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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부모의 축복하는 손 (막 1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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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축복하는 손 (막 10:13-16)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아마 여러분도 시청을 하셨을 텐데요. 며칠 전 TV 저녁 9시 뉴스에 우리나라의 청소년들 중에 가출한 청소년 숫자와 그 실태 현황이 어떤가를 TV에서 보도를 했습니다. 

제가 그 9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가출한 청소년 숫자가 2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2만 명도 아니고 20만 명이라고 합니다. 기자가 그 가출 청소년들이 있는 곳을 방문해서 촬영을 해서 아이들하고 인터뷰를 한 것이 TV에 나왔습니다.

물었습니다. 왜 집을 나오게 되었는가? 그랬더니 아이들의 대답이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갈 데가 없어요. 아버지한테도 어머니한테도 갈 수 없어서 집을 나왔다. 어떤 아이는 아버지가 때려요. 그래서 무서워서 도망 나왔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는 학교 다니기 싫어서, 또 어떤 아이는 유흥비를 벌려고 나왔고. 뭐 이런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습니다.

가출을 했으니 어디서 잘까요? 밤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끼리 여자아이들, 남자아이들이 길 거리에서 담배 핍니다. 밤이 늦어서 기자가 또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잘 건데? 그랬더니 어떤 음침한 골목에 가서 어떤 아이는 거적을 뒤집어쓰고 자고 어떤 아이들은 모텔에 가서 자고 어떤 아이는 상가 귀퉁이에 가서 잔다고요.

남자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 토요일에 아이들이 학교 일찍 끝나니까 학교 앞에 가서 아이들이 나올 때 때려서 돈 뺏어서 용돈 쓰려고 한다. 여자아이들한테 물었습니다. 도대체 용돈은 어디서 나서 쓰냐고 했더니, 인터넷이나 전화로 남자를 꼬여서 성매매해서 돈을 법니다. 

가출 팸이라는 말이 생겼답니다. 가출한 아이들끼리 모여서 가족처럼 사는 가출 패밀리라고 하는 말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저는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대체 한국에 있는 많은 7만 여개나 되는 교회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가정 해체를 경험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어 가면 갈수록 가정은 점점 피폐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들 가정의 현주소를 한 번 되돌아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안전한가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고통당하고 외로워하고 점점 갈 데가 없어 가출한 것,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가출을 한 것인지 아이들이 탈출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엄마 아버지한테 혹독한 폭력을 당하고 그래서 집을 가출한 것이 아니라 탈출해 나왔다는 것이지요. 가끔가다 교인 중에 제게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목사님, 우리 아이가 집을 나갔는데 몇 년째 소식이 없습니다.” 얼마나 부모님의 마음이 아플까요. 우리 교회 교인 가운데도 이런 분들이 있을 수 있지요. 교회 다니는 가정이라고 그런 일이 없습니까? 물론 일반 가정에 비해 적겠지요! 그러나 얼마든지 이런 불행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고 우리도 이런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함께 오늘 부터 시작해서 가정의 가치와 가정의 소중함,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은 없을까? 이런 것을 함께 고민해 보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들 가정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잘 전하시고 능력 있는 위대한 선지자 랍비이신 것을 경험했던 아버지들이 자기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 우리 아이를 축복기도 해 주세요.” 라고 부탁하니까 제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을 꾸짖어 돌려보냅니다.

지금도 그렇고 이스라엘 때 사회에서는 유능한, 훌륭한 랍비에게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기도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온 것을 막고 꾸짖어 되돌려 보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광경을 보시고 마음이 너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며 화를 내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야기 하니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는 오묘한 말씀을 하신 후에 부모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시고 가슴에 껴안고 아이들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안수 축복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보여준 행위와 예수님이 보여주신 행위가 아주 극단적으로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어린 자녀들을 소중히 여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첫째, 부모는 항상 자녀를 가장 귀한 존재로 여겨 받아 줄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오는 어린아이들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데리고 오는 부모를 꾸짖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 가지 가능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을 너무너무 사랑했고 보호하려고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지금 피곤합니다. 어린아이들 아니고도 돌봐야 할 사람들이 너무 너무 많아요. 그런데 무슨 애들까지 데려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을 보호하고 예수님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애들을 데려온 부모들을 꾸짖어 내 보낸 것입니다.

두 번째, 진짜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던 이유는, 아이들을 미천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사람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하고 있는 성경의 저자들은 남자의 숫자가 5천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날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남자만 이었을까요? 거기에는 어린아이도 있고 도시락 오병이어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져온 사람이 남자 어른이었나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는 어린아이도 있었고 여자들도 있었는데 성경을 기록한 네 사람이 여자와 어린아이는 숫자에 넣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모들이 애들을 데려왔을 때 애들을 돌려보내라고 야단친 이유는 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속에 어린아이는 인간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보잘것없이 취급한 것이지요.

세 번째, 이 아이들의 필요와 욕구는 너무너무 하찮은 것이라 들어줄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보호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는 제자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생각이었습니다. 애들이 뭐!.......

인격적인 존재로 귀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에게 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오히려 제자들에게 화를 내며 꾸짖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천국은, 하나님나라는 이 어린아이와도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어린아이들을 가장 귀한 존재로 대하셨을까요? 어린아이들을 가장 귀한 존재로 대하고 인정했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상급이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27편 3-4절) 어는 부모님이 아이들 듣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는 너 낳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런데 어쩌다가 생겼어. 그러면 그 아이가 듣고 나는 계획된 가족계획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라 실수로 나온 것이었어. 그러니까 애당초 부모님은 나를 원하지 않았는데 내가 실수로 나와서 부모님을 괴롭히고 있네. 이렇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그 부모에게 준 선물이고 상급이다. 귀한 것일수록 귀하게 취급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모에게, 가정에 이 아들, 이 딸이 필요해서 준 것입니다. 가장 귀한 선물이기 때문에 준 것인데 부모는 가볍게 여깁니다. 

제가 만년필을 잘 사용합니다. 몇 해 전 제 생일에 우리 아이들이 자기들의 용돈을 모아서 좋은 만년필을 선물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나 어떤 작업을 해도 꼭 만년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만년필을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와이셔츠에 넣고 난 다음에 와이셔츠를 모르고 빨래 통에 넣었는데 제 아내가 확인을 안 하고 만년필째 세탁기에 넣었습니다. 이게 돌고 돌다가 문틈에 끼어서 한 달 동안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만년필을 잃어버렸다고 아이들에게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정성을 모아 아버지 생일에 선물을 한 것인데 제가 가볍게 여겨 잃어버렸다고 할 것 같아서요.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고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표정이 안 좋아요. 그렇지요? 자기들 나름대로 비싼 돈 들여서 좋은 만년필을 사주었는데 아버지가 소홀히 다루었다. 이거 아닙니까? 저도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다시 찾은 다음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 만년필을 잃어버리지 않으마. 소중한 것일수록 사람들은 소중히 다룹니다.

우리의 자녀는 왜 소중하고 귀한 존재냐 하면, 왜 우리가 우리들의 자녀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들 가정에 주신 귀중한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 조금 못 났을 수 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자녀는 우리가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준 아름다운 선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세를 가지셨기 때문에 아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두 번째, 이 아이들이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장성한 사람이고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에게만 인격이 있고 감정이 있나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의 인격이 있고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 의지가 있는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그러니까 유대 사회는 온전한 인격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숫자에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린아이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 하고 눈높이에 맞게 대해 주지요.

세 번째, 아이들의 삶에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이 문화, 아이들의 모든 것들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보기에는 아이들이 유치한 것 같아요. 아이들의 삶이 다 모자란 것 같고 잘못된 것 같지만 그러나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려왔을 때 아이들을 내 보낸 것은 아이들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를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이 아이들을 예수님처럼 아이들을 귀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려면 아이들을 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어에 burden(버든) 짐인데 짐이 아니라 blessing(블레싱)입니다. 축복이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는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이요. 상급이라.” 여러분과 제가 즐겨하기 위해서 상으로 자녀를 주었고 상급으로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짐이 아닙니다.

부모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만 없었다면 우리가 잘 살 수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 아이들 앞에서 할 수 있습니까?

얼마 전에 저희 막내가 학교 갔다 왔는데 조금 우울해 했습니다. 왜 우울한지 물었더니 자기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어저께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기한테 와서 부모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해서 우울했다는 것입니다. 1년 전부터 부모가 사이가 안 좋아서 이혼하네, 별거 하네 해서 그 친구가 너무 너무 힘들어 성적도 떨어지고 울어서 자기가 마음이 굉장히 안 좋았었는데 결국은 이혼했다는 것은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 막내가 저를 딱 보며 하는 말이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면서 하는 말이 “아버지, 아버지 엄마하고 이혼하지 않을 거지요?” 불똥이 나한테 튀었네. 아이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사회의 잘 못 된 것이 부모가 아이들을 짐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 몸의, 내 분신이라고 생각해 부모가 잘 못되어 자살하게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자살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도 본 이야기지요. 7살 난 딸을 둔 엄마가 남편하고 이혼하게 됐습니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했습니다. 이 아내가 딸 하나 데리고 살다가 어떤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하려고 하는데, 이 딸이 혹이라. 새로 만난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면 되는데 새로 만난 남자도 이 아이를 별로 안 좋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엄마가 딸 때문에 고민하다가 딸을 침대 커버로 씌워서 질식사 시켜 죽인 다음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시집을 갔습니다. 이것이 사람인가요? 아이가 짐이고 혹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이에 대하여 축복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너 때문에 엄마 인생 망치고 너 때문에 아버지 인생 망쳤다. 이런 이야기 나올 것 아닙니까? 우리가 아이를 귀한 존재로 여기려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기쁘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선물이요 상급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귀한 존재로 여기려면 율법으로 대하면 안 됩니다. 율법으로 대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성실하고 사고치지 않으면 아이들을 용납하고 받아주고 축복해 주는데, 만약에 아이가 공부도 못하고 사고치고 다니면 아이를 아예 내 놓습니다. 야! 호적 파가. 더 이상 부모자식의 관계를 맺지 말자. 이것이 부모가 할 말입니까? 그러니까 부모의 생각 속에 똑똑하고 잘 나고 부모 속 안 썩히면 자식이고 속 썩이고 말썽 피우면 자식 안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그렇게 인연을 끊을 수 있는 것인가요?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을 축복하지 않는 이유는 자식에 대하여 율법의 자대를 가지고 좋으면 삼키고 잘 못하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녀를 가장 귀한 존재로 여기려면, 아이들을 인정하고 받아주고 관심을 갖고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잘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범죄 하면 하나님께 쫒아가서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이 죄를 용서해주고 받아달라고 그렇게 회개 기도하면서,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서 잘못하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호적을 파가라고 하든가 이제 부자지간 끊는다고 합니다. 율법주의로 자기는 하나님께 은혜와 자비를 구하면서 자식에게는 율법주의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이중자대입니다.

요즘의 아이들이 가출이 아니라 탈출합니다. 왜요? 부모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부 못한다고 사고 친다고 멀리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를 주었을 때는 유능한 사람이 되라고만 준 것이 아니라, 그 아이 때문에 행복과 기쁨과 평화를 경험하라고 우리들에게 준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귀한 부모가 되려면, 귀한 자녀를 만들고 싶으면 아이들을 율법으로 대하지 말고 포용하고 어떤 아픔과 고난과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품고 용서할 수 있는 부모가 되면 아이들은 그곳에서 편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부모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 라고 분명히 이야기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의 무엇을 닮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첫째로, 어린아이는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합니다. 아이들이 돈이 어디 있어서 학교를 다니나요? 자기들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누구에게 의존합니까?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부모에게 갖는 그 순수한 100% 의뢰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부모가 갖지 않으면 부모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둘째로는, 아이들의 순수함입니다. 깨끗함. 아이들은 부모가 말 한데로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함. 이런 것들을 엄마 아빠가 어른이 갖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되면,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그런 것을 배우고, 아이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할 수 있지요. 그렇게 자녀를 믿음의 길로 잘 인도하는 부모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이 어린아이들을 안고 품고 살을 맞대며 축복기도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13절)

만져 주었다는 말을 마가는 왜 그 본문을 기록했을까요? 만져주심을 바래서. 마지막 절에 보면 예수님이 아이들을 안으시고 손을 머리에 얹으시고 축복 안수 기도해 주었다. 왜 분명히 이런 단어를 강조했을까요?

마를린 몬로를 아시지요? 마를린 몬로는 유명한 배우였지만 어린 시절은 아주 불행하기 짝이 없던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버지가 가출을 했지요. 엄마가 그 일로 우울증 환자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우울증이 지나쳐 정신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7살 때 마를린 몬로가 위탁 가정에 보내져서 남의 가정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마를린 몬로가 16살에 시집을 갔는데 그 전까지는 고아원 위탁 가정을 전전 긍긍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어떤 뉴욕타임즈의 기자가 마를린 몬로가 영화배우로 한참 잘 나갈 때 인터뷰를 했습니다. 뭐라고 인터뷰를 했냐 하면, “몬로씨, 당신의 지나온 일생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라고 물었더니 마를린 몬로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는 말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마를린 몬로는 16살 때 자기를 길러주고 있는 양부모의 소개로 이웃집 남자와 결혼 했습니다. 4년 살다가 이혼했는데요. 16살에 결혼해 20살에 이혼하고 38살인가에 약물과다 복용으로 죽었습니다. 그 때까지 두 번 더 결혼하고 이혼했습니다. 그러니까 3번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많은 남자들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마를린 몬로와 잠을 잤다고, 아인슈타인의 큰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자기에게 한 이야기를 아들이 공포해서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를린 몬로가 이 기자의 물음을 듣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딱 한 번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8살 때였다. 첫 번째 위탁가정에 있을 때인데 그 위탁가정의 양 어머니가 어느 날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하는데 내가 그 등 뒤에서 가만히 보니까, 그 엄마가 화장을 하다가 웃으면서 자기에게 와 웃으면서 자기의 볼을 만지면서 그 양 엄마가 쓰고 있던 루즈로 입술을 칠해주고 화장을 해 주었는데 그것이 불과 몇 초였다. 그런데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내 피부를 닿는 것을 경험했고 그 때 나는 생애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딱 한 번이었다. 그 후에 수도 없이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했지만 한 번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피부에 닿는 것은 얼마나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남성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기의 아버지에게서 따뜻한 보살핌과 피부접촉 스킨쉽을 해 오지 않아 남성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잘해주는 동성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부접촉이요? 이것은 사람을 가깝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와 예수님께 만져 주시기를 원했다. 라고 하는 말은 그 이야기를 아셨던 예수님께서 맨 마지막에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가슴에 품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해 축복기도 해 주고 껴안아 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첫 번째, 하나님은 부모에게 축복의 권한을 주셨습니다. 부모에게 양손을 준 것은 이것 가지고 아이들을 때리라고 더러운 일 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축복하고 싶어도 부모가 축복해 주지 않으면 자녀를 축복해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녀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껴안고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축복을 부모의 손을 통해 하신다는 이야기 입니다. 

두 번째로, 만지고 스킨쉽 한다는 것은, 이것은 아이들 스스로 느끼기에 부모님이 나를 존중하고 나를 인정하고 받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그럴 때 무한한 평화를 느끼게 되지요.

세 번째, 아이들의 마음속에 안전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안고 축복기도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습니다. 며칠 있으면 어린이날이 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장성했든 분가했든 관계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한 번 안아 주시고 뺨을 비벼봐 주시고 껴안고 만져주시고 자녀를 위해 축보기도해 줄 때 자녀들은 아버지가 엄마가 나를 인정하고 받아 준다고 생각을 하고 그 순간 자녀들은 평안함과 안전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이 행복한 건강한 가정이고 이런 가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가 건강해지고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건강해질 때 우리교회에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건강을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만 가면 건강해지는 가정을 만들 수 있다. 여러분을 통해 이 일이 가능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건강한 가정, 여러분들 때문에 우리교회가 건강해지고 이번 5월 한 달 동안에 여러분의 자녀를 마음껏 축복해 주어서 여러분의 자녀가 기뻐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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