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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시 40:1-5) - 고난, 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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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시 40:1-5)


인생을 살다보면 닉 부이치치와 그의 가족처럼 참으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시편을 기록한 다윗도 40년 동안 왕으로 통치하고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우리나라 세종대왕처럼 존경을 받는 사람이지만 인생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듯한 인생의 여정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를 기막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결코 회생할 수 없을 것같은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절대 위기의 상황입니다. 수렁처럼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수렁 깊이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골리앗 앞에 설 때도 기가 막힌 웅덩이에 빠지는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민족이 자유인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 절대 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다윗이 승리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의 칼에 다윗이 100%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장인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도 절대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장인입니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 도와준 사람입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시기심이 발동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이 그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빠져 나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했을 것입니다. 적국에 도망가 전투에 참여했는데 돌아 와 보니 마을은 다 불이 타고 처자들은 적들에게 끌려갔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입니다.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인생에 창창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은 내 인생에 더 없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하들을 전쟁터에 보내어 놓고 낮잠을 자다 밖으로 나와 자신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음욕이 일어나 그만 간음하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잘 나가던 교수가 자신의 제자를 성추행한 것입니다. 잘 나가던 사장이 직원과 바람이 난 것입니다.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자기 부하를 죽입니다. 밧세바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병들었습니다. 잘 나가던 인생에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찾아 온 것입니다. 그것으로 다윗에게 다가온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이제 자식들 다 키워놓고 편안히 쉴만한 노년이 되었습니다. 아들 암논이 배다른 딸 다말을 겁탈하였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이 암논을 죽입니다. 결국 압살롬은 반역하여 아버지를 왕의 자리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첩을 겁탈합니다. 노년에 당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웅덩이와 수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갇혀 있을 때 어떻게 그 수렁을 해쳐 나와야 하겠습니까? 이런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다윗은 어떻게 승리하였습니까? 

1. 하나님께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반석위에 두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으로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면 절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어릴 때 수렁에 들어가 보신 분은 잘 알겠지만 수렁에 빠지면 홀로 힘으로 잘되지 않습니다. 허우적거리면 거릴수록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갑니다.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면 옆에 있는 친구의 힘이 필요합니다. 친구가 나무를 내밀면 그 친구가 내미는 나무를 잡고 기어 나오면 됩니다. 그것이 두 번째 방법입니다. 외부의 힘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친구나 일가친척, 인맥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면 친구의 도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같이 수렁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깊은 수렁인지를 보십시오. 12절을 보십시오.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앙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내 죄 때문에 자식이 죽고 내 죄 때문에 자식이 반역하고 내 죄 때문에 왕위를 잃고 쫓겨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죄 때문에 우리 사업이 망하고 내 죄 때문에 우리 가정이 어렵게 되었고 내 죄 때문에 지금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죄가 머리 털 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깊은 수렁에 빠지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다가 오는 원인은 대강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죄로 말미암은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가온 것입니다. 야곱처럼 욕심 때문에 도망가고 노예같은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 물고기 배속에 갇히는 수렁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담처럼 죄로 인해 낙원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는 연단으로 다가오는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하나님이 훈련시켜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주시는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요셉이 웅덩이와 수렁에 갇혔습니다. 죄가 있어 인신매매되고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욥이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갇혔습니다. 의인입니다. 이런 때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참고 견디며 기다리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시는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가정에 다가온 수렁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받는 자매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빠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 주님께 고쳐달라고 했는데 고쳐 주시기 않는 것입니다. 결국 죽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외침으로 그를 살려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수렁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게 함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 주십니다. 이런 때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네 번째는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것처럼, 바울이 주님을 위해 수많은 수렁에 들어가는 것처럼 주님의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깊은 웅덩이와 수렁을 피하지 않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통상 섭리 가운데 다가오는 깊은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섭리할 때 통상섭리와 비상섭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통상섭리란 자연 법칙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실로암에있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과 같은 경우입니다.(눅 13:4) 지진이 납니다. 폭풍이 일어납니다. 망대가 무너집니다. 이런 것으로 다가오는 인생의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어떤 상황으로 다가오는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일지라도 우리는 그 웅덩이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제 3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나 홀로 문제를 풀지 말고, 사람들만 의지하지 말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인자와 진리로 보호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의 긍휼” “주의 인자” “주의 진리”에 밑줄을 그어 보시기 바랍니다.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는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풀사 나를 구원하소.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은총”에 밑줄을 그어보시기 바랍니다. 은총, 은혜가 필요합니다. 특별한 은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17절을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를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여 지체하지 마소서. 왕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든 것 잃어버리고 도망다니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기가 막힐 웅덩이가 다가와도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13년 이상 기라렸을 것입니다. 노아는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기다렸습니다. 몇 년 참지 못하여 이혼하자고 하지 말세요. 몇 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지 말세요.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다렸더니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결국 어떻게 해주었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저와 우리 성도님의 인생에 이런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다윗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는 반석 위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네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주시고 나의 발을 반석 위에 세우시사 나를 튼튼하게 하셨네 새노래로 부르자 랄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새노래로 부르자 하나님의 사랑을”
햇살 쏟아지면 안개는 사라집니다.


2. 우리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을 하나님께 찬양드릴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인생에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다가 오면 그것으로 인하여 인생을 골짜기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인하여 인생을 정상으로 치솟아 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로라 데이는 [위기의 심리학]에서 수많은 위기가 닥쳤을 때 반응하는 심리적 유형을 4가지로 설명합니다. 우울형, 불안형, 분노형, 부인형입니다. 우울형은 큰 변화를 만나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당황해 한다고 합니다. 불안형은 변화나 위기에 압도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분노형은 화로 위기를 표출한다고 합니다. 부인형은 엄연히 위기가 닥쳤음에도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고 합니다. 

어떤 유형이든 자신의 반응형을 잘 알고 그것을 다룰 수만 있다면, 어떠한 상황도 멋있게 처리할 수 있는 고지로 성큼 올라서게 된다고 합니다. 우울형은 우울만 잘 해결하면 깊게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불안형은 불안만 가라앉게 되면 날카롭고 예민한 통찰력과 직관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분노형은 분노만 잘 다스리면 열정적인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부인형은 부인이라는 기제를 잘 다루고 나면 능력이라는 부분이 받쳐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수렁을 기회로 활용해야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실패하면 더 좋은 것을 얻는 기회로, 아프면 건강을 관리하는 기회로, 거울이 깨지면 더 좋은 거울을 사는 기회로 활용하면 됩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다가오면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다가 오면 원망의 도구로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인과 시각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 원망하고 분노합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다가 오면 좌절과 포기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인과 시각을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생사화복이 주님의 손에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을 찬양의 재료로 삼습니다.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을 찬양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실감있는 찬양, 하나님께 대한 진정성이 있는 찬양, 애절한 찬양, 진솔한 찬양, 생생하고 실제적인 찬양, 공감되는 찬양, 예전과는 다른 감정의 찬양을 드릴 수가 없었었습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 때문에 그 수렁 때문에 하나님께 새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단지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인생의 수렁에서 다윗은 얼마나 많은 찬양을 드립니까? 한숨 쉬고, 낙담하고,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이 깊은 수렁에 빠질 때 절망하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깊은 수렁에 빠진 것입니다. 기가막힐 웅덩이에 빠진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 때 그들은 감옥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5)”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장과 간수장의 가정이 예수 믿고 변화되었습니다. 욥이 참으로 기가 막힌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욥만큼 기가 막힌 웅덩이에 들어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아들 일곱 딸 셋을 둔 다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열 자녀 사고로 갑자기 몰살당하였습니다. 자신은 악창에 걸려 재로 몸을 뒤집어쓰고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으면서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 2:9)”고 합니다. 이런 웅덩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 욥은 어떻게 합니까?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2)” 
우리가 이렇게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찬양하면 어떤 일이 벌러집니까? 

3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에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된다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과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도 여호와를 의지할 수 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까? 수렁을 당하지 않고 기막힐 웅덩이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런 인생의 수렁을 만나도 끝까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기막힌 웅덩이를 만남으로 교만하지 않고 거짓에 치우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기막힌 웅덩이 안만났으면 교만하고 거짓으로 살았을 텐데 그 웅덩이를 통해 겸손해지고 정직하고 진지하게 인생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의 세친구 풀무불이라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을 만났습니다. 그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7-18)” 비온 후 새순은 더욱 잘 자랍니다.


3. 우리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나와 반석위에 선 다윗은 하나님에게 어떤 고백을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행한 기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가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늘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널리 알립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겠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인사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서 감추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잘나서 웅덩이에서 나오고, 자신이 능력 있어 기가 막힌 수렁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간증하지 않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능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뜻을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8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한 번 기가 막힐 웅덩이에 떨려졌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토요일 저녁에는 제가 교회에 있는데 어제 딸아이 생일이라 저녁에 집에 갔습니다. 가지 않으면 안될 것같아 갔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밥을 먹는데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남에서는 주부들이 앞태를 보아도 20대고 뒤태를 보아도 20대랍니다. 하도 성형술이 위장술이 화장술이 발달되어 모른답니다. 

그런데 죽전에서는 뒤태는 20대지만 앞태는 50대랍니다. 탄천에서 운동을 하니까 뒤태가 20대지만 돈이 없으니 앞태는 여전히 50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강남에서도 핸드폰을 할 때 보면 안답니다. 보이지 않아 실눈 뜨고 멀리 보면 50대라고 합니다. 가사가 기울어 앞태 20대로 고치지 못했다고 실망하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학진학, 직장 승진 안되었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업에 한 때 위기기 찾아왔다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인슈타인은 일곱살 때 겨우 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늦둥이였습니다. 베토벤은 음악 교사로부터 '음악에 전혀 소질 없는 아이'로 평가 받았습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담임은 그를 '교사생활 12년에 이처럼 멍청한 아이는 처음'이라고 평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한때 신문기자로 재직했는데 편집국장은 그를 향해 '자네는 아이디어도, 글재주도 없으니 스스로 사표를 쓰라'고 종용당했습니다. 

영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인 윈스턴 처칠은 6학년을 두 번 다닌 학습지진아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가 울워드는 점원노릇을 하던 20대 초반에 가게 주인으로부터 '사업에 소질 없는 무능력자'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으로 인생 포기하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열정과 끈기로 최악의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으로 끝낸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하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였습니다.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였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 

우리 하나님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있다고 우리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결국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 입술에서 다윗처럼 하나님 자랑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보다 우리를 더 원하십니다. 6-7절에 나온 것처럼 재물보다 나를 원하십니다. 어떤 나입니까?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나를 원하십니다(8). 그리고 이제 내 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법을 이제는 책꽂이에 놓아 두지 않고 내 심중에 간직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나를 원하십니다. 주의 구원과 성실을 선포하는 나를 원하십니다(10). 주의 인자와 진리를 아는 사람들 앞에 감추지 않는 나를 원하십니다. 16절 보십시오. 여호와의 위대함을 선포하는 나를 원하십니다.
 
아름다운 장미는 퇴비로 기릅니다. 어두울수록 등대는 더 밝게 보입니다. 인생은 늘 순풍만 있지 않습니다. 광풍이 불어옵니다. 사업의 광풍, 건강의 광풍, 자녀의 광풍, 가정의 광풍, 직장의 광풍 등이 불어 닥칩니다. 이 때 광풍을 침몰의 광풍이 아니라 비상의 광풍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광풍타고 비상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파도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큰 파도를 기다립니다. 연을 높이 날리려는 아이들은 바람을 기다립니다. 골이 깊으면 봉우리도 높습니다.

실낙원의 저자 밀턴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목사가 되길 원했습니다. 32세의 나이에 17세인 왕당파 정치지도자였던 리처드 파월의 장녀 메리 파월과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정치적 이유로 메리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밀턴은 메리와 3년 만에 화해했지만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남겨 놓고 메리는 죽고 말았습니다. 

한 달 후에 아들 존도 죽었습니다. 아내를 보내고 4년 만에 20년 연하의 캐더린 우드콕이라는 여성과 재혼하지만 그녀는 재혼한지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딸 캐서린도 엄마를 따라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36세부터 시력을 잃어 가다 44세 때 완전히 실명했습니다. 그를 비난하는 자들은 실명은 '신의 징벌'이라고 공격했습니다. 그의 고통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먼저 보내는 사별의 아픔, 육체적 실명과 공화주의자로서의 정치적 실패, 가족 간의 갈등, 정적들의 비난 등 긴 터널 같은 수많은 고통과 실패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한 실패와 고난은 그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영적 세계에 대한 눈을 더욱 맑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시력보다 더 명료한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 냈습니다. 그가 겪은 쓰라린 인생 경험은 고통과 한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승화되어 위대한 걸작품 '실락원', '복락원', '투사 삼손' 같은 웅장한 서사시들로 형상화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 후세를 위해 글로 쓰게 된다면 …… 내 조국을 명예롭게 만들고 지식을 충만케 하여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고려할 것이 없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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