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도신경(7) :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막 16:19-20)

첨부 1


사도신경(7) :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막 16:19-20)  

오늘은 사도신경 강해 일곱번째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이 대목을 살펴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으셨다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부활 즉시 승천하지 않고 지상에 40일이나 더 머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행1:3에 나와 있습니다.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승천 후 남아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해야 되는데, 그들부터 의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여려 번 여러 상황 속에서 나타나심으로 부활을 확증시켜 주셨던 겁니다. 
  

[1] 승천하신 예수님 : 하늘에 올라가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예수님은 이와 같이 40일을 머무신 후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19절.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예루살렘 성지에 가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감람산 정상에 예수승천기념교회(Chapel of the Ascension)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감람산 정산 부근에 세워져 있는 8각형 모양의 작은 교회당입니다. 본래는 승천을 표현하고자 지붕 없이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2세기 십자가 전쟁 이후 이 지역에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넘어가면서 예수님의 승천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로 돔 지붕을 덧씌웠다고 합니다. 그런다고 승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당 내부에 들어가면 바닥에 ‘예수승천바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발자국을 남긴 바위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① 하늘에 올라가심 :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 무엇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이라 하면, 얼른 대기권 너머 우주공간 어딘가를 연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올라간 하늘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을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라 불러야 할 겁니다. 분명히 실재하는 공간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다른 곳입니다. 구분하면 이런 겁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하늘은 우주공간에 펼쳐진 하늘 즉 천공(天空 Sky)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은 전혀 다른 장소인 천국(天國 Heaven)입니다. 

1960년대는 미국과 구 소련이 우주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그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1962년 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했던 존 글렌, 그리고 구 소련의 우주인 티토브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우주 공간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말을 했습니다. 티토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주 공간에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님은 없더라. 신은 없다.” 

그런데 존 글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선 창문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우주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의 말을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이 보충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노라!” 우주 공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로 하나님의 영광이 깃들어 있을 뿐이고, 천국은 때로 존재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구별된 그리고 특수한 공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천국으로 올라가셨기에 장차 우리도 그 곳에 갈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는지 잘 몰라도, 가 본적이 없어도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따라가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이미 이런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rooms)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a place)를 예비하러 가노니” ‘아버지 집’은 곧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그곳에 계셨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다시 그곳으로 귀환하신 겁니다.   

②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  

천국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계실까요?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여기서 ‘우편’이란 말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편은 공간 개념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이 공간적으로 제한된 분이 되고 맙니다. 

그렇죠? 이 말은 상징적 표현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 능력, 위엄, 영광 등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본래의 영광과 권세의 위치로 복귀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을 참조하면 알 수 있습니다.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모든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권세를 갖고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고 했는데, 앉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선 십자가 구속을 완성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히10:11~12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구약의 인간 제사장들은 속죄 제사를 완성하지 못해서 매일 서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 번에 속죄 제사를 끝내셨습니다. ‘영단번 제사’(Once for All)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곳에 앉아서 무얼 하실까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계실까요? 세상에 오셨을 때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수고하셨으니까 이젠 푹 쉬시나요?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 순교 장면을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유대인 공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자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담대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던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순간 천국에서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 그러셨던 겁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집무 중이셨음을 암시합니다. 대제사장으로 왕으로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천상사역 : 통치, 대언, 중보   

그러면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예수님의 천상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일을 하고 계신 모습이 본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절.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지상에 남은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는데, 예수님이 함께 일하십니다. 천국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동시에 성령을 통해 지상에서 제자들을 통해 일하고 계신 겁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각종 이적을 나타내 주심으로써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여러분,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승천할 때 남기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로 떠나가시면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예수님의 말씀인데 말이 안 된다고 하면 불경한 거죠. 어떻게 말이 될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하신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요14:16~20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또 다른(another) 보혜사’는 예수님과 동일한 보혜사(옆에서 도와주시는 분)라는 뜻으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실 텐데, 성령은 하나님의 영인 동시에 예수님의 영이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함께 계신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다시 오신다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 성령 강림을 가리킵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멀리서도 리모컨으로 컨트롤할 수 있죠. 휴대폰 같은 것은 요즘 많이 발전되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영상 통화까지 가능합니다.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의 재주로도 이럴진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게 불가능하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멀리 천국에 계신 것 같지만, 전혀 거리감 없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더욱 더 실감납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지상에 있는 사도들, 성도들, 교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 모습을 묘사한 구절들을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주의 영이 ... ”(행8:39), “주께서 ... ”(행9:11), “주의 손이 ... ”(행11:21), “성령이 ... 예수의 영이 ... ”(행16:6~7 ) 등입니다. 성령을 예수의 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했다는 뜻으로 ‘사도행전’이란 제목을 붙이지만, 신학자들이 다른 별명도 붙입니다. 성령이 함께 역사하신 기록이라 해서 ‘성령행전’으로, 예수님이 함께 역사하신 기록이라 해서 ‘예수행전’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하시는 사역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통치 :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승천 이후 통치권을 갖고 계심을 증거합니다. 빌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높이 올라가셔서 주(主)가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왕으로 주권자로 통치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치하실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을 통치하십니다. 우주만물, 세상만사입니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개인사, 가정사, 민족사, 인류의 역사, 교회의 역사, 우주 만물 등을 총망라해서 통치하십니다. 엡1:21~22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에수님이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통해 만물을 통치하심을 증거합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바람이 심상치 않습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이집트, 리비아, 사우디, 시리아, 예멘 ... 선교사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분명히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사역에 포함됩니다. 

또 한류 바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중동 지역, 그리고 북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드라마와 가요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문학작품들이 속속 번역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직 미미하지만, 유럽지역까지 한류가 불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경우,「소녀시대」K팝(한국의 대중가요) 그룹의 공연 티켓이 발매되자마자 매진hel고 암표상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3백 명의 팬들이 시위 하루 더 공연해 달라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영국에서는 K팝 공연장에 청소년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마지막 때에 한국교회와 한국 민족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것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하시는 통치 사역의 일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② 대언 :   

대언은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변호하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안 해 보셨나요? 예수님이 2천년 전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 이스라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오늘 여기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나? 또 하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도가 된 후에도 자주 죄를 저지르는데 그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나? 혹시 나중에 용서받지 못한 죄가 남으면 어떻게 하나? 구원이 취소되는가? 이런 의문들을 갖게 되면 정말 불안해집니다. 이런 의문들을 해결해 주는 게 바로 예수님의 대언 사역입니다. 요일2:1 ...

요일2:1 “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advocate)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아버지께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항상, 오늘, 그리고 계속해서 영원히!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지신 십자가이지만 오늘 나를 죄에서 구원하고, 또 구원 이후 매일 범하는 죄까지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변호사가 중병으로 병상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목사가 심방을 갔습니다. 불신자인 그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궁리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변호사죠?”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많은 사건을 맡아 변호하셨겠네요?” “예.” “그런데 항상 승소하셨나요? 패소한 적도 있죠?” “그럼요.” “지금 저는 선생님에게 위대한 변호사 한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죄인들의 변호를 맡으셔서 단 한 번도 패소한 적이 없으십니다. 항상 승소하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지금이라도 영혼의 변호를 맡기시면 반드시 승소하실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할 수 있습니다.” 그 변호사는 그 말씀을 알아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평안한 모습으로 천국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대언 사역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다 변호해 주십니다. 물론 그렇다고 방종하면 안 되겠죠. 조심하되, 혹시 실수하고 범죄하게 되면 고백하고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부디 예수님의 대언 사역을 꼭 믿으시고, 구원의 확신과 사죄의 확신을 갖고 늘 평안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 중보 :   

우리는 모두 죄인인고로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더욱이 무엇을 구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계시므로 그분을 의지하면 얼마든지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히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맨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연약하고 무지해서 잘못 기도할 수 있고, 혹은 스스로 기도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롬8:34 “ ...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interceding for us) 자시니라” 이게 바로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지쳐서 낙심이 되어서 스스로 기도하지 못할 때조차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 기도해 주시면, 내가 나 자신을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기도가 됩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얼마나 세밀하게 나를 살피고 계신지 모릅니다. 머리털까지 세시는 전지전능하심으로 중보해 주십니다. 나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 주십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하늘 위에 계시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서 나에게 가까이 해 주시는 완벽한 친구입니다. 아메리칸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그런 분입니다. 내 등에 짊어진 무거우 짐을 내려 주시고, 대신 져 주시는 분입니다. 부디 이와 같은 중보 사역을 꼭 믿으시고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라도 담대히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이 대목을 고백할 때마다 오늘 들으신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멀리 천국에 계신 것 같지만, 성령을 통해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생생하게 동행해 주십니다. 천상에서 일하시지만, 동시에 성령을 통해 지상에 있는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해 주십니다. 아무쪼록 이런 사실을 꼭 믿으시고,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