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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애도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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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자를 위하여  

- 이지현 기자 (국민일보)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우린 자신의 죽음을 미리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산산히 부서지며 새로운 지향점을 필요로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된다. 오랜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예비애도'를 거친 사람들에게도 상실의 아픔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 주변엔 의외로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애도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린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당황한다. 어설픈 위로의 말이 상처가 될까봐 오히려 애도자를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애도자의 상실감에는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감이 더해진다. 엄밀히 말해 죽은자가 소외된 것이 아니라, 애도자가 죽은자와 함께 세상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 사회는 슬픔을 빨리 극복하는 것을 강자의 특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루 빨리 아픔을 극복하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도의 감정이 억압되면 이해할 수 없는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애도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상실의 체험이 강렬할수록, 그것과 관련된 공격성이 억압될수록, 다루지 못한 갈등이 많을수록, 갈등을 감내할 수 있는 자아의 능력이 부족할수록 우울의 반응은 병리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애도는 더 이상 약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중요한 심리적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애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하고 간혹 무너질 수도 있다. 

애도자를 대하는 위로자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애도자의 체험을 나누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경청하고 진실로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지, 위로자 자신의 애도체험을 거론할 필요는 없다. 가까이 가서 애도자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자체가 위로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죽음이 끊임없이 넘실대는 삶에서 이별하는 존재인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뤄야 하고 견뎌야 하는 경험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슬픔 속에서 속히 빠져나오려고 애쓰지 말라고. 분노와 통곡, 혹은 원망과 자존심 그밖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만가지의 감정을 다 드러내라고…. 

우리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완성되는 것이다. 상실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의 증거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해 본다. '너(죽음)를 만날 때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손벌려 악수하고 맞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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