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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근원(根源)을 찾는 자

  • 김부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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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1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2장 33절~37절

설교제목 : 근원(根源)을 찾는 자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하고, 유죄 선고를 받기도 할 것이다."(마태 12:33~37)】

 

  <성경의 배경상황>

  예수 일행과 바리새파 사람들, 그 두 그룹은 천적이었습니다. 사사건건 부딪쳤지요. 예수께서 ‘이런 말’을 하시면, 바리새파 사람들은 ‘저런 말’로 비판했습니다. 예수 일행이 ‘이렇게’ 행동하면, 바리새파는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끝도 없는 대립과 논쟁. 그 터무니없는 정쟁(政爭)상황에 지친 예수께서 짜증 섞인 말로 뱉어놓은 말이 바로 오늘 성경입니다. 즉 “그대들이 하는 말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대들이 그 마음과 생각 속에 갖고 있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진단입니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을 잉태하고 있는 마음과 생각이 중요합니다.

 

  <예수의 1차 메시지>

  이 성경말씀을 읽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할까요? 우리 행동을 돌아보는 성찰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이 바리새인 같지 않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가보기에도 온당한 사람들의 정당한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시기와 질투심에 가득찬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를 반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아울러서 반드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로세우는 삶, 그 ‘마음과 생각’을 닦는 수도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마음과 생각’을 깨끗하게 닦고 또 닦아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바르고 정결하고 아름답고 품위있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일차적 메시지입니다.

 

  <윤동주 시인과 이해인 수녀>

  제가 개인적으로 판단했을 때, 윤동주 시인의 시 정신이나 이해인 수녀의 작품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 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이해인의 ‘말을 위한 기도)】

 

  <예수의 2차 메시지>

  그러나 저는 이 성경에서 ‘또 하나의 메시지’를 찾고자 합니다. 더 깊은 이야기, 예수께서 숨겨 놓고 계신 더 근원적인 메시지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게 뭘까요? 그것은 ‘현상’이 아니라 ‘근원’(根源, 근본 원인)을 찾고자 하시는 예수의 구도적(求道的) 발상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 예수는 항상 근원을 찾고자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현상이나 사건보다는 그 ‘현상과 사건’의 배경이나 원인이 되는 근원(根源)을 찾고자 했습니다.

  오늘 성경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예수는 ‘말이나 행동’보다는 그 ‘말이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마음과 생각’에 주목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과 생각’의 문제가 해소되면, 당연히 ‘말과 행동’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선 시인의 작품세계>

  제가 개인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성선 시인의 작품세계가 바로 이 차원에 해당됩니다.

 【세상에 대하여 할 말이 줄어들면서 그는 차츰 자신을 줄여갔다. / 꽃이 떨어진 후의 꽃나무처럼 침묵으로 몸을 줄였다. / 하나의 빈 그릇으로 세상을 흘러갔다. / 빈 등잔에는 하늘의 기름만 고였다. / 하늘에 달이 가듯 세상에 선연히 떠서 그는 홀로 걸어갔다.(이성선의 구도(求道)】

 【말을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 그리고 이 늦은 가을에 / 내 가난한 손이 당신에게 / 바칠 수 있는 것은 / 오직 이 시 한 편뿐입니다. (이성선 시인의 ‘시 한편’】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 너무 가볍다. 이성선의 ‘미시령 노을’】

  ‘말과 행동’의 근원이 되는 ‘마음과 생각’ ………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서 그 ‘마음과 생각’의 근원이 되는 ‘우주와 영원’, 존재의 근원, 하느님, 태초와 최후 등등의 근원적 탐구가 이성선 시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설교의 결론>

  예수는 어떤 분이셨을까요? 제가 보았을 때, 한마디로 예수는 근원을 찾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또 우리네 삶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깃들어 있는 ‘근원적 원인’에 대해서 탐구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근원적 원인이 ‘하느님 - 바람 같은 거룩한 영, 태초와 최후의 존재적 실체,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무위자(無爲者)’에 있음을 밝혀낸 분이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근원을 찾는 자’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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