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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니느웨 성의 회개운동 (욘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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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느웨 성의 회개운동 (욘 3:1-10) 
 
 
여간한 지식과 경륜이 있는 사람이라도 차원 높은 하나님의 지혜에 근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사 55:9). 지금까지 요나는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옳다고 여기고 거기에 도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못마땅하여 이를 거역하고 도망가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두 번째 명령에는 어쩔 수 없이 순종하여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그들이 돌아설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경고를 받은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는 등 거국적인 회개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명령하시는 일에는 어김이 없습니다.

1. 요나가 전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요나가 스올의 뱃속에서 죽음의 고통을 겪은 다음 하나님께 굴복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1) 두 번째로 임한 명령

1-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였습니다. 주권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선지자로 부름 받은 사람은 그 분부하신 말씀이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렘 1:7). 여기 요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한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실 분이 아닙니다. 사울 왕이 불순종했을 때 폐위시키고 다윗을 왕위에 앉히신 분입니다. 요나의 경우는 스스로 돌이키도록 기다리셨다가 다시 불러 주셨으니 은혜입니다.

2) 순종하는 요나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 그에게 임했을 때 요나는 거역하지 않고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3절에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졌을 때 순순히 따랐어야 마땅했습니다. 결국 그는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가서 음부의 고통까지 겪은 다음 마지못해 순종하는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나 그의 명령에 따라서 순종하는 것은 부득이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움으로 해야 됩니다(벧전 5:2). 그러나 요나처럼 불순종의 대가를 치른 다음에라도 돌이키고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사 1:5-6).

3)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요나의 메시지는 성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에 “요나가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의 성향은 니느웨 사람과 공존할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그가 성에까지 들어가서 직설적으로 그곳 사람들에게 멸망을 선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서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소임입니다. 에스겔 선지는 파수꾼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백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바로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파수꾼의 경고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는 줄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겔 2:5).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귀에 즐거운 소리만 하는 자를 거짓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2:22).

2. 전도의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5절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요나의 편견된 생각이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1) 주권자 하나님의 섭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21). 강퍅한 인간의 심령이 몇 마디 전도하는 말을 듣고 쉽게 돌아선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미련하다고 여기는 그 일을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마 10:7, 딤후 4:2).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자기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고 하였습니다(사 55:8). 자기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는 엄청나고 복된 결과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거국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요나의 외치는 소리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이것은 통절히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니느웨의 왕도 거기 동참하였습니다. 6절에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고 하였습니다. 7절에 보면 왕과 대신이 전 국민에게 조서를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왕이 내린 조서에 따라서 사람뿐만 아니라 소와 양과 짐승들까지 먹이를 주지 않고 금식을 시켰습니다. 죄 없는 짐승들에게 베옷을 걸치고 금식을 시켰다는 것은 국가적인 철저한 회개를 뜻합니다. 나라가 멸망하게 되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남김없이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회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와 같은 회개운동은 사람이 임의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적국인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경고를 받아드려 순순히 무릎 꿇게 되리고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래도록 선지자의 소리에 익숙했던 이스라엘 민족들도 저희들에게 불리한 예언을 하는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렘 32:5). 예수님께서도 열두 사도를 내보내시면서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마 10:17). 여기 니느웨 성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회개운동은 성령께서 행하신 역사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강퍅하고 거친 사람이라도 성령이 작용하게 되면 그 속에서부터 폭발적으로 회개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성령께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도록 감동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났습니다.

10절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1)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은 정의와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징치하실 때는 엄격한 율법의 척도에 의하여 정의롭게 다스리시지만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시조 아담이 범죄했을 때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하고자 하신 원시복음이 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창 3:15). 그러나 선택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저희들만의 전유물인 줄 알고 이방인을 멸시하였습니다. 요나도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시는 원대한 경륜을 이루십니다(롬1:16).

2) 회개하는 자에 대한 긍휼

하나님의 긍휼은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하심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도망가던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가게 하셨지만 그를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요나가 스올의 고통 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그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다시 불러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폭군 아합 왕도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었습니다.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 왕이 엘리야에게 책망을 듣고 금식을 하면서 굵은 베로 몸을 동이는 등 겸비해지는 것을 보시고 심판을 멈추었습니다(왕상 21:29). 본문 말씀 10절에도 니느웨 성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는 것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됩니다.

인류의 소망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악한 사람이라도 그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구원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에스겔 33:11에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그들이 다 지구 위에서 공존하며 번영하기를 원하십니다(행 17:26).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받고 새 생명을 누리도록 힘쓰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주님께서 분부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마 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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