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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가정 (엡 5:18-32)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5월 첫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그리고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는 일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자녀 사랑과 부모 사랑의 고귀함을 되새겨보고, 형제 사랑과 친척 사랑의 무게를 진솔하게 달아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가정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단위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인류에게 만들어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한 남자 아담과 한 여자 하와를 창조하시고 두 사람을 짝지워 주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가정을 통하여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은사를 마음껏 부어줄 작정이었습니다. 가정은 이처럼 구성원이 하기에 따라 우리에게 축복의 보금자리가 되도록 세워졌습니다.

건강한 가정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 행복한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교회의 영적 기상도는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정들의 상태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문제 가정들’ 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결혼 서약이 무시되기 일쑤이고, 창조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남편과 아내의 아름다운 관계가 빛을 잃은지 오랩니다. 부끄럽게도 지금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 이혼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전통적 가치에서 떠난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처투성이의 가정들과 그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로 인해 표류하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가정은 이 사회를 위협하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위협적인 요소입니다.

해결책은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에게 어떤 대비책을 주셨습니까? 가정은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가족 상호간의 헤어짐 대신에 서로간의 헤아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간의 다툼 대신에 서로간의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증오 대신에 하모니, 고성(高聲) 대신에 성경 말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크리스찬의 가정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펴봅시다.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가정은 어떤 곳입니까? 

1. 성도의 가정은 예수님을 경외하는 곳임 (= 주님이 다스리시는 곳)

20-21절=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크리스찬 가정은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곳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주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가정입니다.

본절에서 ‘감사하며(유카리스텐투스)’ 라는 단어는 문장의 맨 앞에 기록되어 강조되고 있는데, 그 원형(유카리스테오)이 ‘은혜를 말하다’ 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 근거하여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사는 사람이 바로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항상(판토테)’ 과 ‘범사(판톤)’ 는 각각 감사의 무시간성과 초상황성(超狀況性)을 나타냅니다. 즉 언제나 감사해야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성도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의 집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가정의 모든 면에서 예수님이 주인으로 다스리시는 곳--그곳이 성도의 가정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를 위해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다스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가정은 ‘크리스찬 가정’ 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종교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심지어 종교적인 의식을 잘 지키는 가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도의 가정은 그 핵심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느냐 아니냐’ 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정의 머리’ 이십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가정은 그렇지 않은 가정과 어떻게 다릅니까? 주님이 다스리시는 가정은 무엇보다 성령님에 의해 지배당하는 가정입니다.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 받는 것’ 사이를 대조하며 술 취하는 대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강한 금지와 강한 명령을 하고 있습니까?
당시 헬라 세계 이방인들은 근심에서 해방되고 감정적 기쁨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신(神)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신비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술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헬라 세계에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즉 바커스 제의(祭儀)가 행해졌는데, 현란

한 춤과 노래와 음주와 환락이 동반되었고, 그 제의가 절정을 이루면서 사람들은 황홀경에 빠져들어가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 배경에 익숙해져 있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은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쁨을 얻는 길은 술취함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충만함을 받으라(플레루스데)’ 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입니다. 다시 번역하면 ‘너희는 성령에 의해 가득 채워지라’ 이고, 수동형의 문장을 능동형으로 바꾸어보면 ‘성령이 가득차서 너희를 주관하시도록 하라(Let the Holy Spirit fill and control you)’ 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의 본질은 성령께서 성도의 마음과 삶을 온전히 이끌어가시도록 삶의 주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가정은 성령께서 지배하시는 가정이고 이는 곧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가정을 의미합니다.

본문 22~32절은 성령 충만한 가정의 모습이 어떠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은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가족 구성원이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는 가정입니다. 

1743년 12월31일, 위대한 부흥사 조지 휫필드가 영국의 소도시 키더민스터를 방문했습니다. 이 도시는 청교도였던 리처드 백스터가 목회했던 곳으로, 그가 부임 당시 신자가 한 동네에 한 가정 있을까 말까했지만, 그가 떠날 땐 믿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크게 부흥됐습니다. 백스터의 부흥운동 비결은 가정예배 활성화에 있었습니다. 그는 심방을 통해 가장들에게 가정예배를 권함으로써 가정의 경건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아침 저녁으로 가가호호에서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성경 읽는 소리가 온 마을에 메아리쳤습니다. 

백스터가 떠나고 80년이 지난 뒤 휫필드가 키더민스터를 방문했을 때 여전히 가정예배가 힘 있게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큰 은혜를 받은 휫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백스터의 가르침과 사역, 권징의 달콤한 향기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원기를 회복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주님을 경외하는 일에 모자람이 없습니까? 여러분 가정의 대소사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예수님께 최우선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생각, 내 힘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다가 안 되는 경우에만 기도의 제단으로 가져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과연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가정입니까?


2. 성도의 가정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곳임 (= 사랑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곳)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8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가정은 구성원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사랑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성도의 가정은 남편과 아내의 양방향 사랑이 빛나는 곳입니다. 아내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남편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사랑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33년의 짧은 삶을 온전히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놓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조롱과 채찍질을 견디게 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혈투를 이기게 했고,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모든 수욕과 고통을 넉넉히 이기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에서 인류를 사랑하셨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쏟으셨습니다. 성도의 가정은 이 주님의 사랑이 윤활유가 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보금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의 가정은 사랑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곳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찬 가정에 관한 성경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들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청년시절 항상 구겨진 양복만 입고 다니던 명환이가 교회에서 여자 자매와 만나 결혼한 지 1년이 지났건만 칼날 같은 양복만 입고 교회에 다니는 것을 본 장로님이 직접 명환집사 보고 말했습니다. 
“자네 정말 결혼 잘 했구먼, 부럽네.” “무슨 말씀인가요?”
“결혼 1년 동안 자네 양복이 한번도 구겨진 걸 본 적이 없단 말일세.”

그러자 그 친구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 말합니다. “내 여자 자매가 결혼 첫날부터 양복 다리는 법을 제일 먼저 가르쳐 줬단 말이이에요.”
우리는 부인이 잘 못하더라도 사랑으로 감싸주며, 서로를 이해하며 주님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많은 가정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긴장과 인내가 가장 필요한 곳이 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관철하기 위해 경쟁하는 싸움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어린 자녀들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는’ 성도로 자라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를 비판하고 말씀을 등지는 탕자로 기울어져 가고 있습니다.

성도의 가정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사랑입니까? 이 사랑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입니다. 환경에 따라서 수시로 요동치는 입에 발린 사랑이 아닙니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손해가 오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가정의 식구들을 위해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 사랑이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희생적입니다. 성도의 가정에 희생적인 사랑이 넘칠 때 그곳은 이땅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는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가졌던 미국 대통령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는 1920년대의 경제 대공황 앞에서 절망에 젖어 있는 미국인들에게 계속 긍정적인 비전과 용기를 심어 주는 연설을 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정신을 조성했습니다. 

루즈벨트는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패배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 해에 캄포벨로의 여름 별장에서 찬물에 빠져 하반신 불수라는 치명적인 장애를 입었습니다. 쇠붙이로 받침대를 만들어 다리에 붙이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고, 옷도 자기 손으로 입지 못하고 두 다리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은 루즈벨트의 정치생명이 이제 끝났다고 단언했지만 그의 아내 엘레나만은 달랐습니다. 

어느날 루즈벨트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런 불구자가 되었는데 지금도 나를 사랑하오?” 엘레나는 미소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다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에요. 당신 전부를 사랑하고 있답니다.”이 말에 용기를 얻은 루즈벨트는 다시 삶에 활력을 얻어 미국의 대공황을 빠른 시일 내 수습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네 번에 걸쳐 대통령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또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을 지닌 엘레나 여사는 '흑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백인' 이라는 별명을 흑인들로부터 받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엘레나가 지닌 사랑 때문입니다. 그녀의 사랑이 남편에게 용기를 더했고 용기를 얻은 루즈벨트는 미국을 바로 이끈 위대한 일을 해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은 고린도전서 13장일 것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러분의 가정은 이런 사랑의 열매들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식구들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을 때 온유함으로 오래 참습니까? 교만한 마음으로 무례히 행하는 식구는 없습니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희생의 사랑 위에 세워진 성도의 가정입니까?


3. 성도의 가정은 말씀으로 거룩하게 세워지는 곳임 (= 말씀에 의해 이끌림 받는 곳) 

26-27절=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크리스찬의 가정이 다른 가정과 현저히 다른 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어 거룩하게 세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본절에서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물로 씻는 행위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행위와 관련짓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구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말씀에 의해 물의 씻음으로 깨끗하게 하여’ 가 되는데, 이것은 물로 씻는 행위(=세례)와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행위가 동시적인 행위임을 잘 보여줍니다. 

여기 ‘말씀’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로고스’ 가 아닌 ‘레마’ 입니다. 이 둘을 비교하자면 ‘로고스’ 는 말씀 자체 또는 말씀으로 비유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반면에 ‘레마’ 는 입 밖으로 나온 진리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특히 공예배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행해진 말씀을 염두에 두고 쓰인 표현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교회의 예배를 통해 받은 말씀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세워지는 가정입니다.

성도 여러분! 크리스찬의 가정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이끌림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가정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가치 기준이요 원동력이 되는 가정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주님의 방법입니다. 가정은 말씀으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11).

하나님 말씀 없이 우리는 깨끗한 집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신 이유는 말씀으로 정결케 하사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예배에 참여하여 하나님 말씀을 받아 거룩하게 되는 것은 바로 가정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은 말씀에 의해 이끌림 받고 말씀에 의해 지배당하는 가정입니다. 일찍이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을 보십시오.

신 6:1-2=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신 6:6-9=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성경 말씀을 존중하는 가정입니까? 교회에서 배운 말씀으로 여러분의 가정은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습니까?
말씀을 사모하고 존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도가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말씀의 통치를 받는 만큼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에 우리의 가정과 우리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읍시다. 혹시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의 자녀에게 기울여야 할 신앙적인 관심을 다른 곳에 쏟아 붓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좌정하여 다스리셔야 할 자리에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주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곳입니까? 주님을 경외하는 가족들이 쌓는 가정 제단(altar)은 여러분의 가정의 미래와 운명을 바꿔놓을(alter)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방법으로 강한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 가정은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한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진 곳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바로 이런 참 성도의 가정이 되어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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