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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날 (욜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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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엘 2:1-11 
제목 : 여호와의 날 

요엘 1장은 요엘 시대에 일어났던 전대미문의 메뚜기 재앙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메뚜기 재앙과 같은 자연 대재앙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세계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질서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2) 

인간과 에덴동산의 타락으로 인해 피조물의 세계가 고통당하고 육지와 바다도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전쟁에 보내어 죽자 요압 장군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전쟁에 졌고 우리야도 죽었다고 소식을 전하니까 다윗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다윗이 사자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삼하 11:25) 

자기가 죽여 놓고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인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의 말대로 자연 재앙도 선인이나 악인 모두를 죽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거기 있는 교회도 같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메뚜기 재앙만큼은 의미가 다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메뚜기 재앙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고 앞으로 이스라엘 국가에 다가올 더 큰 재앙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가올 더 큰 재앙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날(the day of the LORD)이라고 했습니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욜 1:15)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욜 2:1) 메뚜기 재앙이 오면 나라의 모든 식물을 갉아먹습니다. 나무들도 다 죽어버립니다. 하지만 메뚜기가 사람을 먹지는 못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슬퍼서 애곡하게 만들고 배고파서 고통스럽게는 만들어도 목숨을 잃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여호와의 날은 국민의 생명을 빼앗고 국가 자체를 소멸시키는 무서운 날이 될 것이라고 요엘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Ⅰ. 여호와의 날은 어떤 날인가? 

요엘 2장 1절 전반에서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에게 시온에서 나팔을 불고 하나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라고 했습니다. 온갖 청각적인 도구를 다 동원하여 경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각은 아무 때나 불 수 있는 것이지만 나팔은 아닙니다. 

민수기 10장에 보면 나팔의 규례가 나오는데 이것은 백성을 집합시킬 때나 행진하거나 정지할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팔을 불면 전쟁이 일어났으니 전쟁을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날을 나팔을 불어 알리라는 것은 여호와의 날은 전쟁의 날이 될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요엘 2장 2-11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에 이스라엘을 침공할 군대에 관한 설명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요엘 2장은 메뚜기 재앙에 대한 첨가된 설명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요엘 2장은 메뚜기처럼 침공하는 이방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요엘 1장은 메뚜기의 재앙을 군대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고 요엘 2장은 군대의 침공을 메뚜기처럼 비유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요엘 2장이 단순히 메뚜기 재앙에 대한 부연설명이 아니냐? 이 질문에 대해 저는 명확하게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요엘 2장의 사건은 여호와의 날에 나타날 재앙이고 여호와의 날은 미래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욜 2:1) “the day of the LORD is coming.” 이것은 여호와의 날이 지금 오고 있다는 진행형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이 가까운 미래에 올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요엘 2장은 여호와의 날이 앞으로 다가올 것인데 그 날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기 때문에 과거에 일어난 메뚜기 재앙에 대한 사건의 부연설명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 요엘 2장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4장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엘 2장과 마태복음 24장을 비교해보면 요엘이 말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은 가깝게는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Titus)의 침공으로 이스라엘 국가가 완전히 멸망해버리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고 멀게는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에 임하는 최후의 심판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께서 헤롯 성전을 가리켜 이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질문합니다. 어느 때에 성전이 무너지는 일이 있겠습니까? 또 하나는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요엘 2장 2절을 인용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 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욜 2:2)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 24:21) 

창세 이후로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이 환란이 얼마나 급하게 오는지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환난이 겨울에 오면 다 얼어 죽으니까 겨울에 오지 않도록 기도하고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안식일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환난은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Titus)가 침략해 이스라엘 백성이 백만 명이 단기간 내에 사망하고 이스라엘 국가라는 자체가 멸망해 버린 사건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일본에 대지진이 나서 이만명 죽었는데 로마 군대가 A.D. 70년에 공격해왔을 때는 백만 명이 단기간 내에 죽었습니다. 중국에서 아무리 큰 지진이 안도 오만명이상 죽은 사건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재앙입니까? 그래서 요엘 2장 2절에도 이런 재앙은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환난은 창세로부터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앗수르 왕의 침공이나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 환난은 로마 군대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한 사건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엘 선지자는 B.C. 800년이 아니라 400년경에 활동한 선지자로 보는 것이 더 큰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마태복음 24장 29절은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에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신 내용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 24:29) 이 말씀은 요엘 2장 10절을 예수님이 인용하신 것입니다.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욜 2:1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 24:30)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은 예수님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요엘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은 과거에 일어난 메뚜기 재앙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깝게는 로마 군대의 침공으로 인해서 국가적으로 멸망할 사건을 말하는 것이고 멀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세상 모든 불신자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라 하는 것이 제가 이 말씀을 오래 붙들고 연구한 결과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욜 2:11) 하나님께서 로마 군대를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방 군대를 사용하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5장 9절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켜 내가 쓰는 종(my servant)이라 표현하셨고 이사야 44장 28절에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가리켜서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경우에는 불신자인 이방 왕이나 불신국가의 군대도 당신의 종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이스라엘 침공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세워놓으신 이스라엘 국가를 향한 심판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고 로마 군대를 이끄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Ⅱ.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해야할 일 

A.D. 70년 이후로 이스라엘은 국가를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요엘이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은 가까이 왔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한 어감을 가지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욜 2:1)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 확실하면 대책을 세워야 되지 않습니까? 어떤 대책을 세워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조금 수준 떨어지는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이 닭을 기르는데 닭장에 닭이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자기 생일에 닭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세 마리 중 두 마리는 예쁘고 한 마리는 못생겼습니다. 그래서 못생긴 닭을 잡아먹기 위해 세 마리를 모두 불러놓고 내가 며칠 뒤면 생일인데 퀴즈를 내서 맞히면 안 잡아먹고 못 맞히면 잡아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예쁜 닭을 불러 ‘1+1’은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2’라고 정답을 말해서 통과시켰습니다. 그 다음 예쁜 닭을 불러 ‘1+2’는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3’이라고 정답을 말해서 또 통과시켰습니다. 

마지막 못생긴 닭을 불러서 ‘418859×528335'는 얼마냐고 물어보자 차라리 물을 빨리 끓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닭이 머리도 안 좋은데 복잡한 문제를 내니까 차라리 물을 끓여 자기를 잡아먹으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날이 어차피 올 것이라면 차라리 물을 끓이라는 자포자기하는 태도로 기다려야겠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욜 2:12-14) 

여러분 여호와의 날이 올 것이 확실하고 지금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다 할지라도 “이제라도”(Even now) 옷을 찢는 형식적인 회개만 하지 말고 마음을 찢는 참된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방향을 전환해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혹시”나 복을 주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2주 전에 부흥의 역사에 관한 세미나를 했는데 한국에 일어난 최초의 부흥이 1907년 장대현 교회의 부흥입니다. 그 부흥 운동을 이끈 사람은 길선주 목사님입니다. 원래 이분은 도가에서 도를 닦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목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설교를 해도 아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너는 형식적인 회개만 하지 말고 또 남에게만 회개하라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친구의 유산을 정리하면서 100불 훔친 것을 지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길선주 목사가 설교하다 말고 자기는 도둑놈이라면서 자기 친구 유산을 정리하다 100불을 훔쳤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고백하고 난 이후로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활짝 열고 성령을 어마어마하게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마음을 찢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혹시 복을 주실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실제로 B.C. 400년에 예언한 여호와의 날은 A.D. 70년에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470년의 간격을 두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과 교회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470년 사이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회개를 하되 개인적인 회개에 그치지 말고 국가적인 회개, 집단적인 회개를 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죄도 개인적인 면이 있지만 집단적인 면도 있습니다. 아무리 개인이 올바로 살려고 해도 김정일 치하에서는 올바로 살 수가 없습니다. 또 아무리 신앙 갖고 살려고 해도 이슬람 국가에 살아서는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도 최근에는 죄의 집단적인 측면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도 회개도 개인적인 측면이 있고 집단적인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 불러 모두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장로들도 오고 어린아이들도 오고 젖 먹는 아이들도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갓 결혼한 신랑, 신부도 방에만 있지 말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갓 결혼한 신랑은 1년 동안 군대도 면제해줬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랑, 신부도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큰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Ⅲ.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요엘 2장 18절은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욜 2:18)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고 마음을 찢으면 하나님의 중심이 뜨거워지시고 백성을 긍휼히 여겨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470년 동안에 유다 백성을 위해서 두 가지 영광스런 복을 주셨습니다. 
 
첫째,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침공한 메뚜기 떼를 모두 바다에 몰아죽이시고 다시 유다 백성에게 곡식, 포도주, 물질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욜 2:20) 

실제 하나님의 백성은 불경건해지면 물질의 복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술 먹고 바람을 피우면 물질의 복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도 막아버리시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 찢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경건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막았던 것을 다 풀어놓으시고 물질의 복을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가난하게 살게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물질의 축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28-29) 이 말씀은 우리에게 친숙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 베드로가 요엘 2장 28절의 예언이 우리 앞에 이루어졌다고 말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요엘이 예언한지 오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축복인 것입니다. 이 예언은 정확하게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A.D. 70년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 이런 복이 임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 32절 말씀대로 유대인들 중에 남은 자는 구원받았고 이방인들 중에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성령이 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론 

호세아의 예언대로 A.D. 70년 여호와의 날은 정확하게 도래하였습니다. 육체적인 이스라엘은 국가적으로 멸망했습니다. 로마 장군 티투스(Titus)의 침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요엘 2장 3절을 보시겠습니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 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 (욜 2:3) 육체적인 이스라엘은 이처럼 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우리도 성령을 받아 예수님을 믿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중심이 뜨거우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옛날 로마 군대 얘기를 바쁜 이 시간에 왜 이야기하느냐? 여러분 여호와의 날은 로마 군대의 침공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군대보다도 더 무서운 하늘의 군대가 쳐들어 올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라고 사도 베드로도 동일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다가올 여호와의 날은 불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물심판은 노아의 때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늘에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불심판이 21세기를 사는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압구정동에 가서 이 세상은 불로 망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물어보면 우리를 광신자 취급할 것입니다. 또 명동에 나가서 똑같이 질문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로 망할 것이니 방주로 들어오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고 바쁘다며 방주로 가지 않아 모두 죽은 것입니다. 하늘은 불에 의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도 녹아지는 불심판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가올 불심판에 준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물 끓여 잡수시라고 자포자기하고 계십니까? 요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제라도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방향전환을 하는 사람은 물질의 복과 영적인 복을 받게 되고 이생과 내세에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이 온 다음에는 늦습니다. 불심판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 몇 개만 터져도 난린데 동시에 다 터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불심판의 때가 왔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것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경건하게 사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모두 경건하게 사시고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는 분은 오늘 결심하시고 예수님을 믿어 불심판에서 구원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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