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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히 고민되는 그때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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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고민되는 그때 (마 26:36-46)

여러 명의 처녀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처녀가 자못 심각하게 말하였습니다. 
"얘들아, 못 생긴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결혼하게 되고, 잘 생긴 여자는 못생긴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된대. 그래서 참 고민이야. 
그 이론에 따르면 나는 분명히 못 생긴 남자와 결혼하게 될 테니 어쩌면 좋니?" 
그 처녀의 말을 듣고 있던 친구들이 기분이 상해 한 마디씩 했습니다. 
"예,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들은 너보다 더 고민이다. 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고민의 집합소와 같이 여겨질 만큼 수 많은 고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큰 고민, 작은 고민, 이 고민 , 저 고민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사람들은 그 고민 속에서 또 고민하고 그래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참 만족과 행복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고민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고민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바로 기도하는 삶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고민하신 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오늘 본문37절에 보니 분명 예수님 역시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38절에 보니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고백할 만큼 예수님 역시 심한 번민과 고통속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런 고통과 번민의 짐을 지셔야만 했을까요? 
이어지는 39절 이후의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이 고통과 번민과 고민은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과 번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고통과 번민은 바로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살려내기 위한 아버지의 그 뜻을 순종해내기 위하여 처참한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것에 대한 고통과 번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더 쉽게 말씀드리면 지금 마26장에서 예수님은 바로 영원한 어둠속에서 죽음과 고통속에 살아야 할 저와 여러분을 살려내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며 번민하며 고민하여 죽을 것 같은 고민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들 중에 삶이 힘들다고 무겁다고 그래서 고민이 되어 죽겠다고 고백하고 싶은 성도들이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을 위해 이미 죽을 것 같은 고민과 번민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번민과 고통을 대신 담당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히4:15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왜 죄인만이 져야 하는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고 번민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르셨겠습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의 고민을 우리의 번민을 우리의 염려를 우리의 죄악을 직접 몸으로 다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1:2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마음이 심히 슬프고 고민이 되어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성도들이 계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 혼자 그 죽음 같은 고통과 번민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그 죽음 같은 고통 때문에 눈물 흘리고 계십니다. 가슴 치면서 답답해 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 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죽을 것 같이 심한 고통과 번민 가운데 있는 예수님은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고통과 번민이 전혀 없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통이나 염려, 어려움과 힘겨움이 전혀 없는 삶만이 주어지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우리에겐 고통과 번민 염려와 아픔이 주어지고 아니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을때 보다 더 많은 고통과 번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드렸습니까?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그런 고통스러운 삶이 전혀 없는 삶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어떤 어려움과 고통 죽을 것 같은 고뇌와 번민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며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믿는다는 건 폭풍우가 전혀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폭풍과 폭우속에서도 좌초되지 않고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공급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 밤에 그 폭풍우를 뜷고 하늘로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속에서도 그것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승리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 죽음 같은 번민과 고뇌를 극복하고 승리하고 계십니까? 
39절을 보십시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번민속에 그냥 주저 앉아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번민과 고통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나아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댄 채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말씀에 보니 땅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도 죽음 같은 심한 고통과 번민의 삶이 다가오고 그것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주저 앉아 목 놓아 울고 싶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 못할 것 같은 심한 좌절과 절망속에 빠져 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처럼 힘들고 낙담이 되고 고통스러운 그때야말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그때라는 사실입니다. 그때야 말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며 기도해야 할 때라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끝이 바로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이미 끝났다고, 아무 소망도 없다고 생각되는 그때 하나님만이 다시 시작하실 수 있는 분임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그 분 앞에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기도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때가 바로 반드시 기도해야 하는 때임을 기억하시고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때 예수님처럼 기도를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놀람 교향곡을 누가 지었나요?  네 바로 하이든입니다.
이 하이든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저명한 예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민'과 '고통'의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경제적 고통이나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때의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화제의 촛점이였습니다. 저마다 한 마디씩들 하는 가운데 하이든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작은 골방을 기도실로 정했습니다. 일에 지쳤을때나 고민이 시작되면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올때는 항상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얼굴이 떠오르십니까?
힘들고 지칠 때 여러분은 어디로 가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골방이 있으십니까? 

오늘 이 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고민의 순간, 고통의 순간, 아픔의 순간 염려의 순간 예수님처럼 나아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는 고민을 사라지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9절에 보시면 자신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잔을 피하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이내 예수님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늘 우리의 뜻대로 되길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나입니다. 그것은 성숙한 기도가 아닙니다. 성숙한 기도는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하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오늘 예수님의 기도와 같은 기도인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울어 댑니다. 말도 하지 못하고 울어댑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그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조금 더 지나면 그 아이가 직접 필요를 말합니다. 엄마 배고파 밥 주세요.. 엄마 쉬와 마려워...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 길거리 가다가도 좋은 것 갖고 싶은 것 있으면 떼를 쓰며 사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성장하면 아버지 어머니 눈치도 살필 줄 알고
아부도 떨면서 사달라고 합니다. 심부름도 하고 말도 잘 듣는 척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철이 나고 장가도 가면 어떻습니까? 성장할 만큼 성장해서 장가도 갔는데 그 자식이 부모님의 속만 썩이고 어렸을 때처럼 뭐나 맨날 달라고 한다면 그 아들을 누가 성숙한 아들이라고 하겠습니까? 
자식이 철도 들고 장가도 가게 되면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엄밀한 의미에서 자식이라고 말하기에 힘이 든 것입니다. 
육적인 것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같은 믿음에서 영적으로 점점 성장해갈 수록 우리의 기도도 내 중심에서 아버지 중심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선한 길이라는 것을 또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나의 길을 가장 잘 알고 있고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보다 나를 더 정확히 알고 계시고 내 앞길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인도해주시고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결국 나를 위한 가장 좋은 기도는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위해서 하는 기도라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을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당대의 유명한 미술선생을 찾아갔습니다. 그 미술선생은 앞으로 그가 크게 대성할 것 같은 그의 가능성을 보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겠니? 그 소년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그 스승은 그 소년을 데리고 먼저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멋진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조각을 보며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승은 말했습니다. 조각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드니? 그 소년은 사람들이 조각을 보며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스승은 또 다시 그 아이를 데리고 이번에는 교회당에 있는 조각에게로 인도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 스승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생각이 드니? 사람들은 그 조각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네가 훌륭한 조각을 만드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는 누구를 위해 조각을 만드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라. 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이 후 미켈란 젤로는 하나님을 위해 조각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돈 많이 버는 것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중요합니다. 또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으면 나쁘지 않겠죠? 좋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조각했던 미켈란젤로처럼 여러분 역시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의 인생을 조각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여러분의 인생이 조각되어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조각품을 조각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명품인생입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조각되어가는 인생 그 인생이 바로 명품인생입닏.k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예수님도 심한 번민과 고민가운데 죽을 지경에 이르고 계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그 번민과 고민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살려내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번민이요 고민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나의 눈물과 한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함께 고민하고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이심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그 주님과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주께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맡아 주시는 놀라운 주의 은혜가 함께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고민이 되는 그 때 주저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무릎을 꿇은 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이 밤 우리 모두 어쩌면 심한 좌절과 죽을 것 같은 고통과 고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 앞에 기도함으로 나아간다면 주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가 사실은 가장 나를 위한 기도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이 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면 분명 우리의 삶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번민과 고통가운데 함께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며 함께 기도하여 주실 주님과 함께 간절함으로 아버지 앞에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아버지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짐으로 우리의 삶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는 이 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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