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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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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전체가 비유장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네 가지 밭을 향해서 뿌려진 씨의 설명에서는 네 가지 밭의 마음상태와 그 결과를 보여주었고 즉, 수입이 있고 없고와 수입이 있더라도 수입의 격차와 차등성이 나옵니다.

 

12절에서 들을 귀가 없으면 다 빼앗기고, 13, 14절에서 깨닫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왜 못 깨닫느냐? 마음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악하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 것을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진리생명,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굶어 죽을 것 같고, 길바닥에 나 앉을 것 같고, 왕따 당할 것 같고,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하니까 자기 마음속에서 세상의 생각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안 고치고 슬슬 이용이나 하려고 하고. 그러니까 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못 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성을 못 깨닫는 것입니다.

 

18절에서 네 가지 마음 밭 상태에서 된 신앙상태를 설명해 주었고, 24절에서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심은 사람과 같다는 비유를 하셨는데 잠잘 때 그만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고 가는 바람에 한 밭에서 불탈 가라지가 나왔고, 역시 그 밭에서 알곡이 나왔는데 가라지가 먼저 거두어져 불 속에 들어가고 알곡은 나중에 곡간에 들어가고.

 

31절에 겨자씨의 비유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나중에 큰 나무가 됩니다.(질적 성장에서 나온 활동) 활동마다 성령이 함께 하심이 나왔고, 33절에 천국은 마치 한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넣으니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습니다. 전부 내적 본질적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36절부터 43절의 가라지 비유의 설명은 24절의 한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나는 그 밭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와 함께 계신 것이 아니고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라 들어와서는 예수를 독차지 한 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자는, 또 제자될 자는 무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끈질기게 따라가는 것이 예수의 제자입니다. 왜 끈질기게 따라가느냐? 창세 이후로 감추인 것을 깨달아 찾으려고! 예수의 제자는 창세 이 후로 감추인 것을 애가 터지게 묻고 찾는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 욕심이 아닌 딴 욕심을 찾는 것은 모두 다 헛 욕심입니다. 무리에게 끌려가서 왕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7절에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인자는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좋은 씨만 뿌립니다. 예수님은 좋은 씨만 갖고 계십니다. 하늘나라 것, 신령한 것, 하나님의 본질의 것, 하나님의 생명적인 것만 갖고 계십니다. 나쁜 씨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씨를 언제든지 가지고 계셔도 살아 있는 씨이고, 심으면 100배로 소득이 있고, 똑같은 질로 열매 맺히는 씨입니다. 예를 들어 볍씨 하나를 뿌리면 질이 100% 똑같은 볍씨로 100배로 나오지요. 질 좋은 볍씨를 심었는데 나오는 과정에서 그 씨가 그만 슬며시 변형이 되면서 이게 벼 같기도 하고, 도둑놈 풀 같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그만 가라지가 되어 버리는 그런 씨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처음에는 가라지 씨가 떨어졌는데 종교생활을 잘 하다 보니 가라지가 슬슬 변화되어 하고 볍씨가 되어 버리는 그런게 아닙니다. 볍씨는 볍씨이고 가라지는 가라지듯이 주님은 본질적으로 좋은 씨만 많이 뿌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100% 최고의 고상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눈을 닦고 보아도, 일곱 성령의 눈을 가지고 보아도 땅에서 난 인간에게는 그 어떤 유명한 사람이라도 그 씨를 가신 분은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불신세상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 영혼은 죽어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 중의 하나로 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대 성인은 부활했습니까? 3대 성인은 죄인을 위해 죽었습니까? 다 자기 죄 때문에 죽은 것이고, 3대 성인이 우주만물을 창조했습니까? 3대 성인이 인류를 만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활동들이 일반활동입니까? 그런데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이라고 하는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끼워 넣어줘라그랬나요? 그 중에 안 들면 섭섭하다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4대 성인에 넣어야

 

예수 그리스도가 올라간다고,

전도가 잘 될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를 본받고 그런 사람이 된다고 한 것인가?

 

성경을 본 사람이 그랬나, 성경을 안 본 사람이 그랬나? 성경이 뭔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알고 4대 성인으로 넣었나, 모르면서 소문만 듣고 넣었나?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에 넣자고 한 분들, 넣으라고 한 분들은 모르긴 해도

명예훼손죄에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죄, 구원을 모르는 죄에다가,

자기를 지으신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모르는 죄에다가,

원죄에다 자범죄에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으로 하락시킨 그 책임에다가 모든 심판이 도매금으로 그 사람들 각자에게 성경대로 내려질 것으로 봅니다.

 

은연중에 그 사상적 영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천국복음운동을 하나의 일반도덕운동, 지상복음운동, 육운동, 세상운동으로 하락시킨 오늘날의 기독교회에도 에누리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질 것으로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질 좋은 특상품인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을 닮아 갈 수 있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의 씨앗을 심은 것입니다. 첫째는, 영원히 죽지 않는 기본구원으로서의 생명의 씨를 심었습니다. 생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이 바탕의 본질에서 이 생명이 이 질대로 자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자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은 교훈적인 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인간 우리를 이렇게 만들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38절의 밭은 세상이요, 사람들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밭도 밭 나름입니다. 영이 중생된 마음 밭이 있고, 영이 중생 되지 않은 마음 밭이 있고 즉, 기본구원을 얻은 밭도 있고, 기본구원을 얻지 못한 밭도 있고. 기본구원을 얻은 마음 밭도 얼마든지 네 가지 상태를 지닌 밭도 있을 수가 있는 일입니다. 이 세상 안에는 예수 믿는 이도 있고, 안 믿는 이도 있으니 여러 가지 상태의 밭이요, 또 실지로 교회 안에도 신앙의 질이나 성분으로 볼 때에 여러 가지의 상태의 밭이요, 또 개인적으로 볼 때도 마음에서 나오는 신앙의 변동성을 볼 때 여러 가지 상태의 밭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24절에서 제 밭, 자기 밭이라고 했으니 매우 한정된 밭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교회교인들의 마음 밭이라고 보이고, 둘째는 개인적인 마음 밭으로 보이고.

 

원리는 같습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37절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주님이시고, 38절에서 말하는 좋은 씨는 좋은 씨로 만들어진 사람들. 그러니까 구태여 순서를 붙인다면 주님은 제자들 마음 밭에다 먼저 심었고,(진리와 생명의 말씀으로, 진리와 아가페로) 천국을 상속받을 천국의 아들들로서 인격과 성품이 하나님의 본질로 만들어져 가지고 주님의 사도로 보냄을 받고 나가서 전하고 가르치는 면에서 사람들의 마음 밭에다가, 또는 교회에다 질 좋은 천국의 씨를 뿌리는 것이 천국의 아들들입니다.

 

좋은 씨는 아무리 작아도 품질로 따집니다. 씨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무조건 큰 것만 찾겠지요? 속은 생각지 않고 고상한 질을 버리고 껍데기 큰 것, 색깔만 보고 고르니 그런 사람들의 속은 회칠한 담 같고, 평평해진 무덤 같습니다. 겉은 번질거리는데 속은 송장 썩는 냄새입니다. 천국의 아들들은 사람들의 마음 밭에다가 질 좋은 씨로서 좋은 씨만 가지고 좋은 씨만 심습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곡식 비슷한 것. 이 가라지는 인간이 곡식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가라지는 인간이 세 끼 주식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가라지는 인간 밭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논밭에서 같이 물먹고, 같이 비료 먹고, 비도 먹고, 햇빛도 받고, 곡식과 함께 자연은총도 받고, 농부가 새들을 쫓을 때 가라지는 인간의 덕도 보지만 질적으로 곡식은 곡식이고 가라지는 가라지이지 곡식이 가라지가 되지 않고, 가라지 역시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좋은 씨도 사람이고, 가리지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마음 밭에 질 좋은 천국복음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사람 마음 밭에 천국복음사상이 아닌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세상의 사상을 신앙으로 마음 밭에 받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25절에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뿌리고 갔다고 했으니까 잘 때라는 말은 분별을 못할 때라는 말이고,(신앙이 뭔지) 진리 깨달음에 신앙이 깨어있지 못할 때가 잘 때인데, 그럴 때에 악한 가라지 씨를 받았기 때문에 받은 줄을 알 리 없으니 천국의 복음, 알곡의 씨를 받았거니 하고 위안제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문자대로 말하면 천국복음을 받은 그런 교역자, 그런 성도, 천국의 아들들도 있고, 선악과 따먹은 타락된 마귀의 꾀임을 받은 세상정신 사상을 받은 그런 교역자, 그런 성도들, 마귀의 아들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교인들 지도자들을 보고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그랬지.

 

가라지는 인간들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아니듯이 뱀의 꾀임을 받고 선악과 따먹은 타락된 인간 세상적 기준적 지식은 영이 중생된 성도가 먹을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은 아닌 것입니다. 그 타락된 인간 기준적 지식에다 성경구절을 마귀처럼 인용을 하니까 꼭 천국복음인 것처럼 보이지!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그렇게 가르쳤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자랐고, 속에 그것이 가득 찼으니 또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넓은 길로, 사망 길로, 심판 길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자들은, 특별히 양떼를 인도하는 교회의 종들은 자기의 신앙사상적 노선을 늘 점검을 하고 진리신앙의 노선으로, 천국사상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교회를 가르친다고 하는 이것을 복덕방을 차리는 사고방식으로 가졌다가는 불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영적 양육을 책임을 진 영원 궁극적 성화구원으로 인도하는 이 일을 신학만 마치면 다 하게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가? 어느 안전이라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릴 일인데!

 

천국의 아들들은 예수님의 사상으로 질적으로 만들어지고, 악한 자의 아들들은 세상사상으로 만들어지고 덩어리 키우는 사역목적입니다. 악한 자식을 만들려면 성경을 안 보아도 되고, 성경 없이도 키울 수 있습니다. 귀신 들리게 해서 무당으로 키우면 됩니다. ‘뭘 보았다, 뭘 보았다하는 자로 만들려면 신내림하면 됩니다. 부들부들 떨고! 그러면 유명해집니다. 하지만 신명기 131절부터 11, 특히 참고로 8절에서 11절을 보면 교회 안에서는, 영적 이스라엘 안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자의 아들들은 목적을 세상성의 소원 목적에서 못 벗어나게 만드는 사상운동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그랬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지 말고 애굽 땅에서 애굽을 건설하며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 정신 사상을 이어받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나안을 향해 가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지도와 인도에 반역을 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듯이 정신 사상적으로 그런 자들은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에서 부자되자, 성공하자, 이름을 날리자하는 자들은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세상의 도덕성을 가르치는 것도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그런 등등의 모든 요소들의 가르침은 선악과를 따먹은 타락적 부패적인 요소들의 가르침들입니다. 전부는 진리 바로 깨달아 성화구원을 이루고 주님을 닮아 가는 일을 방해하고 핍박을 주고 진리신앙을 죽이는 악한 자들입니다. 가라지 교훈은 원수마귀의 가르침입니다. 악한 자의 아들들의 아비는 마귀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교회들의 가르치는 교훈성을 보면 마귀의 새끼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세의 교회들의 되어지는 것을 미리 말씀하시기를 소돔과 고모라와 노아 때와 같으리라, 믿음을 보겠느냐하셨고, 계시록에 아시아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도 마귀 짓을 했는데, 그렇다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악한 자의 아들들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천국의 아들들인가?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을 교회까지 포함해서 신앙사상들을 보면

 

1. 예수 안 믿는 불신자, 이방종교인.

 

2.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교리적 이단자.

성분적 이단자.

 

교리적 이단자들도 세상을 따르고, 성분적 이단자들도 세상을 따르고, 넓은 길, 사망 길을 가고.

 

3. 예수 믿고 진리신앙노선으로 가는 신앙자가 있고, 좁은 길 생명 길을 가다가 언제 배도하여 세상 길로 나갈지 모르는 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1. 예수를 안 믿는 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또 이들이 마귀자식들이었는데 예수를 믿으니까 금방 천국의 아들들이 되었는가? 그러다가 또 예수를 안 믿으면 마귀자식이 되어 지옥에 가고?

 

2. 인간 보기에는 예수를 믿어도, 물론 예수 믿는 자기도 나는 예수 믿는 자라고 시인을 합니다. 그런데 비 진리적 세상 것을 주고받고 가르치며 전도하며 그렇게 예수를 열심히 믿는 자들은 전부는 악한 자의 아들들로서 마귀자식인고로 지옥행이란 말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저 놈들은 아무리 예수 믿어도, 또 믿고 싶어도 아예 씨가 마귀자식이니 지옥행이란 말인가?

 

3. 생명 길 좁은 길 진리 길이 좋아서 그 길을 가도 근본 씨가 마귀자식이면 진리대로 살았어도 천국에 못 들어가고 내어 쫓기는가?

 

4. 일반적인 죄도 많이 지었고, 그리고 예수도 믿게 되었는데 처음엔 다 모르니까 몰라 가지고 세상적인 비 진리적 교회에 들어가서 봉사하다가 죽었다 하면, 말하자면 마귀의 가라지 가르침을 받고 가라지 일을 하다가 가라지가 된 사람으로 죽었다 했을 때에 그 사람을 하나님이 가만히 보니 천국의 아들이거든. 그래서 천국으로 데려가느냐?

 

5. 애굽 땅에서 양의 피로 구원을 받고 홍해에서 세례 받고 광야에서 반역하고 하나님의 진노에 죽은 자들은 악한 자들이고 마귀 짓을 했으니 영원 지옥 불로 떨어진 것인가?

 

6. 한 교회 안에도 곡식과 가라지 신앙이 있고,

 

7. 한 가족 안에도 곡식과 가라지 신앙이 있습니다.

 

8. 한 개인의 존재 속에도 알곡의 신앙의 열매가 있고, 가라지 신앙의 열매가 있습니다.

 

천국의 비유에서 자기 마음 밭, 또는 인간 밭, 또는 자기 교회에서 생긴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의 아들들이고, 누가 악한 자의 아들들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심인가? 첫째, 너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 둘째, 네 속에도 그런 요소가 들어 있다. 셋째, 그런 것은 가르치지도 받지도 말라! 넷째, 고치고 천국의 아들들답게 천국복음, 알곡의 씨만 주어라! 다섯째, 너와도 상관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들과 너와는 상관이 없는 자로 살아라 입니다.

 

앞에 열거한 내용들이 다 맞습니까? 예를 들면 모두들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말합니다. 가룟유다를 정죄하고 돌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룟유다를 태어나게 했고, 그렇게 이용해 먹고, 그렇게 죽도록 했고, 그렇게 지옥으로 보낸 것입니까? 천국갈 자인데도 지옥갈 짓을 했기 때문에 영원 지옥 불로 떨어진 것입니까? 가룟유다가 지옥갈 짓을 안 했다 할지라도 지옥갈 사람입니까? 지옥갈 사람인 줄 알고(어차피 지옥에 갈 것이니까) 예수님께서 생각하기를 좀 이용해 먹으면 어때!’ 하고 이용을 한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룟유다 듣는데서 나를 팔아먹을 자가 있다고 한 것은 왜 했느냐?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이 약점을 안 잡히려고 한 것이냐? 단순히 가룟유다의 행동만 알지 그것을 이용하는 예수님의 속셈은 모르지!

 

가룟유다 듣는데 두 번 세 번 들으라고 말한 것은 가룟유다에게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랑에서 나온 깨닫게 하시는 권고의 말씀이었다?

 

가룟유다를 정죄하려면 이제 말씀을 드린 두 가지 말에 해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 정죄를 주장할 경우 현재 자기의 성화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가룟유다성은 없고 하나님처럼 완전자라는 말이 되는 셈이니까!!

 

우리는 가룟유다의 사건을 볼 때 우리의 속의 가룟유다성을 보게 되고 고치려고 노력을 해서 고쳐지니 주님의 긍휼과 사랑이 그렇게 감사하고, 가룟유다를 쳐다보니 불쌍하기도 한 것입니다. 자기가 가룟유다를 보고 깨달으면 고마운 것인데 이것을 못 보고 정죄만 하니 자기는 안 고치고 모순 투성이인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가지고 남을 정죄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그런 식으로 보니 이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누가 가룟유다를 정죄하라고 했나? 하나님이 시키더냐? 정죄할진대 자기 속의 가룟유다성을 정죄해야지! 고라와 벳새다가 두로와 시돈에게,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니느웨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했듯이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교회가 가룟유다에게 심판받을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돈 때문에 예수님을 한 번 팔아먹었습니다. 사실 그 돈도 성전 안에 도로 던졌습니다. 그 돈으로 제사장은 토기장이의 밭을 샀지만, 그런데 오늘날 가룟유다를 정죄하는 자기는 자기 체면 때문에, 명예 영광심 때문에, 부요 때문에, 노후대책 때문에, 사람 때문에, 돈을 좋아해서 어떤 부분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팔아먹는지! 예수님을 수십 번 팔아먹고도 의인인 척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오해하기 쉽게 존재적으로 말했느냐? 그 이유는 첫째 분명한 교훈의 질을 알리고자 함이요, 둘째 그런 교훈의 질들은 처음부터 사람을 영원히 넘어지게 하는 수단방법임을 알리고자 함이요, 셋째 그 교훈의 가르침의 출처는 마귀라는 것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교훈의 질이 드러났고, 그 가르침의 근원이 드러난 것이니까 성경을 가지고 가르친다고 하는 자들의 그 교훈의 질과, 그 가르침의 근원이 드러난 이상 이제는 변명이 필요가 없습니다. 살려면 고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아들들은 겉만 자꾸 꾸미고, 자꾸 옷만 갈아입지 절대로 속은 안 고칠 것입니다.

 

1339, 40: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추수 때는 세상 끝이다

 

세상 끝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 창조도 하나님이 하셨고.

 

인간들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인간 자기가 정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자기는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세상 끝이 없는 것이냐? 인간 자기가 죽는 날을 모른다고 해서 자기의 죽음이 없는 것이냐? 자기의 죽는 날이 있듯이 세상도 없어질 날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니 믿어야지!

 

그런데 보통은 보면 인간 자기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알곡(천국성)이 아니면 가라지(세상성)가 자라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삽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잘 아느냐? 잘 아는 사람이 썩 드뭅니다. 교회에서들 하는 짓을 보면 알지.

 

어쨌든 마지막 그 날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한 밭에서 계속 자랍니다. 둘 다 똑같이 자란다고 해서 둘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 교회에 가나, 저 교회에 가나 예수 믿는 것은 다 똑같지! 아무 교회에 가나 예수 잘 믿으라고 하지 잘못 믿으라고 하나?’ 큰일날 소리! 신앙노선이 같으면 같아도 신앙노선이 다르면 예수 믿어도 절대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속에 무엇으로 자라나는지 알고나 그런 소리를 하던지 해야 할 것입니다.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천사들은 성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물로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영물들에 의해 언제 자기가 끌려갈지 모릅니다. 안 가려고 버텨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40절의 가라지는 30절에도 보면 먼저 거두어질 모양입니다. 낙엽을 태우려면 쓸어서 한데 모아 태웁니다. 이 껍데기들은 하나씩 태우면 불이 잘 안 붙기 때문에 많이 모아 태우면 잘 붙습니다. 금방 붙어 타져 버립니다. 알곡은 불에 태우려면 한참 걸립니다. 특징이 그렇습니다.

 

가라지를 거두어

 

거둔다는 것은 한 군데로 모으는 작업입니다. 구복주의는 구복주의대로, 신비주의는 신비주의대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대로, 구국주의는 구국주의대로, 외식주의는 외식주의대로, 무당은 무당끼리, 점쟁이는 점쟁이끼리 왜 모으느냐? 왜 자기들끼리 좋아서 모이느냐? 분리수거해서 태우려고!

 

오늘날 분리수거는 왜 보여주느냐? 바람에 날리는 스티로폼은 스티로폼끼리, 쇠는 쇠끼리, 종이는 종이끼리. 분리수거는 쓸 것, 못 쓸 것을 골라내어 태웁니다. 태우기 위해서 끼리끼리 모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왔든지 왔다가 가거들랑 , 천사가 끼리끼리 모으는 데로 데리고 갔구나하고 생각을 하라고!

 

말씀을 간절히 깨닫는 성도는 진리성도입니다. 진리성도는 딴 것 안 봅니다. 진리만 봅니다. 그런데 떨어져 나가는 자가 진리인지, 가라지인지를 어떻게 아느냐? 만일 떨어져 나가는 자가 진리이면 진리에 기준된 명확한 가치 판단과 평가가 나와서 이 교회, 이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로구나하고 떠날 것이고, 그러나 교회에서 명확한 가치 판단 평가를 할 수 있는 진리를 주었는데도 다른 교회로 가는 것은 무슨 이유를 붙여도 그것은 타락된 인간 자기 마음에 안 맞아서 나가는 것이니 서운해하지 말고 이것을 볼 때에 , 천사가 분리수거해 가는구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분리수거를 하니

, 세상 끝 날이 다 되었구나!’

, 그 사람의 일생도 다 돼 가는가보다!’

 

가라지를 수거해 가는 것을 보니 때가 다 되었구나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결심을 하고 알곡성도로 키우려고 진리 깨달음에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기드온 군사가 처음에는 32천명, 여기서 알곡은 300. 몇 명이 나갔느냐? 317백명이 나갔습니다. 스스로 나갔느냐? 아닙니다. 일부러 보냈습니다. 일부러 보낸 사람도 있는데 자기가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가는 데야 못 보낼게 없습니다. 가라지가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역사를 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보내 버리라고 하십니다. 가라지가 좋아하는 대로 복을 빌어서 보내라! 세상에서 꽁지가 되지 아니하고 첫째가 되라고!

 

그 말을 영으로 알아들으면 진짜 복을 받을 것이고, 육으로 알아듣고 아멘하면 앙화도 그런 저주스런 앙화가 없습니다. 알곡으로 여물지 못하고 예수 믿으면서도 일생을 낭비하고 자라지가 되어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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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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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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