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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자녀,부모의 기업 (시 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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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부모의 기업,’.com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시127;1-5)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성도님들의 가정 가정 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부모가 되시고, 형통한 자녀들이 있는 그런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여러분, 잘 아시지만 가짜 복이 있고 진짜 복이 있습니다. 세상 복이 있고, 천국 복이 있으며, 육적인 복이 있고 영적인 복이 있습니다. 순간적인 복이 있고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가짜 복, 세상 복, 육적인 복, 순간적인 복이 아니라... 진짜 복, 천국 복, 영적인 복, 영원한 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서  진짜 복, 천국 복, 영적인 복, 영원한 복을 찾고, 누릴 수 있습니까? 성경 안에서, 믿음 안에서 이런 복을 찾아 누릴 수 있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십니다.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진짜 복, 천국 복, 영적인 복, 영원한 복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Happyness is not Born but Makeing” 행복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결혼식이 행복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듯이...행복한 가정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들까요?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앞장서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앞장서서 만드는 것입니다.  

가끔은 좋은 부모 밑에서도 불효하는 자식이 나오기도 하고, 좋지 못한 부모 밑에서도 효도하는 자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보편적으로 볼 때 효자는 좋은 부모 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효자가 먼저가 아니라 부모가 먼저라는 사실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버이 주일에 자녀들에게 설교하기보다는, 부모님들에게 자식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라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라는 설교를 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 째는, 좋은 부모에 대해서이고,  두 번째는, 잘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첫번째로,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좋은 부모를 그저 좋은 ‘Sponcer’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뒷바라지만 부족함 없이 해 주면 그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쉽게들 합니다. 그러나 좋은 부모란 좋은 스폰서가 아닙니다. 좋은 스폰서가 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자녀가 ‘좋은 부모는 돈 많은 부모다’ 라는 생각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자녀가 ‘부모는 스폰서하는 사람이다’는 생각을 우리에게서 배운다면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입니까?       

좋은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날마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간절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부모입니다. 옛날 우리들의 부모는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스폰서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물질이 아닌 기도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는 것으로 부모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눈물로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지금 우리나라는 그 부모님들의 눈물의 기도로 성장하게 되었고 세계가 놀랄만큼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좀 넉넉해지면서 많은 부모들이 기도를 잊어갑니다.  아이들을 비싼 것으로 먹이고, 비싼 것으로 입히며, 자녀들이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하게합니다. 그러면서 돈 많은 부모가 좋은 부모이고, 예전의 가난한 부모님들보다 지금의 자기들이 더 유능하고 훌륭하다고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돈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 자기 자녀들이 더 복을 받은 자녀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하여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눈물의 기도를 잊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입니다. 아멘이신가요?  
 
혹시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富者 부모가 좋은 부모이며, 가난한 부모는 나쁜 부모라고 가르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여 자녀들에게 좋은 스폰서가 되지 못하는 것으로 스스로 좋지 못한 부모라고 자학(自虐)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부모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되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입니다.  오늘부터 자식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날마다 좀 더 기도하는 부모가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잘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성도여러분, 사람은 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배웁니다. (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사랑은 말과 혀가 아니라 행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옛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교사요 스승이었습니다. 옛날의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예절을 배웠고 인생을 배웠고 신앙을 배웠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기 전에 미리 미리 부모가 나중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사실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보면서 남자의 역할을 배웠고, 어머니가 하시는 것을 보면서 살림을 저절로 배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 아버지처럼만 하면 된다’라고 아들에게 말하는 어머니가 드뭅니다. 오히려 ‘제발 너희 아버지는 닮지마라’ 합니다.  또 결혼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라면은 잘 끓인다’ 합니다. 집안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 보내는 것으로 다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나 학원에서 강의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설령 좋은 학교가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만 하겠습니까?  자식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스승과 교사는 부모입니다. 부모이어야만 합니다.  돈으로는 자녀에게 본이나 모범을 보일 수 없습니다. 
 
부모여러분, 내 아이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고 계십니까?  알아야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알려면 대화(對話)를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부터 자녀들에게 인생과 신앙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교사 같은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을 합시다. 도전하십시다.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부모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본을 보여야 할지는 이미 성경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오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의 내용으로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십계명 중에서 인간에게 주신 첫 계명인 5계명입니다.   둘째는 시편 127편 3절의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제 5계명입니다. 출20: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신약성경 엡6: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입니다.  

성경은 가장 먼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하나님이 땅을 주시며 그 생명이 길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는 자녀가 잘 되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신 하나님은 잠언 30:17에서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녀가 잘되고 장수하기를 바라지...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일찍 죽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그런데 자녀가 잘 되기를 위해서 ‘부모 공경과 순종, 즉 효도(孝道)’를 가르치는 것에는 소흘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효도야 말로 ‘약속 있는 첫 계명’이요,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분명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거짓말 하실까요?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효도를 삶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효도없는 자녀는 미래가 없습니다.  

구약 삼상 2장을 보면, 엘리제사장의 가정이 나옵니다. 아버지 엘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인데 두 아들은 방탕자였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무시하였고, 성전에서 일하는 여자들과 간음도 하였습니다. 그 가정에 하나님의 벌이 내립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삼상2:31-32)라고 했습니다.  

심판의 내용이 뭔가요? 그 가정에 노인이 없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 가정에서 장수의 복을 거두어 가신다고 합니다. 젊어서 죽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가정에 나이 드신 노인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이 축복을 잘 모르고 싫어합니다.  노인이 있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노인이신 부모 스스로도 ‘빨리 죽어야지’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귀의 생각입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는 잘못된 사회입니다. 부모님이 재산이나 많이 가지고 있으면 서로 모시려고 하고, 재산을 자녀들에게 다 나눠준 부모를 서로 모시려고 하지 않는 이 사회는 비 성경적인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생각을 용납하면 안 됩니다.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부모(父母)를 통해서 태어나게 했습니다. 부모가 없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언제인가는 우리 자신도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를 이 세상에 출생케 해야 하는 그런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이 관계를 일컬어 우리는 가정(家庭)이라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응답이 옵니다. 어떻게 옵니까? 평소 여러분과 관계(關係)를 맺은 사람들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가정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가정이라는 관계를 우리들에게 허락하셨습니까?  가정은 하나님의 어떠한 의도를 이 땅에 보여주고 있습니까?  부모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입니다.  왜! 하나님은 부모 공경을 엄숙하게 명령하고 있습니까? 부모님을 잘 공경할 때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모공경 안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제 여동생이 고아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원’에는 어린아이부터 고3까지 있습니다. 제 여동생이 돌보고 있는 한 여자애가 ‘원’에 있는 다른 남자애와 눈이 맞아 임신까지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낙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애가 낙태가 정말 되었는지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확인을 하더랍니다. 물론 그 여자애의 심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동생을 통해 들은 말로는... 원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버림받았다’는 피해감이 강하답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존재인 부모에게서 조차 ‘버림받은 존재’ 라는 생각에 자기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답니다. 자기를 함부로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원’에 있는 아이들은  ‘내 몸은 소중하니까요’ 하는 생각이 매우 부족합니다. ‘난 부모에게서도 버림받은 사람인데 뭐’하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자기를 버린 부모에 대한 미움이 나중에는 자기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결(純潔)개념이 약합니다. 자기를 함부로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낙태한 이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해 못합니다. 그 임신하고 낙태한 그 아이의 부모는 적어도 자기를 낳아주었지 않습니까? 생명으로 태어나 살아가게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는 뭡니까? 뱃속에 있는 자기 아기를 죽여 버렸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제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고 원망할 자격이 있나요? 자기는 아예 제 자식을 죽여 버렸는데... 부모는 나에게 생명을 주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해 준 것 만으로도 충분히 공경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적어도 고등학교졸업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잠잘 곳을 주며, 사람을 고용해 ‘엄마’ 라고 부르게 하면서 돌보아주게 하였습니다. 최소한 이상을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다 이렇게 복지시설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주 선진국 몇 나라입니다. 중동이나, 남미,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부모가 있는데도 매일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에 비교하면 복을 받아도 많이 받은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보다 더 환경적으로 풍부합니다. 감사하자면 감사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동물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를 오랫동안 품속에서 기른다는 점입니다. 동물들은 몇 개월만 기르다가 독립을 시켜 떠나보냅니다. 아주 길어야 1~2년 지나면 다 독립합니다. 그때부터는 제 스스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새끼가 어미를 봉양해야하는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20년에서 30년 동안이나 보호하고 길러 주고 사랑해 줍니다. 한 10년 길러주고 버리면 ‘인간도 아니다’ 는 말을 듣습니다. 자녀를 위하여 고생을 하며 살다가 늙어 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를 위해 늙어 버린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인륜(人倫)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인륜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여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인륜지 도덕을 외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천륜(天倫)지 도덕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여야 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명령에 있습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모공경은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충격적인 진실을 말씀드립니다. ‘한국 인구 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이 세계 주요 27개국 가운데 (세계에 나라가 많지만 괞찮은 나라,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주요 27개국이란 정상적이고 괜찮은 나라를 말합니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와 만나는 빈도가 높아지는 1위’ 입니다. 그리고 ‘따로 사는 부모와 만나는 횟수’ 는 일본과 더불어 최하위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찾는 사람’으로는 52%가 은행이 아니라 ‘가족 및 친척’을 꼽았습니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자녀가 부모를, 자기가 필요할 때, 돈을 대주는 존재에 불과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세계 주요 27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즉 가족관계가 자발적이고 정서적인 관계가 아니라 의무적, 도구적인 관계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해서 만나는 것 보다는 돈 때문에, 유산 때문에 만나는 비율이 세계최고이며, 열심히 키워준 부모를 찾아가는 비율은 세계최저라는 말입니다.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 60대 노년층 10명 가운데 8명은 은퇴 후에도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는 조사도 있습니다. 이는 일본보다 4배 더 많은 수치입니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손자, 손녀를 보살피고, 가사를 도와주는 등 ‘비경제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비율역시 세계최고’ 수준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노인이 되어서도 80%정도가 자녀에게 오히려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혹시 이런 자녀에게 화를 내시나요? 화낼 수 없습니다. 자녀가 가장 원하는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돈이 최고다. 오로지 공부다’ 하고 키운 대로, 부모에게서 배운 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돈과, 시간과, 열정, 노후계획까지 포기하면서 다 쏟아 붓고, 자기의 노후 계획 도 포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했는데도... 나중에 자녀가 부모를 찾아뵙고, 함께 지내는 비율이 전세계에서 제일 낮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게 키운 아이가 효도를 하는 경우도 드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의 두 번 째는 시편 127편 3절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기업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짐이 아니라 부모의 기업입니다. 세상의 어떤 기업보다 더 크고 중한 기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나 가게를 기업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요즘은 연금보험이나 퇴직 연금을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녀가 부모의 기업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기업으로 주신 것이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또 부모여러분, 자녀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혹시 인생의 황혼에 자식 덕을 볼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분계십니까?  자식 덕을 본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염치가 없는 기도라고 할 수 있고 좀 엉뚱한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다 잘되는 아주 좋은 복된 기도입니다. 
 
만약에 ‘늙어서 자녀의 덕을 보고 싶다’ 라는 이런 기도가 영 마음에 드시지 않으시는 분이 있다면,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자녀를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아니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부모처럼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과도하게 쏟아 붓는 부모가 또 없습니다. 이것은 비유컨대 씨를 심는 일입니다. 자녀가 씨앗입니다. 우리는 이 씨앗이 잘 자라서 정말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바라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 붓지 않습니까? 

그러면 부모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기도 하십니까? 자녀가 어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바라시나요?    많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줄 것 다해주고, 늙어서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는 부모가 되기를 원한다’ 고 말씀합니다.   아름다운 마음 같습니다. 좋은 마음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뒤집어서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에게서 받을 것은 다 받고, 부모에게 신경을 꺼시오’ 하는 말이 아닙니까? 

정말 여러분의 자녀가 이런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자녀들에게 해줄 것 다해주고, 늙어서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는 부모가 되기를 원한다’ 는 말은 자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 줄 알지만... 부모에게 힘써 효도하지 않아도 좋다, 부모를 남으로 취급해도 좋다는 가르침처럼 들립니다.   정말 ‘부모에게서 받을 것은 다 받고, 부모에게 신경을 꺼는’ 자녀가 되는 것을 기도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자녀가 부모의 기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자녀가 효도할 마음은 있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나이 든 부모를 돌보고 싶어도 돌볼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있고,  *경제적인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이 드신 부모를 전혀 모실 마음이 없는 경우입니다.  둘 다 비극입니다. 특히 자녀가 능력이 되는 데도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의 인생은 철저히 실패한 인생입니다. 헛고생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효도조차도 안하는 아주 못된 자녀를 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녀를 원하십니까?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하신 말씀은 자녀가 마음도 있고 경제적 능력도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경우가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대하고 기도하는 ‘자식의 덕’은  마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식 덕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은 몰라도 경제적으로까지 자식 덕을 본다는 것은 실제로 힘든 일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압니다.  부모 나이 60이면 자녀는 겨우 30정도입니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자녀가 대부분입니다.  부모나이 70이면 이제 손자손녀들이 초등학생입니다. 부모가 80이면 이제 손자 손녀가 대학생이거나 빨라야 결혼을 한다 안한다 합니다. 그러니 내 자녀가 얼마나 축복을 많이 받아야 부모가  ‘자녀의 덕’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내 자녀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자녀의 덕을 보면서 산다는 것은 계산이 잘 안 되는 일입니다.  60은 그만두고, 70이 넘고, 80이 되어서도 ‘자녀의 덕’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말은 자녀도 부모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반드시 필요한 기도입니다. 자녀가 잘되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반드시 그런 자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 자녀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내가 부모의 기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꼭 그렇게 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자식은 여호와께서 부모에게 주신 기업’입니다. 연금이나, 집이나 땅이 부모의 기업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자녀가 다 부모의 기업이 되는 축복이 우리교회에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자녀들이 다 이 말씀을 붙들고 ‘부모의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어쩌면 좀 심하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아무리 열심히 해봐라. 아무리 수고하고 깨어 있어봐라 다 헛일이다. 내가 세워야 되고 내가 지켜줘야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너희가 아무리 새벽에 일어나고 밤늦게 까지 수고하고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바빠서 짜장면으로 때우고 해봐도 다 헛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잠을 잘 것이고 잠자는 동안에 내가 다 알아서 해줄 것이다.  역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사화복과 일어나고 넘어지는 것이 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상급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아멘’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대로 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다 비성경적입니다.    그리고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십니다.  자녀는 짐이 아니라 부모의 복이며, 원수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합니다.
 
성도여러분, 이 모든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다 이루어지는 말씀이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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