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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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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는 칠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나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는 불운 속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자애로우시고 희생적이신 어머님의 사랑과 형제들의 각별한 우애속에 결코 불행하지 않은 건강하고 화목한 삶을 살았다.
철저한 유교 전통과 필요에 따라 불교와 미신을 함께 섬겼던 서울 토박이 우리 가족들은 바로 옆에 있었던 교회와는 완벽하게 담을 쌓고 살았다. 맛있는 과자와 예쁜 학용품 또는 특별한 프로그램 등으로 어린이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성탄절 행사 때에도 내게 있어서 교회는 결코 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낮에는 상념에 빠져 멍청히 앉아서 허공을 쳐다 볼 때가 많아졌고 밤이면 죽음이 무섭고 싫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꼬부리고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어머니께 이 고민을 말씀드려봐도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것이 세상이치인데 어린아이가 왜 그런 걱정을 하느냐" 하시면서 타일러 주셨다.
1950년 초여름 한가로운 오후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어머님이 다림질 하시는 일을 도와 드리고 있었다. 마주 보이는 신작로 위쪽 끝에 눈같이 깨끗한 흰옷을 입은 한 분이 검고 두꺼운 큰 책을 손에 들고 서서 나에게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책을 분명히 보았고 또 받았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꿈을 꾼 것도 아닌데 시공간을 초월한 이 체험은 너무 놀랍고 신기한 것이었다. "어머니 내 책 어디 갔어요?" 하고 빈손을 어머니께 보이면서 방금 있었던 일들을 말씀 드렸다. "천지신령님께 책을 받았으니 넌 이 다음에 박사가 되려는가 보구나" 하고 대답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이 성경책이었음을 그 일로부터 23년 후 목사님으로부터 집사 직분과 함께 검은 성경책을 받는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다.
나는 1959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2학년 때 4.19혁명의 현장에 있었고 다음해 5.16 격동기를 지나면서 또다시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되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영생에 대한 갈구가 되살아났다. 나는 다시 불안했고 괴로웠고 방황했다. 도선사에서 청담스님의 설법을 여러 번 듣기도 했다. 불교의 연기설은 실존록적으로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으나 존재 자체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분명치 않아 내게는 무의미했다.
또한 백팔 번뇌를 극복하기 위한 도를 닦는 일이 내게는 도저히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자신이 없었다. 끝내는 실망하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실존주의 철학 책을 탐독해 보았지만 불면증을 심화시킬 뿐이었다. 마음은 미칠 지경이 되었고 왼쪽 골이 아파 오기 시작하더니 오른쪽 팔과 다리가 점점 힘이 없어지고 아파서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독일 유학을 하여 경제학 박사가 된 후 한국 경제를 일으켜 보겠다는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익한 사람이 되었다.
막내딸을 살려 보시겠다는 어머님의 애타는 노력과 사랑 덕분에 병이 조금 나아졌을 때 한 동네에서 어렸을 적부터 잘 아는 사이였던 경제과 동기생 김현일과 결혼했다. 시댁 역시 우상을 지극히 받들어 섬기는 집안이었다. 나는 1년에 일곱 번 이상 제사를 드려아 하는 종갓집의 맏며느리가 되었고 교회나 예수와는 더욱더 멀어져만 갔다.
1972년 9월 16일 토요일 새벽! 내게 있어서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감격의 순간이다. 교회에 나온지 10개월만에 새 생명으로 거듭 태어난 날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 가까운 벧엘중앙교회에 부흥회가 있었다. 내가 출석했던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나는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집회에 참석했다. 한 시간도 빠짐없이 참석하면 은혜를 꼭 받을 수 있다는 부흥 강사님의 말씀대로 실천해 보았다.
부흥회는 끝났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기뻐 뛰는데 나는 여전히 은혜라는 것을 받지 못했다. 허탈감에 빠져 기도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보고만 있지 말고 기도를 좀 해보라는 권사님의 권유를 받고 십자가를 정면으로 향하여 자세를 바로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부르는 순간 내 입에서 "아버지!"하는 말이 연이어 나왔다. 나는 놀랐다. 그때까지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친히 내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내 마음속에 엄청난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친히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천하의 제일 고약한 배은망덕의 죄인이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내 마음 내뜻대로 살아왔던 그 세월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는 삶이었던가를 깨닫는 순간 나 같은 죄인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았다.
성령님께서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책망으로 깨우쳐 주셨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울고 또 울었다. 내 생전 그렇게 통곡하면서 울어본 적이 없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날은 훤히 밝았고 기도하던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지 나만 홀로 남은 듯 했다.
다시 한 번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가, 예수님을 십작가에 못박아 죽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발견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밉고 싫어서 온몸을 떨었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 때문에 서슴없이 예수를 팔았던 가룟 유다나 빌라도나 종교 지도자들고 내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들의 악한 속성이 내 마음에도 꽉 차있음을 분명히 보았다. 내 마음이 이렇게 더럽고 가증한 줄 정말 몰랐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란 요한복음 1장 12-13절 말씀이 마음으로 확실하게 믿어졌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것은 샘과 같이 솟아나는 기쁨이었고 평안이었다. 어둡고 무서운 죄와 사망의 긴 터널을 뚫고 영생의 찬란한 광명으로 나온 것이다. 드디어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다.
나는 그날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 이정효(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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