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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빛과 소금 4월호에 기재된 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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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우리에게 탱크를 지급해라 -

기억 너머 89년 일본 장애인 아시안 게임 때 이야기다.
지금껏 갇혀? 지냈던 나로서는 일본의 거리는 하나의 충격 그 자체였다.
휠체어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일본의 턱없는 거리와 목숨을 담보로 타야 하는 우리 나라의 휠체어 리프트 대신 지하철역이면 철도처럼 항상 존재하는 엘리베이터 (여기서는 특별하게 장애인용이라고 붙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엘리베이터가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 는 것이 그들의 사고 방식이다............... )
난 그 도시에서 마법에 걸린 것처럼 체류하는 기간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 할 수 있었다.
시드니의 휠체어도 탈 수 있는 일반 버스들, 중국 북경의 턱없는 거리, 런던의 보행자가 단추 하나만 누르면 작동하는 신호등 ........ 그것은 장애인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며 느끼고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것은 그 나라들의 놀라운 시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배려의 마음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뿌리 깊은 평등이었다.
내가 진정 감동 받았던 것은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잘 정도 되어 있는 턱없는 거리가 아니라 각 나라에서 지내온 동안 어느 누구도 거리에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거기에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있는 것이다. 서서 걷는 사람들의 생각만 바꿀 수 있다면 정말 생각과 인식만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이것이 위대한 우리 나라의 헌법 제 1조다.
그러면 물어 보고 싶다. 턱 있는 거리에서 당신과 내가 평등한가? 수 없이 높고 긴 바벨탑 같은 계단에서 당신과 내가 평등한가?  휠체어 탈 수 없는 버스와 택시에서 당신과 내가 평등한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당신과 내가 평등한가? 아마 평등하다고 말한 용기? 있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지난해에 지하철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다가 낙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평등하지 않은 사람은 불쌍하게도 목뼈가 부러지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나도 지하철이나 기차역에서 그 무서운 휠체어 리프트를 따면 아찔 아찔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또 물어 보고싶다. 노대통령님은 청룡열차 같은 휠체어 리프트 타 보셨는지 ..........
턱 높은 거리에서 휠체어 타 보셨는지 ........... 계단 위에서 휠체어 타고 고마운 도움의 손길을 구해 보셨는지 ..........    휠체어 타고 택시 한번 잡아 보셨는지......
높으신 국회의원 장관님들 수많은 높으신 분들이 한번도 해 보지도 않으시고 왜 우리에게 타 보라고, 이용하여도 괜찮다고 하면서 계단을 만들고, 턱을 세우고,  회색빛 장애를 거리마다 만들어 놓으셨는지 ..........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큰 소리로 비장애인들에게 외친다.
내가 장애인이 아니라. 거리에 솟아오른 턱이 장애이며, 휠체어를 거부하는 버스와 택시가 장애이며, 욕심처럼 높은 계단이 장애이며,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편견의 눈빛들이 진정한 장애이며 수많은 장애를 만들어 놓은 당신이 불쌍한 "장애인"인 것이다.
나는 작년에 48년 창군이래 최초의 장애인 군인이 되었다.
그때 비가 내렸는데 연병장 흙바닥이 온통 진흙 투성이가 되어 나의 애마(휠체어)가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전우들이 나무로 나의 휠체어 길을 새롭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 넓은 연병장과 식당과 훈련소와 부대 곳곳에 나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그것이었다.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게 해달라. 올라 갈 수 없는 곳을 올라 갈 수 있게 해달라. 휠체어로 탈 수 없는 버스를 탈 수 있는 버스로 교체 해 달라 이것은 애원이 아니다.
물론 부탁도 절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의 당연한 권리요. 서서 걸을 수 있는 당신의 당연한 의무이자. 우리 모두 웃을 수 있는 행복이다.
우리 나라는 평등을 외치는 법치국가이다. 우리 나라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이다. 우리도 휠체어를 타고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도 투표한다. 또한 세금도 꼬박 꼬박 내고 있다. 그러면 내가 주장하는 장애인 이동권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우리의 몫인 것이다. 만약에 어느 한시적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중단 해 버리면 자랑스런 우리의 비장애인들은 건강한 다리로 난리가 날 것이다.

여기서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교회는 어떤 한가? 교회는 계단이 없는가? 교회는 높은 턱이 없는가?
교회는 장애인에게 열려 있는가? 영혼 구원이 하나님의 위대한 뜻이자 가장 큰사랑인데 가고 싶어도 교회의 계단과 턱과 성도들의 편견 때문에 휠체어 바퀴를 돌려버린다면 과연 하나님을 뭐라고 하실까? 나는 휠체어를 타고 몇 년전부터 간증사역을 하고 있다. 1년에 100여군데 전국 교회를 찾고 있는데 그 중에 약 20%만이 휠체어 경사도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시설에도 장애인은 별로 눈에 뛰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앉은뱅이와 소경된 자들과 귀머거리, 귀신 들린 자들과 늘 함께 하시며 항상 긍휼을 베풀어 주셨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장애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예배를 드리고 싶을 때, 기도를 하고 싶을 때 찬양 드리고 싶을 때 교회를 가지 못할 때가 나도 있었다. 교회의 계단이, 교회의 턱이. 우리의 편견이 나의 휠체어를 거부하였다.
미칠 것 같았다.  주님의 피 떨어지는 소리, 주님의 뼈 갈라지는 소리에 내 심장이 눈물을 토하고 나의 장애보다 더 아픈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교회에 가야만 했는데 꼭 가고 싶었는데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교회들이여 교회의 계단을 주의 이름으로 없애달라.
교회들이여 교회의 높은 턱을 주님의 십자가로 낮추어 달라.
교회들이여 성도들의 편견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으로 사랑이 되게 해 달라.
세상의 계단이, 세상의 턱이, 세상 사람들의 편견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 계단이, 주님의 교회 높은 턱이, 주님의 교회에 존재하는 편견이 바다와 같은 마르지 않은 우리의 큰 문제인 것이다.
나중 나중에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계단을 많이 세웠니? 왜 그렇게 교회에 높은 턱이 많니? 물어 보신다면 뭐라고 대답 할 것인가?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자. 우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으니 교회에서부터 계단을 없애고 교회에서부터 턱을 깎고 교회에서부터 편견 대신 평등의 검을 들고 세상에 존재하는 계단과 턱과 편견을 주의 이름으로 새롭게 하자.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나에게 탱크를 지급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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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www.paralympi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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