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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출생을 산파들이 예비하다 (출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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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출생을 산파들이 예비하다 (출 1:8-22) 

  
2011년도 교회표어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로 정하였고 연초부터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주일마다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출애굽기 전체 강론을 통하여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주보에 전주일 설교 요약한 것을 보시면 복음의 내용에 대하여 여러분이 아실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았습니다.   

교회사 가운데 복음전도에 대하여 여러 방식이 있었고 그 내용도 다양하게 나왔지만 복음의 근본적 내용은 지난 주일 말씀드린 것으로 담는 것이 제일 성경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 시대에 맞는 전도법을 찾기보다는 복음에 담을 내용을 찾는 것이 더 급선무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볼 때 복음의 내용에 대하여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은 거의 모든 인류 역사에서 왕을 증거하고 그의 나라를 선전했던 것과 그 구조에 있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시대에 우리가 뽑는 대통령도 사실 이런 구조를 갖고 자기를 알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찬조연설을 들어보시면 이와 같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어떻게 개인이 죄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의 권세를 알고 그가 백성에게 주시는 생명을 알고 그 나라에 참여함이 구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룸이 우리의 구원 목표입니다. 하나님 아들로 세우신 나라의 권세와 생명과 언약을 알고 그것을 따라 지켜 그리스도의 나라를 완성해가는 것이 곧 교회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왕의 권세가 무엇인지 알고, 그가 백성에게 주시는 생명이 무엇인지 알고, 그를 따라 그 왕이 세운 정책을 함께 지키면, 그가 이루신 나라의 영광과 복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사단이 갖고 있는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여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에게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성경은 한 번 예수를 영접하여 입으로 시인하면 영원한 구원이 보장된다는 의미로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나라에 참여하는 자가 언약을 지킴으로 주님이 얻으신 나라와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복음의 내용은 구약의 하나님 나라 근본인 출애굽기도 똑같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성취하시려고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셔서 여호와의 강한 손으로 애굽의 권세를 이기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출애굽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에서 먹었던 유교병이 아니라 무교병을 먹게 하셔서 새 생명을 주심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여호와닛시라는 이름으로 세워집니다. 그 이름은 아말렉족속을 대대로 진멸하는 나라의 정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제사장 나라로, 여호와의 백성으로 참여하여 율법의 언약을 지키어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참여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옛 구원입니다. 

이 언약으로 함께 할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체결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를 이스라엘 백성 중에 짓고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하는 나라가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쫓아내고 여호와의 나라, 모세의 나라를 가나안 땅에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내산에서 출발한 여호와의 나라가 솔로몬의 성전을 짓게 됨으로 완성이 됩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여호와와 함께 하는 새 생명을 주시며 여호와닛시의 이름으로 세워지는 나라를 알리시고 그 나라의 정책이 무엇인지 율법 언약으로 제시한 뒤에 이스라엘이 이 언약에 함께 참여함으로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러한 내용은 세상의 어느 왕조에서나 볼 수가 있고, 특히 새 왕조가 건국되는 태조 왕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시면 출애굽기와 마가복음이 가지는 그런 내용과 구조에 맞닿아 있음을 보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이러한 내용을 담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강력한 주장이고 바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시간에는 출애굽기 전체 강론을 통하여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 그 내용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출애굽기 전반적인 내용을 천천히 자세하게 살펴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그런 시간들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본문인 출애굽기 1:8-22절 말씀은 출애굽기 1장-5장의 큰 문맥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기 1장-5장의 전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그 전체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성취하사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전체적인 내용 가운데 오늘 본문의 앞의 문맥은 출애굽기 1:1-7절의 말씀인데, 이것은 야곱 후손들의 나라의 시작을 말합니다. 야곱 후손의 나라의 시작은 창세기 언약을 성취함으로 새로운 역사와 경영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성취와 완성은 항상 시작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이 졸업 시즌이니까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졸업은 항상 시작을 가져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가 시작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가 시작됩니다. 이와 같이 무언가 완성이 되면 다음은 시작이 따라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의 언약이 성취가 되면 이제 새로운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출애굽기 1:1-7절이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70인의 가족을 통하여 이루어져서 이제 출애굽하는 새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출애굽기 1:1-7절의 내용을 말씀하고 난 뒤에 오늘 설교본문에서는 히브리 산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였는가를 기록했습니다.  

본문 8-14절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바로 왕이 왜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게 되었는가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여 강하게 되니 바로 왕이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성을 건축하는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엄하게 다스린 것입니다. 

또한 본문 15-21절은 바로 왕의 이런 학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산파들이 어떤 믿음으로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살렸는가를 말해줍니다. 바로 왕의 학대와 압제 속에서도 여인에 불과한 히브리 산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아이들을 지켜서 번성하고 강하게 했는가를 말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이 결과로 말미암아 애굽의 바로 왕은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낳게 되면 나일 강에 던져 죽게 하라고 살해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히브리 산파들의 하나님을 경외한 것을 말했다면 그 이어지는 내용이나 결과를 써내려가는 것이 순서인데 출애굽기는 그런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2:1-2절을 보십시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출애굽기 2장은 마치 영화의 장면이 바뀌거나 연극의 막이 바뀌는 것처럼 앞의 1장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하며 레위 지파의 한 남자가 레위 지파의 한 여자에게 장가가서 아이를 낳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모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내용은 실상 모세 출생에 관한 배경이 되는 셈입니다. 출애굽기 1장-5장의 전체적 내용이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신 일을 기록한다고 할 때, 모세 탄생의 배경으로 히브리 산파들의 하나님을 경외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창세기의 언약을 성취하사 출애굽으로 새로운 경륜을 시작하는 출애굽기 전체 내용 가운데 처음 부분에 히브리 산파들의 여호와 경외함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의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에서도 항상 나타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6.29 선언을 들 수 있겠습니다. 지금 젊은 층은 잘 알지 못하지만 장년 층은 잘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1987년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에서 벗어나고, 대통령 간접선거를 버리고 직선제를 요구하였던 일이었습니다. 이 6.29 선언의 도화선은 박종철 서울대생의 물고문 치사 사건이었습니다. 이 학생의 사인에 대하여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아주 엉뚱하고도 말이 안되는 답변이 유명했었습니다. 이 6월항쟁 때에 연세대 학생 이한열군도 최루탄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나라의 시민들이 정권에 항거하며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노태우의 6.29선언을 통하여 체육관에서 치러졌던 간접선거에서 직접선거의 개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들의 항거를 통하여 박정희대통령과 전두환대통령의 군사정권이 바뀌게 되었고, 간접선거에서 직접선거로 바뀌어 대한민국은 새 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은 항상 폭압에 굴복치 아니하고 나라를 위해 압제에 맞서 저항하였던 열사들의 투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4.19민주화혁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새 시대와 새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데 있어 도화선이 되는 사건들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의 히브리 산파들의 여호와를 경외함을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왕의 학대와 압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세상 왕을 두려워하지 않은 히브리 산파들로 말미암아 출애굽의 새 역사를 이룰 모세가 출생하게 되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시내산에서 하나님 나라를 설립하게 되는 새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하는 구원역사에서 항상 새 시대가 펼쳐지게 되기 전에 이런 믿음의 선각들을 기록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의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 사건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의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는 새 역사의 경륜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에덴에서 아담이 쫓겨났던 역사가 이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에덴, 곧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되는 새 역사가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구원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 시대 때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 명의 남은 자들을 통하여 새 출애굽의 역사와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에스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다 신실한 여호와의 백성이었습니다. 이들의 하나님 경외를 통하여 하나님은 새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의 전환점에서 항상 하나님은 신실한 일꾼들의 믿음을 통하여 새 역사를 열어 가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바벨론에서 돌아와 재건한 성전으로 말미암은 예루살렘과 유다는 주님이 오셨을 때까지 이방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습니다. 어둠의 400여년 동안 이스라엘은 비참한 지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하신 약속을 따라 하나님 아들 앞에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새 시대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자기 뒤에 오시는 성령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하도록 그는 광야에서 엘리야처럼 사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로 말미암아 뒤에 오시는 능력 많으신 주님에게로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시는 하늘 나라의 경영이 바로 이 세례 요한의 세례로 말미암아 열리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음에도 자기 백성의 당국자들로부터 주님은 학대와 멸시를 당했고 심지어 사내 아이를 다 죽이라는 명령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방인이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 아들이 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한 유대인의 제사장 나라는 버려지고 이방인들이 제사장 나라로 새로운 구원역사에 참여케 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새 나라가 천한 계집종과 같은 동정녀 마리아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구약의 모세와 같은 종들로 세워지는 여호와의 나라가 아니라, 신약의 예수님과 같은 아들들로 세워지는 하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들은 그리스도의 일로 고난과 죽임을 당하사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 아래, 죄의 권세 아래 신음하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새 나라를 창설하셨습니다. 이 아들의 부활을 믿고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셔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참여케 하심으로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버지로부터 오실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오순절에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이제 주님의 나라가 땅끝까지 확장되게 되었습니다. 천하 만민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오게 되는 새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아들의 영,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새 사람으로 세상의 군왕들의 핍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증인들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들로 말미암아 주님 나라 백성들이 크게 일어났고 2000년 역사를 넘어 우리에게까지 이 복음이 이른 것입니다. 

이 세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새 역사와 새 나라를 일으키실 주님의 길이 예비되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로 이루었던 옛 나라를 폐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이루는 새 나라를 일으키신 역사적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 나라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하늘 나라를 열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마가복음 1장의 세례 요한의 사건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저는 어떤 백성입니까? 주님이 죽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교회에 부으신 이후의 시대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의 증거를 따라, 믿음의 선배들의 증거를 따라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 왕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 지체로 교회를 세워나가는 존귀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시대 속에 우리는 히브리 산파들의 여호와 경외함과 다르게 어떠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마가복음 13장을 보시겠습니다. 1-8절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예루살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는 본문입니다. 왜 망하게 되었습니까?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어 말라 죽임을 당했던 것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도 열매를 맺지 못하여 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열매입니까? 바벨론에서 돌아와 시온 땅에 성전을 재건하면 그 성전은 열방이 들어오는 성전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세워져야 했으며 이 성전의 왕으로 하나님 아들이 오시면 그런 열매를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도리어 강도의 굴혈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멸망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처음 창조되었던 옛 세계가 함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따라 온 세상은 재난이 시작됩니다.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게 되고, 기근과 지진이 일어납니다. 한 마디로 처음 창조된 세계에서 살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가졌던 평화와 안식은 이제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첫 창조된 세계의 도성은 항상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도성이 성전과 함께 무너지면 이제 처음 창조된 세상도 빛을 잃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임진왜란 때 한양 도성이 왜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아직 함경도 땅까지 정복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패배하고 나라를 빼앗긴 것과 같기 때문이요, 또 곧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은 말세의 징조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징조들을 열거함으로 대답하시지 않으셨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막 13: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고 막 13:9절에 조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제자들이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핍박과 박해가 임할 것입니다. 만국에 복음이 전파될 때에 끝이 올 것인데 이러한 박해에도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다음 막 13:14-23절에 이제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적 종말을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 24절 이하에 주님이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되리라고 말씀해서 모든 구원역사의 종말을 말씀합니다.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고 세상의 종말이 오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오르신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그 역사와 나라를 완성하게 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으로 함께 하는 새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종말, 모든 구원역사의 완성을 미래에 두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므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복음 전파가 이 시대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나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러한 주님이 다시 오심을 앞에 둔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으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다시 오시면 또 새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함께 하는 나라가 영광 중에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주님께서 새 나라의 새 것으로 마시기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새 식사로 함께 하는 나라의 시작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는 처음 초대교회가 로마의 권세 아래 핍박을 당하고 모든 압제를 받았던 것처럼 교회는 지금도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있습니다. 세상이 갖고 있는 영광과 권세로 교회를 조롱합니다. 세상이 갖고 있는 부로 교회를 비웃습니다. 

죽고 부활하사 하늘 보좌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주님의 나라인 교회의 영광과 권세는 지금 세상 가운데 온전히 나타나 있지 아니하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던 것처럼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어리석다고 멸시합니다. 

이제 주님의 교회는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고 학대하였던 방식으로 괴롭히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주님의 말씀인양 교묘하게 교리를 만들어 믿는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현혹합니다. 바로 이런 거짓 진리로 교회를 미혹하는 핍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교회를 삼키려고 두루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 믿은 것이 무엇이더냐? 너희가 예수 믿어서 얻은 것이 무엇이더냐? 예수 믿은 삶의 결과가 그 모양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냐? 이렇게 비웃을 것입니다. 오늘 같은 주일에 주님의 상에 앉아 하늘의 생명과 교제를 누리는 우리를 조롱할 것입니다. 교회 위에 세상의영광과 권세를 자랑하고 높일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현 시대에 교회가 받는, 여러분과 제가 받는 핍박과 압제입니다. 심한 노동으로, 칼과 창으로 우리를 위협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거짓 가르침과 교묘한 미혹에 빠져 넘어진다면 성경은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였던 형벌과 비교할 수 없는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이방 땅에 쫓겨나 유리하다가 70년 만에 돌아올 수가 있지만,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타락하면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구원역사에 있어서 말로 할 수 없는 최고의, 최악의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부름을 입었습니다. 히브리 산파는 모세가 오는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리하여 출애굽으로 이루는 야곱 후손의 나라가 새롭게 시내산에서 건국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 아들이 오는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신 하늘 나라가 새롭게 갈릴리 산에서 건국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들이 새 역사의 전환점에서 하나님의 경영을 이루게 한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역사적 경영을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까? 갈릴리 산에서 출발한 주님의 나라는 계속되어 2000년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으며 새 백성들을 만민 가운데 일으키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계 곳곳에 새 나라를, 하늘 나라를 여러 민족과 나라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눈에 명백히 보이는 교회의 역사, 곧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진행되고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함께 존재해 왔는데도 세상은 일부러 주님의 나라를 보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들을 멸시하여 십자가에 죽인 세상이 부활하심으로 만왕의 왕으로 지금 통치하시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그의 교회를 죽이려 하거나 멸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것으로 교회를 가르쳐 미혹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바로 이런 시대적 부름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더 큰 박해가 다가와도 온전한 믿음으로 굳게 서서 뒤로 물러서지 말라고 히브리서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하늘 성소에 담대히 나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7-10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몸은 약하여 모든 고난과 핍박과 박해와 거꾸러뜨림에 노출되어 있어 마치 예수의 죽음처럼 그런 모양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런 박해 속에서도 우리는 새 생명, 곧 예수의 생명, 부활의 생명을 이 몸에 나타냅니다. 그건 내 안에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은 날로 강건해집니다.   

이러한 멸망과 박해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사람의 미혹을 당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천하는 없어져도 내가 한 말은 없어지지 아니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역사를 눈 앞에 두고 여러분을 믿음의 신실한 일꾼으로 이 시대에 세우셨습니다. 세상의 조롱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복음을 지킬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사는 생명을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신실한 주님을 경외함이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오게 하는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결코 거짓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을 따라 여러분과 제가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내게 되면 우리는 새 역사를 가져오는, 새 시대를 여는 선각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교회가 믿음을 버리고, 교회들마다 구약의 복을 추구하고, 어느 것이 복음인지 알지 못하는 이 시대 속에서 여러분에게, 또한 저에게 이 복음을 알게 하신 것은 무엇때문이겠습니까?
  
여러분 개인의 구원의 안전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새 시대를 여는, 구원역사의 마지막 주자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하는 마지막 종말의 때에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이 역사를 완성에 이르게 하시며 새로운 하늘 나라의 시대를 여실 것입니다.

그 일에 여러분이 히브리 산파가 되고, 세례 요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같은 하나님 아들들로 신실한 믿음과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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