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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고린도전

‘사랑’이라는 생의 숙제를 피하지 마시라!(2)

고전13장


마지막 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부정만 하지 않고 긍정적인 표현으로 뒷마무리를 합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rejoice not in iniquity” 불의를 절대로 즐거워하지 않는다, 여기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홀로의 것이 아닙니다. 너와 더불어 불의한 것은 즐거워하지 않는다. 참 사랑을 하면 너를 나와 더불어 범죄 속으로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사랑하면 할수록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언제나 앞서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사랑을 만끽하겠다고 그러면 그것은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아니, 나는 의외로 상대방의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행해지는 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보고 있고, 세상에서도 봅니다. 아니, 진짜 참 사랑을 하면은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와 더불어 기뻐합니다. 여기에는 ‘더불어’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이해가 됩니다. 너를 나와 진리를 기뻐하는 상대로 꼭 끌어가는 겁니다. 네가 진리와 더불어 행복해야 나도 너를 행복해하는 사람이지, 이러한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너를 불의 속에 몰아넣으면서 내가 행복할 길은 없는 것입니다. 네 불행이 내게 행복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네 불행이 내게 행복으로 보여 진다면 내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든, 우정이든, 민족애든 간에 그렇습니다. 진리가 동반하지 않는 데는 인간의 참 행복을 줄 수 없다고 하는 전제를 구체적으로 너에게 적용하면, 그가 진리 안에서 행복해야 또 행복하게 해 줄 때 내 사랑은 참 사랑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우리 새 번역으로는 그렇게 되었는데 정확한 번역으로는 사랑은 모든 것을 지탱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모든 것을 지탱한다. 영어로는 “bears all things”가 옳은 번역입니다. 무엇을 짊어지고 나간다는 말입니다. 덮어준다는 것은 번역이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데살로니가 전서 3장에 지속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은 오늘 잠깐 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즐거울 때만 웃는 게 아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사랑은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고난의 역경을 밟으면 밟을수록 그 자체가 확실해집니다. 또 사랑은 어려운 때가 오면 올수록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거꾸로 상대방이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 사랑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말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 사랑은 끝끝내 지속하고 지탱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말은 여기에 쓰여진 헬라어의 “스테게(stege)”라는 말로 지붕이라는 어원이 있습니다. 집은 지붕이 있어서 집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언제나 지속적으로 지붕 역할을 해 줘야 비도 안 맞게 하는 것처럼 내 지붕이 되는 것, 그래서 덮어준다는 말까지 사람들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붕은 언제나 지속적으로 여기에 있어줘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나를 덮어줘서 그래서 참 사랑이라 그것입니다. 사랑은 즐거울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울 때 조금 더 나아가서 상대방이 내게 괴로움의 존재가 될 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질 때, 그것이 없으면 편안하긴 한데 바로 그런 존재를 향해서 내 마음을 열 수 있을 때 그때 내 사랑은 단련되고, 내 사랑이 입증이 되고, 또 사랑이 바르냐 안 바르냐가 확실해집니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더라 그러니까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됐다 그 말은 벌써 자기를 포기한 것이고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태도입니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은 잠깐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고통스러우나 즐거우나 감싸주는 게 그게 사랑입니다. 상대가 너를 감싸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두 번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참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쉽게 줄줄 외우나? 교회에 오는 사람들, 특별히 믿는다는 말이 너무 형식화되어서 의미가 없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적인 의미의 믿는다는 그런 언어도 아니고, 모든 것을 믿는다고 하는 말은 밤낮 속습니다. 그 말입니다. 내가 네게 속을 줄 알아야지, 속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말은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전제하면) 속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신을 하는 것 같다, 분명히 했다,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어도 그래도 믿겠다, 곧 신뢰입니다. 얼마나 지속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속는다는 뜻입니다. 불신은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배신입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돌로 메주를 쑨다고 믿는 게 믿음입니다. 돌로 메주를 쑤겠다 그래도 믿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효’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버지가 소를 끌고 지붕 위로 올라가라고 하면 올라가는 연습을 그냥 계속했습니다. 왜? 아버지가 올라가라고 했으니까 올라갈 수 있나부지!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 ‘효’는 그런 의미에서 신뢰입니다. 사랑은 모든 경우에도 믿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는 모든 경우에, 마지막에 철저하게 배신을 당했을 때도 제자들을 끝끝내 믿었습니다. 네가 나를 버릴 것이라고 단정을 하고도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부활하면 네가 반드시 나를 찾아올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불신을 그대로 신뢰한 것, 불신 속에서 신뢰한 것, 이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사랑의 완성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철저히 불신 속에서 배신을 받고 죽는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믿음의 창조자입니다. 인공위성같이 하늘에 쏘아 올린 것같이, 이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소식이 없어, 아무도 돕지를 않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렸습니까? 해도 아무 소식이 없어, 그래도 나의 하나님, 여전히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사랑의 부활입니다.

 

세 번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너를 믿는다는 것은 ‘너는 기성품이다’라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다 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고, 가능성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 앞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볼 때 “너는 질적으로 틀려먹었어.” 하고 선언해 버리면 그땐 사랑이 정지되는 순간입니다. 부부관계나 부모와 자식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렸어 너는, 너는 희망이 하나도 없어, 너는 꽉 막혔어” 포기하면 그 순간 그 사랑은 정지되는 것입니다.

 

아니, “너는 달라질 거야, 아니면 내 이해가 달라질 거야, 그래서 너와 나와의 관계는 달라질 거야, 꼭 달라질 거야” 이것이 바람입니다. “나는 네게 기대를 걸어, 너는 가능성이 있어” 아직도 너는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네가 나를 열 번 속였지만 그러나 나는 네가 다시 달라질 것을 믿어” 그것을 버리면 나는 끝납니다. 그게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반드시 나를 이해할 때가 올 거야, 아니면 내가 너를 이해할 때가 올 거야, 지금 모습은 아닌 것으로 변할 날이 올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너를 믿는다는 것과 바란다는 것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보다 달라진 모습의 너만 아니고 우리의 관계를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갑니다. 어제에서 현재를 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절망해서 사랑은 곧 끊어집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견딥니다. 독일어나 영어나 “Love endures all thing”무엇이든지 견딘다. 이것은 시간성보다는 아픔의 농도입니다. 네 아픔을, 네게 내게 준 아픔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그 깊은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느냐 하는 것이 내 사랑이 참 사랑이냐, 아니냐를 입증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네 가지 아주 중요한 말로 구체적으로, 적극적인 말로 표현을 합니다.

 

마지막 13절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바람),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 믿음과 바람, 사랑, 이 셋은 영원히, 영원히 사람이 사는 때까지 존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없어서는 안 될 3대 중요 요소입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 보았을까? 사실 어느 하나를 떼어놓고는 어느 하나도 성립이 안 됩니다. 사랑이 늘 성립되려면 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와 나는 깊은 인연이 있어서 그것을 갚기 전에는 떨어질 수 없어, 옷 한번 스친 것도 인연이야, 갚을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인연의 줄을 맺어 왔어”라고 설명을 합니다. 우리에게도 우연이 아닌 인연이 있습니다. 너하고 나하고 왜 이렇게 마주섰나?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인데 그 말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네게 내가 갚을 것이 있구나, 네가 나한테 갚을 기회를 줬다”라고 받으면 아주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든, 이 바람이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이 성립이 되기 때문에 사랑을 성립하려면 믿음, 바람을 빼고 성립이 안되는 것은 거꾸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삼각형을 그린다면, 이 사랑을 맨 밑바닥에 쓰고, 왼쪽에 믿음이라는 것을 쓰고, 오른쪽에는 바람이라는 것을 쓰면 삼각형이 됩니다. 결국 바탕은 사랑이고, 사랑 위에서 바람도 있고, 믿는 것도 있지만 여기에서 하나 되는 끝점에 다시 무엇으로 솟아나나? 그것은 사랑이겠지요. 끝끝내 사랑은 마지막 정점에 서서(polarization이라고 영어로 씁니다) 이것이 앞으로 밀고 나가면 바람, 믿음 이것은 뒤로 피라미드형을 하면서도 끝끝내 살아서 움직여 줘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은 언제나, 믿는 것도 언제나 따르나 이것이 없으면 이 삼각형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람, 믿음 이것이 있을 때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사랑이 있을 때, 믿음이라는 것도 바람도 성립이 됩니다. 그것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앞서야 되나? 그것 역시 사랑이 앞서야 됩니다. 무엇이 끝까지 살아야 되나? 사랑이 끝까지 있어야 되겠지요. 그것이 아니면 인간이 안 돼, 인간으로서 제 구실을 못 해, 그러면 너와 나와의 관계가 깨져, 공동체 깨져, 내 삶도 깨져, 그러니까 믿음과 바람과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어야 되, 싫든지 좋든지 이것을 이루긴 이루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바탕은 사랑이라, 사랑을 빼고 다른 것만 칠을 하려고 하면 되지가 않아, 그것은 언제나 있어야 하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공동체를 왜 만들었나?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를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피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부관계마저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인간에게 준 사랑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에서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주어졌을 때, 이 기회에 해결하자, 이 중요한 과제를 피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믿음과 바람과 사랑은 언제나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맨 밑바닥에 놓을 것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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