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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본받으라 (빌 3:17, 고후 1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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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받으라 (빌 3:17, 고후 11:23-27)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가운데 그 누구도 고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고난에 대해서는 예외가 없습니다. 본문에“나를 본받으라”고 말한 바울사도 역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갔습니다. 그는 일평생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후서 11장 23절~27절에 바울은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해 밝히기를“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가 당한 고난은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로 당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당한 것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의 앞길에도 고난은 있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의 앞길에도 고난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호흡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고난의 예외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고난을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갔는지 그의 삶을 살펴보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一. 바울사도가 깨달은 고난의 의미

1. 육신의 질병의 의미

누구나 다 건강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 병명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심한 안질로 보았고, 어떤 학자는 간질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특이한 능력을 힘입은 바울사도는 그의 손수건만 던져도 그 손수건이 닿는 사람의 질병이 나았습니다(사도행전 19:12). 그러나 정작 자신의 몸은 병약하여 일평생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가 그의 주치의로 동행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응답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3대 불응기도”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성경에 나타난“3대 불응기도”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모세의 기도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샘이 터져 나왔으며, 그가 기도하면 하늘로부터 메추라기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러한 모세였지만 그의 기도에도 응답이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망을 바라보며 애굽의 영광을 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요단강 건너편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을 뿐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신 34:1~12).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그토록 소망했던 모세의 소망과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하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소망과 기도는 응답되 않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셋째, 건강을 위한 바울사도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한 바울사도에게 하나님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 9절에 말씀하시기를“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질병의 고통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바울사도처럼 교만하지 않도록,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하도록 하기 위해 육체의 질병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불신앙의 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길로 탈선하던 사람이 육체의 질병을 계기로 자신을 되돌라보며 뉘우치며 회개하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사도와는 반대로 현대의술이 포기한 불치병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 받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하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2. 환경의 어려움의 의미

만사가 형통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긴다하여 고난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긴다하여 고난이 없다면 바울사도는 왜 그토록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까? 바울사도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고린도후서 1장 8절~9절에 말하기를“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겪은 고난이 얼마나 극심했으면“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라고 했겠습니까? 죽음 문턱에까지 다다른 고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바울사도는 말하기를“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질병처럼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법 중 하나가 삶의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힘드십니까? 겪고 있는 고난이 왜 이토록 큰가 하고 낙심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가까이 오도록 부르시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하셨습니다. 

에디슨이“고통의 가치”라는 제목의 글을 이렇게 썼습니다. 
온 시절이 다 여름뿐이라면 
눈같이 희게 씻어준다는 말씀을 내 어찌 알 수 있으리오. 

모든 날이 봄처럼 화사하다면 
슬픈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그 말씀을 내 어찌 알 수 있으리오. 

고통이 내게 없었다면 
사랑하는 자에게 안식을 주신다는 주님의 그 약속을 내 어찌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으리오. 

무덤이 내 앞에 없는 것이라면 영생은 꿈이 아니라고 내 어찌 믿음을 가질 수 있으리오. 

그렇습니다. 고난이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깨닫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71절에“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二. 고난을 대하는 바울사도의 자세

같은 파도에도 어떤 사람은 더 빨리 가는데, 어떤 사람은 그 파도로 인해 침몰하게 됩니다. 이처럼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바울사도는 이 고난의 파도를 어떻게 이겨 나갔습니까?

1. 바울은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사도는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자신이 다짐한 마음을 고린도후서 4장 8절~9절에 기록하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도 낙심하고나 좌절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사도는 자기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지켜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하기를“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험에는 답이 있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답 없는 시험문제를 내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바울사도는 비록 지금은 고난을 겪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서 8장 28절에 성령에 감동되어 기록하기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겨 나간다면 지금의 고통스러운 여건들이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비밀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착실했던 요셉은 아무 아유 없이 이복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요셉은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한 삶으로 주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요셉은 또 다시 어이없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성실한 삶을 살아간 요셉은 감옥 내 다른 죄수들을 관리하는 죄수 아닌 죄수였습니다. 요셉이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꿈을 해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바로왕의 꿈까지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로왕의 큰 신임을 얻은 요셉은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한 서러움, 노예와 죄수의 처지로 살아야 하는 억울함, 감옥 내에서의 고달픈 나날 등, 이 모두가 애굽의 총리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온 가족이 요셉으로 인해 기근을 면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유대인들이 제2경전으로 여기는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랍비가운데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카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자 아카바는 마을 어귀에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오두막집 한 체를 발견하고 그곳에 묵기로 했습니다. 그는 당나귀와 개를 오두막 앞에 매어두고 방안에 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바람이 불어 램프가 꺼졌고 그는 하는 수 없이 책 읽기를 단념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오두막집 앞에 매어 둔 개와 당나귀가 죽어 있었습니다. 간밤에 굶주린 사자가 잡아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램프를 들고 홀로 터덕터덕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얼마 후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전날 밤 도둑들이 모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모두 죽여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만약 간밤에 램프가 꺼지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책을 읽었을 것이고, 당연히 도둑에게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개가 살아 있었다면 개 짖는 소리에 도둑들이 쳐들어 왔을 것이고, 당나귀도 시끄럽게 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덕분에 가장 소중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태풍과 해일은 항구와 배와 어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아무도 태풍을 원하지 않습니다. 없으면 좋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태풍가운데에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태풍이 없다면 바다는 잔잔하겠지만 그 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된다고 합니다. 수분이 증발된 해수면의 염도는 높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해조류들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센 태풍이 바닷물을 뒤집는 역할을 합니다. 그로 인해 해조류들이 자라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어촌의 수입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바울사도는 고난의 날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 기록하기를“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염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에는 그 어떤 것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약속입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육신의 요구에 짓눌려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를 전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지만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어둠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도 이와 같이 항상 우리의 생활을 감싸고 있습니다. 만일 어두운 방에 앉아서 스위치를 누를 생각을 하지 않고 어둡다고 불평하며, 나에게만 왜 이렇게 어두움이 있는가 하면서 실의에 빠져 남을 원망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전기는 아주 가까운 곳까지 와 있습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빛이 방안 가득히 비치도록 구조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움을 운명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전기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듯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속에 영향력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기도”라고 하는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문을 열게 합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 속에 이끌어 오게 합니다. 기도만이 우리 삶의 허다한 문제를 하나님께 넘겨드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해서 전기의 스위치를 누르듯, 우리 생활 속에 광명이 있도록 하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7절~8절에 말씀하시기를“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하셨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룬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불쌍한 과부가 많은 액수의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큰 낙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가 요금을 이미 다 지불했는데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던 것입니다. 그녀는 이미 치른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요금을 다시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돈은 자기 남편의 장례비로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영수증을 찾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수금원이 그 과부의 집을 방문하여. 만일 그녀가 며칠 안으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법정에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바로 그 때 나비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이걸 본 그녀의 어린 아들은 그것을 잡아 학습 과제물로 쓰려고 그것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이 그것을 잡으려 하자 나비는 소파의 등위에 내려앉았다가 그 뒤로 기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소년은 그 무거운 가구를 혼자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금원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가구를 밀어 재끼자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집어든 과부의 눈은 기쁨과 흥분으로 동그랗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수증이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지만 인간의 기도를 넘어서는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절대자 하나님은 이 세상에 관한 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심으로써 하나님 스스로를 제한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일하시되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 8절~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까지 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길을 누가 막겠습니까? 그런데 도중에 아말렉 족속이 나타나 길을 막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말렉을 물리치시되 기도하므로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기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리신 결정은 인간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능력에 대해 마태복음 21장 19절~22절에 교훈하신 내용이 있습니다.“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태산과 같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옮기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태산이 가로막혀 더 나갈 수 없어 보일 때 정지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그 산을 고속도로로 바꾸므로 더 큰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사탄은 우리가 기도만 못하게 한다면 성경공부는 얼마든지 하게 내버려 둔다.”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기도만 못하게 한다면, 다른 것은 승리하도록 내버려두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4:2~3에“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무기 아래 있는 나라는 망해도 무릎 위에 있는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사도를 통해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이나 삶의 역경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염려하여 낙심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기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리신 결정을 인간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조용한 새벽이나 깊은 밤 하나님께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 히브리서 5장 7절에 밝히시기를“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굳게 의지함으로 걱정 많은 세상, 근심 많은 세상, 고통 많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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