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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순음(純音)과 역음(逆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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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고 꼬리를 치는 강아지에게 활짝 웃으면서 "너를 올 여름에 잡아먹을 거야" 하고 말해보십시오.
강아지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웃는 표정만 보고서 계속 꼬리를 흔듭니다.

반대로 아주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면서 "강아지야. 사랑해. 아이 예뻐~" 하고 말해 보세요.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해도 강아지는 화가 난 표정을 보며 으르렁거릴 것입니다.

설교도 마찬가지로 그 소리보다는 소리의 감정파장에 의해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짜증을 내게도 하고 졸리게도 합니다.

아무리 명문장으로 된 기가막힌 설교를 유창하고 거침없이 쏟아내도 거기에 '진정성'이 없으면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눌한 언어로 더듬거리며 설교를 해도 거기에 '진정성'이 있으면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립니다.

심장에서 생산되는 피의 약 ⅓은 두뇌활동에 사용되고 그 중에 반은 언어활동에 사용됩니다. 언어는 1초에 14000개의 신경근육을 움직이게 하고 뇌는 적절한 언어를 표현하기 위하여 호흡, 발성, 공명, 조음, 성대, 횡경막, 폐장, 기관, 후두, 인두, 구강, 비강, 눈, 귀를 종합적으로 마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이 조정합니다.

현상과 머리의 인식이 똑같은 동일한 소리는 뇌가 여러 가지 기능을 잘 조화하여 '순음'을 내니 듣는 사람 귀에 부드럽게 들립니다. 그러나 현상과 머리의 인식이 서로 틀리면 뇌가 깜짝 놀라 적절한 소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역음'을 내게 되니 듣는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파장이 전달됩니다.

예를 들어 설교자가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하고 설교를 했을 때, 그 설교와 설교자 자신도 똑같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뇌는 금방 '순음'을 냅니다. 하지만, '사랑합시다'하고 설교를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전혀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뇌는 그 이중성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역음'을 내는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똑같은 설교를 해도 어떤 사람의 설교는 감동을 주지만 어떤 사람의 설교는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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