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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켈트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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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 영성     
 
- 리처드 포스터 (국제 레노바레 대표)
 

켈트 영성을 살펴보고 거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워보자. 켈트 영성은 4세기에서 8세기까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등지의 거친 땅에서 융성했던 기독교 신앙과 삶의 격렬한 표현이었다. 패트릭, 브리기드, 브렌던, 콜럼바, 에이든, 쿠스버트, 채드, 케드, 힐다 등 다수 인물들의 전도 열정과 영웅적 위업은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 영어권에 복음을 전한 그들의 충성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서 우리 시대를 위한 충성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그들도 문화가 급진적으로 변하는 격동기를 살았다. 그들이 문화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과 그리스도께로의 문화 변혁이라는 대안적 비전을 제시했다. 

오늘날 켈트 영성에 관한 관심이 많지만 그들의 영성을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그 중 세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오늘날 생태학적 관심에서부터 여권 신장 운동, 뉴에이지적인 마술 종교에 이르기까지 켈트 영성을 자기 입맛에 맞게 제멋대로 바꾸고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적 기록을 충실히 다룬다면 이런 왜곡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켈트 영성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집중된, 기독교 정통 신앙의 폭발이었다. 

그들이 자연세계를 유달리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해준다고 본 데서 비롯되었다. 그들이 다양한 리더십 형태에서 남자와 여자를 공히 존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엄격한 통제 하에서만 이루어졌다. 인간의 권력욕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파괴된다면 특정 지위의 리더십이나 권위를 누가 가지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켈트 영성은 철저하게 진정으로 기독교적이었다. 

둘째, 오늘날 켈트 영성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성인(聖人)들이 날마다 꽃이 피는 초원을 거닐고 밤마다 따스한 난로 곁에서 에일맥주를 마셔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영성은 매일 시련과 슬픔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거칠고 험한 영성이었다. 일례로 그들은 '낙농장에서 일하는 여자의 기도'라든가 '남을 괴롭히는 이웃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에 대한 기도' 같은 일상생활의 기도문을 개발해야 했다. 켈트 영성은 낭만적인 장밋빛 신앙과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삶의 모든 슬픔과 기쁨을 헤쳐 나아간 영성이었다. 

셋째, 켈트 영성을 학문적이고 식자적인 것으로만 보는 이들도 있다. 그것은 켈트 신앙의 중심에 있었던 심령과 열정을 놓치는 행위다. 켈트 영성은 지극히 관계 지향적이고 공동체 중심적인 심령의 영성이었다. 그들은 기도와 행위, 명상과 일을 동일한 성직에 속한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 사람을 향한 열정, 삶을 향한 열정은 진정 놀라웠다. 환희 넘치는 축제, 선교 지향적 생활양식, 창조세계에 대한 찬양이 모두 그들의 열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우리도 역시 그들처럼 열정적인 심령의 신앙에 침잠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기를 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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