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빨리 가서 전할 소식 (마 28: 1-10)

첨부 1


빨리 가서 전할 소식 (마 28: 1-10)   

 
이란성 쌍둥이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서로 대화를 합니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말합니다.
“난 말이지 태어난 후에 다른 삶이 있다고 믿어.”
그랬더니 쌍둥이 오빠가 그 의견에 반대합니다.
“아니야. 절대로 그렇지 않아. 이것이 전부라니까. 어머니 뱃속을 떠나면 죽는 거야. 죽음 밖에는 없어.”
여동생도 굽히지 않습니다. 

“아니야. 이 캄캄한 곳보다는 더 좋은 세상이 반드시 있어. 밝은 빛이 있고, 푸른 하늘이 있고, 아름다움 꽃이 있는 세상 말이야.”
여동생은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오빠를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뱃속을 나가면 넓고 환한 다른 세상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이란 단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1.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6절 “.......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성을 증언하려는 의도라고 보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면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장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경찰은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을 쳐놓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그 후 수사관들은 현장에 진입하여 증거를 수집합니다. 
그리고 증거에 따라 수사결과를 발표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현장을 찾아가봅시다.

1) 돌문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입니다.

마28:2절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돌덩어리는 무생물입니다.
무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돌문이 저만치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여섯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무거운 돌문이 저만치 굴려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돌덩어리가 움직였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 흰옷 입은 천사가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습니다.

마28:5절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천사는 하늘의 사자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드는 심부름꾼입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까지도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무덤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3) 예수님의 시체는 없어졌고 무덤은 비었습니다.

마28:6절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시체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살아났거나 누군가 그 시체를 움쳐갔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말대로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나요? 
그런 터무니없는 헛소문이 후에 속담거리로 남게 되긴 하였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1972년에서 1975년까지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권력남용(도청)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은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지 4일 만에 대통령직을 사퇴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는 미 역사상 유일한 임기 중에 사퇴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닉슨의 핵심 참모 중 하나인 찰스 콜슨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졌던 우리도 거짓말을 3주 이상 지켜내지 못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 훔쳐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부활이란 거짓말은 2,000년 이상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증거들을 통해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짧은 본문에도 ‘살아나셨다’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6절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7절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부활’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고 익숙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부활’이라는 말은 생소하고, 어색한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전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순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누가 뭐라고 하던 우리 기독교는 죽은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부활의 종교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누군가가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흘이 지나고, 한 주간이 지나도 부활하기는커녕 시체에서 썩은 냄새를 풍겼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래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요?

과거 한국에는 자기가 ‘구세주’라고 주장하는 이단 교주들이 있었습니다.
그 교주가 죽었을 때 그의 말대로 부활하리라고 믿고 장사지내지 않았습니다. 
열흘이 지나도 부활은커녕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도 그가 구세주라고 믿는 추종자들이 있었습니까? 
아니지요.
추종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썩은 시체를 놓고 구세주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분이야말로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고전 15: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 
우리는 다 압니다. 
첫 열매가 열리면 그 나무에서는 뒤이어 많은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복숭아 묘목을 사다가 담 밑에 심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말라고 삼각 받침대를 세워주고, 겨울에 얼어 죽지 말라고 짚으로 방한피복을 입혔습니다. 
거름을 주고 물도 주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따뜻한 봄이 되자 가지에 분홍색 꽃이 몇 송이 폈습니다. 
꽃이 떨어지고 새끼손가락 끝마디만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매는 통통하게 살을 찌워갑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그 나무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복숭아 묘목을 심은 사람은 기뻐합니다.
첫 열매를 보고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열매가 맺혀서 기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첫 열매는 앞으로 이 나무에서는 많은 복숭아가 열릴 것이라는 신호요, 징표요, 확증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기쁩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부활을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부활시킨 하나님의 능력이 똑같이 우리에게도 역사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번역에는 이 ‘첫 열매’라는 말을 ‘보증’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희망을 선언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죽음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죽으면 끝입니다.
살아있어야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하지........
죽으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 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그 죽음을 극복하셨습니다. 

죽음을 죽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절망할 자유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희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살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계신데 죽긴 왜 죽어요.

심방 중에 한 집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죽을 각오를 했다는 거지요.
옥상에 올라가보니 땅 바닥이 너무 가깝게 느껴지더랍니다.
한 발만 내딛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더라는 거지요.
근심도, 답답함도, 속상함도.......순간 없어질 것 같더라는 거지요.
그래서 한 발을 내딛으려고 하는데 어디에선가 붉은 십자가가 갑자기 눈앞에 다가오더라는거지요.

옥상에 여러 차례 올라왔었지만 서울의 그 많은 붉은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죽음을 각오한 날에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붉고 큰 십자가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주님이 나의 죽음을 막으시는구나.’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순간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
그는 십자가를 붙들고 절망을 이겼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절망할 자유가 없습니다.

3.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시다.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8절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 놀라운 소식을 알리려 달음질했습니다.

1956년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명문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남미 에콰도르의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간 후 실종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아우카 부족 마을에 근접한 강가 모래톱에 경비행기를 착륙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우카 부족 마을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청년 선교사들의 실종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엘리엇과 친구들은 모두 아우카 부족의 창에 찔려죽었습니다.
경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끔찍한 비극이었습니다.
미국 전역이 들끓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 무슨 낭비인가(what a waist!)'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습니다.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너무나 허망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내들이 남편들의 뒤를 따라 아우카 부족에게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정성껏 부족들을 섬겼습니다.
아우카 부족은 이들의 헌신에 감동했습니다.

부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에 아우카 부족장이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렇게 고생을 하십니까?”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벳이 대답했습니다.
“남편들이 그렇게도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를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엇 등을 창으로 찔렀던 5명의 아우카 부족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가운데 4명은 목사가, 한 명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아우카 부족 전체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헌신과 열정, 사랑과 용서가 낳은 기적이었습니다.
엘리자벳은 ‘이 무슨 낭비인가’라고 신문에 쓴 기자에게 남편이 휘튼 대학에 다닐 때 썼던 일기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참으로 믿는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빨리 달음질하여 전해야 합니다.
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짐 엘리엣의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그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