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염려하지 말라

by 이정원 목사 posted Jul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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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마6:25-32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염려와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아마도 염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아무 염려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염려하지 않고 살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 가운데 한 가지는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염려하며 사는 걸까요?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함으로써 우리를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불순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염려와 걱정을 극복하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최대의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염려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주심으로써 그러한 문제로 더 이상 염려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25절)


  목숨은 음식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목숨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 귀한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목숨을 유지시키기 위한 배려를 해놓지 않으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목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식이 부족해서 살 수 없게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목숨과 몸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올바른 믿음을 가질 때 염려는 사라집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주님께서는 그저 염려하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염려하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공중의 새들에게도 먹이가 공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절)


  하나님은 새들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에게 먹이를 주십니다. 새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 염려와 근심은 아예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진리를 믿는 순간 모든 두려움과 염려는 즉시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들을 돌보십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것은 새들을 소중히 여기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엄청난 차이를 생각해보십시오.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먹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단번에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그만 두게 됩니다.


    염려하므로 키를 더 할 수 없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염려함으로 우리의 키를 조금도 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27절)


  키는 신장, 또는 수명을 의미합니다. 물론 어떤 해석을 취하든지 그 뜻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염려해도 우리의 수명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의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으나, 사실상 그것으로 우리의 수명을 연장할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의 족장들은 수백 년, 거의 천년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오래 살았습니다. 우리의 수명은 의술이나 좋은 약, 좋은 음식과 같은 것들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수명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왜 그렇게 염려하고 안달이냐?”


  우리는 염려하지 말고, 우리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시작하게 하셨고, 또 그것을 끝나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십니다. 이처럼 생명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으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염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작은 문제들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전적으로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영화


  염려하지 말아야 할 세 번째 이유는,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28-29절)


  주님께서는 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풀을 가지고 다시 같은 진리를 교훈하셨습니다. “이 풀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베를 짜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풀들을 보라. 그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놀랍고 완전한 모습을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큰 영화를 누린 왕으로 유명합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화려하고 찬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지혜를 봅시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 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라”(왕상4:29-34)


  솔로몬의 영화를 보십시오.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모든 그릇들도 다 정금이라 은 기물이 없으니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그들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그리하였더라”(왕상10:21-25)


  그의 뛰어난 지혜, 왕과 신하들의 화려하고 질서 있는 조복들, 금으로 싸고 보석을 박은 가구들, 백향목 궁전, 헤아릴 수 없는 재물 등 … 솔로몬의 영화는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화들은 한 송이의 꽃과 비교해 볼 때 빛을 잃고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 뿐만 아니라,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집니다. 현미경으로 그것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솔로몬의 옷은 한낱 생명 없는 옷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백합화의 정교하고 오묘한 짜임새는 초점이 정확하게 맞춰질수록 더욱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허허벌판에서 헛되이 향기를 소비하는 것 같은 들풀, 그리고 베어지면 곧 말라져서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이렇게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백합화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들풀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그렇게 보살피십니다. 반면에 우리는 영혼이 불멸하는 존재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지금은 잠깐 유한한 세상에 살고 있으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분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홀히 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러한 진리를 믿지 못하고 염려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30절) 그리스도인들이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은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 굴복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작은 믿음이란 영혼구원의 문제만 해결 받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이 생활전체로 확대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근심하며 염려합니다. 하나님 백성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작은 믿음은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고, 환경에 지배를 받는 믿음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에게 닥쳐오는데,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에 부딪힐 때 넘어져 버립니다. 문제에 부딪힐 때 그들에게서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은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들을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모든 염려를 던져버려야 합니다.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돌보십니다.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를 위해 영원히 변함없는 선하신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확신했던 믿음의 사람들은 재난을 당할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그것을 지배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확신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삭을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논리적이고 근거가 확실한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모세는 당시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절대군주 바로와 맞섰습니다. 바로는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사람들의 생명도 맘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절대군주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선포했습니다. 분노하여 날뛰는 절대군주 앞에서 모세는 보이지는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담대했습니다. 모세는 아무리 절대군주 바로라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냈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모세는 추격해오는 애굽의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명령대로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밀었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한 가운데로 난 마른 길로 건너갔고, 추격해오던 바로와 그의 군대는 모두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와 애굽의 군대를 이겼던 것입니다. 작은 믿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염려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방인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2절)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고 보배로운 약속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내세에 대해서도 모르며, 현세의 삶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즐길까 하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의 전부입니다. 그들은 그것들을 추구하며, 그것들에 대하여 염려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점이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늘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염려는 사라져버립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너희 하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2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달리 행동하게 만듭니다.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이방인들은 절망하거나 분노하거나 두려워합니다. 심하면 세상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억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담대하고 안심되며 평안해집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의 예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의 필요에 대하여 더 잘 아십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얼마든지 이 모든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근심과 염려는 단번에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러니 무엇을 염려하겠습니까?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며, 모든 염려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이 설교는 M.D. Lloyd Jones 산상설교를 주로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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