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1.05.24 17:45

꿈은 이루어진다 (창 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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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창 40:5-8) 
 
 
❚꿈은 이루어진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이 4강에 올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 말입니다. 온 국민이 얼마나 열광했습니까? 당시 4강전 독일과의 경기 때 관중석에서 관중들이 펼쳐들었던 카드섹션 문구가 바로 “꿈은☆이루어진다”였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지요. 그런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와서 한 번 물어보게 됩니다. “정말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까?” 그 때 말하던 꿈은 무엇입니까? 이미 한국이 월드컵 4강에 들었다는 것도 꿈만 같은 일이지만 아마 그 때 사람들이 염원하던 꿈은 4강을 넘어 결승전까지, 그리고 내친 김에 월드컵 우승도 한 번 차지해 보자는 것이었겠지요. 

그렇다면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까? 아니요. 그날, 바로 독일과의 4강전에서 우리는 1대 0으로 안타깝게 패했고 결국 꿈에도 그리던 결승행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요. 오늘 제가 월드컵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꿈을 꿉니다. 큰 꿈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확신대로 안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꿈은 크게 꾸었지만 그 꿈이 실현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히려 실패하고 좌절할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설교 제목이 “꿈은 이루어진다”입니다. 이 제목을 보고 2002년 월드컵을 떠올린 분도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은 센스가 있어서 지난 시간까지 나누었던 요셉 이야기를 떠올리며 “맞아, 꿈은 이루어지지, 요셉이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어”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묻습니다. 요셉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요셉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은 금세 대답할 수 있겠지요. “요셉이 고생 고생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가 어랴서 꾼 꿈,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에 절하고 해와 달과 별이 자기에게 절하던 꿈이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결론을 이렇게 맺곤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요셉처럼 꿈을 꾸십시오.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간 조금 짓궂게 반문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우리가 꿈꾸면 다 이루어집니까?”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우리가 꿈꾼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꿈꾸던 일이 다 이루어지셨습니까? 아니지요? 저도 꿈꾸던 모든 일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안 이루어진 일도 많습니다. 특히 기도하면서 계획하고 꿈꾸던 일 중에서도 안 이루어진 일이 꽤나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뭐라고 설명해야 합니까? 분명히 성경이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그래서 요셉처럼 아무리 고생하고 힘들어도 결국 기도하며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설교하는데 현실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 되는 일도 많고 안 이루어지는 꿈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뭐라고 설명하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안 해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요셉보다 믿음이 적어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니까 성경과 현실은 다른 겁니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정말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현실이 그렇게 다르다면 우리가 왜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성경이 그렇게 우스운 책 아닙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성경이 약속한 바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이 꿈과 다를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요셉의 꿈에 대해 말할 때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꿈을 이룬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출세하고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요셉처럼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도 실망하지 않고 꿈을 끝까지 붙잡으면 요셉처럼 끝내 승리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특히 청년이나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가르칩니다. “너희도 요셉처럼 믿고 꿈꾸면 반드시 성공하고 출세할 거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공과 출세는커녕 고생만 하고 실패만 하면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오래전 일입니다. 제가 청년부를 지도할 때인데 그날 제 설교가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너희도 요셉처럼 믿고 꿈꾸면 반드시 성공하고 잘 될 거다.” 그런데 예배 후 청년 하나가 찾아와 진지하게 묻습니다. “목사님, 그럼 성공 못하면 믿음이 없는 건가요? 요셉처럼 출세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사랑 못 받은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인생입니까?”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원하던 진학도 못하고 모든 것이 뜻대로 안 되어서 정말 힘들어하던 청년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그냥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 안 되지요. 이런 질문에 대해 우리가 뭔가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요셉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옵니다. 만약 우리 생각처럼 요셉의 꿈이 “내가 언젠가 반드시 성공하고 출세해서 형들과 부모까지 내게 절하게 해야지” 하는 것이었다면 그 꿈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이루어진 것 맞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이 자기가 꾼 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 앞으로 반드시 이런 사람 될 거야” 자기 의지로 꾼 꿈이었는가? 요셉의 꿈은 그런 꿈과는 거리가 멉니다. 첫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요셉은 자기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 꿈을 꾼 것입니다. 왜요? 자기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따지면 요셉이 꾼 꿈은 요셉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아, 나는 너를 이런 사람으로 세우고 싶다. 그래서 너를 통해 나의 계획을 이루고 싶다.” 이런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그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세운 계획, 자신이 꾼 꿈이라면 중간에 힘들고 어려울 때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었겠지요.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신 꿈임을 알기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 얼마나 인간적인 기준인지 말입니다. 꼭 출세해야만 한다, 꼭 남들 보기에 잘 되어야 한다,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것만 뜻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하나님의 뜻을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을 꿈으로 삼으실 만큼 적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은 너무 큽니다.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지요. “내 평생 꿈이 자식 잘 키워 성공하는 것 보고 죽는 거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나 한 사람 출세하고 성공시키는 정도가 하나님의 꿈이라면 하나님의 꿈을 너무 작게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훨씬 크고 원대합니다.

한 편의 영화로 견주어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감독이 영화 한 편을 계획합니다. “한 소년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넉넉하게 잘 살았는데 어쩌다 고생길에 접어들어 갖은 어려움과 실패를 겪는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도 받고 배신도 당한다. 하지만 이 소년은 꿋꿋하게 잘 이겨내서 결국 크게 성공한다.” 만약 여기서 영화가 끝(해피 엔드)난다면 이 영화는 개인의 성공 스토리로 그치고 맙니다. 그런데 감독은 그보다 큰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결국 모든 역경을 다 이겨내고 크게 성공한 소년은 자신의 모든 능력과 소유를 바쳐 자신처럼 꿈은 있지만 어려운 환경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결국 수많은 인재를 키워내게 된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주연배우는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요셉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한 편의 위대한 영화를 찍어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영화의 목적은 요셉이라는 개인의 성공 스토리를 담아 요셉을 부각시키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성공한 것은 다만 전체 영화의 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가 성공하고 출세함으로 더 크고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그려야 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지금 역경과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큰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요셉은 깨달아야 합니다. “어, 지금 이 상황이 뭐야? 내 계획하고 다르잖아? 내가 꾼 꿈은 이게 아닌데 왜 현실은 이 모양이야?”가 아니라 “지금 내가 고난당하고 있는 것이, 지금 겪고 있는 이 아픔과 고통이 내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의 큰 계획 속의 일부분이구나. 이게 끝이 아니구나. 이 고난과 아픔의 과정을 지나야 그 다음 결과가 나오는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역경을 이기고 애굽의 총리가 될 때 이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한 과정이로구나.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위대한 꿈과 계획을 위해 사용되는 한 과정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

그래서 해석(解釋)이 중요합니다. 오늘 설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이 바로 ‘해석’입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하십시오. 내가 지금 왜 여기 있는가? 내가 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해석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그래야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창세기 40장 말씀으로 들어가 봅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요셉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말로 자신을 모함해서 졸지에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해석합니다. “내가 왜 감옥에 있지?” 종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무엇보다 하나님께 죄 안 짓고 성결하게 살아보려고 애썼는데 저 간악한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이렇게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감옥 안에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인생을 비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요셉,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도 어쩌면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합니까?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 때나,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 할 때나,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나 한 결 같이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합니다. 누구 탓도 원망도 안합니다.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도, 나를 모함한 보디발의 아내도, 아내가 뻔히 거짓말하는 줄 알면서도 나를 버린 주인 보디발은 물론이고 하나님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간수가 봐도 신기한 친구입니다. 간수는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봅니다. 그래서 요셉을 신뢰해 그에게 감옥 안에 일어나는 제반 사무를 다 맡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다시 말씀드리지요. 요셉이 상황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꼭 그렇게 하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누구나 당황합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힘들어 합니다. “왜 이런 일이 하필 나에게 닥쳤을까? 세상에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냐?”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해석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 원망도 하고 남 탓도 합니다. “이게 다 누구 누구 때문이야” 하고 말이지요.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 이만하면 잘 믿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깁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끝나면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해석을 해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하나님은 지금 이런 상황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도대체 나에게 뭘 가르치시려는 것일까?”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게 되면 요셉처럼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요셉이 갇혔던 감옥에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오게 됩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나 왕의 진노를 사 감옥에 온 것입니다. 아무리 죄수라지만 궁에서 꽤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인지라 요셉이 두 사람의 수발을 들게 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은 날 밤 꿈을 꿉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은 이렇습니다.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의 세 가지에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다. 

그래서 내가 그 즙을 짜 왕의 술잔에 담아 바로에게 드렸다. 이게 대체 무슨 꿈이냐?” 요셉은 그 꿈에 대해 이렇게 해석해 줍니다. 해몽(解夢)인 셈이지요. “그 꿈은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을 복직시켜 준다는 뜻입니다.” 이번에는 떡 굽는 관원장이 꿈을 꿉니다.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해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들었는데 새들이 와서 그것을 먹어버렸다. 이 꿈이 대체 무슨 뜻이냐?” 요셉이 그 꿈을 해몽합니다. “그것은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을 나무에 달아 처형하고 새들이 와서 시체를 뜯어먹는다는 뜻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요셉의 해몽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져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 만에 복직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됩니다. 그런데 그 앞에 정말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8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요셉이 꿈을 꾸고 고민하는 두 사람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자신이 해몽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뜻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꾸는 꿈에 대해 해석을 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해석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내 꿈의 모든 의미를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계획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를 그럴듯하게 해석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구먼.” 그런데 이 말이 정말 중요합니다. 맞습니다. 반드시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두 아들을 둔 홀어머니가 살았습니다. 두 아들이 다 신발 장사를 하는데 큰아들은 나막신을 팔고 둘째 아들은 짚신을 팔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비가 오면 나막신을 신고 날이 좋을 때 짚신을 신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늘 울상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둘째 아들 짚신이 안 팔릴까봐 걱정이고, 날이 맑으면 큰아들 나막신이 안 팔릴까봐 걱정이라서 말입니다. 매일 매일이 괴롭고 죽을 맛입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한숨만 쉬며 자식 걱정으로 살던 어머니에게 어느 날 동네 살던 지혜로운 노인이 이렇게 충고를 합니다. “이보게, 그러지 말고 한번 거꾸로 생각을 해보게나. 비가 오는 말이면 큰아들 나막신이 팔릴 테니 좋은 날이고, 날씨가 맑으면 둘째 아들 짚신이 잘 팔릴 테니 좋은 날 아닌가?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고 행복한 날 아니겠는가?”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무릎을 칩니다.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 때부터 이 어머니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니 날마다 신이 나고 행복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해줍니까? 해석입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삶의 태도가 달라지면 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보다 해몽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현실보다 해석’이 좋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요셉은 꿈의 해석이 누구에게 있다고 했습니까? “꿈의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 이 말은 우리의 현실이나 상황을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해석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에 맞춰 해석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해석을 잘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겪는 이 어려움도, 고난도 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의 한 과정이다. 꿈이 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직 안 이루어진 것뿐이다.” 나아가 내가 그 고난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 결국 꿈에 그리던 목적을 이루었을 때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런 나를 통해 뭔가 더 큰 일을 이루려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이 ‘사명’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쪼록 요셉처럼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꿈을 꼭 읽어내고 해석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고난과 실패 중에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계획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게 되면 성공하고 개인적인 목표를 이룬 후에도 교만하지 않고 나를 통한 하나님의 다음 단계 계획을 보게 됩니다. 아무쪼록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과정의 해석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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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33 설교 인간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 (겔 28:12-19) file 2011.05.24 291 운영자
39432 설교 기본을 지켜야 (민 14:1-9) file 2011.05.24 440 운영자
39431 설교 지금도 하나님의 권능은 볼 수 있는가? (시 18:1-19) file 2011.05.24 364 운영자
39430 설교 너는 주 안에서 빛이라! (엡 5:8-14) file 2011.05.24 658 운영자
39429 설교 아담 안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롬 5:12-21) file 2011.05.24 507 운영자
39428 설교 예수님과 연합하여 사는 사람 (롬 6:1-11) file 2011.05.24 674 운영자
39427 설교 성장을 위한 훈련 (신 8:1-10) file 2011.05.24 327 운영자
39426 설교 버려두신 사람들 (롬 1:18-32) file 2011.05.24 324 운영자
39425 설교 훈계와 징계의 유익 (잠 12:1) file 2011.05.24 855 운영자
39424 설교 경건에 이르는 훈련 (딤전 4:6-10) file 2011.05.24 475 운영자
39423 설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믿음 (빌 4:10-13) file 2011.05.24 342 운영자
39422 설교 벧엘로 올라가라 (창 35:1-15) file 2011.05.24 369 운영자
39421 설교 사도신경(3)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막 8:27-38) file 2011.05.24 374 운영자
39420 설교 사도신경(2) : 하나님 나의 아버지 (롬 8:12-18) file 2011.05.24 278 운영자
39419 설교 [사순절] 죄인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 (막 2:13-17) file 2011.05.24 233 운영자
39418 설교 [사순절] 예수님처럼 삽시다(4) (요 19:17-18) file 2011.05.24 253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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