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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에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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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에 6:1-13)


오래전, 우리나라에 문화극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영화 관람을 할 수 없고, 학교에서 지정한 문화극장이라는 이름의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관람하도록 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을 따라 가기도 하였고, 아침 일찍 상영하는 영화를 볼 때면 극장 앞에서 만나서 같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 때 본 영화 하나가 기억이 납니다. ‘남이 장군’이라는 영화입니다. 남이 장군은 조선 세조때 사람으로 명장입니다. 여진족 정벌로 유명한 장군인 남이 장군이 지은 ‘북정가 (北征歌)’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백두산석 마도진(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로 갈아 다하고 

두만강수 음마무(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네. 

남아 이십미평국(男兒 二十未平國)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후세 수칭 대장부(後世 誰稱 大丈夫)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

아주 기개가 있는 시입니다. 그런데 유자광이라는 사람이 이 시를 살짝 손을 보아 ‘남아 이십미평국이라는’ ‘평(平)’자를 ‘득(得)’자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아 이십미득국’ 즉 ‘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이라는 말이 됩니다. 겁이 덜컥 나는 내용입니다. 한 글자를 바꾸어 충분히 역적모의로 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이 장군은 누명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처형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남이장군’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남이장군을 처형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한편 다른 장면이 나옵니다. 궁궐입니다. 어전에서 회의를 하는데, 그동안 남이장군의 역적모의 음모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그리고 왕이 보낸 전령이 사형집행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말을 타고 형장을 향해서 힘껏 달려갑니다. 

그때부터 영화 화면은 계속해서 두 화면이 번갈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남이 장군을 처형하기 위해 망나니가 칼을 들고 춤을 추고 있는 장면입니다. 칼이 목에까지 왔다가 다시 떼였다가 하면서 언제 칼날이 목에 내리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또 한 장면은 전령이 열심히 말을 모는 장면입니다. 영화는 계속해서 망나니를 보였다가, 말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관객들, 특히 어린 관객들이야 정신이 없습니다. 처형되기 전에 전령이 빨리 와야 한다는 마음에 손에 땀이 납니다. 

이제 마지막 장면입니다. 전령이 처형장에 도착하여 “처형을 중단하라, 어명이다.” 라는 소리를 질렀는데, 그 순간에 그만 망나니의 칼이 남이장군의 목을 쳤습니다. 남이 장군은 죽었습니다. 그때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50년 전의 일인데도 생생합니다. 조금만 더 빨리 오지 어쩌면 저렇게 바로 코앞에서 죽게 되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참 많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중동지역은 맨 처음에 앗시리아가 패권을 잡았고, 그 다음에는 바벨로니아가 잡았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페르시아가 잡았고 그 다음에 로마가 잡게 되는데,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았을 때의 일입니다. 

이때 유대 포로 출신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르드개가 왕의 최측근 중 두 사람이 왕에게 원한을 품고 암살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어 신고를 하였습니다. 조사를 하자 사실로 밝혀지게 되었고, 두 사람은 처형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왕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을 위기에서 모면시켜주었던 모르드개가 이번에는 자기가 처형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제 2인자인 하만이 다른 모든 신하들은 자기 앞에 엎드려 절하는데, 유대인인 모르드개 만큼은 자기에게 절하지 않아 화가 났습니다. 분이 가득차서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 한 사람만 죽여서는 분이 다 풀리지 않을 것 같아 모르드개의 출신 민족인 유대인이라면 전부 다 죽이기로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모월 모일이라는 날짜까지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아달월 십삼일이라는 날짜를 이미 받았지만 그때까지 모르드개를 봐야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궁궐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출근하면서 매일 그 사람을 보아야했으므로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 전부를 다 죽이는 것도 허락받았는데 하만 한 사람을 며칠 앞 당겨서 처형하는 것을 허락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앞마당에 처형장을 마련하였습니다. 2.5미터 되는 긴 장대를 세워 거기다 달려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밤늦게 왕의 결재를 받으러 갔습니다. 이럴 때야말로 모르드개는 절체절명의 위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하만이 결재를 받기만 하면 내일 새벽 일찍 모르드개는 죽게 됩니다. 하만이 입궐할 때 모르드개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서 빨리 처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한 분만 생각했던 모르드개, 하나님께 그렇게 충성했던 이 모르드개를 과연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내버려 두실 것인가, 그냥 죽게 하실 것인가? 입니다. 이것이 에스더 5장까지의 일입니다. 

그리고 6장에 들어서자 말자 성경은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말씀을 보실 때 무언가를 한 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잠이 안 온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평소에는 잠이 잘 오다가 잠이 안 왔다는 것입니다. 늘 잠 안 오던 사람 같으면 이런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 우리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갑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도 역사하십니다. 잠이 안 오도록 하는 일을 통해서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이제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니 봄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봄이 되면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가 생각납니다. 가장 주된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그렇게 좋습니다. 국화꽃이 언제 핍니까? 가을에 피지 않습니까? 가을에 피는데 소쩍새는 봄부터 계속 울어댔다는 것입니다. 참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노오란 내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가을에 국화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잠에 대해서 성경은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한 두 마디 말로 제한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규격에 넣고 생각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제한, 한계를 뛰어넘고, 모든 경우의 수를 뛰어넘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여,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생 살다 경제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경제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경제 문제, 사업이, 길이 안 풀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건강도 마찬가지로 건강이 좀 덜 좋다고 하여 그냥 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 살면서 자녀들을 키우다보면 때로는 내 생각 같지 않습니다. 내 기대와 같지 않습니다. 때로는 실망할 일, 인간적으로 속상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십시오. 자녀가 잠시 잘 안 되다고, 덜 풀린다고 하여 내 자녀가 혹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내 가정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꼭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이룰지도 모릅니다. 내가 충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정이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일을 보지 마시고, 사람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보면 가슴이 넓어집니다. 속이 시원해집니다. 답답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속상하지 않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물론 조금 애는 써야겠지만 억지로 자려고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더 말씀드립니다. 사업이 좀 안 될 때 열심히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십시오. 그러나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많은 경우에 너무 애쓰다 오히려 건강을 잃어버립니다. 너무 애쓰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저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자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애쓰고 난 후,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가 자녀를 너무 좌지우지 하려다 자녀 스스로 충분히 클 수 있고, 충분히 넘어갈 수 있고, 그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때가 되었지만 나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힘쓰고 애쓰지는 마십시오. 

때로는 그것을 즐길 줄도 아십시오. 잠시 사업이 안 되어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하십시오. 가끔 건강이 시원찮아도, 경제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도, 자녀 문제가 좀 덜 풀려도 하나님께서 오죽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라고 생각하고 그 자체를 즐거워할 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아십시오. 잠 잘 자는 것만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사업이 잘 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건강한 것만이 하나님의 선물은 아닙니다. 자식이 꼭 잘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선물은 아닙니다. 덜 되는 것도 못되는 것도 안 풀리는 것도 충분히 하나님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

때로는 우리가 너무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잘못 착각하는 것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여삐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쳐다보신다는 것을 잘 아셔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조금 못나고, 조금 덜 알아도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웃고 있으면 하나님은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의 자식입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어련히 하나님이 하시겠습니까?’ 라고 생각하고 즐길 줄 알아야합니다. 

페르시아왕 아하수에르가 잠이 오지 않아 궁중일기를 가져와서 읽으라고 하여 읽다가 기록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왕의 최측근 두 사람이 왕을 암살하려고 모의했을 때,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그것을 알고 고발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사실임이 밝혀져 그들을 처형했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제일 가까운데 있는 최측근이 배신을 하면 누가 말리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의 전 대통령 박정희씨도 그러했고, 최근 리비아의 카다피도 최측근이 암살하려다 실패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정말로 못 말립니다. 이런 혁혁한 공로를 세운 모르드개라는 사람의 기록을 읽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왕이라는 직분이 많이 바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측근 신하에게 보상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전혀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 하자 왕은 미안했습니다. 

마침 왕 근처에 내일 아침에 그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왕의 결제를 받으러 온 하만이 있었습니다. 왕은 하만에게 “자네는 똑똑하니까 자네에게 물어보겠네, 나에게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왕이 이렇게 질문하자 하만은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자기라고 착각하였습니다. 자기 이외에 왕이 저렇게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자기가 꼭 하고 싶었던 것을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 2인자가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1인자 자리 아닙니까? 그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왕의 옷을 그 사람에게 입히고, 왕의 말을 태우고, 왕의 왕관을 그 사람에게 씌우고, 왕의 제일 높은 신하를 마부로 세우고 그 사람을 말에 태워 온 시내를 다니면서 위대하다, 위대하다, 위대하다고 칭송하고 치하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하만이 이 일을 많이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의 생각이 기가 막힌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만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갑니까? 세상에 이런 아이디어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나 그런 말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누가 왕복을 입히고 왕의 모자를 씌우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서 왕은 자네가 한 말 그대로 하나도 빼지 말고 행하라고 명령하면서 그 사람은 바로 모르드개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타임이 얼마나 절묘합니까?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정말로 절묘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일이 아니었다면 밤중에 결재를 받아 그 다음날 아침에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입궐할 때 보고 싶지 않았으니 새벽에 처형되었을 것이므로 사실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모르드개가 혁혁한 공을 세웠을 그 때 포상을 했더라면 궁중일기에 어떻게 기록되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이런 공로를 세웠고, 이렇게 보상하였다고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록되었다면 아하수에르가 그냥 넘어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냥 끝나버립니다. 처형해야할 유대인 중 한 사람은 워낙 수뇌이기 때문에 빨리 처형해야겠다고 말한다면 결재를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묘합니다. 모르드개가 공을 세운 지 한 3~4년이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이시간이 얼마나 좋은 시간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절묘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서 기묘자라는 표현을 합니다. 기기묘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소원을 가집니다. 이런 기묘하신 하나님을 체험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입으로 ‘내 하나님은 기묘하시다. 절묘하시다.’ 라는 탄성을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28장에서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사28:29)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13장 18절에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내 이름은 기묘자’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사야 9장에서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사9:6)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기묘자이십니다. 얼마나 기기묘묘하신지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모든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뛰어넘습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경우에도 이와 똑같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갔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는데, 보비발의 아내가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갔습니다. 거기서 술맡은 관원장을 만났는데 그가 답답한 일이 있어 견딜 수 없어 할 때, 요셉이 “관원장님, 당신은 이제 며칠 있으면 복직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풀려나간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이 이 말을 듣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요셉은 풀려나간 관원장에게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설명하면서 나가면 자기를 생각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장관자리입니다. 장관 자리란 우리나라만 보아도 죄 있는 사람을 풀어주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는 것 같은데, 죄 없는 사람에게 무죄를 확인해주는 것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아주 강하게 약속했을 것입니다. 그는 과연 요셉이 해몽해주는 대로 석방되어 장관직에 복직되었습니다. 그런데 2년 동안 새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술맡은 관원장으로 하여금 2년 동안 잊어버리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실 수 있습니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십시오. 요셉이 은혜 받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 다시 생각해봅니다. 만약 2년 전 술맡은 관원장이 석방하자마자 사실을 다 조사하여 요셉이 석방되었다면 요셉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집트에 남아있겠습니까? 아무리 가정 총무라지만 노예인데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훌훌 털고 조국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총리는 물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이름도 생길 수 없었고, 야곱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절묘하십니까? 2년간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 얼마나 필요한 시간이고,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이렇게 하십니다. 기기묘묘하게 하십니다. 

이번 특별 새벽 예배기간 동안 우리 교역자들은 교회에서 잤습니다. 첫날 주일날 밤 교회에서 자는데, 그 밤에 제가 자면서 감기가 심하게 왔습니다. 최근에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는데, 그러다 걸리니 심하게 걸린 것 같습니다. 그때 약간 원망조로 ‘하나님, 하나님께서 잔치를 벌여놓고 잔치 첫날 시작하기도 전에 감기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왜 이렇게 하십니까?’ 투정을 부렸습니다. 

가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제가 하나님께 투덜거리는 일이 참 많습니다.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는 마음으로 있었는데, 닷새 지나고 난 금요일 쯤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시간에 나에게 지독한 감기를 주신 것은 큰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야말로 저만 아는 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목이 쉬어서 엉망이지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로 인도하셨다는 것이 지금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을 체험하시고 이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그 흐름, 하나님의 싸이클을 타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하만은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 처형하고 싶어 날짜를 당겨 처형하겠다는 결재를 받으러 갔는데,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그러나 왕의 명령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까? 아하수에르 왕이 하만에게 지시한 내용이 누구의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누가 그 앞에서 못하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면 꼼짝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모르드개는 그동안 가슴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많이 울고 통곡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는가? 나 혼자의 잘못 때문에 우리 민족이 다 죽게 되었는데, 우리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절묘하십니까? 대단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정말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꼼짝하지 못합니다. 하만은 죽이려고 했던 그 사람을 모시고 온 시내를 다니면서 위대하다, 위대하다고 노래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내 그리고 지혜로운 친구 하나가 당신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서 엎드러지리이다(13절).. 

건드릴 사람을 건드려야지 그 민족의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이신데, 그런 하나님의 자식을 왜 건드렸는가? 그 하나님이 이제 벌떡 일어서셨기 때문에 당신은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입궐하라고 사람이 왔다고 말합니다. 물론 잔치입니다. 그러나 왕과 하만만 초대받은 왕비의 아주 특별한 잔치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 잔치는 죽음의 잔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한 번 자리에서 일어서시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납니다. 다 정리됩니다. 다 해결 납니다. 억울한 사람은 제자리에 돌아가게 되고, 교만했던 사람은 다 망하게 됩니다. 회복할 사람은 다 회복하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가슴이 아프고 속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오해하고, 나를 몰라주고, 나를 오해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냉수 한 그릇만 대접했어도 그 하나님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고 반드시 갚아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함부로 건드린 사람을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 절대로 이런데 나서지 마십시오. 그 아내와 친구가 어떻게 말했습니까? 이제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서 엎드러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좀 섭섭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너무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절묘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속상할 것 하나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말로 다시 중요한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이런 놀라운 은총, 기적과 같은 일을 베풀어주시는가?’ 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이런 하나님의 은혜, 은총, 기적을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에게 주십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모르드개를 잘 보십시오. 죽을 정도로, 죽을 각오를 하고, 죽도록 하나님께 충성한 모르드개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참으로 드라마틱합니다. 그야말로 대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대역전극을 만들어두셨습니다. 저도 이런 일이 나에게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일이 자기에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아십시오. 우리야 물론 좋겠지만 우리 하나님은 이런 일을 더 좋아하십니다. 이런 드라마틱한 일을 만드시고 나서 여러분들이 행복해하시면 너무너무 좋아하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지 않습니까? 훨씬 더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드라마틱한 일을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누구든지 모르드개 같은 사람만 있기만 하면 이런 드라마틱한 일을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모르드개가 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일, 기적과 같은 일을 가장 적절한 시간에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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