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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법(法)과 도리(道理)

  • 최한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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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과 도리(道理)


몇 년 전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혜화동 어느 간이음식점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젊은 샐러리맨들이 주인인 아주머니를 호되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이유는 이러하다. 젊은이들이 먼저 와서 칼국수를 주문하고 틈새를 이용해서 목이 마르니까 맥주와 안주를 청해 한 두 잔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보다 늦게 들어온 40대 후반쯤 되는 손님 앞으로 칼국수가 먼저 배달되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격분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먼저 청한 자기들보다 왜 늦게 청한 사람에게 먼저 주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시키는 대로 주었다면서 몇 번이나 사과를 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장사를 이렇게 해도 되는가요?”라며 기세가 등등했다.

이 정도가 되니까 먼저 받아 멋도 모르고 칼국수를 먹던 40대 후반의 사람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때 주방에서 빈대떡을 부치던 할머니가 손에 주걱을 들고 허겁지겁 등장했다. 성미가 괄괄한 할머니가 젊은이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젊은 양반들이 왜들 이러시오. 내가 저쪽에 먼저 드리라고 했소. 이 분이 좀 늦게 오시기는 했지만 달랑 앉아서 기다리는 게 뭣해서 먼저 드리라고 했소. 한 발짝 먼저 오고 나중 온 게 뭐 그리 중하우?”라고 하였다.

그러자 젊은이들이 “그래도 먼저 온 사람에게 먼저 주는 게 법이잖아요?”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가 “아니, 사람이 어찌 법으로만 살아가우? 나중에 왔더라도 젊은이들이 한 잔 자시는 동안 저 분에게 먼저 드리는 게 도리 아니요? 젊은이들이 어찌 그리 빡빡하우?”라고 소리쳤다. 주변이 있던 손님들이 “젊은이들이 조금 참지. 1~2 분이면 나올 텐데”라고 하였다. 다수의 여론이 그러니까 수그러들면서 멋쩍은 웃음을 띄었다. 

법을 앞세우는 서구문화의 상식에 젖어온 젊은이들이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라고 큰 소리 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세등등한 젊은이들 앞에서 아주머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리를 앞세우는 문화 속에 살아온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행동이 답답하고 어긋나 보였다. 그래서 “어찌 법으로만 살아가우?”라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여론은 당연히 할머니의 편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젖어온 전통적인 토양이기 때문이다.

법은 인간관계를 분별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더욱 그렇다. 법이 인간관계를 이끌어갈 때 그 사화와 관계는 매마를 수밖에 없다. 안식일의 규범을 수십 가지 정하여 지키려했던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인간 사회는 도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데 오늘날 불행하게도 도리가 점점 사라지고 법이 우선시 되고 있다.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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