까 싸움이 발생합니다. 한 사람이 싸울 의지가 없으면 싸움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부부싸움도 쌍방이 똑같으니까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웃 동네 유대인들까지 불러와 합세하면서 싸움이 치열해 졌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은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않고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그대로 전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몹시 약이 올랐을 것이고 19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돌에 맞은 바울은 졸도했고 유대인들은 사도바울이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끌어냈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치열했습니까.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시내에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얼마나 흥분하였으면 돌로 쳐 죽였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날 사도바울은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몸이 부러지고 찢어지고 피가 나고 상처가 컷을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바울이 기절한 것을 알았으면 빨리 응급처치를 하려 애를 썼을 것인데 본문은 “제자들이 둘러 서 있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바울이 이미 죽은 줄 알고 장례 절차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20절을 보면 그때 사도바울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기절했다가 정신이 깨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내로 들어가 하루를 보내고 그 몸으로 다음날 더베로 떠납니다. 루스드라에서 더베까지는 30km의 길입니다. 그 말은 다음날 그 몸으로 70리 되는 길을 걸어서 갔다는 말입니다. 그 장면을 본문은 아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더베로 가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21)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한다고 충고를 하고 (23)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내 금식기도하고(23) 다시 비시디아, 밤빌리아, 버가를 지나 배타고 안디옥으로 가서 여러 날을 머물렀다(24)고 했습니다. 

이 일을 누가 시킨 일입니까. 돈이 생기는 일입니까, 누가 강제로 시킨다고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순전히 자기 스스로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일이 행복하고 즐겁고 할수록 더 보람을 느끼니까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생활입니다. 철학자 칼 힐티가 말한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이나 사명이나 은사나 좋아하는 일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입시 때가 되면 아이들 방을 지키고 앉아 밤을 새웁니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시키면 방문을 지키지 않아도 밤새워 공부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그 아이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해 주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은 보람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 보람은 일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건강한 신앙인의 삶은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맡은 일을 하고 사역을 하고 열심히 일하는 태도는 좋은 태도입니다. 사람은 일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밤새워 일하는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는 결혼을 포기하면서까지 일하려고 애를 씁니다. 일에서 기쁨을 얻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 일도 그냥 일이 아니고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고 그 일에 매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 발견 

먼저 내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기쁨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하며 살아갈 때 삶이 행복해지고 이 세상이 건강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나 사명이나 은사를 발견하지 못하면 허탄한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연예인들이 도박과 마약에 몰두하는 경우가 그들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 좋은 재능을 가지고 소중히 역할을 못하고 허탄한데 열정을 쏟는 것입니다. 

돈을 좀 벌었습니다. 주머니가 넉넉해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할 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도박으로 마약으로 타락으로 탕진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중년에 이르렀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더 이상 할 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편안한 생활을 하며 매일 누워 살아갑니다. 그리고 먹는 일에 몰두하고 마시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러니까 삶에 불균형이 오는 것입니다. 이 삶의 불균형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것이 중년의 위기로 나타납니다. 중년의 때에 각종 질병이 몰려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삶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빨리 죽게 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체중을 늘리게 하라, 허리띠 길이와 수명이 반비례하니까. 술을 많이 마시게 하라, 좋아도 마시게 하고 언짢아도 마시게 하라 그래야 간 기능이 떨어져 일찍 죽으니까. 일없이 편안하게 해 주라, 운동부족으로 수명이 단축되니까. 육식을 많이 하게 하라, 동맥경화나 성인병에 걸리니까. 음식을 짜게 만들어 주어라, 커피로 배를 채우게 하라 특히 자판기 커피를 부지런히 빼 주라. 담배를 계속 피우게 하라, 담배 한 개피 피우면 5분씩 생명이 단축된다고 하니까. 

특히 타르나 니코틴이 우리 것 보다 배 이상되는 양담배를 사 주라. 밤늦게까지 잠을 못 자게 하라, 연속극을 보게 하고 끝나면 곧 바로 비디오를 보게 해 주라. 휴가 없이 일하게 하라, 스트레스로 지레 죽도록. 바가지를 계속 긁어 신경을 곤두서게 하라. 이것이 불균형의 삶입니다. 균형이 깨지면 어느 날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균형이 깨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살았습니다. 그는 순간도 멈춤이 없었고 앉아있을 시간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 삶에 날마다 새로움이 있었고 의기충천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 다 달려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람은 주어진 일과 은사와 사명의 삶을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한 삶을 이루는 존재입니다. 

일의 철학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발견하게 되면 일에 대한 철학이 발생합니다. 하나는 감사함입니다. 현재 주어진 일터에 대한 감사입니다. 건강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좋은 가정을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일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이 발생됩니다. 오늘 사람들이 일터가 없어서 난리입니다. 모두 일 자리를 찾으려고 안달입니다.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톨스토이는 할 일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분주할 때 싫도록 잠을 자 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하루만 싫도록 잠을 자 보십시오. 잠도 정도껏 자야 합니다. 그 이상을 자면 리듬이 깨져버립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하도록 지으셨습니다, 일할 때 보람을 느끼도록 만드셨습니다. 오늘 내가 일하도록 일터를 주신 것이 무엇보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푸념하지 않습니다. 또 이런 사람은 아침 출근시간이 행복합니다. 흔히 월요병이라고 해서 월요일만 되면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또 출근해야 하나, 지겹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있다면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뜻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뜻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사도바울은 전도하다가 조금 방해가 오면 금방 자리를 접고 다른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매일 그렇게 보냈다면 무슨 전도의 열매가 주어졌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의 전도과정을 보면 방해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 방해 정도는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그의 앞길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전도하는 일을 너무나 행복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그런 마음이라면 매일 일터로 출근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한발 앞서 나서고 섬기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 삶에 보람과 기쁨과 행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행복함이 주어집니다. 어느 부목사님이 다 가기 싫어하는 신안 앞바다에 있는 조그만 교회로 임지를 맡아 갑니다. 모두 염려하는데 그는 고집스럽게 그곳을 선택하여 갔습니다. “해외 오지로 선교사로도 가는데” 그 마음으로 갔습니다. 정신이 좋습니다. 영적 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생각이 건전하고 사명감이 분명합니다. 마음이 그런 상태이면 하는 일이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보배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사역하는 교회는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하겠습니까. 그것이 성공하는 삶이고 건강한 신앙인의 삶입니다. 요즘 TV에 달인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들이 수년 동안 외진 주방에서 연마하고 수고를 합니다. 남들은 밝은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애를 쓰고 땀을 흘리는데 그 주방장들은 그런 화려한 생활에는 뜻이 없습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유하려는 것이 뜻이고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는 일에 행복이 있고 기쁨과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한 가지만 잘하는 일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음식 뭐 잘해요” 하고 물으면 “다 잘해요” 하고 대답한다면 그 말은 한 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느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이 한 말이 있습니다. 응시자에게 "하고 싶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노래 춤 연기도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불합격입니다. 

“다 잘하는데 셋 중 춤을 더 잘합니다”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며 일을 하면 미래는 절로 풀려나갑니다. 성공으로 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일부러 성공해야지 한다고 성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한 가지 일에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그런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더 좋은 일터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향상의 삶이고 발전의 삶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오늘 현재 일하는 일터에 대해서 불만족합니다. 그래서 자꾸 옮겨보려고 안달합니다. 그러니까 삶에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직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만족함, 행복함, 즐거움은 외부환경에 있는 것 아니고 내 마음에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먼저 뜻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목회자들도 농촌에서 목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농촌의 환경이 아주 열악합니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현실은 열악하고 고민도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불만족해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역하기가 싫어집니다. 그러니까 목회 현장에서 마음이 떠나고 사역이 제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농촌목회에서 떠나지 못해 안달하게 됩니다.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농촌 목회를 하려면 먼저 농촌 운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농촌에는 노인들만 있고 젊은이가 없고 비전이 없다고 투덜댈 것이 아니고 노인만 있으면 노인목회를 해야 합니다. 노인 목회는 모드가 간단합니다. 

농촌의 노인들에게 년 간 3일 추석날, 설날, 생일날만 되면 고무신 한 켤레와 소고기 한 근을 들고 3년만 찾아가면 끝납니다. 모두 감동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감동이 없는 시대인데 상대가 감동을 받았다면 끝난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내 마음이 행복해야 그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내 마음이 행복하고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는 섭리의식 그리고 소명의식이 내 마음에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때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일을 수행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때 거기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하며 살아가게 되면 그 일터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주어집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청지기들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일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나는 선교사다”라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요. 여러분은 모두 직장에서 나는 이 직장에 파송받은 선교사다라는 의식이 있습니까. 그리고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전도를 해 본 경험이 있는가 물어보십시요.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감히 누구에게 전도하지 못합니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야 직장인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어버이 날 부모와 형제들을 앞에 놓고 효도에 대해서 설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고향에서 목회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과거를 잘 아는 내 친척들이 여기에 앉아 있습니다. 내 부모와 형제들이 여기에 와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힘든 상대들입니까. 그들을 앞에 놓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어떻게 큰 소리로 설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의 목회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내 목회에 잡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없는 목회자들은 다른데서 신앙생활 잘 하는 형제들과 부모들과 친구들을 다 불러들입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직장에서 주님과 지금 동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직장에서 주님을 증거하며 전도를 하고 있는가? 못하고 있으면 나는 왜 전도를 못하고 있는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를 물어보십시오. 사람은 보람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행복을 먹어야 살고 기쁨을 누려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행복은 내게 주어진 사명과 소명과 은사를 잘 발휘하고 이루며 살아갈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소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났고 회심자가 일어났고 영접자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삶이 가장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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