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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마태복음

숭배자로서의 [예수]와 그냥 [예수]

마21:7


종교개혁 이전시대 즉 서기 400년에서 1500년대까지는 성서를 해석할 때 은유적인 해석법을 썼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걸 이렇게 해석하는 겁니다.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은 죄의 결과로 죽어가는 인류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아주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당연히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리고 간 여관은 오늘날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죠. 교회죠. 그러면 사마리아 사람이 여관주인에게 이 사람을 치료해 달라고 하면서 건넨 돈, 모자라면 더 주겠다고 한 걸 요즘으로 치면 뭘까요? 헌금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다시 와서 하는 대목은 예수의 재림이라 말할 수도 있겠죠. 어때요? 이렇게 은유적으로 맞추어 보니까 나름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고대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은유적인 해석을 통해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삶의 행위를 제시해주는 하나의 생활 교본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서를 대하면 매사에 삶을 성서에 갖다 맞춰야 하니까 율법적이게 되죠. 훗날 종교개혁을 하게 된 루터가 가장 고민하던 문제가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서를 성서답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형편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은유를 해 대지 않는 성서만의 교훈을 찾는 거 말입니다.

 

오늘 그래서 우리도 성서 본문 중에 은유로만 이해되는 본문 하나를 본래의 뜻이 뭔지를 찾아볼까 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카고 들어간 짐승이 나귀입니다. 우리는 이 나귀에 대해서, 왜 예수님이 그 많은 짐승 중에, 번듯하고 위용 있는 짐승을 놔두고 나귀를 타셨을까 생각을 하다가 얼른 이걸 윤리적으로 해석을 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이 나귀를 카는 장면은 필시 [겸손]을 뜻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오실 때 구유로 오셔서 입성 하실 때 나귀를 타는 건 처음과 나중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데 왜 요즘 목사들은 나귀 즉 겸손하게 뭔가를 타지 않고 비싸고 좋은 것들을 타려고 하는 걸까요? 엄청 이율배반적이죠? 나귀를 겸손으로 해석하는 건 이스라엘의 문화를 무시하고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징기스칸이 말을 타고 하루 20리를 달리며 유럽을 정복하던 사절이 서기1200년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이스라엘이나 고대 바벨론이나 슈메르에는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앗시리아 문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서기전 700년대엔 말입니다. 그러다가 이란의 아르메니아에서 말을 훈련시킨 기록들이 나옵니다.

 

이건 뭘 뜻하는가 하면 말은 사람이 안전하게 이용 할 만큼 훈련하기 어려웠다는 것이고, 말은 안전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이스라엘이나 태국에 가서 코끼리나 낙타를 타 보신 분은 압니다. 보기보다는 그 높이가 주는 공포가 대단합니다. 물론 안전하기는 하지만 단순한 이동수단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코끼리나 낙타보다 말은 어떻습니까. 더 순하지 않습니다. 야생성이 대단합니다. 요즘도 승마를 하는 이들 중에 간혹 말이 발광을 하는 중에 말 등에서 떨어져 크게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이 부리기에 위험한 동물입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변의 오래 된 국들에서는 오래전부터 임금이나 사신이 타국을 방문할 때 나귀가 끄는 수레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서기전 1790년 경 앗시리아의 왕 샴쉬-아다드는 타국을 방문하다가 나귀를 발을 다치자 사신에게 “나귀 한 마리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묻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주변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위엄하고 성질 사나운 말 대신에 고분고분한 나귀가 그는 안전한 수레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전용차량이 멋지게 생기고 빠르게 달리는 것인지 아니면 튼튼하고 안전한 차량인지를 생각하면 되겠지요. 시리아의 어느 신하가 왕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왕이시여! 왕가의 위엄을 지키십시오. 말 등에는 타지 마시고 노새가 그는 전차를 타세요.”

 

이렇게 성서의 대부분은 당시의 문화적인 배경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 단어 하나나, 사건 하나하나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교훈되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이 겸손하시니까, 우리더러 너희도 겸손하라고 일부러 골라 골라 나귀를 탄 게 아닌 겁니다. 우리교회에 봉고차가 있어서 그냥 봉고차를 타는 것이지 무슨 의미나 해석을 가지고 타는 게 아니듯이 말이죠.

 

나귀는 하찮은 짐승이고 그래서 겸손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지어낸 것입니다. 옛 부터 나귀는 전통과 위엄과 안전한 짐승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군마보다는 나귀가 메시아에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겸손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메시아의 위용에 맞는 것이죠. 왕들이 다 그랬으니 까요.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은 겸손이라는 은유보다는 그저 전승에 충실했던 것이고, 이것은 예수가 메시아(왕이나 임금 같은)라는 대중의 기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성서의 모든 부분을 예수숭배를 위한 언어로 이해하면 숭배의 대상이 되기 이전의 예수를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를 예수로 알지 않고 숭배할 대상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믿게 되면 인간의 현실적인 삶과 어긋납니다. 그러니까 믿는 것과 사는 게 따로따로가 된다고 이해하시면 되죠. 이 시대 기독교나 기독교인들의 숙제는 숭배의 대상으로 전착되어있는 예수를 본래의 예수로 읽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과 고통의 문제를 개인적이고도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고 행동했던 예수를 찾아내고 그런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개인의 좀 더 나은 삶의 구현이며 공동체의 실현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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