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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슴에 새겨진 이름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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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새겨진 이름 ‘스승’     
 
- 이철환(동화작가) 
 

전교생이 17명밖에 되지 않는 산골 초등학교에 한 소사 아저씨가 있었다. 소사 아저씨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였다. 열 살만 넘으면 가난한 농가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소사 아저씨는 꿈을 심어 주고 싶었다. 

소사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처음 가르쳐 준 노래는 '반달'이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의 아이들이 노래를 배웠지만, 연필과 크레파스와 노트와 스케치북을 선물로 준다는 말을 듣고 전교생 17명이 모두 노래를 배우러 왔다. 목이 쉬도록 노래를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매미처럼 제각각 울어댔다. 

"아저씨, 선물은 언제 주나요?" 한 아이가 신발 앞부리로 마른땅을 후벼 파며 물었다. "선물은 무지막지하게 많이 준비되어 있다. 노래를 다 배우고 나면 느티나무재 너머에 있는 교회에 가서 합창을 하기로 했거든. 노래를 잘하면 목사님이 선물을 많이 주신다고 했어. 조금만 더 연습하면 선물 받는 건 문제없다." 아이들은 더 열심히 노래를 배웠다. 집안일 때문에 학교에 나올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합창 발표 날이 왔다. 소사 아저씨는 전교생을 데리고 느티나무재를 넘었다. 예배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었던 엄마 아빠들이 예배당 안에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설레게 한 건 단상 앞에 놓여 있는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단상 위에 섰다. 아이들 얼굴에 마른버짐이 찔레꽃처럼 피어 있었다. 잠시 후 풍금 소리가 흘렀다. 아이들은 바람을 타는 청보리처럼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들 눈에 눈물이 반짝거렸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소사 아저씨도 울고 있었다. 예배당에서 노래를 불렀던 아이들은 세월을 따라 배추잎처럼 나박나박 자랐다. 

사춘기를 앓았고 새털처럼 많은 날들을 살아내며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가끔은 소사 아저씨가 가르쳐 준 '반달'을 노래했을 것이다. 어른이 된 그들은 알고 있을까? '반달'을 가르쳐 준 마음씨 고운 소사 아저씨가, 박봉을 털어 빠작빠작한 선물을 사다 놓은 가난한 소사 아저씨가 나의 스승이신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가슴에 새겨진 사랑은 지워지지 않으니까. 누구의 가슴에서도, 오랫동안, 그 모습 그대로, 그렇게….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시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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