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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가정의 제사장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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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제사장 (엡 6:4)  

이런 말이 있죠. “농사 중에 제일 힘든 농사가 자식 농사이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않는 게 두 가지 있는데, 골프하고 자식이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 이 두 가지뿐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정말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자식 문제입니다. 세상에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끌탕을 합니다. 개중에는 속을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는 자녀들도 있겠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자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걱정을 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우리 애는요,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반찬 투정도 안 하고, 용돈 달라고 조르지도 않아요.” “우리 애는 반항도 안 하고 싸움도 안 해요. 늦게 들어오는 일은 절대 없고요.” 두 사람의 말을 듣던 다른 아주머니들이 묻습니다. “정말 좋겠네. 그런데 애가 몇 살인데?” “며칠 전에 돌 지났어요.” “그쪽은?” “우리 애는 100일 됐어요.” 그 말에 아주머니들이 박장대소하며 말합니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이상하더라.” 우스갯소리지만, 무슨 말인가요?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자식 키우는 게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이나 우리 주변을 보면 부모 본인은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 같은데 자식 농사를 망친 사례가 왕왕 있습니다. 다윗, 사무엘, 솔로몬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본인이 아무리 인생을 열심히 살았어도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인생은 절반의 성공으로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식을 주신 것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엡6:4은 우리에게 이런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강조합니다. 4절(상).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 ” 여기서 노엽게 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잘못된 양육으로 인해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한 기관에서 서울 시내에 거주하는 청년 400명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응답 중 1위는 부모였는데, 무려 39.2%에 달했습니다. 부모들이 들으면 억장이 무너질 이야기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더 자녀 양육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과 더불어 어려움을 토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 양육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지혜만으로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 양육에 막연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보증하시는 올바른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부모의 위치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앞서도 잠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 부모는 어디까지나 자식을 맡은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자식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모는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녀들과 가족들을 하나님께 잘 인도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하나남 앞에서 부모로서의 자세를 가다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과 성경 전체가 제시하는 자녀 양육의 3대 원칙이 있는데, 차례대로 소개해 드립니다. 
  
[1] 부모는 성경 교사 : 가르치라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한 성경 교사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4절(하). “ ...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헬라어 성경에 사용된 단어를 보면, ‘교훈’은 책벌을 통한 양육이고 ‘훈계’는 충고를 통한 양육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일관성과 균형입니다. 부모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해야 된다며 지나쳐서 과잉보호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바르게 공의롭게 키워야 된다며 너무 엄하게 다루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게 무엇일까요? 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양육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경을 가르치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매뉴얼’입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출시할 때 제품사용설명서를 끼워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에 내보매시면서 ‘인생사용설명서’인 성경을 끼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며 살아가니까 나 자신의 인생도 문제, 또 그런 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니까 자녀들의 인생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딤후3:16~17 보면, 성경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 설명해 줍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인간이 기록한 것 같지만, 그 기록 과정에서 성령으로 영감이 되어 오류 없이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실천하면 반드시 행복한 인생, 보람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신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성경대로 살면 자자손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인생을 보장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자신의 인생과 자녀들의 인생을 위해 제일 좋은 게 바로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일반 교육, 특히 지식 교육에는 얼마나 열심을 기울이며 투자를 많이 합니까? 학군이 좋다는 지역은 물론이고, 심지어 소문난 학원이 몰려있는 지역은 아파트 값이 올라갈 정도입니다. 지식 교육을 시키지 말라거나 대충 하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만 매달리다 더 중요한 본질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말할 게 없고, 그리스도인들조차 지식 교육에 투자하는 열심에 비해 성경 교육은 너무 소홀히 합니다. 1주일에 고작 몇 시간 되지 않는 주일학교 교육에 맡겨놓고 방치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주일학교에서 시간만 조금 더 사용하면 항의 전화하는 부모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고학년이 되면 대학 입시를 핑계로 아예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는 간 큰 부모들도 있습니다. 이건 한 마디로 신앙의 조기 졸업을 시키는 겁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간 후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큰 오산을 하는 것이고, 두고두고 하나님께 책망 받을 일입니다.   

실리적으로 따져 봐도 성경 교육은 아주 유익합니다. 지식 교육과 인성 교육 등 전인교육을 위해서도 성경 교육이 최고로 좋습니다.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현재적으로 그런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이스라엘 본토와 미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 걸쳐 겨우 1천 5백만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를 쥐락펴락합니다. 특히 미국 같은 데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의 경우 매년 그 수상자 명단에서 유대인이 빠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들이 다른 민족에 비해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교육을 통해 천재가 되는 겁니다. 그 교육의 핵심이 바로 부모 중심, 가정 중심, 성경 중심의 교육인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 원리가 나와 있습니다. 신6:6~9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가정에서 생활의 현장에서 부지런히 성경 말씀을 가르치라는 겁니다. 이를 위해 부모 본인부터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성경조기교육이 중요합니다. 세계화 시대에 흔히 영어조기교육을 강조합니다. 좋은 것이죠. 그러나 성경조기교육은 더욱 더 중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부모가 자녀들에게 성경교육을 통해 신앙을 잘 세워주는 것은 가장 큰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조금 물려주는 것이다. 지식을 물려주는 것은 많이 물려주는 것이다.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전부를 물려주는 것이다.”   

아무쪼록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침으로 하나님 앞에 칭찬받고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부모는 인생의 모델 : 본보이라  

부모는 자녀들을 위한 인생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때때로 잊어버리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가르치는 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가르친 대로 즉 들은 대로 배우는 게 아니라, 본 대로 배웁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을 보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거울과 같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라는 이름의 거울을 보며 자랍니다. 이런 말을 하면 저부터도 겁이 덜컥 납니다. 실수도 많고 부족한 게 너무나 많은데, 그러면 혹시 내가 자녀들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겁니다. 우리로서는 자녀들이나 후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더 나아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도록 우리 자신부터 신앙생활을 잘 하자는 말씀입니다. 자녀들은 가정의 ‘감시 카메라’입니다. 각기 두 개의 감시카메라(=눈)를 갖고 있는 이동식 감시 카메라입니다. 때로는 부모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부지불식간에 부모가 좋은 모델이 되기도 하고 나쁜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녀 양육에 실패한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개 본을 보이지 못한 데에서 실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죠. 잠언은 그가 지은 책인데, 거기 보면 “내 아들아!” 이런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보죠. 

잠1:8,10 “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 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여기서 솔로몬의 아들은 르호보암을 가리킵니다. 그가 책을 지어서까지 가르쳤으니 얼마나 열심히 가르친 겁니까? 그런데 르호보암의 인생은 철저히 잘못 됐습니다. 

대하12:14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신앙생활이 엉터리였고, 행실이 악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대하11:21 “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 ”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나요? 가정에서 솔로몬에게 배운 겁니다. 그렇다고 솔로몬이 부인 많이 얻으라고 그르쳤겠습니까? 솔로몬이 처첩 1천 명을 거느리고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겁니다. 그런 가정, 그런 인생이 얼마나 복잡하고 불행했겠습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르호보암 재임 당시 치명적인 과오가 있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겁니다. 북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을 초대 왕으로 시작됩니다. 반쪽 남은 남 유다는 르호보암이 다스렸습니다. 그나마 평화로우면 좋으련만, 남북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왕상14: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그렇다고 부모가 완전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완전한 부모는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가 혹시 부족해도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바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가상히 보시고 자녀들의 마음을 붙잡아주십니다.   

강영우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중도 실명한 시각장애인이죠. 자살을 시도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소망을 갖고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결혼 후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대학 교수도 하고, 부시 행정부에서는 장애인인권위원회 차관보도 지냈습니다. 두 아들들도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서 훌륭한 인재가 됐습니다. 큰 아들은 안과 의사로 의료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작은 아들은 변호사로 오바마의 법률 특보로 백악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의 양육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 중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큰 아들이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하나님께 아빠를 바꿔 달라는 겁니다. 다른 아빠들은 아이들과 야구도 하고 자저건도 타는데, 자기 아빠는 못 하니까 그런 아빠로 바꿔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기 막히고 가슴이 아팠지만, 조용히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미안하구나. 하지만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 선생님이 되면 아빠를 고쳐 줄 수 있지 않겠니?” 아빠의 진심이 통해서 그 아들이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물론 의사가 된 후에도 시각장애를 고칠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 됐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게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해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고,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3] 부모는 기도의 중보자 : 기도하라   

부모는 자녀를 위한 기도의 중보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물질 문제만 해도 어떻습니까? 자녀들이 요구하는 대로 충분히 공급해 줄 수 있습니까? 버겁죠.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작은 겁니다. 자녀들이 성장해 갈수록 산 넘어 산입니다. 결국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은 어릴 때도 못해 주는 게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아플 때면 속수무책입니다. 아프다고 울어대는데, 말이 통합니까? 어디가 아픈지도 모릅니다. 대신 아파 줄 수도 없습니다. 조금 커서 학교에 가면, 대신 공부해 줄 수 없습니다. 대신 시험 봐줄 수도 없습니다. 졸업하면 취직해야죠. 아들은 군대도 가야죠. 결혼 시켜야죠. 결혼하고 나면 잘 살아야죠. 자식 낳아야죠. 손자손녀 보면 걱정해야죠. 눈 감을 때까지 자녀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보다 못해 주는 게 더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도가 있잖아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주변에 보면, 간 큰 부모들이 많아요. 다른 것은 열심히 해주면서 자녀들을 위해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된다고! 속히 백기 들고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저의 가정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목회자 가정의 자녀 양육도 여느 가정과 비슷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마냥 좋기만 했습니다. 저절로 잘 자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큰 사고를 친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뜻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갈등도 많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새벽 곤고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애들 걱정 마라! 네 새끼가 아니라 내 새끼니까 내가 책임진다.” 그 후 마음에 평안이 임했고, 자녀들 문제로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전에도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노력에 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확신 가운데 기도할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자녀들 문제가 기대 이상으로 풀리게 됐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현재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자녀 양육의 하이라이트, 자녀 뒷바라지의 마무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기도로 극복하면 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자녀와 함께 기도하고, 자녀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합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대표는 한나입니다.(사무엘상 1장~2장) 자식이 없어 논물로 기도했던 한나에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 후 평생 아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사무엘은 요즘 식으로 말해서 기도 대통령이 되어 암흑 같은 사사 시대를 태평성대로 바꾸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기도하는 아버지의 대표는 야곱입니다.(창세기 49장) 그는 임종 직전 12 자녀를 위해 각각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그후 역사를 보면 기도한 그대로 됩니다. 아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12 지파의 조상이 되고, 이스라엘은 큰 민족이 됩니다. 손자들까지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히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부모는 가정의 제사장으로 자녀를 마음껏 축복하며 기도하는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질서 상 목사만 안수 기도를 하지만,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마음껏 축복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겁니다. 이 사실을 꼭 믿으시고, 기도로 자녀들의 인생을 가꾸어 가시기 바랍니다. 자식의 장래는 기도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부모가 기도함으로 자녀들이 잘 되고, 우리 자녀들이 기도의 사람이 됨으로 자자손손 신앙의 가문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유명한 맥아더 장군의 기도(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기도)를 소개해 드립니다. “주여! 저의 자식이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며,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 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해 주소서! 그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는 높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그 위에 유머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자기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것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어버이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   

매년 돌아오는 어린이주일! 다시 한번 우리의 자녀 양육의 모습을 반성하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녀를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의 자녀들의 인생이 빛나고, 우리 자신도 그로 인해 하나님 앞에 자랑스러운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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