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은하수로 춤추러 가는 날

첨부 1


[삶의 응원가] 은하수로 춤추러 가는 날

- 이지현 기자(국민일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슴 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온 엘리자베스 귀블러 로스는 인간에게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죽음을 두려움 속에 맞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이자 사상가였던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날은 '은하수로 춤추러 가는 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육체로부터 해방돼 생애를 졸업하는 날, 난 은하수로 춤추러 갈 거예요. 그러니 그날은 축하를 받아야 할 날이지요. 죽음은 단지 이 생애를 마감하고 고통과 번민이 사라진 곳으로 옮겨가는 일일 뿐인걸요. "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난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두 자매를 보며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놓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아홉의 나이로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폴란드 마이데넥 유대인 수용소에서 인생을 바칠 소명을 발견했다. 수용소 내부 벽에는 곳곳에 손톱이나 돌조각으로 새긴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이 지옥 같은 수용소 벽에 수없이 그려 놓은 나비들을 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인간의 몸은 번데기를 벗고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그녀는 말년에 중풍으로 9년간 마비된 몸으로 힙겹게 살면서 가빠지는 숨과 꺼져가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수십년간 연구해왔던 죽음과 남겨짐에 대한 가르침을 완성할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을 인생의 주제로 삼은 연구자답게 그녀의 장례식 또한 독특했다. 2004년 8월24일. 78세로 하늘나라로 간 그녀를 보내는 고별식은 흑인성가대가 부르는 성가곡으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의식의 절정은 그녀의 두 자녀가 관 앞에서 작은 상자를 열었을 때였다. 상자 안에서 한 마리의 호랑나비가 날아올랐다. 동시에 참석자들이 미리 받은 종이 봉투에서도 수많은 나비들이 일제히 날개를 펄럭이며 파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녀가 가진 사상의 상징이었던 나비. 그 나비가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드디어 번데기에서 부화해 나비가 되어 죽음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계에 태어났음을.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갈 때 슬퍼하고 애도한다. 또 언젠가 우리 자신도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육체에 생명이 깃든 시간은 그 사람의 전 존재 안에서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전 생애 동안 우린 어떤 기쁨을 찾았는가, 사람들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버킷 리스트'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마주하는 깨달음을 전하는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대기업을 소유한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과 자동차 수리공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노인이 암병동의 한 병실에서 만난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목록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기 위해 두 사람은 여행길에 오른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등을 실행하며 삶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사실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일상들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버킷 리스트'를 떠올려봤다. '천문대에서 별자리보기, 벚꽃나무 아래서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 맞기, 일본 전통여관에서 온천욕하기…. 소중한 하루하루 속에 수많은 행복의 알갱이들을 뿌려놓고 싶다. 그 작은 알갱이들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mail protected]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