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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거짓이 없는 믿음을 물려주신 어버이 (딤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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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 없는 믿음을 물려주신 어버이 (딤후 1:1-8)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아 우리 교회의 모든 어버이들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버이주일이라고 하기 전에 어머니주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국가적으로 오늘 5.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키는데, 예전에는 어머니날이었습니다. 1956년 국무회의에서 5.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17회까지 지켜오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정한 목적은 범국민적으로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정신을 가르치고 선도하며,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계승 발전시키며, 효행자와 전통 모범가정과 장한 어버이를 발굴하여 포상하며 격려할 목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미국은 5월 두 번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6월 세 번째 주일은 아버지의 날로 보내면서 이 날은 아버지들에게 장미를 선물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어머니날이나 어버이날을 지키는데, 조금씩 다릅니다.  어머니날에 장미나 난초를 선물하는 나라들, 반지나 초콜릿을 선물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합니다”라는 따뜻한 한 마디의 말씀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모님을 찾아가거나 전화로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생전 안해보던 말을 하기가 어려우니 교회에서 한번 연습해보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잘 했습니다.  이제 한번 실제로 하셔야 합니다. 

아직도 저는 빨간 카네이션을 달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 있지만, 금년에도 살아계시기에 저는 당당히 빨간 카네이션을 달 수 있어 감사합니다.  4남매의 아들과 자부들, 딸과 사위가 아버지를 모시고 노인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서 위로하고 그동안 수고하셨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제가 대표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붙잡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자기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고 하셨습니다.  

같은 십계명인데 신명기에서 좀 더 자세하고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부모를 공경하며, 효성을 다한 사람에게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서 그의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린다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이 있다고 하셨고, 그 땅에서 그의 생명이 길다, 장수의 복을 주시고, 복을 받으며 그 복을 누린다고 하셨습니다.  

엡6:1-3에서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골고다에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이모되시는 살로메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과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위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사도요한이 어머니의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사명 완수의 정신도 본받고 배워야 하지만, 주님의 마지막 어머니를 염려하고 어머니의 노후를 걱정하여 제자에게 맡기시는 그런 효성스런 마음도 본받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황량한 벌판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같이 던져버리지 않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 보내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하여 정말 헌신적이었고, 자식이 우상이라고 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길렀습니다.  자기 자식이 힘들어 할 때면, 어머니는 당신이 모자라고 부족하여 자식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자식이 잘 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미천한 당신에게 넘치는 은총을 부어주셨다고 좋아하시면서 감사하였습니다.  

예전의 우리네의 가정들이 다 힘들었습니다.  자식들은 많지요, 공부는 시켜야 하지요.  경제적으로 힘든 중에 자식들을 공부시키려고 하니,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자식들에게 학용품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해야지요.  참고서라고 사주어야지요.  아이들은 커져만 가는데 입힐 옷은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날마다 울면서 간구하였습니다. 

일전에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라는 글이었습니다. 

오래 전 시외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것은 불과 10여 분 안팎의 일이었습니다. 만원버스도 아니었고 정류장마다 멈추는 시간이 그리 철저히 지켜지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버스 기사가 엔진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데, 승객 중 한 사람이 버스를 타려는 사람을 발견하고 말했습니다.   “저기 할머니가 오십니다.”  

버스 기사가 바라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한 할머니가 무언가 머리에 인 채 버스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기다릴 거요?”  버스에 타고 있던 어떤 승객이 바쁘다면서 서둘러 떠나기를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버스 기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 가시지요?” 승객은 할 말을 잃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창가에 앉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버스 밖으로 모아졌습니다.  머리 위의 짐을 받아든 청년은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잰걸음으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치자 마치 전염된 듯 너나없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마지막의 글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라는 말이 감동적인 말이었습니다.  우리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다 우리의 부모와 같습니다.  우리들이 존경하고 함께 모시고 위로하고 힘이 되어드려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경로사상이 희박해져 가는데 우리 교회는 경로효친사상을 강조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요즈음 자녀 노릇하기도 참으로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은 오래 사시지요.  노후에 모셔야 하는 시간이 너무나 긴 것도 마음으로는 잘 모시려고 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요즈음 자녀 교육비가 좀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이 낳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자식에게 쏟은 정성만큼 부모님에게는 그렇게 정성을 쏟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아들은 “낳았을 때는 1촌, 대학에 가면 4촌, 군대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를 낳으면 동포, 이민 가면 해외동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데, 아내가 잘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딸 가진 부모님들이 딸들을 잘 교육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모시는 것을 귀한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모님을 대할 때에도, 자식을 기르고 형제를 대하는 것도 성경 말씀대로 하면 잘 됩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부모님을 잘 모시고 공경하면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들이 다 잘 살고, 사회적으로도 훌륭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긍정적인 말씀만 주신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말씀, 저주의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복이요, 거역하면 저주도 있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로 누구하고 싸우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꼭 모셔야 하는 사람인데 모시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 노릇하지 못한다는 상실감 때문에 쉽게 분노하고 참지 못하고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들은 절대로 다투지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게 하려고 아내와도 싸우지 않으려 합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면서 잘 싸우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표적인 한인교회 10여개 교회가 머리가 터지게 싸우고 갈라졌습니다.  미국교회들이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 때문에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회학자가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였는데, 미국에 이민가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을 버리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고 도망쳐온 상실감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인간성을 무너지게 만들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시는 성도들은, 아직은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는 느낌도 있겠지만, 자존감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 보기에도 교육적으로 아주 좋습니다.  본이 되고, 귀감이 되는 법입니다. 

신명기27:16에서는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경홀히 여긴다는 말은 모욕하다, 치욕을 주다, 불명예롭게 하다, 멸시하다는 말입니다. 

잠20: 20에서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잠30: 17에서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정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가정은 좋은 부부로부터 이루어집니다.  가정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세우신 최초의 조직입니다.  가정은 부부의 두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며, 나 홀로 사는 것을 가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켜보시면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함을 아시고 돕는 배필을 지어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여자 곧 하와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마치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앞에 서 있는 신랑에게로 데리고 오는 것처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 때에 막 잠에서 깨어난 아담이 탄성을 지르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돕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라고 하여 도움, 원조 원군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주로 군사적인 지원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돕는다는 말은 완전한 승리를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군사적인 도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돕는 배필을 주셨기에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부부만이 평생을 함께 살아갑니다.  가정의 가장 기본 단위가 부부입니다.  단 두 형제만 남았는데 가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같은 두 사람이어도 부부만이 가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가정을 이렇게 사랑하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팀 라헤이 목사님과 부인 베브리 라헤이가 썼습니다. 이들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년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아 대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100점 만점에 25점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들 부부가 함께 산 것은 이혼이라는 해결책을 배격하였기 때문이요, 네 자녀 때문이었고, 이혼하면 목회사역이 끝나는 직업적인 필요 때문이었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내의 성격과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는 남편의 성품 때문에 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혼만 않했지 이미 갈라선 것이 다름이 없는 부부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성격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원만한 부부로 성숙하게 되었고, 성공적인 목회자로 존경받는 가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라헤이 목사님은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중에서도 부부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오레곤 대학의 토마스 홀메스 박사는 무려 25년간 인간에게 미치는 중대한 압박에 대하여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압박감을 가져오는 정도에 따라 생의 위기를 43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생의 압박을 주는 요인을 1위에서 10위까지를 적고 있습니다.  1) 배우자의 사망(100점)  2) 이혼 (73점)  3) 별거(65점) 4) 수감됨(63점) 5) 가까운 가족의 사망(63점) 6) 육신의 상해 혹은 질병(53점) 7) 결혼 (50점) 8) 해고(47점) 9) 부부의 화해(45점) 10) 은퇴(45점)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죄를 지어 수감되는 것과 육신의 상해와 질병, 해고 및 은퇴를 제외하고 모두다 가정과 관계가 있습니다.  홀메스는 가정문제란 적어도 다른 문제의 두 배의 압박감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가정은 우리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삶에 가장 큰 압박감을 주고 있습니다.  자기 가정에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는 사람만이 인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먼저 두 사람이 결혼하고 그 후에 자녀를 낳게 되는데 좋은 결혼과 좋은 부부관계가 이상적인 가정의 기본입니다.  가정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강력한 충고를 들어야 합니다.  자녀 때문에 부부관계를 파괴하거나 희생시킨다면 부부와 자녀 모두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독립하여 나가지만 부부는 50년 이상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아주 중요한 배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부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좋은 가정을 만드는 중요한 출발은 사랑과 이해의 좋은 부부관계에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 가정은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좋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어머니들은 율법에서 하라는 말씀과 하지 말라는 말씀을 귀가 따갑도록 들려줍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어떠한 사람이 되느냐를 가르칩니다.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의 거룩함, 올바른 행위, 좋은 성품을 개발해줍니다. 남편은 율법학교를 주관하고, 여성은 가정을 주관합니다.  남편은 회당과 율법학교에서 자녀들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가정에서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실천하도록 교육시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오고 선물을 주고 음식을 대접한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어버이주일이라고 하면 사실 부담스러운 날 중의 하루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로서의 그 신성한 책임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부모 되는 법”이란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미국의 현대교육철학을 잘 대변해주는 글입니다.  

“부모가 되는 법”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들입니다. 
비록 아이들이 당신과 함께 있지만
그들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주려고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녀들의 몸을 집에 둘 수는 있지만
그들의 정신을 속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정신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당신이 방문할 수 없고 꿈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은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세요.”

이런 글을 읽어보면 어떻게 자녀 교육에 힘써야 하는지 정답이 없습니다.   이런 주장은 미국의 현대교육철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서구화되어가면서 이젠 아이들의 정서와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 교회마다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들여옵니다. 대형교회들이 사고를 치니, 적은 교회에서는 아무리 힘쓰고 애를 써서 전도한다고 해도 주일에 새로 믿겠다고 나오는 완전 새신자, 초신자가 없습니다. 교회마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서 비상입니다.  이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자기 부모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보지 못한다는데 따른 실망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에는 부모라는 자리를 사표라도 내고 싶습니다.  

가정의 달이 되면, 부모노릇 잘못한 것 같아서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 믿어봐야 결국 우리 부모처럼 될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신앙생활에 대한 관심을 저버린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이 된 것은 그들의 가정이 작은 학교요, 회당이요, 적은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혼이 없고, 결손이 없는 나라, 꿈과 소망을 심어주고 격려하고 삶을 배우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사역이라는 것이 어떤 전문가의 할 일이 아닙니다.  가정 사역이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사역자가 되어서 잘 감당해야 합니다. 가족들끼리 사랑하는 사역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은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사랑과 믿음 안에 성장하여 초대교회의 위대한 선교사로 사도바울을 도와서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영성을 물려받았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청결한 양심이 있었습니다.  청결한 양심은 흠이 없는 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양심입니다.  디모데는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깨끗한 양심,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며 선하고 악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디모데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눈물이 있었습니다.  간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절대 위선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순수한 믿음, 오직 말씀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와 어머니 속에 있던 것이 디모데에게 흘러들어왔고, 그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르신들이 좋은 본을 보였기 때문이요, 아버지가 헬라 사람으로 영적인 교육에 소홀히 할 수 있었는데도 외할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았고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자녀된 사람들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존경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우리 부모된 이들은 자식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고 고귀한 영성을 물려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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