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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민의 거룩함을 회복하라 (스 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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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의 거룩함을 회복하라 (스 10:1-12)


구약성경의 에스라서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했던 남왕국 유다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역사를 기록한 책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옛 남왕국 유다의 백성이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에서 놓여나와 고국 땅에 돌아가 그들의 민족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투쟁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자신의 힘과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에스라서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7:9),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7:2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8:18),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8:31) 같은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에스라서가 씌어질 당시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나타내는 말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다시 옛 유다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며 먼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 대신 들어와 살고 있던 이방 족속의 방해공작 때문에 성전 건축은 중단되기도 했었지만 하나님께서 새 패권국인 페르시아의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이 마침내 완공되고 봉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성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지만 성전건축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바른 예배의 회복이야말로 성전재건의 목적이고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재건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 일에 쓰임받기 위하여 준비되고 부름 받은 사람이 에스라였습니다. 바벨론을 정복하고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의 칙령에 따라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고국 땅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때로부터 약 팔십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에 새 성전이 봉헌되고 약 육십년이 지나서 페르시아의 왕이 아닥사스다일 때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스7:1, 6). 

에스라는 모세의 형 아론의 십육대 손(스7:5)으로 대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스7:6). 그는 율법을 연구하기만 할 뿐 아니라 그 율법을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학자 겸 제사장이었습니다(스7:10-12).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는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며 쓰기를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스7:14) 보냄을 받았다고 하여 그의 사명을 명시해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유다 백성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점검하도록 에스라가 보냄을 받았던 것입니다. 

페르시아 왕은 에스라를 보내며 그 자신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은금을 드렸을 뿐 아니라(스7:15) 에스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바벨론 온 도”(스7:16)에서 얻을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의 “궁중창고에서 내다가”(스7:20) 쓰게 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리며 한 말을 들어봅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스7:21-26) 

이 조서를 통해 에스라는 단지 율법을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법관과 재판관을 임명하고 그들로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는 정치적 권위까지도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려질 예배와 제사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조치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취한 것이지만 그를 움직여 그런 조치를 취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재건하실 뿐 아니라 그 성전에서 유다 백성이 당신에게 드릴 예배를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자신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사실을 직시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노래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스7:27-28) 

에스라는 여러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백성을 데리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지만(스8:1-14) 막상 성전에서의 제사를 돕기 위해 필요한 레위 자손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스8:15). 그래서 모든 족장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들을 불러 지방으로 보내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했습니다(스8:16-17). 이때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수십 명의 레위 자손을 찾을 수 있었으며(스8:18-19) 만반의 준비 끝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감격스러운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스8:21-36). 

이렇게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 감격스러운 제사를 드린 에스라는 그러나 곧 그에게 나아온 방백들의 보고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어두운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온갖 이방 사람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들의 가증한 일을 같이 행하는 것이었습니다(스9:1). 이방 여자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 일에 방백들과 고관들이 더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스9:2).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이러한 통혼을 금하셨습니다. 출34:16에서는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했고, 신7:3-4에서는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합니다. 

이 현실 앞에서 에스라는 기가 막혀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주저앉았습니다(스9:3).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제사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상실한 채로 드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가증할 뿐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근심 중에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스9:5-6). 

에스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역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조상들의 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돌이켜보며 울부짖었습니다(스9:7-15). 그 기도의 마지막 부분만 들어봅니다. 스9:14-15입니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백성이 모여 함께 큰 소리로 통곡했습니다(본문 10:1). 그 중의 한 사람이 에스라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본문 10:2-4) 그러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그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였고 무리가 맹세했습니다(본문 10:5). 이에 에스라는 백성의 죄를 근심하며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한 후에(본문 10:6) 백성에게 삼일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이기를 공포했습니다(본문 10:7-8). 모든 사람들이 삼 일 안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두려워하며 또 마침 쏟아지는 큰 비 때문에 떨고 있었습니다(본문 10:9).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본문 10:11) 이에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본문 10:12-14)

다시 말하면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있고 비도 많이 오니까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나중에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로 하고 일단 흩어지게 해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조사위원회 구성을 반대한 자들이 네 명 빼고는 모두가 그대로 하기로 했습니다(본문 10:15-16). 따라서 에스라는 각 종족을 따라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여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꼭 석 달 만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쳤습니다(본문 10:17).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은 다 손을 잡아 맹세하며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했습니다(본문 10:18-19). 그 결과 백십 쌍이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려주는 에스라의 종교개혁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바가 큽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너진 당신의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른 예배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의 회복을 위해 당신의 택하신 백성의 거룩함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교회개혁과 하나님나라의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기 위하여 준비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가문에 태어나 이방 나라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익히고 행하며 이방인들로부터 자기를 지켜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족 중에도 하나님의 계명과 성직자의 본분을 버리고 이방인과 혼인하여 자녀까지 낳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에스라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의 삶이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들어 쓰셔서 무너지는 이 땅의 교회를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사회 속에서 교회 본연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며 지켜 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새 성전의 건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된 예배이며, 참된 예배는 우리의 거룩한 삶이 함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욕심 따라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닮아 거룩함을 상실하면 예배가 약화됩니다. 우상숭배가 승하게 됩니다. 예배가 약해지면 성전은 무용지물이 되며 무슨 건물로 바뀔지 모릅니다. 

유럽의 많은 교회건물이 술집이 되고 무도장이 되며 상점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파괴 아닌 파괴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성전이 성전 아닌 다른 용도의 건물로 바뀌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죽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버림받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선민의 실종인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새 성전과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룩함을 열심히 지켜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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