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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노동에 대한 가치관

  • 최한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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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한 가치관


유럽의 남쪽은 천주교가 강하고 북쪽은 기독교가 강하다. 북쪽은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나라는 대체로 직업을 “천한 것과 귀한 것”으로 나누지 않는다. 모든 직업은 귀천이 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별 대수롭지 않는 직업을 서구에서는 몇 대에 걸쳐 이어지는 게 많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20년에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요한 칼빈의 직업소명설이 자본주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노동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은 16 세기 칼빈 뿐 아니라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마르틴 루터 역시 그러했다. 노동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아 고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기독교적 평등주의적 직업관을 만들어 내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기독교가 전해지는 곳마다 문명이 발달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

노동을 하나님 뜻과 섭리로 받아들이는 거룩한 노동관의 원조는 4세기 사막의 수도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안토니우스였다. 안토니우스가 홀로 사막에 머물며 구도자로 살던 중 한 번은 더 이상 기도하기 힘든 정신적인 공항상태에 빠졌다. 떠나온 세상에 대한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도시의 찬란함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멍게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안토니우스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이 고통에서 어떻게 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어 그가 문을 열고 수도실 밖으로 나갔다. 그 때 한 천사가 앉아서 일하다가 일감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다시 앉기도 하며 줄을 꼬더니 또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를 향해 “기도하며 일하라!!”고 하였다. 안토니우스가 이 말에 따라 기도하며 일하였다. 이것이 사막의 수도사들의 황금률이 되었다.

사막의 구도자들에게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곧 기도였다. 성경에도 일과 관계하여 말씀한 곳이 많다. 심지어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도 하셨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밭일과 수도를 함께 조화시켰으며, 하루 여섯 번의 기도와 함께 성경을 필사하게 하는 육체의 노동도 함께 하게 했다. 바실리우스 수도원도 밭일과 기도를 결합시켰다. 5세게 초 수도사들은 수공업, 목축, 양돈, 직물, 출판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 노동과 기도를 결합시켰다.

4세기 수도원 정신은 오랜 세월 동안 서구 역사에 녹아들었고 16 세기 종교 개혁가들과 18세기 청교도들이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 국가들은 노동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기독교적 노동관을 갖게 되었다.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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