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라 (대하 36:11-21)

첨부 1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라 (대하 36:11-21)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가 그 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함께 종말을 고한 역사의 기록입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아들입니다. 요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대대적이고 철저한 신앙개혁운동을 펼친 보기 드문 선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집트의 바로 느고와 므깃도에서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죽었습니다(대하35:22-24). 요시야 때의 유다왕국은 바벨론이 신흥강국으로 부상하고 앗수르가 쇠약해진 틈을 타 독립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강성해지는 것을 원치 않은 이집트가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과 싸우기 위해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로 향해 진격해왔습니다. 유다를 침공하고 욕보이던 앗수르가 빨리 망하기를 바랐을 요시야는 이집트가 앗수르를 돕는 것을 막기 위해 갈그미스로 향하던 이집트의 바로 느고의 군대를 중간지점인 므깃도에서 저지하려 했던 것입니다(대하35:20). 이 요시야의 패배로 유다는 이집트의 간섭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세웠지만 그가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지 석 달만에 이집트 왕에 의해 폐위되고 말았습니다(대하36:1-3). 대상3:15에 따르면 요시야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이 요하난이고 둘째는 여호야김이며 셋째는 시드기야이고 넷째가 살룸이었습니다. 넷째 살룸이 곧 여호아하스입니다. 막내아들이 형들을 제치고 요시야의 뒤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반이집트-친바벨론 정책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유다를 이긴 이집트는 반이집트 성향의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의 둘째 형 여호야김으로 유다의 새 왕을 삼은 것입니다. 이집트에 의해 폐위된 여호아하스는 붙잡혀 이집트로 끌려갔고 거기서 죽었습니다(대하36:4, 렘22:11-12). 유다 왕국의 국권이 사실상 외국에 넘어간 치욕스러운 망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집트에 의해 왕이 된 여호야김은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렸지만(대하36:5) 그 사이에 국제정세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앗수르-이집트 연합군은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대패했으며 앗수르는 멸망하고 바벨론은 새 맹주로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습니다. 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군사를 몰고 올라와서 이집트가 유다 왕으로 세운 여호야김을 폐위시키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습니다(대하36:6). 

그 후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데 당대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렘22:18-19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유다의 왕위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에게로 넘어갔지만(대하36:8) 그가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지 석달 열흘이 지난 같은 해에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여호야긴 또한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으로 삼았습니다(대하36:10). 따라서 요시야 이후의 마지막 네 왕은 여호야긴을 빼고는 세 명이 모두 요시야의 아들들입니다.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 여호야김뿐 아니라 그의 아들 여호야긴까지 석 달여 만에 둘 다 폐위시키고 바벨론으로 잡아간 것은 그들이 친이집트 성향의 군주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벨론이 그 대신 시드기야를 유다의 새 왕으로 삼은 것은 시드기야가 친바벨론 정책을 폈다가 이집트에 의해 폐위되어 이집트로 잡혀가서 죽은 여호아하스와 같은 어머니 하무달에게서 난(왕하24:18) 두 살 위 형으로서 아우 여호아하스처럼 친바벨론의 정책을 취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유다 왕국의 국권은 완전히 주변열강에게 유린되고 만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본문 11절).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시드기야와 군신관계의 충성서약을 받을 때 시드기야로 하여금 느브갓네살을 배반하지 않기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느브갓네살이 기대한대로 그에게 충성을 지키지 않고 그를 배반했습니다(본문 13절). 그 보복은 무서웠습니다. 유다 백성은 시드기야의 배반의 대가를 하고 혹독하게 치러야했습니다. 

본문 17-21절을 보면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합니다. 한편 역대기 기자는 시드기야 왕 자신의 비참한 최후의 모습은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열왕기 기자는 이렇게 기록해놓았습니다: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25:5-7) 일국의 왕으로서, 그것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나라의 왕으로서 뿐 아니라 한 나라로서도 참으로 치욕적이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백성의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영원히 견고한 왕조가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신(대상17:10-14) 왕국이 왜 이렇게 된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시야가 죽은 후의 유다 왕국의 마지막 네 왕에 관한 역대하의 기록은 다른 왕들을 관해서 기록할 때보다 훨씬 생략된 형식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의 한 묶음으로 처리하다시피 합니다. 마치 별로 기록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듯이 대충 처리하고 맙니다. 

이미 유다 왕조는 그 기운을 다 잃었고 벌써 다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투입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어떻게 했길래 그런 것입니까? 새로울 것은 없지만 마지막 네 왕에 관한 언급만 골라서 읽어봅니다. 먼저 여호아하스에 관해서입니다. <역대하>는 그의 행실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는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왕하23:32). 

여호야김에 관해서 대하36:5에서는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하고 왕하23:37에서도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합니다. 여호야긴에 관해서도 대하36:9에서는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하고 왕하24:9에서는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합니다.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다는 평가뿐입니다. 마지막 시드기야에 관해서도 왕하24:19에서는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합니다. 그런데 시드기야에 관한 역대하의 기록에는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언급이 있습니다. 먼저 본문 11-12절을 봅니다: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 합니다. 

또 15-16절에서는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왕들과 백성이 악을 행하는 것을 가만히 보시기만 하다가 소리 없이 징벌하시고 멸망시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으로 일러주셨지만 그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예루살렘 성전을 아끼셔서 부지런히 당신의 사신들을 백성에게 보내시며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며 회복할 수 없도록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의 치욕스럽고 비참한 멸망이었던 것입니다. 

유다 왕국은 멸망했습니다. 유다 백성의 삶의 터전인 땅과 수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의 신앙의 요람이고 정신적 구심점인 하나님의 성전은 더럽혀졌고 파괴되었습니다. 유다 왕국의 정치적 중심인 왕권은 이방 적국에 의해 유린되고 박탈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포로로 먼 남의 나라에 끌려갔습니다. 한 나라의 완전한 해체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황폐한 땅, 나라 잃은 백성, 남의 나라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백성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나라 잃고 이방 땅에서의 포로생활의 기간을 칠십 년이라 한 것입니다. 치욕의 세월의 끝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희망을 보인 것입니다. 게다가 토지가 황폐했던 그 기간을 안식의 기간이라 한 것입니다. 재기를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 남은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 희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국의 영원한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폐기되지 않은 언약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영원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 다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은혜의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통회하며 긍휼과 용서를 빌며 두 손 들고 하나님께로 가기마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열려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우리도 유다 백성이 겪은 나라 잃고 치욕과 눈물과 한탄 속에 지낸 칠십 년 세월의 꼭 절반에 해당하는 세월이 있었음을 상기시켜주는 날입니다. 그 질곡과 절망 가운데 발가벗겨진 민족의 적빈의 역사 속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복음이 뿌려졌습니다.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새 소망이 돋아났습니다. 교회가 섰습니다. 성령의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광복이 주어졌고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우리의 땅이 우리의 품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라의 주권이 우리 손에 다시 쥐어졌습니다. 제헌국회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국정을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난과 온갖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세계 속에서 꾸준히 국가적 위상을 높여왔습니다. 이제는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며 선진국들까지 벤치마킹을 하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과 사랑을 잃어버림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를 다 알 수도 다 말할 수도 없지만 아무튼 한국교회가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사회나 국민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관건은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면 사회나 국민과의 관계는 저절로 좋아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없이 여러 차례 한국교회에 경고하셨다고 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 백성에게 주셨던 말씀 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수없이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실천하기를 게을리 한 것입니다. 이제는 돌아서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죽으면 이 나라도 죽는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우리가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삼일독립정신과 나라 되찾는 운동이 오늘 교회의 신앙회복운동으로 되살아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 큰 복을 베푸셔서 이 나라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에 다 함께 몸과 마음을 모으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