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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자(4) (욘 1:17, 욘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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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자(4) (욘 1:17, 욘 2:10)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한국 골프의 자랑, 최경주 선수가 ‘2011 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쉽 FR’에서 연장승부로 우승하였습니다. 
우승 소식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우승 후에 가진 그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그는 무엇이 우승하는데 도움이 됐는가라는 질문에 “무지막지하게 연습한 것이 도움이 됐고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연습과 함께 연습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또 다른 질문에 “클럽에서 떠난 공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보호해주셔야 한다. 내가 원하는 지점에 갖다 놓기가 쉽지 않은데 기도하면서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술 그 이상 하나님의 보호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자신만의 휴식 방법 세 가지를 공개했는데 “먼저 기도하는 시간이고 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덕담을 나누며 쉬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기도가 고행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휴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최경주 선수가 우승을 하였으니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인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는 누구입니까? 요, 나(我)입니다. 그는 종교인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입니다.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자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에게 부르짖었습니다. 선장을 자는 그를 깨워서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누군가를 정죄하고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요나, 그에게도 종교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면서도 도망쳤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알면서도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의 온 몸을 희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 앞에 풍랑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것은 무엇입니까?

  
I. 예비

17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7a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마련하여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비하셨다는 말은 매우 독특한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쿤kun]이라는 단어를 써서 ‘무엇을 위하여 준비했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요나서에서는 흔히 쓰는 단어를 쓰지 않고 다른 말[hn:m;/마나]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달아서 나누다”라는 뜻입니다. 

즉 곡식이나 금붙이를 달아서 정확하게 나누어서 놓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미리 계획을 세워 정확하게 계산을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풍랑이 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요나가 배를 타고 가는 바로 거기에 풍랑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입니다. 바다에 큰 물고기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요나를 바다에 던졌을 때 바로 거기에 큰 물고기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입니다. 삼켰는데 소화시킬 수 없다면 토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요나를 토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입니다.

1.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늘에는 새가 날개 하시고, 땅에는 식물이 자라고 동물들이 뛰어 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속에는 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게 하셨습니다. 가장 적절한 곳에 적절한 생물들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그 만드신 것에 적절한 것이 있게 하셨습니다. 필요한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자리를 잡고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질서입니다. 필요에 맞추어 가장 적절한 일이 있게 하신 것인 하나님이 예비하산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겨울철 방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화로였습니다. 저녁에 들여 놓은 화로는 이동용 난로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들어놓은 화로는 난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취사도구 역할을 하였지요. 점심때가 되면 화로 위에 삼발이 석쇠를 걸고 시커먼 냄비를 올려놓습니다. 냄비에는 들기름을 바르고, 김치를 썰어 깔고 밥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밥이 적당히 눌어서 비비면 맛있는 김치 볶음밥이 됩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다가 형제 중에 누가 안 들어왔으면 어머님은 그 식구를 위하여 따로 얼마를 남겨 놓으십니다. 그 남겨 놓은 것이 먹고 싶어서 숟가락을 빨던 기억이 있습니다. 때로는 어머님이 따로 남겨 두신 밥을 먹고 싶어서 점심때 부러 늦게 들어오기도 하였지요. 그럴 때면 어머니는 “다음부터 때가 되어 늦게 들어오면 밥 안 준다”고 하셨지만 늘 자식들 하나하나를 위하여 몫을 계산하여 나누어 남겨주시던 어머니셨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그에게 필요한 만큼 또는 그에게 돌아가야 할 만큼의 정확한 몫을 따로 떼어 준비해 놓는 것을 오늘 성경은 ‘예비하였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뱃사람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포기하고 바다에 던져 버린 요나의 몫으로 바로 거기에 물고기를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 그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위하여 그를 삼킬 물고기를 ‘바로 거기에 그 때에’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하여 물고기만 예비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앞에서 하나님은 도망치는 요나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그 바다에 광풍이 불어오게도 하셨습니다. 요나서 4장에 가면 니느웨의 회개에 심통을 부리는 요나의 무지함을 깨우치기 위하여 ‘박 넝쿨’을 예비하셨습니다. 박 넝쿨을 없애기 위하여 적절하게 ‘벌레’도 있게 하셨습니다. 요나의 곤고함을 더하기 위하여 ‘동풍’이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위하여 있어야 할 것을 적절하게 놓아두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몫을 남겨두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믿음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쉽게 지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는 것은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친히 맞춘 듯이 준비하여 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통하여 구원하실 예비신자도 예비해두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가장 크고 놀랍고 위대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삼일 동안에 이루신 것입니다.

  
II. 삼일
  
하나님께서 삼일 동안에 이루신 가장 놀라운 일은 무엇입니까? 

7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7b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요나는 사흘 밤낮을 그 물고기 뱃속에서 지냈습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것이 무슨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사흘이나 고기 뱃속에 있었는데 살았다는 것이 기적입니까?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때,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화가 치민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빈정거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도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요 2:13-22).

바로 여기에서 사흘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9)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40)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있었던 사흘은 바로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셨던 사흘을 상징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삼일은 니느웨의 구원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을 준비하는 사건입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있었던 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하여 물고기를 예비하신 것은 물고기를 거기에 두셨다는 것 그 이상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있었다는 것은 요나를 먹어치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새로운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물고기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물고기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위한 또 다른 준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한 구원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불순종 때문에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지시고 무덤에 내려가셨습니다. 요나는 삼일 만에 토해내졌지만 예수님은 어두움을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으셨던 나사렛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죄에 대하여 죽습니다. 예수님의 살아나심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의로 새롭게 삽니다. 

요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사흘을 계셨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사흘 동안 무덤 속에 계신 것은 사건이었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를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사흘은 바로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셨던 사흘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셨던 사흘입니다. 이 사흘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준비하신 가장 놀라운 사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사람들로 깨닫고 믿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요나를 삼킬 물고기를 하나님께서 거기에 두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삼일 동안 묻혀 계셨던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죽음에서도 능히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하심을 믿는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둡고 칙칙할 때가 있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미 예수님의 사흘을 준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준비하신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예비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사람들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기회, 하나님의 일에 헌신할 기회를 주십니다. 

  
III. 기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나서 2장 10절 말씀입니다.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니, 물고기가 요나를 뭍에다가 뱉어 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을 있었다는 것은 사흘 동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에 대하여는 다음 시간에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 시간에 생각하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요나를 뱉어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불순종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듭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요나가 노력해서 고기의 뱃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여 토하게 하심으로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구원할 만큼 공적을 쌓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다시 기회를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혹시 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추석’하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의 일입니다. 추석날 송편과 과일을 잔뜩 먹고 나서 무엇이 부족했던지 집 옆에 있는 꽤 높은 대추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대추를 따먹다 갑자기 나무 위에서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울컥하면서 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추나무 꼭대기에서 아래로 시원하게 토했습니다. 나무 위에서 아래로 추석에 먹은 모든 것을 다 토했습니다. 다 토하고 난 다음 어떻게 했겠습니까? 올라갔으니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토한 것이 그대로 붙어 있는 나무 가지를 붙잡고 기어서 내려오려니. (으웩-)

역겨운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우리말에 ‘팔월 추석에 먹은 송편이 다 올라온다.’고 하는데 ‘토한다’는 말은 썩 기분 좋은 말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서 ‘토했다’는 말 역시 고상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요나를 토한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물고기가 요나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더 이상 요나를 사로잡아 둘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자 굴에 갇혔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단6:1-24) 다니엘은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모함에 빠져 사자 굴에 던져 졌으나 사자가 다니엘을 삼킬 수 없었습니다. 사자가 다니엘을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굴에서 다시 나오게 하셨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물고기가 사람을 삼켰으면 소화가 되어서 뒤로 나가야 하는데 소화가 되기는커녕 물고기가 견딜 수 없어 토해 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토해낼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환난과 풍파가 여러분을 결코 녹일 수가 없기에 어려움이 여러분을 토해 내버림으로 어려움과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으로써 다시 사는 사람들입니다.

토해 내쳐진 요나는 좀 더럽기는 하지만 바로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이 먹으려고 삼켰다가 다시 내뱉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지옥의 권세로 감싸서 파멸시키려고 하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하고 내뱉어 놓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먹었다가 토해 놓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감리교회를 있게 한 존 웨슬리의 회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존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중생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날은 감리교회가 시작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가 자신의 삶에서 기억하는 또 하루의 중요한 날은 그가 여섯 살이 되던 1709년 2월 9일 수요일 밤입니다. 그날, 존의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의 목사관에 갑자기 불이 붙은 것이었습니다. 동네의 불량배들이 사택에 불은 놓은 것이었습니다. 불은 때마침 세차게 불어온 동북풍에 삽시간에 온 집을 휘감았습니다.

아버지 사무엘 목사는 옆방으로 가서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아래로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2층 다락에서 자고 있던 존을 미쳐 구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어린 존은 천장에 불이 붙은 다음에야 깨어나 얼결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침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말을 타고 올라가 존을 안아 내렸습니다. 그 순간 지붕이 내려앉았습니다. 집이 내려앉기 직전에 구출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존 웨슬리는 80여 년간을 사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이 화재 사건과 거기에서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추억이 뚜렷이 남았습니다. 후년에 존 웨슬리는 자기의 초상화 밑에 불타는 집을 새기고 거기에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새기게 하였습니다.

“이는 불꽃에서 끌어 낸 타다 남은 나무 조각이 아니냐?”

‘불꽃에서 끌어 낸 타다 남은 나무 조각’ 이것이 ‘물고기가 먹지 못하고 토해낸 인생’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숙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순종하는데 실패했어도 다시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하는데 실패했어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봉사하는데 실패했어도 다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전도하는데 실패했어도 다시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한번 실패했으니 좌절하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리나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점령하여야 할 영적 고지입니다. 전에 실패했었기에 안 된다는 생각을 점령해 버려야 합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점령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주시는 기회를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은 불순종하는 자녀를 위하여 준비하시는 아버지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셨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알았다면 우리는 이 은혜를 전하는 일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멋있게 사용되기 위해서 일뿐입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노력하여 준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준비하여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기회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에서 토해 내쳐진 인생들입니다. 우리는 다시 산 사람들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순간마다 곰삭은 신앙의 향기를 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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