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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여우를 잡아라(5) (아 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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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우를 잡아라(5) (아 2:10-17)


맥스 루케이도 라는 기독교인으로서 매우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그가 한 번은 자신의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한적한 시골 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은 고풍스럽고 조용한데다가 음식 맛도 썩 좋았습니다. 자신의 책을 마무리하기에 아주 적격인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자동차를 세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았습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느 여자 손님이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쳐다보았습니다. 

자리에 앉았는데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봅니다. ‘사람들이 왜 나를 쳐다볼까? 내 옷이 이상한가?’ 옷을 보았는데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아, 이 동네 사람들이 다들 내 책 표지에 실린 내 사진을 기억하고 내가 맥스 루케이도 라는 것을 알아보는구나. 정말 책을 열심히 읽은 사람들이군! 마을 사람들의 눈썰미가 대단하네 사진을 보고 나를 알아보다니! 참 쑥스럽군. 아마 스타인벡 같은 유명한 작가들도 어디를 가든지 이런 분위기였겠군’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면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꾹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놀라서 기가 질렸군! 그래 내가 이 마을에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나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는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에게 여유를 가지고 눈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착각의 시간을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에 사람들이 왜 자신을 그렇게 쳐다봤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면도하다가 상처가 나서 반창고를 붙였는데 그것이 제대로 붙지 않아 말라붙은 핏자국이 여실한 채로 뺨에서 닭 벼슬처럼 덜렁거리며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유명 인사가 된 기분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인 행동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우스웠을까를 생각하며 부끄러워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급히 그 식당을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잠언서 16장 18절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며 묵상을 했다고 합니다. 잠언서 16장 18절을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관계까지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황폐하게 만드는 악한 것 중에 가장 악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아니 증오하시는 속성입니다. 

구약 열왕기상 1장에 보면 교만으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와 가정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인 암논은 이복누이인 다말을 성폭행했다가 친오빠인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길르압인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유명무실한 사람으로 사라졌습니다. 셋째 아들은 압살롬입니다. 아버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넷째 아들이 아도니야로서 살아 있는 다윗의 아들 중에는 가장 큰아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했다고 말합니다. 열왕기상 1장 6절에 보면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용모가 준수했다는 말은 외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겸비한 것을 말합니다. 그는 잘 생겼고 똑똑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그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을 보면서 ‘한 번도’ 원어적인 의미대로 하면 ‘평생에’ 라는 말입니다. 평생에 아도니야를 향해 왜 그렇게 했느냐고 꾸짖은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만큼 똑똑하고 현명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거동을 하지 못하며 후궁인 아비삭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이 아버지 다윗을 이어 당연히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불안한 것은 아버지가 이복동생 솔로몬을 자신 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볼 때는 솔로몬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한데 아버지가 솔로몬을 유독 사랑합니다. 아도니야는 혹시 아버지가 판단력이 흐려져서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에 쌓입니다. 

사실 왕이 될 수 있는 외적인 조건에서 보자면 솔로몬보다는 아도니야가 휠씬 더 좋은 조건을 가졌습니다. 아도니야는 당시 생존한 왕자들 가운데서는 최연장 자로서 장자권 계승에 의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왕자 중에 서열 1위에 해당하며 또한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였습니다. 

반면에 솔로몬은 다윗의 10번째 아들로서 서열상으로도 왕이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20세가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자신의 외적인 조건만을 믿고 선왕 다윗이 자신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다윗 왕위를 넘보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의 결정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의 세력을 모아 힘을 길러 아버지도 자신을 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열왕기상 1장 5절에 보면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높여’입니다. 그는 자신이 탈 마차를 왕이 타는 마차처럼 호화롭게 꾸몄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은 기병과 호위병을 세워 자신의 힘을 맘껏 과시했습니다. 그는 군대장관 요압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제사장 아비아달과 많은 신하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른 왕자들과 신하들과 제사장과 군대 장관들을 불러 살찐 소와 양을 잡아 성대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그 잔치에 자신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나단, 군대장관 브니야와 용사들, 제사장 사독, 동생 솔로몬 등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교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분열과 분쟁이 생깁니다. 다윗의 군대 장관들이 나뉘어집니다. 다윗의 군사령관이었던 요압이 아도니야의 대열에 섭니다. 그러나 브니야와 일부 장군들은 솔로몬의 대열에 섭니다. 제사장들도 갈라섰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나니야에게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사독은 솔로몬에게 동조했습니다. 신하들이 갈라서고, 왕자들이 분열되었습니다. 단순한 분열만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죽음이 뒤를 따랐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죽이게 되고, 동료가 동료를 죽이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 원인은 결국 교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도니야가 얼마나 교만했는가를 더 살펴보면 다윗은 솔로몬이 자신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솔로몬이 다윗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아직도 왕위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열왕기상 2장 15절에 보면 왕위는 본래 자신의 것이었다고 믿고 있고, 온 백성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거부하고 솔로몬에게 왕위를 주셨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 다윗에 대한 불만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아버지 다윗의 후궁이요 첩이었던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솔로몬에게 요구합니다. 이것은 한편에서 보면 아버지 다윗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아 왕위 계승의 권리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만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가정의 질서와 평화까지도 흔들고 파괴시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도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랑하는 하와와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바벨탑 사건의 중심은 인간이 탑을 하늘에까지 쌓아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하며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사람과의 관계도 갈라서게 하고 무너뜨리는 주범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교만한 마음에 대한 경고를 계속하십니다. 잠언서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서 16장 18절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서 13장 10절에서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잠언서 16장 5절에서는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만이 영적으로 무서운 것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니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시인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다른 사람과 환경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만이 자리를 잡으면 어김없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흔들리고 깨어집니다. 교만이 자리를 잡으면 화목과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아가서 2장 10-1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제목으로 다섯 번째 설교를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라는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이 표현된 글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표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을 비유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과 술람미와의 사랑을 ‘포도원에 꽃이 활짝 피어 향기가 가득하다’고 표현합니다. 사랑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사랑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표현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작은 여우’입니다. ‘작은’이라는 것에 중요성을 두었습니다. 작은 구멍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댐이 무너집니다. 나사 하나가 풀려 열차가 전복되고, 비행기가 추락합니다. 사라예보에서 청년이 쏜 한 방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작은 것 하나가 우리의 행복한 가정과 삶의 터전,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깨뜨리며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여우’를 부정적인 말, 열등감, 편견과 고정관념, 두려움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눴고, 오늘은 ‘교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어느 분이 천국을 묘사하면서 쓴 글을 소개하며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천국은 항상 날씨가 청명하다. 그곳은 변덕쟁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조미료가 필요 없다. 모두가 소금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경쟁과 싸움이 없으며 오직 칭찬과 사랑만 있다. 그곳은 폭탄선언이나 깜짝 쇼가 없고 항상 평온하다. 천국의 사람들은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저 감사의 기도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천국행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없는 일곱 종류의 사람이 있다. 교만한 사람, 욕심쟁이, 남을 헐뜯는 사람, 거짓말쟁이, 화를 잘 내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화합을 깨뜨리는 사람은 천국행 비자를 받을 수 없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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