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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단지 눈이 좀 충혈될 뿐인데 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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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눈이 좀 충혈될 뿐인데 암이라니...
   
- 정인경 (27, 강남교회,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


단지 눈이 좀 충혈될 뿐인데 암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병은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한동안 앞자리에 앉아서도 칠판 글씨를 공책에 옮겨 적지 못할 만큼 시력이 떨어졌었다. 친구들이 공책을 빌려주거나 짝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곤 했는데 그 학년이 지나고는 시력이 돌아와 부모님께서도 한 때 그럴 때가 있으려니 하시며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였다. 1학기 기말고사쯤이었던 것 같은데 시험 공부를 하다 보니 왼쪽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갔다. 왼쪽 눈은 이전부터 오른쪽보다 현저하게 시력이 떨어지고 가끔씩 충혈 되기도 했었는데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부모님께 특별히 말씀드리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그 때는 증상이 너무 심해 부모님께 말씀드리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보시고는 병원에 한번 가봐야 되겠다며 진찰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찾아 간 병원에서 우리는 뜻밖의 진단 결과를 받아보게 되었다. 눈 암이라는 것이었다. 시력이 안 좋은 것도 암세포가 시신경을 막고 있는 탓이고. 더구나 정확한 암의 진행 상태나 치료 가능 여부는 눈을 열어 봐야 알겠다는 것이다.

  단지 눈이 좀 충혈 될 뿐인데 암이라니……. 나는 단지 눈이 충혈 되고 시력이 나쁠 뿐 생활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탓에 암이라는 병을 실감하지 못하였지만 부모님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곧 수술을 권하였다. 왼쪽 눈의 암이 곧 오른쪽 눈은 물론 다른 부위로까지 전이될 수 있으니 어쨌든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병원에서는 내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셨지만 암이라는 병명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수술을 해도 낫는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고들 하면서도 그래도 어쨌든 수술은 해야한다고 하였다. 결국 나는 연세대 병원에 수술날짜를 잡았다.

  수술날짜를 잡아 놓고도 어머니는 강력하게 수술을 반대하셨다. 암이라는 병은 칼을 대면 오히려 퍼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던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신앙이 깊으셨던 어머니는 내 병을 하나님께 고침 받아야 한다고 믿으셨던 것이다. 당시 그런 어머니의 신앙은 신앙이 깊지 않으셨던 아버지와의 다툼을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육체적인 고통도 없고, 어렸던 탓에 암이라는 질병이 주는 두려움도 별반 없었을 뿐 아니라 평소 어머니를 많이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그 분의 뜻을 따르고자 했다. 또 수술을 해도 나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바에야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고도 여겼었다.


두 번 살리신 하나님 - 어머니의 믿음으로 눈 암을 고침 받고

  어머니와 나는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기도원에 올랐다. 처음에 우리는 상담을 통해 3일 금식을 하라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금식은 무슨 금식이야. 3일을 어떻게 금식해' 하며 투정만 부릴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데리고 최자실 목사님을 찾아 뵈었다. 나는 어머니가 목사님과 나누는 대화를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이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병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한 달 정도 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목사님 앞에서 흐느껴 우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덩달아 울었었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열흘 금식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열흘 동안 어머니는 정말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러나 어리고 신앙이 적었던 나는 그저 어머니께 투정만 할뿐이었다.

  그래도 귀동냥으로 하나님께 고침 받을 때는 그분의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보게 된다는 말을 듣고는 금식이 끝나갈 때엔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어머니가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내 눈에 안수를 하시니 내 눈이 환해지는 환상을 보셨다. 정말 그 후에 내 눈은 환해지고 좋아졌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다.

  그 때 나는 여러 사람에게 나를 살리신 하나님을 간증하고 그 분을 찬양하였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기도원을 찾아 기도하는 일도 없이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았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눈이 충혈 되어 병원에 가니 예전과 똑같은 진단이 나왔다. 그 때도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병이 재발하자 나는 더 이상 수십 군데 병원을 찾아 다니고 싶지도 않았고 기도원에 가는 것도 싫었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암이 재발한 이상 더 이상은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졌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번에도 역시 어머니는 하나님께 내 병을 의탁하고자 하셨다.
  나는 이미 포기했지만 차마 어머니께는 그렇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어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마지막 소원이나 들어드리는 마음으로 기도원을 따라 나섰다.
  그렇게 따라나선 기도원에서 나는 너무나 자상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께 안수 받고 기도하는 가운데 내 병은 다시 고침 받게 되었다. 목사님께서는 내게 기도 열심히 하고 내가 나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으라고 말씀하셨었다. 나 또한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 휴학 상태였던 나는 병 고침을 받은 후에도 복학할 때까지 기도원에 머물렀다. 기도원이 내 집인 것처럼 하고 좋았던 것이다.
  복학을 위해 집으로 아주 내려올 때 목사님께서는 '네가 내려가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도 상관없다만, 혹시라도 병원에서 병이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네가 기억하게 하시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복학을 위한 증명서를 떼기 위해 간 병원에서는 정말로 진찰을 해 본 후 뭐가 나았다는 거냐며 병이 그대로여서 증명서를 써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대로 둬서 병이 오른쪽 눈으로 전이되고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럼 어쩔거냐' 며 겁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상관없다며 막무가내로 서류를 받아내어 복학하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셨음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벌써 십 년이 넘은 일이 되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쭉 암덩어리와 함께 살고 있다. 한 달 밖에 못 산다던 내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올무로 여겼던 어리섞음

  나는 병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에 내가 하나님께 선택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오히려 내게 주의 일을 해야만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인데 마치 빚을 진 것처럼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게 올무가 되었다.

  나는 주의 일을 하겠다고 신학을 공부하고 나서도 이러한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감당하기엔 내 믿음의 나이가 턱없이 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 기도하며 나는 사명을 감당하려는 결단조차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 내 병을 내어 맡겼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주의 일도 내 앞으로의 삶을 그분께 그저 내어 맡김으로써 시작되는 것임을, 어떤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내 선택, 내 의지가 먼저일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만이 내게 필요한 것이다.

  이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자유롭고 행복하게 한다.
  나는 지금 예전에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을 보며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행복해 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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